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
지난 시리즈에서는 한국 야구의 환경 활동을 다뤘다. 현재의 환경 활동이 쓰레기 수거와 분리배출에 집중되는 이유를 살펴봤고, 관람객의 이동과 소비 방식까지 포함한 행동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활동 횟수보다 관람 과정에서 반복되는 선택이 중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야구 분야 사회공헌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저변확대 활동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한국 스포츠 현장에서는 유소년 야구교실이나 학교 방문 수업, 선수 참여 행사 등을 흔히 ‘저변확대 사업’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반 시민에게 저변확대라는 단어는 익숙하지 않다. 실제 의미보다 체험교실이나 이벤트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원래 저변확대는 특정 종목과 연결된 사람의 범위를 넓히는 일을 뜻한다. 선수뿐 아니라 관람객, 학부모, 자원봉사자, 지역사회 구성원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공헌과 저변확대는 가까운 개념이다. 둘 다 지금까지 야구와 관계가 없던 사람과 새로운 접점을 만드는 일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한국 야구의 저변확대가 대부분 체험교실 중심으로 이해된다는 점이다. 새로운 참가자를 만나는 방식이 체험 행사에 집중되면서 저변확대 자체도 체험 프로그램의 수와 참가 인원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왜 ‘저변확대=체험교실’이 되었을까
체험교실은 운영하기 쉽다. 배트를 잡고 공을 던져보는 경험은 직관적이고 참가자 반응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선수와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학교와 지자체 입장에서도 설명하기 쉽고 언론 보도에도 적합하다. 참가 인원과 운영 횟수도 수치로 정리하기 쉽다. 그래서 많은 구단의 저변확대 사업은 자연스럽게 체험교실과 선수 활용 중심으로 이어진다.
이 방식은 한국 프로스포츠 전반에서 오랫동안 사용됐다. 프로 선수가 학교를 방문하거나 학생들을 야구장으로 초대한다. 혹은 은퇴 선수가 강습을 진행한다. 어린이들은 공을 던지고 타격을 체험한다. 기념 촬영과 사인회가 이어지고 프로그램은 마무리된다. 참여자 만족도는 높다. 현장 분위기도 좋다. 실제로 종목을 처음 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한국 야구의 저변확대는 오랫동안 학교 방문과 체험교실을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
문제는 그 이후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 참가자가 다시 야구장을 찾았는지, 가족이 함께 방문했는지, 지역 리그나 학교 스포츠 활동으로 이어졌는지는 상대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반면 참여 인원과 운영 횟수는 바로 집계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평가 역시 행사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몇 명이 참가했는지, 몇 회를 운영했는지가 성과가 된다. 그 결과 저변확대에 대한 논의도 어느 순간 ‘누가 갈 것인가’, ‘몇 회를 운영할 것인가’, ‘예산은 얼마나 필요한가’로 수렴된다. 결국 저변확대의 범위는 선수 활용 범위 안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야구를 처음 만나는 장소는 야구장이 아닐 수 있다
체험교실 중심의 접근은 중요한 전제를 갖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가 이미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스포츠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모든 가정이 스포츠에 친숙한 것은 아니다. 스포츠 여가산업이 성장했음에도 운동선수의 진로나 스포츠 산업의 실제 모습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반면 폭력 사건, 승부 조작, 음주 운전과 같은 부정적 뉴스는 꾸준히 대중에게 노출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스포츠가 교육적 가치나 직업적 가능성보다 위험성과 불확실성이 큰 영역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일부 가정이 스포츠를 공부보다 후순위 활동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체험교실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선택되지 않을 수 있다. 부모가 신청하지 않으면 참여는 시작되지 않는다. 실제로 야구를 본 적이 없는 학생, 야구장을 방문한 적이 없는 가족도 많이 있다. 야구 체험교실은 야구계 안에서는 익숙한 문화지만 야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세계일 수 있다.
체험교실만으로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반면 사회공헌 활동과 공공 프로그램은 다른 방식의 접점을 만들 수 있다. 도서관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야구를 접할 수도 있고 환경 교육을 통해 야구장을 사례로 만날 수도 있다. 지역 축제나 공공 행사에서 구단을 처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 생활 공간에서 야구를 만나는 경험도 저변확대의 한 방식이 될 수 있다. >
실제로 과거에는 프로야구 선수가 지하철 공익광고에 참여하며 시민들과 만나는 사례도 있었다. 지하철은 야구팬만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다. 학생과 직장인, 노인 등 다양한 시민이 이용한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더라도 일상에서 선수와 구단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진로 교육을 통해 스포츠 산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야구를 만나는 경우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어디서 공을 던져봤는가’가 아니다. ‘지금까지 야구와 관계가 없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야구를 접하게 되었는가’의 문제다.
야구는 교육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저변확대는 야구 경기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운동장에서 야구를 만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운동장 밖에서 야구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리는 것이 새로운 저변확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독서 프로그램이 있다. 구단은 출판사나 도서관과 협력해 독서 캠페인을 운영할 수 있다. 선수는 추천 도서를 소개하는 역할만 맡아도 된다. 실제 프로그램은 학교와 지역 기관이 운영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야구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환경과 역사, 과학, 리더십, 지역 문화와 같은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야구를 접점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프로야구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는 2014년부터 독서 촉진 캠페인을 운영하고 있다. 구단은 선수들의 독서 습관에 주목하는 데서 출발했지만, 이후 이를 지역사회의 교육 과제와 연결했다. 그림책 제작과 도서관 기획전, 독서 활동 참여 학생 초청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며 독서를 매개로 지역사회와 만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야구를 직접 가르치는 활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구단은 지역의 교육 과제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사회공헌 활동이 항상 선수의 희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독서 캠페인은 지역사회에 독서 문화를 확산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선수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경기와 훈련 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은 선수 개인에게도 자산이 될 수 있다. 사회적 가치와 선수의 성장이 반드시 별개의 목표일 필요는 없다.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독서 촉진 캠페인은 야구교실이 아닌 독서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와 새로운 접점을 만들었다. >
진로 교육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은 스포츠 산업에 관심을 갖지만 실제 구단 안에 어떤 직업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른다. 선수 외에도 마케팅, 데이터 분석, 이벤트 운영, 콘텐츠 제작, 영업, 홍보, 국제 업무 등 다양한 직무가 존재한다. 구단 직원이 학교를 방문해 자기 일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은 체험교실과 다른 방식의 저변확대가 될 수 있다. 학생들은 스포츠 산업을 현실적인 직업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고 구단은 새로운 접점을 만들 수 있다.
교육청과 협력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환경 교육에서는 야구장을 사례로 활용할 수 있고 지역 교육에서는 연고지의 역사와 생활권을 설명할 수 있다. 기록과 통계는 수학 교육과 연결될 수 있다. 야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야구를 활용해 다른 분야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2026년 인천시교육청은 ‘야구×수학 북 콘서트’를 개최해 경기 기록과 데이터 분석을 확률·통계 교육과 연결했다. 야구를 체육 활동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교과 학습의 소재로 활용한 사례다.
야구의 사회적 역할은 새로운 접점을 만드는 데 있다
현재 한국 프로스포츠에서는 주로 사회공헌과 저변확대를 별개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사회공헌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이고, 저변확대는 종목 참여를 늘리는 활동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두 영역이 분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 문화, 진로 교육과 같은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에 필요한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야구를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회공헌 활동이 저변확대로 이어지고, 저변확대 활동이 사회공헌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다.

< 야구의 사회적 역할은 교육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역경제와 공공서비스를 알리는 활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
지금까지 한국 야구의 저변확대는 체험교실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체험교실을 통해 야구를 처음 접했고, 앞으로도 체험교실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만 저변확대를 체험교실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저변확대는 종목과 연결된 사람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행사 인원뿐 아니라 어떤 경로를 통해 야구를 처음 접하게 되었는지, 어떤 학교와 기관이 연결되었는지, 야구가 기존에 닿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가갔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야구의 사회적 역할은 경기장 안에 있는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 야구가 고민해야 할 저변확대도 체험교실의 참가자 수를 늘리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야구가 교육, 지역사회, 진로, 문화와 만나는 접점을 넓히고, 지금까지 야구와 관계가 없던 사람들과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저변확대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야구가 사회 안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도 함께 커질 것이다.
참고 = KBO, 서울메트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대구광역시, 경인일보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박인이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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