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
지난 시리즈에서는 한국 야구 사회공헌의 성과 기준을 다뤘다. 행사 회수와 참여 인원 중심의 평가는 장기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사회공헌이 야구 생태계의 기반 확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짚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야구 저변 확대나 관련 활동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역 특화’라는 표현을 짚어보려 한다. 지금 한국 야구에서 말하는 지역성이 실제로 지역 간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여기서 말하는 야구 현장은 프로 구단만을 뜻하지 않는다. 학생야구와 리틀야구, 지역 클럽, 생활체육까지 포함한다.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까지 이어진 전체 흐름을 전제로 한다.
같은 프로그램이 왜 지역 특화가 되는가
한국 야구 현장에서 지역 특화로 설명되는 활동을 보면 가장 흔한 형태는 야구 교실이다. 유소년 야구 교실, 다문화 가정 대상 프로그램, 지역 순회 수업. 이름은 다르지만 운영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 출신 지도자가 참여하고 체험 수업이 진행되며, 단체 사진과 보도자료가 남는다.
여기에 더해 프로야구팀이 있는 지역은 스스로를 ‘구도(야구의 도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 프로그램은 지역마다 뚜렷한 차이를 만들기보다 비슷한 구조를 반복하는 데 머무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지방 도시에서도 같은 방식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모두 지역 특화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다문화 가정 지원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도시권이라면 유사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지역만의 과제라기보다 여러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에 가깝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에서는 다문화 가구가 특정 지역에만 집중되기보다 전국 주요 도시와 지방에 걸쳐 분포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 지역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야구 캠프를 이어오고 있는 KIA 타이거즈 >
지역 활성화 영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야구부 창단을 통한 인구 유입 전략은 여러 지역에서 반복된다. 학생을 외부에서 유치하고, 학부모와 소비 인구 유입을 기대하는 방식이다. 결국 현재의 지역 특화는 지역 특수성 반영보다 기존 프로그램을 여러 지역에 반복 적용하는 형태에 가깝다.
지역성은 생활권에서 만들어지고 현장에서 유지된다
지역성은 도시의 상징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움직이고 머무는 생활권에서 형성된다. 부산을 보면 이 차이가 드러난다. 외부에서는 바다와 항만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사직구장을 중심으로 한 공간은 내륙의 주거지와 상권, 학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일상은 해양 도시라는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자 사직 야구장을 품은 내륙 구역 동래 >
해외 스포츠 연구에서도 이동과 소비, 반복 방문이 이루어지는 범위가 팬 기반 형성에 중요한 요소로 나타난다. 경기장 접근성과 현장 경험이 재방문과 팬 유지에 영향을 준다는 점도 확인된다. 이러한 흐름은 야구에서도 같다. 지역성은 경기장을 중심으로 한 관람 동선과 응원 문화, 주변 상권과의 연결 속에서 드러난다.
최근에는 SNS 확산과 수도권 집중으로 지역성과 연고 개념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이나 경기 지역에 거주하는 팬이 늘면서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팀이라는 설정이 현실과 어긋난다는 것이다.

< KBO 10개 구단의 연고지 >
그러나 이는 다른 문제다. 온라인에서는 어디에 있어도 팀을 접할 수 있다. 반면 경기장을 방문하고 그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은 다른 방식으로 대신할 수 없다. 지역성은 거주지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부모나 조부모의 고향처럼 개인과 연결된 장소에서 형성되기도 한다. 결국 사람들이 반복해서 찾고 머무는 곳에서 만들어지고 이어진다.
획일성은 책임 구조에서 비롯된다
지역 특화 프로그램이 서로 비슷해지는 이유는 책임이 일부 주체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현장에서는 프로 구단과 학교 야구부가 중심이 되어 운영을 맡는다. 프로 구단은 팬 경험과 지역 행사를 담당하고, 학교 야구부는 학생 참여와 인구 유입의 거점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활동의 성격이 함께 정해진다는 점이다. 많은 구단에서 관련 활동은 별도의 기능이 아니라 홍보 업무의 연장선에서 다뤄진다. 기획, 운영, 보도자료, 콘텐츠 제작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묶이면서 활동은 자연스럽게 노출과 이미지 중심으로 구성된다.
한국 야구단은 대부분 사회공헌을 별도 조직이 아니라 홍보팀이 맡아 운영하는 구조다. 활동이 대외 커뮤니케이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실무적으로는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조에서는 지역의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개입 방식을 설계하는 기능이 충분히 쌓이기 어렵다.

< 프로 구단과 지역 기관 협력 사례. 지역 연계 활동은 협약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
사회공헌은 교육, 복지,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기획 기능이 확보되지 않으면 활동은 실행과 정리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경우 어떤 지역에서 어떤 문제가 존재하는지보다, 이미 운영해 본 경험이 있고 관리가 쉬운 형식이 우선된다. 그 결과 지역마다 다른 접근보다 유사한 프로그램이 반복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한 야구 생태계는 프로 구단과 학교 야구부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리틀야구, 지역 클럽, 생활체육, 지자체, 교육청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연결되어야 구조가 만들어진다. 스포츠 거버넌스 연구에서도 여러 주체가 역할을 나눌 때 지속성이 높아지고, 기능이 특정 조직에 집중될수록 활동은 단순화되는 경향이 확인된다. 책임이 분산되지 않으면 프로그램은 반복되고 지역 간 차이도 드러나기 어렵다.
지역성은 보편 영역과 생활권 영역으로 나눠서 봐야 한다
지역성은 하나의 방식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영역과 생활권 안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영역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유소년 체험, 다문화 가정 지원, 취약계층 참여와 같은 활동은 어느 지역에서도 필요하다. 이러한 공통 영역만으로는 지역 간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
차이는 생활권 안에서 드러난다. 관람객이 경기장을 찾는 방식, 경기 전후에 머무는 공간, 주변 상권과의 연결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게 형성된다. 이러한 이용 구조를 반영하지 않으면 활동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 수원 KT 위즈 파크 그라운드를 활용한 키즈 캠핑 프로그램. 같은 공간도 이용 방식에 따라 다른 경험으로 이어진다. >
지역성이 뚜렷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지역에서도 이러한 차이는 나타난다. 예를 들어 경기도는 하나의 도시 이미지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대규모 주거 단지와 가족 단위 생활 구조가 중심을 이루는 생활권이 많다. 이 경우 관람 경험 역시 개인 소비보다 가족 단위 체류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지역성은 프로그램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이동하고 머무르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앞으로의 지역 연계는 프로그램을 늘리는 데 있기보다 이러한 이용 방식에 맞춰 운영을 조정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경기 전 체류 공간이나 가족 단위 이용처럼 반복되는 패턴을 기준으로 운영을 설계할 수 있다. 이는 관람객의 재방문과 체류 시간을 늘리고 지역 상권 이용을 높인다. 이제 지역성은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로 구분되어야 한다.
참고 = 통계청, 여성가족부, KIA 타이거즈, 삼성라이온즈, KT 위즈, KBO, 부산문화역사대전.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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