야구의 사회적 역할⑲ 야구 ODA, 우리 리그를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이전 시리즈에서는 사직 재건축을 중심으로 미국과 일본의 구장을 살펴봤다. 야구장이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라, 도시와 공동체의 기억을 품고 공공성을 실현하는 사회적 공간임을 보여줬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한국 야구가 국제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야구 ODA’를 이야기한다.

2020년대 중반 한국 야구는 두 가지 현실에 직면해 있다. 국내에서는 KBO리그가 꾸준히 팬덤을 키워가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높은 수준의 외국인 선수 영입과 높아진 빅리그의 관심은 과거보다 위상도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표팀 차원에서는 국제 무대에서의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국제 대회 성적 부진은 한국 야구의 제도적 발언권과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 속에서 한국 야구의 입지를 넓히기 위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왜 그 가능성을 보지 못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그 하나의 답이 야구 ODA일 수 있다.

 

프로 흥행은 정말 국제 경쟁력과 무관할까?

국제 경쟁력은 흔히 대표팀이나 협회의 문제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그 파장은 프로구단에도 서서히 스며든다. 해외 연구국내 자료에 따르면 대표팀 성적과 관중 수 같은 흥행 지표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고 해서 리그 관중이 곧바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리그 흥행을 결정짓는 것은 전력의 균형, 스타 선수의 존재, 경기장 환경, 그리고 경기 외적인 경제 여건 같은 요인들이다.

그렇다고 국제 경쟁력이 프로구단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대표팀 성적 부진이 장기화되면 해외 스카우트와 스폰서의 관심이 줄어들고, 이는 선수 시장과 리그 브랜드 가치에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즉, 흥행 지표와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크지 않더라도, 간접적인 방식으로 리그 운영 전반을 흔들 수 있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정보 접근성의 약화다. 국제 경쟁력이 낮아지면 한국인 임원이나 심판, 위원이 국제 무대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줄어든다. 이들은 단순한 직책 보유자가 아니라, 규정 개정이나 신설 대회의 방향성처럼 공식 발표 이전에 오가는 논의와 분위기를 미리 접할 수 있는 창구다. 동시에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고 반영할 수 있는 중요한 경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 채널이 줄어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사전에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구단과 리그는 대응 타이밍을 놓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국제 대회 일정이 국내 리그보다 우선시되는 상황이 잦아지고, 대표팀 소집과 리그 일정이 충돌한다. 일정 차질은 곧 선수 차출 부담으로 이어지며, 구단 전력 약화와 흥행 손실을 불러온다. 나아가 경기장 사용에도 문제가 생기고, 스폰서와 방송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도 피해가 확산된다.

따라서 국제 경쟁력의 약화는 단순히 대표팀 성적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은 관중 수나 흥행 지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정보 공백을 확대시키고, 리그의 대응력과 안정성을 떨어뜨리며, 프로구단의 경영 환경과 리그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야구 ODA, 사회공헌이자 국제 경쟁력 강화 전략

< 야구 인프라 지원과 지도자 파견으로 개발도상국 청소년에게 꿈을 전하는 야구 ODA >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자립과 발전을 돕기 위해 공공 재원을 활용해 제공하는 원조다. 단기적인 물품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과 보건,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문화와 예술, 스포츠 같은 비물질적 가치까지 ODA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특히 스포츠는 청소년 교육, 평화 증진, 공동체 강화 같은 사회적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개발 협력의 새로운 매개로 주목받고 있다.

야구 ODA는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공공외교형 ODA다. 야구 인프라를 지원하고 코치와 지도자를 파견하며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개발도상국의 청소년과 지역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핵심은 단순히 야구를 보급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안에 담긴 문화적, 교육적 가치를 함께 전하는 데 있다. 예절과 협동심, 성평등, 다양성 존중 같은 메시지는 야구를 통해 자연스럽게 퍼져 나간다. 야구 ODA는 결국 스포츠와 외교, 교육과 사회공헌이 만나는 전략이다.

 

야구를 바라보는 한·미·일의 서로 다른 전략

야구 ODA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각국이 야구를 어떤 전략으로 활용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민간 중심의 시장 확장 모델을 발전시켰다. MLB는 도미니카공화국, 푸에르토리코, 베네수엘라 등에 아카데미를 세우고 유망주를 발굴하며 글로벌 시장을 넓혀왔다. 이는 기업의 투자 수익률(ROI1)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조로, 국제개발보다는 산업 확장과 수익 창출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다.

<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도미니카공화국 게라에 설립한 아카데미에서 열린 유소년 야구 클리닉 >

일본은 JICA(국제 협력 기구)와 NPB(일본 프로야구 기구)가 협력해 야구를 청소년 교육, 지역사회 개발, 성평등 증진 등 SDGs 목표와 연결했다. 제도적 연계와 구단 단위 활동이 동시에 이뤄지는 투트랙 전략으로, 야구를 공공외교의 매개로 발전시켰다.

한국은 이와 대비된다. 아직 야구 ODA라 부를 만한 체계적 프로그램이 없다. 구자욱 선수의 다문화 가정 지원이나 KIA 타이거즈의 한국계 일본 고교 야구공 후원처럼 의미 있는 활동이 있었지만 모두 개별적 사회공헌 차원에 머물렀다. 정부, KBO, 국제개발 기관이 연결된 공식적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 한·미·일 야구 국제 협력 전략 비교 >

세 나라의 접근 방식을 살펴보면 차이가 분명하다. 미국은 산업 확장에 초점을 맞췄고, 한국은 전략적 기반이 아직 미흡하다. 한국은 미국처럼 자금력에 기반한 대규모 산업 지원을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에, 교육과 문화 중심의 일본식 모델이 보다 현실적이다. 따라서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현실적 모델은 일본의 공공외교형 ODA 전략이다.

 

제도·구단·청년, 일본이 만든 3중 구조

일본은 야구 ODA를 단일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았다. 국가 제도, 프로 구단, 그리고 청년층 참여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 세 가지 축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면서도, 일본형 모델의 입체적 성격을 형성한다.

첫 번째 축은 NPB와 JICA의 제도적 연계다. 2016년부터 양측은 공식 협약을 맺고, 야구를 통한 청소년 교육과 사회적 가치 확산을 추진해 왔다. 대표적 사례가 야구 교재 ‘모두가 빛나는 야구 수업’이다. 지금까지 68개국에 3,400권 이상이 보급되었고, JICA 봉사단 활동에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코치와 전문가 파견, e-러닝 콘텐츠(야구체조·BT볼 등) 개발, 청년 해외협력단 연수까지 이어졌다. NPB 자체 매거진에 협력 사례를 지속적으로 소개하며 사회적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도 특징이다. 이처럼 일본은 야구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제도화된 공적개발원조 모델로 정착시켰다.

< ODA 사업에 활용된 교재 ‘모두가 빛나는 야구 수업’은 일본어뿐만 아니라 영어, 스페인어로도 제작됐다. > 

두 번째 축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구단 중심 협력이다. 2015년 JICA와 파트너십을 체결한 자이언츠는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현장 밀착형 프로그램을 운영해 왔다. 여성 야구팀 파견, 지역 사회와의 교류 행사, 야구 교실 등은 단순한 기술 보급을 넘어 성평등과 다문화 이해를 전하는 수단이 되었다.

특히 은퇴 선수 츠부라야 히데토시가 방글라데시, 브라질, 짐바브웨에서 직접 지도에 나선 사례는 큰 울림을 남겼다. 그는 “야구가 비주류인 지역에서도 공 하나로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는 현장 경험이 만들어내는 문화 외교의 힘을 잘 보여준다.

< 짐바브웨에서 JICA 야구 대원으로 활동한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츠부라야 히데토시 >

세 번째 축은 게이오대 야구부와 JICA의 청년 파견 모델이다. 2023년 여름 체결된 협약에 따라 향후 3년간 매년 약 10명의 부원이 가나에 파견된다. 선수들은 단순히 야구를 전파하는 것을 넘어 스포츠맨십을 가르치고 지역 청소년과 함께 협동과 소통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이 프로그램은 28년간 아프리카에서 야구 보급에 힘써온 ‘아프리카 야구·소프트 진흥 기구(J-ABS)’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되었다.

J-ABS 대표인 토모나리 신야는 “아프리카 아이들은 공을 손으로 잡지 않고 축구처럼 발로 막는다. 그래서 캐치볼부터 가르치며 소통의 중요성을 느끼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문화적 이해와 인재 육성으로 이어진다.

< 2025년 게이오대 야구부는 선수·매니저 5명과 OB 2명을 선발해 가나로 파견했다. >

일본은 제도적 연계(NPB–JICA), 구단 중심 활동(요미우리), 대학생 파견이라는 세 가지 축을 통해 야구 ODA를 다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제도는 안정성을, 구단은 현장성을, 대학은 미래 인재 양성을 담당한다. 이 3축 구조는 일본 야구가 국제 개발 협력에서 폭과 깊이를 동시에 확보하게 한 원동력이다.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선진적인 모델이다.

 

왜 우리는 야구 ODA를 시작하지 못했을까

한국이 야구 ODA에 소극적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 야구계는 스포츠를 외교와 개발 협력의 도구로 바라보지 못했다. 정책적 인식이 부족했고 야구를 기반으로 국제개발을 경험한 전문 인력도 거의 없다.

문화적 요인 역시 크다. ODA는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하지만 한국 스포츠는 전통적으로 메달과 순위 같은 단기 성과에 집착해 왔다. 여기에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야구가 제외된 이후 야구가 세계적으로 ‘보편 스포츠’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제개발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동력도 약해졌다.

< 베트남 유소년 선수들에게 전달된 구자욱의 야구용품. ODA는 아니어도, 작은 연결의 시작이다. >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인식을 기반으로 ODA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KBO 구단이 ESG 전략과 결합하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사회적 책임도 강화된다. 은퇴 선수들은 해외에서 지도자나 행정가로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비(非)야구 지역에 기반을 넓힌다면, 단순한 야구 전파를 넘어 ‘야구의 세계화’와 국제 문화 교류에 기여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청소년들은 야구를 배우며 미래의 팬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야구에 대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국제야구연맹(WBSC)과 아시아 야구연맹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넓혀갈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국제 경쟁력 강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영향을 리그에 줄 수 있다.

야구 ODA는 한국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가치를 나눌지에 대한 새로운 선택지다. 교육, 협동, 성평등, 다양성 같은 사회적 가치를 야구를 통해 전할 수 있다면, 한국 야구는 국내 흥행을 넘어 국제 사회와 소통하는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 같은 국제개발 기관이 있음에도 야구와의 연계는 없었다. 그러나 그만큼 기회는 남아 있다. KBO와 정부, 개발 기관이 협력해 한국형 모델을 만든다면, 늦게 시작해도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야구는 이미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 잡은 스포츠다. 이를 국제개발과 연결하는 순간, 한국 야구는 다시 세계와 이어질 수 있다. 잃어버린 존재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정체성도 만들어갈 수 있다.

 

참고 = NPB, JICA, 게이오대학야구부, 요미우리자이언츠, MLB.com, 볼티모어 오리올스, 한겨례, 요미우리신문, KOICA, ISO26000(국제표준화기구 사회적책임 표준),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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