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사회적 역할⑪ 그라운드 밖에서도 빛나는 야구선수들의 사회적 가치 上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

이전 시리즈에서는 일본 도쿠시마 인디고삭스 사례를 통해 독립구단이 가진 사회적 가치를 살펴보았다. 인디고삭스 선수들은 환경 문제 해결, 지역 특산물과 문화 홍보, 지역 주민과의 교류 등을 통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선수들은 자신의 꿈을 추구하면서 사회적 책임감을 실천하고, 스포츠의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실천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어떻게 사회 공헌 활동을 격려하고 표창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활동이 어떻게 야구의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사랑의 골든글러브, 그 행방은 어디에

‘KBO 골든글러브’(이하 골든글러브)는 KBO리그에서 한 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들에게 포지션별로 수여하는 상으로, 매년 12월에 총 10명이 선정됐다. 이는 한국 프로 스포츠 중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유일하게 지상파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 영예로운 시상식이기도 하다. 2024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지난달 12월 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성대히 개최됐다.

그러나 이번 시상식에서도 ‘사랑의 골든글러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상을 받은 선수는 2021년 SSG 랜더스의 추신수였다. 이후 2022년 시상식부터 사랑의 골든글러브는 공식적인 폐지 발표 없이 사라졌다.

사랑의 골든글러브는 사회 발전에 공헌한 야구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1999년에 제정됐다. 이 상은 2021년까지 매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함께 수여됐다. 개인 최다 수상자는 2회 수상자인 박용택(LG 트윈스, 2007년과 2011년)이며, 팀별 최다 수상자는 롯데 자이언츠로 총 8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2005년)과 한화 이글스 상조회(2008년)는 단체로도 수상한 바 있다.

< 역대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 >

사랑의 골든글러브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로베르토 클레멘테상’과 성격이 유사하다.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은 사회 공헌 활동과 스포츠맨십을 실천한 모범적인 선수에게 수여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이 상은 MVP나 사이영상에 버금가는 영광으로 여겨지며, 수상하지 못해도 구단 후보로 선정되는 것만으로도 큰 영예다. 반면 사랑의 골든글러브는 국내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하며, 자취를 감춘 현재 이를 지적하는 이도 없다.

사랑의 골든글러브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프로야구에서 야구선수의 가치를 야구 실력으로만 평가하는 경향에 그 원인이 있다. 야구 외적인 활동에 대해 팬들은 종종 “야구나 잘해라”라는 반응을 보이며, 선수들은 사회적 논란이 생길 때마다 “야구로 보답하겠다”라고 다짐하곤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야구 실력이 아닌 사회 공헌과 도덕성으로 받는 상은 일부 선수에게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사회 공헌을 통해 야구선수로서도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와 KT 위즈 소속이었던 신본기다. 202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최저연봉을 받던 신인 시절부터 꾸준한 기부 활동으로 팬들과 야구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라운드 안에선 훌륭한 워크 에식과 자기 관리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됐다. 또 그라운드 밖에선 팬클럽 ‘우리본기’와 함께 꾸준히 각종 봉사와 기부 활동을 진행하며 리그를 대표하는 ‘선행왕’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러한 선행 덕분에 그는 내야 백업 선수임에도 쟁쟁한 고액연봉자를 제치고 2017년 KBO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되며 개인 첫 수상을 하게 되었다.

선행이 매스컴을 타면서 신본기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신본기의 선행은 야구팬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운동선수의 이미지를 바꿨다. 이는 선수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존재로 세상에 각인시켰다. 사랑의 골든글러브는 단순히 야구 실력 이상의 가치를 조명하는 상이었다. 부활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야구선수가 사회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력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

< 2024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KBO 선행왕 신본기 >

 

구장 밖의 MVP ‘골든 스피릿상’

일본에도 사랑의 골든글러브와 유사한 상이 있다. 바로 골든 스피릿상이다. 골든 스피릿상은 일본 프로야구 구단에 소속된 인물 중에서 사회 공헌 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온 선수 또는 코칭스태프에게 수여하기 위해 호치 신문사1가 제정한 상이다. 구장 밖에서의 공로를 평가하는 최초의 상이며, KBO와 마찬가지로 1999년부터 시상해 왔다. ‘구장 밖의 MVP’라고도 불리며 수상 시 스포츠 1면에 실리는 파급력 있는 상이다. 사랑의 골든글러브와 달리 골든글러브 시상과 별개인 단독 상이다.

매년 선발 위원회가 열리고, 그해 일본시리즈 우승팀을 제외한 구단에서 추천한 후보자 중에서 한 명을 선정한다. 사회적 영향력으로 후보자 내에서 결정할 수 없으면 해당연도의 성적까지 반영해 평가된다. 수상자에게는 골든 트로피와 100만 엔(한화 1,000만 원 상당)이 수여된다. 또한 수상자가 지정한 단체나 시설 등에는 호치 신문사가 200만 엔(한화 2,000만원 상당)을 기부한다.

< NPB 골든 스피릿츠 상 수상자와 활동 내용 >

 2024년 골든 스피릿 상은 지난 11월 13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스가노 도모유키가 수상했다. 그는 2015년 스가노 재단을 설립하고, 사회복지법인 일본 보조견 협회에 (시즌 공식전 승리 수) × 10만 엔을 기준으로 기부금을 전달해 왔다. 2019년부터는 이 협회의 홍보 대사로 활동도 시작했다. 선발 위원회는 그가 기부와 홍보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 프로 12년 동안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한 스가노지만, 이번 상은 그의 사회공헌 활동을 중심으로 수여된 것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그는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이 상을 받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전했다.

수상자 선정에서는 한신 타이거즈의 니시 유키와 박빙의 경쟁을 벌였다. 니시는 2011년부터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을 위해 힘이 되어주고 싶다며 일본 재단 어린이 지원 프로젝트에 기부를 이어왔다. 어린이 지원 시설 방문과 병원에 의료용 마스크를 기부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이어왔다. 14년간 사회 공헌에 힘써온 그였지만, 최종 수상자는 그해의 야구 성적까지 고려해 종합적으로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스가노였다. 스가노는 최다 승리와 최다 승률을 기록하며 최종 수상자가 됐다.

<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미국에서 온라인으로 시상식에 참가한 스가노 >

스가노가 2015년 ‘스가노 재단’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사회복지법인 일본 보조견 협회’의 하시모토 구미코 회장과의 만남이었다. 보조견은 신체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육성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시각 장애인의 안내견에 비해 사회적 인지도가 낮다. 지난 9년 동안 스가노는 지원금 총액 1,585만 엔을 기부했고, 협회의 활동 자금으로 사용되는 상품도 판매하며 홍보 활동에도 적극 협력했다. 그는 “냉장고를 열어 음료수를 가져다주거나 문을 열어주는 등, 보조견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습니다”라며 보조견의 놀라운 능력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는 프로 입단 직후에는 기부할 때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팬들이나 사람들이 ‘스가노 선수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나도 기부를 해보거나 상품을 사볼까?’라는 식으로 퍼져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습니다”라며 기부 활동의 의미를 새롭게 느꼈다고 밝혔다.

사랑의 골든글러브와 골든 스피릿상은 모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야구 선수들이 경기 외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야구의 사회적 역할을 인정하는 의미를 지닌다. 두 상 모두 1999년부터 시상이 시작되었지만, 사랑의 골든글러브만 폐지된 것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사회공헌 활동에 대한 인식 부족을 여실히 드러낸다.

신본기와 스가노의 사례처럼,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사회적 기여를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개인적 행위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확산될 수 있다.

따라서 선수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얻은 긍정적인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사랑의 골든글러브와 같은 상들이 재조명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때, 야구는 경기장 안뿐 아니라 바깥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 길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야구 선수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참고 = KBO, KT위즈, 호치신문사, 요미우리 자이언츠, 착한 자본의 탄생(김경식 저), Gratton, Chris; Preuss, Holger (2008). ISO26000(국제표준화기구 사회적 책임 표준),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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