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
2018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고등학생 투수가 하루에 던질 수 있는 공을 105구로 제한하고 투구수에 따른 의무 휴식 조항을 도입했다. 46구 이상 60구를 던지면 하루, 61구에서 75구면 이틀, 76구에서 90구면 사흘, 91구 이상이면 나흘을 쉬어야 한다.
그런데 이 규정이 실제로 세는 것은 단 하루에 던진 투구 수뿐이다. 지난 한 주에 몇 번을 올랐든, 피로가 얼마나 누적됐든 정해진 휴식일만 채우면 괜찮다고 말한다. 며칠에 걸쳐 쌓이는 부하는 여전히 규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기형적인 고교야구 일정은 투수들을 사각지대 속 더욱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다. 주말리그 기간에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마운드에 오른다. 여름철 황금사자기, 청룡기, 봉황대기 등 전국대회가 시작하면 등판 간격은 급격히 좁아진다. 몸이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늘어난 투구 부하는 더 큰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1주일 620구를 던지던 시대
KBSA 공식 자료가 남아 있는 1995년 이후 일주일에 가장 많은 공을 던진 투수는 2006년 광주진흥고 정영일이다. 5월 30일 121구를 시작으로 9일 동안 다섯 경기에서 도합 741구를 던졌다. 마지막 일주일만 잘라도 무려 620구에 달했다.
이후 LA 에인절스와 계약한 정영일은 바로 이듬해 팔꿈치에 부상을 입었다. 2년 뒤에는 토미존 수술을 받으며 끝내 빅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했다.

< 역대 고교 야구 주간 최다 투구수 TOP 10 >
이제 모두가 알다시피 많은 투구량은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전 글 ACWR 관점에서 본 기형적인 등판 패턴 역시 큰 문제다. 2005년 광주동성고 한기주는 시즌 첫 등판부터 닷새 동안 4경기에서 366구를 던졌다. 앞선 사례들보다 총 투구수는 적었지만 치명적인 패턴이 숨어 있었다.
여름 봉황대기를 앞두고 3주 가까이 푹 쉬어 만성 부하가 완전히 바닥난 상태에서 나흘 동안 공을 몰아 던진 것이다. 직전 3주간 실전에서 던진 공은 단 16개였다. 아무런 대비가 안 된 몸에 급성 부하가 갑작스럽게 가해진 전형적인 위험한 구조다. 이듬해 한기주는 역대 최고 계약금 10억 원을 받으며 프로에 입단했다. 당시 한기주는 입단 전부터 팔꿈치 인대 3개 중 2개는 90% 이상 손상된 상태였다.
한기주만 위험했을까
고교 투수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ACWR(급성:만성 부하 비율, Acute:Chronic Workload Ratio)을 측정해 봤다. 본격적인 계산 전 고교 리그 등판 특성을 고려해 몇 가지 필터를 거쳤다. 일반적으로 ACWR 계산에 사용하는 결합형 공식 대신 만성 부하 측정 기간(8~28일)과 급성 부하 측정 기간(최근 7일)을 분리한 비결합형 공식을 사용했다. 최종 보정 ACWR 계산식은 (최근 7일 투구수) / (8일 전 ~ 28일 전 투구수)를 사용했다.
추가로 3주간 던진 투구수 절반 이상이 단 한 경기에서 일어난 상황도 철저히 배제했다. 3주 동안 경기가 치러지지 않은 경우 분모가 0에 수렴해 ACWR 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 역대 고교 야구 ACWR 피크 TOP 10 >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측정한 보정 ACWR 순위에서도 위험한 명단은 쏟아졌다. 역대 1위는 2013년 청룡기 대회 제주고 임지섭이었다. 직전 3주간 150구를 던졌지만 일주일 만에 359구를 몰아 던져 보정 ACWR 7.18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공식 등판 외 투구를 고려하지 못했음에도 무시할 수 있는 수치가 아니다.
1996년 전국체전 박재혁(청주기공, 보정 ACWR 6.06)이 뒤를 이었다. 2009년 화랑대기 대구고 이재학도 3주간 138구를 던지던 몸으로 단 7일 만에 274구를 던져 보정 ACWR 5.96으로 역대 3위를 기록했다. ACWR은 1.5가 넘어가면 매우 위험하다고 분류된다.
이후 LG에 입단한 임지섭은 2021시즌 만 25세 나이에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 수술을 받은 후 복귀하지 못했다. 두산에 입단했던 이재학은 프로 입단 2년 차이자 만 20세 시즌인 2011년에 팔꿈치 부상으로 한 시즌 동안 재활에 매진했다. 고교 시절 해당 등판들이 모든 이유를 설명하진 못하지만 프로 기록이 없는 박재혁을 제외한 두 투수는 젊은 나이에 비슷한 부상을 겪었다.
최근 상황은 어떨까. 2020년대 보정 ACWR 수치 1.5가 넘은 투수는 415명이나 있었다. 측정할 수 있는 1,166명 중 35.6%였다. 투수 보호 규정을 추가했음에도 1995년부터 2010년 37.7%, 2011년부터 2019년 34.7%와 다를 것이 없었다.

< 2020년대 고교 야구 보정 ACWR TOP 10 >
만성 부하를 평소에 쌓아두면 안 될까?
그렇다면 아예 평소에 실전 투구수를 꾸준히 늘려 만성 부하라는 방어막을 든든하게 쌓아두면 되지 않을까?
앞서 계산했던 보정 ACWR 분석 대상인 1995년 이후 전체 등판 구간 9만여 개중, 계산이 가능할 정도로 최소한의 만성 부하 조건을 충족해 적격 판정을 받은 구간은 단 4.9%에 불과했다. 2020년대 역시 5.4%에 불과하다.
고교야구 일정 시스템상 투수들이 만성 부하라는 방어막을 꾸준히 쌓아 올릴 수 있는 환경적, 구조적 토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고교야구 투수들은 30년 이상 갑작스럽게 집중적인 등판을 견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단기간 토너먼트 대회 속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 온 것이다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소년들
30년 전 620구를 던지게 한 것은 무지라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험이 분명함을 알고 있음에도 오늘날 방치되는 사각지대 속 부하는 명백한 방치다.
만성 부하를 늘릴 수 없는 구조라면 단기전 속 연투로 발생하는 급성 부하 자체를 통제하는 방법이 있다. 비슷하게 다른 해외 고교 리그들은 하루 단위가 아닌 며칠간 누적 투구수를 관리하는 규정을 도입한다.
캐나다는 연속 2일 105구와 연속 4일 150구를 제한한다. 대만 흑표기 대회는 하루 105구에 도달하면 강제 퇴장과 함께 2일 합산 51구를 넘으면 3일 차 등판을 금지한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MLB와 USA베이스볼이 함께 만든 Pitch Smart 지침은 고교 학생에게 연간 100이닝 제한을 권고한다. 미국 조지아주는 연속 2일 합산 110구 초과 금지, 주간 토너먼트에선 3경기 시리즈 합산 120구를 상한으로 정했다. 일본 역시 1주 500구라는 누적 상한선을 둔다.
제각기 기준은 다르다. 그러나 모두 하루 단위가 아닌 여러 날의 누적을 통제한다. 부상 위험은 단 하루 만에 생겨나지 않는다. 이제 우리도 하루를 넘어 여러 날을 세어야 할 때다.
참조 = KBSA
야구공작소 이동건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희원,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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