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는 자에서 베푸는 자로, 앤소니 알포드

(사진=앤소니 알포드 인스타그램)

[야구공작소 이해인] 지난 1월 22일(한국시간)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망주 앤소니 알포드는 개인 SNS 계정에 10장의 사진을 게시했다. 첫번째 사진은 전직 메이저리그 외야수 프레드 루이스, 현역 최고령 외야수 중 한 명인 커티스 그랜더슨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알포드는 이 게시물을 통해 그랜더슨, 루이스를 포함해 도움을 준 사람과 지역사회에 감사를 표했다.

사진1. 마틴 루터 킹 데이에 게시한 알포드의 게시물(출처=앤소니 알포드 인스타그램)

미시시피 드림 위켄드는 미시시피 주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야구 캠프 행사로 그랜더슨이 만들었다. 이 행사는 매년 마틴 루터 킹 데이*가 속한 주말 3일 동안 열린다. 행사 날짜가 이날로 정해진 이유는 루터 목사가 인종이라는 장벽을 허물고 모든 사람들이 꿈을 실현하게 해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터는 현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지켜보면서 스포츠 선수에게 불합리한 시스템에 반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마틴 루터 킹을 기념하는 날로 현지 시간으로 1월 3째주 월요일이다. 2019년의 경우에는 1월 21일이었다.

이런 의미있는 행사를 공동으로 주관하게 된 알포드는 이제 갓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선수다. 비록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이 일반인에 비해 훨씬 많다고 하더라도 신인 선수가 남들에게 베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알포드라면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다사다난했던 입단 초기

알포드의 토론토 블루제이스 입단 초기는 ‘다사다난’ 그 자체였다. 원인은 엉뚱하게도 야구가 아닌 미식축구에 있었다. 2019시즌을 앞두고 NFL 드래프트에 참여를 선언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카일러 머레이와 마찬가지로 알포드 역시 미식축구를 병행하는 유망주였다. 2012년 고졸선수로 드래프트 참가가 예정돼있던 알포드는 계속해서 미식축구선수로 뛰는 것을 선호했다. 이런 이유로 2012 드래프트 클래스에서 1라운드 감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구단들은 계약에 난항이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결국 알포드는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3라운드 전체 112순위에 토론토와 75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비록 순위는 내려갔지만 동시에 원하는 것을 획득한 계약이기도 했다. 토론토로부터 대학 진학 동의를 받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남미시시피대학에 진학했고 자신이 원하던 미식축구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렇게 힘겹게 따낸 기회는 일순간의 실수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가장 먼저 있었던 일은 어머니의 체포였다. 쿼터백 알포드가 부진하자 경기를 관전하던 팬이 질책성 발언을 했고 여기서 어머니와 시비가 붙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로부터 대략 한달 뒤 본인마저 캠퍼스의 한 총기 사건**에 휘말려 체포된 것이다. 다행히도 알포드는 재판을 면했지만, 대신 300시간 봉사활동을 지시받았다.

이로 인해 그의 미식축구 커리어는 큰 타격을 입었다. 위 사건으로 남미시시피대학은 즉각 관련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렸다. 결국 알포드는 2013년에 미시시피대학으로 전학을 가게 됐고 전학에 관련한 리그 규정에 의해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신세가 됐다.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만 그는 2014년 백업으로 강등됐으며 미식축구를 포기하고 전업 야구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스포츠넷과 알포드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해당사건의 총기를 만진적도 본적도 없었으며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알포드의 형인 재스퍼 브라운이었으며 학교의 재학생도 아니었다. 브라운은 알포드와는 다르게 모든 혐의가 인정돼 5년 형 복역중에 있다. 알포드의 최종 혐의는 브라운의 소재를 숨기려 했으며 기소를 방해했다는 것이었다.

사건 이후 알포드는 롤모델로 전 볼티모어 레이븐스 라인배커 레이 루이스를 꼽았다. 루이스 역시 결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인 혐의를 쓰고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알포드는 인터뷰를 통해 “그 경험은 루이스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어요. 긍정적인 롤모델이 되도록 말이죠.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신이 주신 기회에 감사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하는 사람이요.”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알포드에게 닥친 악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유년기를 보냈던 집이 전소가 된 것이다. 그곳엔 알포드를 제외한 가족들이 살고 있었으며 여태까지 그가 운동을 하며 평생 모았던 트로피까지 모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이는 미시시피에 있던 알포드의 할머니의 집이 토네이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지 겨우 2년 만에 발생했던 일이다.

당시 그는 마이너리그 선수로 매우 적은 연봉만을 받고 뛰는 선수였다. 게다가 집의 사정 역시 부유한 형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알포드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일어날 수 있었다. 아내 베일리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 개설한 페이지에 많은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한 것이다.

사진2. 알포드가 기금을 모으기 위해 SNS에 올린 게시물(출처=앤소니 알포드 트위터)

알포드는 토론토 지역 매체 <더스타>와의 인터뷰를 통해 “도와준 동료 선수들, 프런트 직원들, 그리고 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정말 큰 힘이 됐어요. 토론토 시민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지지와 기부, 그리고 정말 큰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랜더슨과의 만남

그후 2018년 알포드는 또 다른 귀인을 만나게 됐다. 바로 커티스 그랜더슨이다. 수많은 자선행사와 어린이들과 관련한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그랜더슨과 알포드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는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이라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학창시절 두 개의 스포츠를 했다는 점이었다.

입단 직후 그랜더슨은 메이저리그 베테랑으로의 품격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그의 재단인 그랜드키즈 파운데이션의 활동은 미국 너머 캐나다까지 확장됐다. 스프링트레이닝 기간 동안에는 알포드, 조나단 데이비스, 기프트 은고페, 로몬 필즈 등 같은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들과 함께 그랜드키즈 아카데미 활동을 함께 했다. 이뿐이 아니라 토론토 소속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 선수들, 코치들을 한데 모아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특히 그랜더슨은 두 가지 스포츠를 함께 한 선수였던 알포드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그는 “알포드는 다른 선수들처럼 오랜 기간 야구를 한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대학시절이 돼서야 야구가 제 스포츠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또한 모든 스포츠를 다 했어요. 타 종목에서 익힌 다른 스킬들은 야구에서도 발현되기 마련입니다. 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요소로 말이죠.”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알포드 역시 그랜더슨이 자신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음을 밝혔다. 그가 이야기한 바에 따르면 그랜더슨은 경기 중 함께 벤치에 앉아 있을 때면 매 상황마다 “지금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언제든 경기 중에 투입될 수 있는 모범적인 자세도 보여주며, 타석에서의 접근법에 대해서도 공유해줬다.

이때부터 시작된 알포드와 그랜더슨 사이의 인연은 그랜더슨이 시즌 중반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 되었음에도 계속됐다. 이를 계기로 미시시피 드림 위켄드에도 함께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는 알포드 본인이 원했던 ‘루이스와 같은 롤모델’이 되는 순간이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노조가 알포드의 게시물에 달았던 “아이들이 올려다볼 수 있는 좋은 롤모델을 제공해줘서 감사하다.”라는 댓글이 눈에 띄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차세대 리드오프 중견수

알포드는 야구 내적으로도 그랜더슨과 닮은 구석이 있다. 볼넷을 골라내는 능력이 뛰어나며 운동 능력이 좋은 중견수라는 점이다. 그랜더슨과 같이 뛰어난 장타력은 없지만 대신 더 빠른 발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유망주 관련 매체들은 알포드를 과거 그랜더슨이 그랬듯이 ‘차기 리드오프 중견수’를 맡아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같은 고졸 드래프트 동기들에 비해 늦게 풀타임 야구를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알포드는 참을성이 뛰어난타자였다. 알포드는 풀시즌 첫해였던 2015시즌에 싱글A에서 출루율 0.398을 기록했는데, 이는 타율이 0.298로 3할도 안 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가 볼넷으로 얼마나 자주 출루했을지 짐작케 한다. 또한 높은 출루율과 함께 거의 80%에 달하는 도루 성공율로 27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상대팀에 큰 위협이 됐다.

2년 뒤인 2017 시즌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로 AA에서 활약했던 그는 0.299/0.390/0.406의 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강점인 출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게다가 도루 역시 19개를 성공하는 동안 단 3개만을 실패했다. 토론토 역시 이런 가능성 때문에 시즌 도중 그를 콜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5일 만에 손목 갈고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마쳐야만 했다.

2018시즌을 앞두고 베이스볼아메리카는 알포드를 메이저리그 전체 유망주 60위에 선정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치와는 달리 결과가 매우 아쉬웠다. 먼저 햄스트링 부상의 여파로 최상급이었던 운동 능력이 여전히 훌륭하긴 하지만 한 단 계 내려왔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타격 성적 역시 크게 나빠져 2019시즌에도 다시 한번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지고 말았다.


야구계의 루이스를 향하여

여전히 토론토는 알포드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가 트리플A의 어떤 외야수들보다도 메이저리그에 누구보다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가올 시즌 중에 반등에 성공한다면 알포드는 이르면 2019시즌 중간에, 늦어도 2020시즌 초반에 메이저리그 주전자리를 꿰찰 수도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메이저리그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다. 새로운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 스타 탄생의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는 과거에 비해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들의 비율이 크게 줄어들었다. 소사이어티 포 아메리칸 베이스볼 리서치에 따르면, 1972년부터 1996년까지 매해 메이저리그 로스터의 16%이상을 차지하던 비율이 2012년 개막전 로스터의 6.7%까지 떨어졌다. 2018년 개막전 로스터에서는 그나마 소폭 상승해 8.4%까지 올라온 상태다.

이런 동향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역시 고민이 깊다. 메이저리그의 다양성 및 포용 부서가 많은 투자를 하고, 어번 유스 아카데미 등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들을 포함해 야구로부터 소외된 타겟을 공략하기 위한 행사들을 많이 개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시시피 드림 위켄드도 마찬가지다. 넓게는 그랜더슨이 팀내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 선수들 및 코치들과의 저녁 식사자리를 마련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역대 토론토의 외야진은 다른 포지션들에 비해 유독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들과 인연이 깊었다. 기라성과 같은 선수들은 없었으나 조 카터, 버논 웰스, 제시 바필드, 데본 화이트 등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포진해있다. 한때 이들의 계보를 이어줄 선수로 토론토 로컬 보이 달튼 폼페이가 지목됐지만 잦은 부상과 부진 때문에 실패한 유망주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차례는 알포드에게 찾아왔다. 과거 총기 사건에 휘말리며 미식축구에서 꿈을 펼치지 못했던 그가 아프리카계 북아메리카인 스타의 계보를 잇는 야구계의 루이스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출처: MLB.com, Sportsnet, The Star, Baseball America, Milb.com, Instagram, Twitter

에디터=야구공작소 김남우,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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