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
이전 시리즈에서는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즈의 사례를 통해 환경 분야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해 알아봤다. 재생에너지 사업, 종이컵 수거 이벤트 등을 통해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팬들과 지역 사회를 연결하고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일본 여자야구가 실현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 여자야구는 성평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 강화를 위한 중요한 활동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추가로,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여자야구의 발전 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예전부터 비인기 스포츠와 여성 스포츠는 지원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스포츠의 존재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의문이 되고 있다. 여자야구도 그런 의문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만큼 여자야구는 관심과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 매체에서 국내 여자야구 관계자와 선수들이 “전용 구장이 하루빨리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 전했다. 전용 구장이 없으니, 국가대표팀의 훈련뿐 아니라 전국대회 개최도 매번 장소를 옮기기에 바쁘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여자야구의 발전을 위해서는 실업팀과 프로팀의 창단이 꼭 필요하다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한국 여자야구에는 현재 국가대표팀은 있어도 실업팀이나 프로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교 교육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로선 여자야구 선수들이 동호인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동호인 스포츠를 위한 전용 구장 지원 요청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남녀불문하고 많은 동호인들이 경기를 치르거나 연습을 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구장을 이용하고 있다. 여자야구에 대한 관심과 응원이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나 스포츠인 중 일부만을 위한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여자야구 1년의 결실, LX배 한국여자야구대회 >
그럼에도 여자야구를 지원해야 한다면, 그 이유는 야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여성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플레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지원을 요청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먼저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존재가 되는 게 중요하다. 여자야구가 구체적인 과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여자야구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선수들이 직접 나서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팬층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해야 한다. 지원 요청도 구체적인 근거와 계획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여자야구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원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일과 야구를 병행하는 여자야구 선수
여자야구는 스포츠를 넘어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성평등의 가치를 전파하는 중요한 활동이다. 이는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중 성평등 달성을 목표로 하는 5번 목표와도 일치한다. 이러한 목표 아래, 일본의 여자야구는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야구에 도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팬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문무양도(文武両道)’라는 개념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보다 여러 방면에서 균형적으로 능력을 신장하는 태도를 말한다. 일본의 여자야구 선수들은 이 가치를 중시해 일과 야구, 학업을 동시에 해내려 노력한다. 비인기 종목의 여자 스포츠의 경우 모기업은 프로 스포츠단이지만 여자팀은 클럽팀의 형태가 많다. 그 안에서 프로 계약을 맺은 선수, 별도의 직장을 가지면서 팀에서는 훈련만 하는 선수, 학교 일과 시간에만 와서 훈련하는 선수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요미우리 자이언츠 여자 팀은 NPB의 프로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운영하지만 공식적으로 아마추어팀이다. 선수들이 학업과 일을 병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많은 선수가 구단의 프랜차이즈 아카데미에서 강습을 진행하거나, 남자팀 2군 경기에서 볼걸로 일하고 있다. 대학교에서 스포츠와 관계없는 전공을 갖고 있는 학생 선수도 학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선수들은 매년 방출을 피하고자 밤늦게까지 연습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리려 노력한다.
이들의 열정은 은퇴 후에도 이어진다. 예를 들어, 전 여자 국가대표 카토 유는 NPB 구단에 여성팀 창단을 제안했다. 비록 팬데믹으로 인해 팀 창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NPB 아카데미에 여성 코치직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여자야구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 요코하마 DeNA 아카데미에서 지도하는 카토 유 >
일본 여자야구는 스포츠를 넘어 성평등과 여성의 역량 강화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가 더 널리 퍼져서 여자야구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더욱 커지고 있다.
야구 타운 제도를 통해 구장 확보, 지역사회 활성화
일본 여자야구는 NPB 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야구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본의 야구 인프라가 우리나라보다는 발전했지만, 야구 인구가 많은 만큼 야구장이 충분히 넉넉하지는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여자야구연맹은 2020년부터 ‘여자야구 타운 인정 사업’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여자야구를 통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는 지자체를 여자야구 타운으로 명명하고, 여자야구 대회 개최, 여자야구 교실 운영 등 저변 확대를 목표로 한다. 지역 관광지 및 특산품과 여자야구를 콜라보한 이벤트를 열어 지자체와 여자야구가 서로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현재 16개에 달하는 지역이 여자야구 타운으로 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권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이 여자야구와 지역경제 발전에 힘쓰고 있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
< 일본 전역의 여자야구 타운 16개소 >
단순히 야구장이 있다고 해서 모두 여자야구 타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자야구 타운 인정 사업’의 인정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각 지자체는 여자야구를 시티 프로모션으로 활용할 계획과 그 지역의 특성을 살린 기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연맹은 여자야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타운 인정을 위한 컨설팅, 야구 교실 및 세미나 지원, 팀 창단 지원, 대회 및 이벤트 개최 지원, 그리고 일본 여자 대표팀 및 유명 선수 파견 등 다양한 지원을 제공한다. 여자야구가 지원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자체와 협력하여 발전할 기회를 얻고 있다. 이러한 협력 모델은 여자야구의 성장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여자야구 타운 중 미요시는 우수 사례로 손꼽힌다. 미요시는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히로시마의 농촌 지역으로, 2020년에 여자야구 타운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여자야구를 문화로”와 “전광석화 킨사이 스타디움 미요시를 여자야구의 성지로!”라는 슬로건 아래, 대회 및 합숙 유치를 통해 여자야구의 보급과 촉진을 위한 지역 개발 및 활성화에 힘써왔다.
< 미요시를 방문한 일본 여자야구 대표팀 >
이곳은 특히 올해 제9회 WBSC 여자 야구월드컵 파이널 스테이지가 개최된 곳이기도 하다. 미요시는 여자야구와의 인연을 통해 국내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의 방문이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2024년에는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여 스포츠를 통한 도시 개발과 지역 활성화를 추진하는 미요시 스포츠 커미션이 설립되어, 미요시를 여자야구의 성지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2025년 4월에는 지역 기업의 지원을 받아 사회인 여자 팀이 설립될 예정이다. 이렇듯 미요시는 여자야구의 중심지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여자야구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단순한 지원 요청을 넘어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사례처럼 지역 사회와의 협력과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여자야구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팬층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미요시와 같은 성공적인 여자야구 타운이 더욱 늘어남으로써, 여자야구가 단순한 비인기 스포츠가 아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중요한 스포츠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모든 주체가 함께 손잡고 나아간다면 여자야구는 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를 이끌어내며, 더 많은 여성이 야구를 사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
참고 = 일본여자야구연맹, 미요시 시청, 요미우리 자이언츠,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한국여자야구연맹, 스포츠서울, 착한 자본의 탄생(김경식 저), Gratton, Chris; Preuss, Holger (2008). ISO26000(국제표준화기구 사회적책임 표준),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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