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태평양을 건너는 방법 – 1

 

야마모토 요시노부. 그는 LA 다저스 소속으로 2025년 월드시리즈에서 세 번 등판해 3승을 거두며 새로운 가을의 전설을 썼다. 그런 그는 미국에 오기 전인 2023년 NPB 오릭스 버팔로스 소속으로 포스팅을 신청해 12년 3억 2,500만 달러라는 역대 최장기간, 최고 규모의 포스팅 계약을 제안받고 MLB에 진출했다.

포스팅 제도는 1999년 제도가 시행된 이래 NPB를 거친 일본 스타 선수들의 가장 보편적인 미국 진출 방법이었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스즈키 이치로나 마츠자카 다이스케, 다나카 마사히로, 다르빗슈 유 등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포스팅 제도를 거쳤다. 그뿐만이 아니라 야마모토의 팀 동료인 오타니 쇼헤이와 사사키 로키도 포스팅 제도를 발판 삼아 미국 진출했다.

 

그러나 2020년 NPB가 이른바 ‘타자와 규칙’으로 불리는 규정을 폐지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어왔다. 타자와 규칙은 2008년 타자와 준이치가 NPB 드래프트에 참여 신청을 하고도 구단에 미지명을 요청하며 미국 진출을 결정하자 만들어졌다.

요지는 자국 유망주 유출을 막기 위해서이다. 규칙에 따르면 NPB 드래프트에서 이름을 불린 선수가 지명을 거부하고 해외로 진출할 시 고졸은 3년, 대졸과 사회인 야구 선수 출신은 2년 동안 NPB 구단과 계약할 수 없었다. 하지만 NPB는 2020년 이 규칙에 허점이 많고 일본이 미국 마이너리그보다 신인 선수를 더 잘 육성하고 그들의 권리를 더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타자와 규칙을 폐지한다.

 

한편, 타자와 규칙이 폐지되자 일본에서는 NPB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 바로 진출하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적극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선수들이 일본에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후 포스팅이나 FA를 통해 미국에 진출하는 방식만 생각했지만, 이제는 한 살이라도 더 어린 상태에서 미국 무대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MLB 구단과 계약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MLB 드래프트에 참여해 구단의 부름을 받는 것이다. MLB 드래프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1) 미국(푸에르토리코 포함) 또는 캐나다 국적이거나

2) 미국 또는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3) 미국 혹은 캐나다 소재 2년제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4) 미국 혹은 캐나다 소재 4년제 대학에서 3년을 마치거나 드래프트 당해 만 21세가 되어야 한다.

미국 또는 캐나다 국적이 없는 이상 미국과 캐나다에서 학교 다녀야 하는 선결 조건이 있다.

그러면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선수들이 우리가 흔히 들어본 미국 유명 대학으로 바로 진학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일본 고등학교 무대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 정도면 LSU, UCLA, 테네시 등 명문 학교에 진학할 능력이 충분하지 않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대학 스포츠 최고봉 NCAA는 운동 능력 못지않게 학업 능력을 요구한다. 최상위 단계인 D1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수학, 영어 등 특정 과목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며, 학점도 일정 수준 이상 받아야만 한다. 중장기적으로 체계적인 계획 없이 진출할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지난 5년 동안 일본의 유망주가 미국 진출을 노리는 새로운 유형은 네 가지이다. 1. 국제 유망주 계약, 2. 2년제 대학 진학, 3. 4년제 대학 진학, 4. 대학 재학 중 편입. 

 

  • 국제 유망주 계약

국제 유망주 계약은 지금 시점에서 우리나라 고교 최상급 유망주가 미국 무대에 진출해 온 사실상의 유일한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구조적으로 중고교 때 운동부가 성적 관리를 할 길이 막혀있다. 학업 실적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고교 졸업 후 미국 4년제 대학에 진출하는 방식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장현석, 조원태, 엄형찬 등은 MLB 구단과 직접 국제 유망주 계약을 맺으며 미국 무대에 빠르게 진출했다.

그러나 이 방식에는 큰 위험부담을 유망주가 떠안아야 한다. KBO 드래프트를 건너뛰고 해외 구단과 프로계약을 맺은 선수가 KBO에 돌아오려면 2년 동안 유예기간을 가져야 하며, 그 선수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5년 동안 KBO 지원금을 받을 수 없다. 

한편, 일본에서는 NPB 드래프트에서 상위권이 유력한 유망주가 MLB 구단과 손잡고 곧바로 마이너리그로 진출한 사례가 이상하리만큼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백만 달러 이상 계약자가 속출하는 가운데도 우리나라보다 고교야구가 활성화된 일본에는 그런 선수가 등장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2024년까지 일본에서 맺은 가장 최대 규모의 국제 유망주 계약자가 앞서 소개한 타자와였다. 

<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직행을 선택한 모리 쇼타로. 출처: MLB >

그러나 2025년 초 침묵이 깨졌다. 또 다른 오타니로 불리며 투타에서 모두 활약을 보여준 모리 쇼타로가 애슬레틱스와 150만 달러 계약금에 합의했다.

사실 모리는 앞서 소개한 사사키의 전례를 따라가기 위해 미국 대학과 연락하며 다음 행선지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그의 가능성을 높게 산 애슬레틱스가 접근해 거액의 계약금을 제안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모리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미국 무대 도전 의사를 밝혔다. 

 

  • 미국 2년제 대학 진학

2020년 타자와 규칙이 사라진 뒤, 외국 거주 경험도 없고 영어도 익숙하지 않은 아시아 유망주가 아무런 준비 없이 미국 4년제 대학에 진학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따라서 미국 2년제 대학에 먼저 진학하고 그다음 길을 모색하는 방식이 가장 먼저 고려됐다.

2년제 대학은 입학 요구 조건이 높지 않으면서도 1년에 50경기 넘는 일정을 제공하기에 아시아 유망주가 낯선 환경에서 연착륙하기 안성맞춤이다. 또한 2년제를 다니면서 바로 프로에 진출할지, 아니면 더 높은 대학야구 무대에 도전할지 선택지도 다양했다.

< 오리건 소속으로 2023년 활약한 니시다 리쿠우. 출처:  MLB >

이런 흐름에서 가장 앞서나간 선수는 도호쿠 고교를 졸업하고 2021년 미국으로 떠난 니시다 리쿠우였다. 니시다는 2021년 대학생 여름리그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야구를 시작했으며, 2년 동안 오리건주 마운틴 후드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녔다. 2년제에서 타율 .383, 54타점 100득점 91도루를 기록하며 자신의 장점을 마음껏 발휘는 니시다는 2022년 가을, 야구 명문 중 하나인 오리건으로 편입하며 오리 군단의 일원이 된다. 

니시다는 D1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이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2023년 봄 63경기 동안 타율 .312 5홈런 37타점 25도루, 그리고 팀 역사상 최다 득점인 67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이름을 전국에 알렸다.

그 결과 니시다는 2023년 MLB 드래프트에서 11라운드 전체 329번으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부름을 받았다. 일본인이 MLB 드래프트에서 이름을 불린건 2013년 가토 고스케 이후 처음이었지만, 가토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닌 선수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해 16라운드 전체 483번으로 탬파베이의 부름을 받은 신우열, 20라운드 전체 611번으로 샌디에이고의 부름을 받은 최병용이 있었다. 이들 모두 2년제 대학에서 더 성장해 메이저리그 직행의 꿈을 이뤄냈었다. 

< 2편에 이어서 >

그들이 태평양을 건너는 방법 – 2

 

참고 = Yahoo Sports, Forbes, MLB, World Baseball Network, D1Baseall, Full-Count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장호재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