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25시즌 리뷰] 삼성 라이온즈 – 롤러코스터 내러티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

야구공작소는 연말을 맞이하여 KBO 팀별 25시즌 리뷰를 발행합니다. 12월 31일까지 매일 한 팀씩 업로드됩니다.

시즌 성적 = 74승 68패 2무(최종 4위)

 

Prologue: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2024시즌 삼성 라이온즈는 ‘반등’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명백한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베테랑들의 라스트 댄스로 여겨졌던 2021시즌과는 달리, 신구 조화 속에서 젊은 선수들의 성장과 베테랑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팀은 하위권으로 평가받던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9년 만에 한국시리즈 무대를 다시 밟았다. 암흑기라 불리던 지난 세월은 비로소 끝이 보이는 듯했다. 팬들은 더 이상 기적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단 하나, ‘삼성 야구가 돌아왔다’는 확신이었다.

2025년은 그렇기에 어느 해보다 중요한 시즌이었다. 단순히 작년의 성과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그해의 약진이 우연한 행운이 아닌 필연적 결과임을 증명해야 했다. 어렵게 피워낸 푸른 불씨를 더 큰 불꽃으로 키워낼 차례였다.

 

Exposition: 막을 다시 올리며

2024시즌의 성공에 힘입어, 삼성은 스토브리그에서부터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목표는 명확했다. 최소 가을야구, 최대 우승.

외국인 선수들은 KBO리그에서 이미 적응한 선수들을 선택했다. 포스트시즌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준 데니 레예스와 르윈 디아즈와의 재계약은 빠르게 정리됐다. 1선발 코너 시볼드의 공백은 KBO리그 최고의 외국인 투수 중 하나로 꼽힌 키움 히어로즈의 아리엘 후라도로 채웠다.

FA 시장에서도 과감한 투자가 이어졌다. 선발진 강화를 위해 최원태(4년 70억)를 영입했고, 집토끼 류지혁(4년 26억), 김헌곤(2년 6억)과의 재계약도 마무리했다.

홈런 군단과 선발 왕국이라는 팀 색깔을 되찾은 삼성은, 전년도 우승팀 KIA 타이거즈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꼽혔다.

전망 역시 이를 뒷받침했다. 10개 구단 단장 중 7명이 삼성의 가을야구 진출을 예상했고, 다수의 방송 해설위원과 베테랑 야구 기자들도 KIA, LG와 함께 삼성의 3강 체제를 점쳤다.

 

Development: 선발 야구와 수비, 버터내다

삼성은 시즌 초반 다소 불안정한 경기력을 보였지만, 4월까지는 2~3위를 오가며 지난 시즌의 상승세를 그대로 이어가는 듯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그 중심에는 흔들림 없이 제 몫을 해낸 선발진이 있었다. 성적과 여러 지표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쳤던 2025시즌 동안, 삼성 선발진은 대부분의 시즌 내내 확고한 상수로 자리하며 팀을 지탱했다.

< 2025시즌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 주요 스탯 >

후라도와 원태인은 매 경기 6~7이닝을 책임지면서도 무너지는 경기가 거의 없는 리그 정상급 원투펀치의 위력을 증명했다. 특히 후라도는 197.1이닝을 소화하고 QS 23회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이닝 이터로 활약했다. 불펜 붕괴와 선발진의 이탈이 겹친 상황에서도 마운드를 홀로 떠받쳤다. 원태인 역시 국내 선발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과 승리를 기록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 2025시즌 후라도, 원태인 주요 성적 >

레예스가 부상과 부진 끝에 팀을 떠난 자리는 6월 영입된 헤르손 가라비토가 메웠다. 제구 불안은 있었지만, 즉시전력감으로서 시즌 마운드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최원태는 몸값 대비 아쉽다는 평가가 뒤따랐고 기복 역시 존재했으나, ‘4선발’ 기준으로는 리그 평균 이상을 충분히 해냈다. 특히 시즌 초반 선발진에 구멍이 생겼던 상황과 삼성의 대체 선발 후보군을 고려했을 때, 최소한의 버팀목으로서 역할을 했다.

 

박진만 감독 체제의 강점인 수비 역시 빛났다. 2년 연속 리그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 2024, 2025시즌 삼성 라이온즈 주요 수비 스탯 >

지난해 스탯티즈 기준 수비 WAA(Wins Above Average) 3.94로 리그 1위를 기록했던 삼성은 올 시즌에도 2.63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수비 지표 1위를 차지했다. 실책 역시 87개로 86개의 한화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적었다. 이는 시즌 내내 투수진이 버틸 수 있었던 견고한 기반이 되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주전 유격수 이재현이 과부하 속에서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23개의 실책을 기록하며 리그 3위에 오르는 등 개인 기량이 흔들린 부분도 존재했다. 그럼에도 팀 전체적으로는 ‘큰 실수는 최소화하는 팀’이라는 신뢰를 구축했다. 시즌 내내 기복이 컸던 흐름 속에서도 삼성이 어이없게 무너지는 팀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Crisis: 도미노 효과

하지만 삼성은 투타 밸런스의 불균형으로 결국 흔들렸다. 5월부터 경기력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6월에 이르러서는 ‘가장 나쁜 경우의 수’가 연속으로 터졌다. 가장 먼저 덮친 것은 10년 가까이 삼성을 괴롭혀온 부상 악령이었다.

야수진에서는 유독 타격감이 절정이던 선수들이 차례로 쓰러졌다. 초반 맹타를 휘둘렀던 김지찬과 김성윤은 부상 복귀 이후 타격감이 흔들렸다. 박병호는 한 달 이상 전력에서 이탈했고, 박승규는 투구에 손을 맞아 골절당하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강민호, 구자욱 등 핵심 야수들부터 전병우, 김헌곤 같은 대체 자원들까지 크고 작은 부상이 이어졌다. 삼성은 시즌 내내 베스트 라인업을 구성하기 어려웠다. 결국 2025시즌 KBO에서 가장 많이 부상자 명단을 등록한 팀이 되었다.

< 2025시즌 삼성 라이온즈 주요 부상자 >

문제는 그 뒤였다. 부상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삼성은 그 공백을 메울 뎁스를 사실상 갖추지 못했다.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오랜 기간의 운영 실책으로 누적된 삼성의 취약점이었다. 퓨처스리그에서 호출할 수 있는 자원을 대부분 끌어올렸지만, 전력 누수를 보완할 만한 선수는 투타 모두 찾기 어려웠다. 결국 주축 선수 한 명만 빠져도 팀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위험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났다.

불안정은 불펜 붕괴라는 형태로 정점을 찍었다. 시즌 전부터 최지광과 김무신이 시즌아웃됐고, 전반기에 이재희와 백정현까지 연달아 이탈하면서 불펜은 사실상 재편조차 불가능한 수준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지난 시즌 필승조였던 임창민, 김재윤, 오승환이 동시에 부진에 빠진 가운데 새 필승조 후보들마저 줄줄이 쓰러지자 남은 김태훈, 배찬승, 이호성 등 소수의 투수에게 부담이 집중되었다. 결국 체력 고갈과 함께 선발진을 포함한 투수진은 급격한 난조에 시달렸다. 시즌 막판에는 마무리로 복귀한 김재윤을 비롯해 이승민, 양창섭 등 불펜진이 안정감을 되찾으며 팀의 상승세에 일조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응급처치에 불과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불펜 난조는 곧바로 역전패로 직결됐고, 삼성은 2025시즌 68패 중 무려 32패를 역전패로 기록했다. 고질적인 불펜 고민을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 2025시즌 삼성 라이온즈 구원투수 주요 스탯 >

시즌 중 삼성의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은 13.7%(8월 14일, KBO PS Odds 기준)까지 떨어졌다. 이 시점에서 5위와는 5경기 차 8위였다.

 

Climax: 방패를 부수는 창과 가을의 전설

하지만 결국 삼성을 끝까지 끌어올린 힘은 타선이었다. 많은 선수가 극심한 기복을 겪었음에도, 시즌 전체로 놓고 보면 전반적으로 리그 최상위권 위력을 유지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대구의 홈런 공장은 멈추지 않았다. 팀 홈런 161개로 2년 연속 팀 홈런 1위를 차지했다. 두 자릿수 홈런 타자가 무려 6명이나 나오며 타격 지표 전반에서 리그를 주도했다. 홈런뿐 아니라 OPS 1위(.780), WAR 2위(29.61), wRC+ 2위(108.3), 타율 2위(.271), 득점 2위(775) 등 각종 공격 지표에서 상위권을 독식했다.

이번 시즌 삼성 타선의 절대적인 중심은 단연 ‘홈런왕’ 디아즈였다. 디아즈는 리그를 폭격하며 50홈런·158타점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외국인 타자 역대 최다 홈런을 갈아치웠고, KBO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타점 기록까지 새로 썼다. 전 경기 출장을 통해 이룬,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50홈런-150타점 마일스톤은 KBO 44년 역사상 최초의 기록이다.

김성윤은 이번 시즌 확실한 스텝업을 보여주며 5툴 플레이어의 잠재력을 현실로 바꿨다. BB/K 1.20으로 리그 1위를 기록했고, 스탯티즈 기준 wRC+ 146.2를 기록하며 생산성 높은 이상적인 2번 타자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상위타선에서 팀 공격의 첨병이 되었다.

구자욱은 시즌 초 심각한 부진에 빠졌지만, 6월 이후 무섭게 살아나 결국 리그 정상급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비록 수비와 주루의 부담이 늘어나며 지명타자 출전이 많아졌으나, 106득점을 기록하며 2021시즌 이후 4년 만에 타이틀홀더가 되었다.

< 2025시즌 디아즈, 김성윤, 구자욱 주요 성적 >

이 외에도 김영웅, 이재현, 박병호, 강민호 등 타자들이 꾸준히 장타력을 과시하며 ‘대포 군단’의 명성에 걸맞은 시즌을 만들었다.

타선의 폭발력을 앞세운 삼성은 8월 15일 사직 롯데전을 기점으로 34경기 23승 10패 1무라는 놀라운 뒷심을 발휘했고, 결국 정규시즌을 4위로 마무리하며 가을야구 무대에 진출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투혼은 이어졌다. NC 다이노스와의 와일드카드에서 1차전 패배로 벼랑 끝에 몰렸으나, 2차전 승리로 준플레이오프에 안착했다. 여세를 몰아 이후 SSG 랜더스와의 준플레이오프를 3승 1패로 업셋하며 플레이오프 진출의 드라마를 썼다.

가을야구가 깊어질수록 최원태, 김영웅 등 여러 선수가 ‘미스터 옥토버’로 활약하며 분전했지만,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체력 부담이 커졌다. 결국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5차전 승부 끝에 패배하며 2위 한화 이글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전반기 8위의 부진을 딛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11경기나 치른 것만으로도 팀의 저력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삼성 라이온즈의 2025년은 위대한 여정이었다.

< 사자들은 어제의 한계를 넘어 나아갈 수 있을까 >

 

Denouement: THE TIME IS NOW

삼성은 올해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분명 한 단계 성장했다. 이에 2년 연속 가을야구라는 성과를 만들어낸 박진만 감독과 2+1년 최대 23억 원에 재계약을 체결하며 팀의 철학과 방향성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할 문제 또한 명확하게 드러난 시즌이기도 했다.

끝판대장 오승환이 마운드를 떠났다. 핵심 불펜의 연령 리스크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 다행히 젊은 투수들의 성장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탈했던 선수들도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조각들이 충분하다고 해서 저절로 퍼즐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이 조각들을 어떻게 맞춰내느냐가 삼성이 맞닥뜨린 가장 중요한 과제다.

오랜 시간 포수 마스크를 써온 강민호는 역대 최초로 4차 FA를 신청했고, 2년 최대 20억 원에 잔류했다. 여기에 박세혁도 지명권 트레이드를 통해 합류했다. 다만 그들의 나이를 고려하면 차세대 안방마님의 준비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삼성 왕조의 4번 타자 최형우가 2년 최대 26억 원에 다시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이 던지는 메시지다. 최형우의 복귀는 단순히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이는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 타격을 자랑하는 선수를 데려온다는 계산의 결과였다.

반면 야수진에는 여전히 숙제가 남아 있다. 키스톤 뎁스 보강, 우타, 빅뱃 자원 확보 등 오랫동안 지적돼 온 전력의 빈틈을 얼마나 메워내느냐가 삼성의 성적을 가늠할 잣대가 될 것이다.

올해 삼성 라이온즈 파크엔 한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인 164만 174명의 관중이 찾아왔다. 성적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승리의 찬가 엘도라도는 멈추지 않았다. 팬들의 이 과분한 지지는 삼성의 가장 큰 자산이자, 더 높은 곳을 향해 다시 뛰어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더 이상 미래만 이야기할 수 없다. 현재의 성과로 증명해야 할 시간이다. 다가오는 시즌은 갈림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업을 이루지 못한다면, 팀은 언제 다시 어둠 속으로 빠질지 모른다.

올해 삼성의 포스트시즌 캐치프레이즈는 ‘Fly Higher’였다.

내년의 사자 군단은 정말로 가장 높은 곳에서 포효할 수 있을까?

 

참고 = FanGraphs, STATIZ, KBO

야구공작소 김예찬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홍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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