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위는 복합체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은빈 >
야구를 본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문장들을 들어봤으리라.
“공의 힘이 탁월하다.”
“한번 차고 올라간다.”
“볼 끝이 좋다.”
모두 구위의 우수함을 피력하는 문장이다. 개중에서도 포심. 그러나 이 말들은 복합체인 구위의 여러 하위 항목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용어에 가깝다.
‘종속(終速)’은 구위를 추상적으로 말하는 대표적인 키워드였다. 종속은 사전적으로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 타자의 타석에 도달했을 때의 속력’을 말한다. 반대로 초속은 공이 손에서 떠나는 시점의 속력을 의미한다. 이 개념이 등장했을 때는 구위와 동치로 쓰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인 오류를 내포하고 있었다. 바로 공의 속도가 빠를수록 공기저항을 강하게 받기에 초속과 종속의 차가 크다는 물리적 진실이다.
< 2009 프로야구 투수별 초종속 차이 비교 >
평균 구속이 150km/h에 육박하는 한기주, 오승환, 권혁, 정현욱은 모두 평균 초종속의 차이가 17~18km/h에 달한다. 그러나 구속이 느린 투수들은 그 차이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다.
거기에 야구공은 투수의 손에서 출발한 시점 이후로는 투수의 팔 스윙으로 인한 추진력 외의 유의미한 가속을 받기 힘들다. 결국 부피, 밀도, 질량은 동일하다. 바람이나 습도, 기타 날씨 환경적 외부 영향을 제외하면 속도는 일정하게 감소하기 마련이다.
Stuff+ : 구위를 판단하는 지표
KBO에서는 투구에 대한 트래킹 데이터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지만, MLB는 Baseball Savant에 공개된다. Stuff+는 이러한 데이터를 모델링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한다.
Stuff+는 구속과 움직임, 릴리스 특성 등 투구의 물리적 정보를 이용해 타자가 해당 공을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지 추정한다. 실제 투구 위치의 직접적 영향을 가능한 한 분리하려 한다는 점에서 투수의 구위 자체를 살펴보는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Stuff+는 모델링하는 주체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구종별로 다음과 같은 요소를 조정하여 산출해낸다.
- 구속
- 무브먼트(상하-좌우)
- 회전수
- 릴리스 포인트
- 익스텐션
- 실제 무브먼트 기반(observed) 회전축과 초기 회전 기반 추정(spin-based) 회전축의 차이
- 브레이킹볼/패스트볼/오프스피드 여부
- 제 1패스트볼(primary fastball)과의 구속/움직임 차이
사실상 공이 어디로 갔는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물리적 변수들이 머신러닝에 투입되어 여러 수치를 만들어낸다. 이 수치는 정규분포를 따르거나 xRV(Expected Run Value)등의 원리를 거쳐 숫자로 치환된다. 이때 중요한 부분은 Stuff+가 패스트볼과 브레이킹 볼, 그리고 오프스피드 피치를 집단으로 묶어 평가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같은 브레이킹 볼 분류에 속한다면 슬라이더, 커브, 스위퍼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르지 않다.
< Stuff+가 따르는 정규분포 >
Stuff+의 100은 ‘전체 투구 집단의 기준점’이기에 구종별 평균은 100과 다를 수 있다.
< 2026 Fangraphs Stuff+ 평균 >
컨택할 수조차 없는 강력한 포심은 모두가 지니기 힘들고 가장 많이 던지기에 100 이하가 평균이다. 반면 브레이킹 볼의 집단 평균은 100보다 위에 있다. 스플리터도 이와 같은 명제에 해당지만, 같은 오프스피드인 체인지업은 여러 형태가 산재해있어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구위가, Stuff+가 중요한 이유
< Fangraphs Stuff+ 및 타 지표의 안정화 수준 추세 그래프 >
Stuff+가 각광받는 이유는 뛰어난 예측력 때문이다. ERA(Earns Run Average)는 승계주자나 BABIP 등 운의 요소가 개입할 여지가 있다. FIP는 여러 파생 스탯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한계점이 존재한다. 반면 Stuff+는 도출하기 제일 어렵지만 가장 빠른 시점부터 안정성(Reliability)이 크게 높아지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Stuff+의 핵심은 단순 공의 물리적 위력을 측정한다는 점에 있지 않다. 오히려 변화구의 경우에는 제 1패스트볼과의 구속·움직임 차이를 포함하는 모델이 많다. 구위는 상대적이라는 말과도 흡사하다.
패스트볼이 특정 변화구와 얼마나 다른지는 타자의 접근 방식 자체를 바꾼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시선은 직전 투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물리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공을 투구한다면, 타자의 판단 체계에 오류를 일으킬 여지가 다분하다.
< 2021년 Fangraphs Stuff+ 브레이킹볼 모델링 가중치 >
해당 사진은 브레이킹 볼의 Stuff+를 측정할 때 어느 부분에 가중치를 부여하는지를 시각화한 자료다. 주력 구종과 구속 편차에 상당히 높은 수치가 책정되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속 외 브레이킹 볼의 구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회전수와 무브먼트 편차다. 회전수는 마그누스 효과로 인해 무브먼트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에 큰 값이 산정된다. 무브먼트 편차는 주력 구종과의 움직임 차이를 뜻한다.
다만 Stuff+ 역시 일종의 모델인 만큼 학습 표본의 바깥에서는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모델은 과거 MLB 투구의 물리적 특성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학습하기 때문에 비교 가능한 표본이 거의 없는 투구는 오차 범위가 커질 수 있다.
< 2025-2026 타일러 로저스 Fangraphs Stuff+ >
타일러 로저스가 대표적이다. 로저스는 2025년 평균 83마일대의 싱커를 던지면서도 FanGraphs Stuff+에서 일정 이닝 기준을 충족한 불펜 가운데 1위로 소개됐다. 그러나 -61도의 독보적인 언더핸드 릴리스와 구종 움직임은 리그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학습할 자료가 없었기에 Stuff+가 정상적으로 잡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Stuff+의 높은 수치가 ‘범접할 수 없는 고위력’이라는 정의와 동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극단적으로 독특한 투구에서는 수치 자체보다 왜 모델이 그 값을 부여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좋은 구위가 좋은 성적을 보장할까?
< 제이콥 미저라우스키의 Fangraphs Stuff+ >
제이콥 미저라우스키(Jacob Misiorowski)는 현세대 우완 선발 투수 중에서 압도적인 구위를 보여준다. 포심의 평균 구속이 100마일이며 MLB 전체 1위를 다투는 긴 익스텐션(7.6ft=231.7cm), 그리고 극히 짧은 체공시간 덕에 평균에서 벗어난 수평 무브먼트까지 가졌다. 구위를 평가할 때 ‘평균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가 핵심임을 생각하면 그는 구위에 필요한 조건을 두루 갖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높은 Stuff+가 항구적인 퍼포먼스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또 ‘디셉션’처럼 포착하기 어려운 요소도 존재한다.
< 2016~2019 오승환 포심 수직 무브먼트 vs Comparable >
오승환은 한국에서 ‘돌직구’라고 정평이 나있을 만큼 포심 위주의 피칭을 즐겼던 투수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MLB에 진출해 그 위력을 의심받기도 했지만 엘리트 불펜으로서 충분한 성적을 거뒀다.
주목받은 건 포심의 움직임이었지만 그게 모든 것은 아니었다. 구속은 평균보다 조금 높았고 2016~2018년 포심은 비교군보다 약 1.1~1.3인치 덜 떨어졌다. 분명 긍정적인 특징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리그에서 특출난 구위였다고 단정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다. 호성적의 원천은 수직 무브먼트가 아닌 다른 요소에 있었다.
< 오승환의 2016년 포심-슬라이더 탄착군 >
오승환의 성공을 포심의 물리적 특성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여기에 이중 키킹을 위시한 독특한 투구폼과 디셉션, 매우 뛰어난 제구력이 더해졌다.
“초구로 몸쪽 패스트볼을 봤다. 그 순간 내 타이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와인드업에 맞춰서 타격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오승환은 공을 잡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장전해야 했다. 굉장히 진기했다.”
– 그렉 가르시아 –
“흔히 볼 수 없는 투구폼이다. 이렇게 던지는 투수는 많지 않다. 그 때문에 굉장히 효과적일 것이다. 어느 타자든 타석에서 오승환을 상대로 곧바로 타이밍을 맞추지는 못할 것 같다.”
– 야디어 몰리나 –
“그가 원하는 곳으로 항상 공을 던질 수 있는 선수다. 또한 두려움이 없는 선수.”
– 야디어 몰리나, 오승환의 장점이 뭐냐는 질문에 –
여러 수치가 측정되는 ‘구위’와 달리, 타자가 느끼는 ‘체감’을 정량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많은 시도가 이어지고 있지만 공개 추적 데이터만으로 이를 완전히 포착하기는 어렵다.
반면 류현진은 낮은 스터프로도 호성적을 거둘 수 있던 반례로 꼽힌다. 2020년 당시 스터프 수치는 다음과 같다.
< 2020 류현진 Fangraphs Stuff+ >
대부분의 구종이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걸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우수한 커맨드와 각종 변형패스트볼, 이를 조합한 출중한 레퍼토리 직조 능력으로 워렌 스판상까지 수상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단축 시즌이었지만 2년 연속 사이영상 3위안에 들었다는 점은 그가 가진 투수로서의 역량을 짐작게 한다.
구위는 복합체다. 다만 그 복합체가 전부일까?
한때 사람들은 ‘종속’이라는 한 단어로 구위를 설명하려 했다. 타자 앞에서 공이 덜 감속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감각은 실제로 존재했지만 그 원인을 잘못 짚었다. 구속이 빠를수록 초속과 종속의 차이가 커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종속은 힘을 잃었다.
Stuff+는 종속보다 훨씬 정교하다. 구속과 움직임, 릴리스 포인트, 익스텐션, 회전 특성, 주 구종과의 차이까지 고려해 공의 물리적 위력을 수치로 표현한다. 과거에는 “공이 떠오른다.”, “볼 끝이 산다.”라고만 표현했던 감각을 구체적인 변수로 분해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진보다.
그러나 정교함은 완전함이 아니다. Stuff+가 설명하는 것은 투구가 가진 물리적 재료다. 그 재료를 어느 위치에 던지고 어떤 상황에서 활용하는지까지는 설명할 수 없다.
또한 Stuff+ 역시 일종의 모델인 만큼 학습 표본의 바깥에서는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모델은 과거 MLB 투구의 물리적 특성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학습하기 때문에, 비교 가능한 표본이 거의 없는 투구는 모델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앞서 설명한 타일러 로저스가 그 예시다.
따라서 Stuff+의 높은 수치가 ‘범접할 수 없는 고위력’이라는 정의와 동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극단적으로 독특한 투구에서는 수치 자체보다 왜 모델이 그 값을 부여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이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지표도 있다. Pitching+는 투구의 물리적 특성에 위치·카운트·우/좌타 여부 등을 함께 넣어 투구 과정 전체를 평가하려 한다. Stuff+가 의도적으로 분리한 제구와 상황 맥락을 별도의 모델로 포착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높은 Stuff+는 좋은 성적의 충분조건도, 낮은 Stuff+는 사형선고도 아니다. 다만 다른 조건이 같다면 더 좋은 구위가 투수에게 더 넓은 가능성과 더 큰 오차 허용 범위를 제공한다. 좋은 구위는 타자를 잡아낼 수 있는 강력한 재료지만 그 재료를 실제 아웃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투수의 몫이다.
결국 구위는 숫자 놀음으로 포장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동시에 투구는 구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Stuff+는 분명 현대 야구의 최전선에 서있는 지표지만, 오로지 그 만이 존재하는게 아님을 깨달아야 정량화의 늪을 무사히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참조 = Baseball Savant, @TJStats, Fangraphs, driveline, github_tnestico_tjstuff_plus, public.tableau.com, @justinochoi(X)ew
야구공작소 서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정승환, 박인이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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