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스윙이 (45도로) 이븐하게 돌지 않았어요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체크스윙에 대한 논란이 KBO리그 포스트 시즌에도 이어지는 가운데 필자 외에도 체크스윙을 우리가 직접 정의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 와중에 미국의 교육 리그인 애리조나 가을리그(Arizona Fall League)에서 MLB 사무국이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10월 22일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솔트 리버 필즈에서 열린 스코츠데일 솔라삭스와 솔트 리버 래프터즈와의 경기. 2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선 좌타자 드류 길버트는 3-1 카운트에서 바깥쪽 체인지업에 스윙이 나오다 말았다. 주심은 3루심에게 스윙 여부를 확인했고 3루심은 스윙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장비를 벗던 길버트는 갑자기 머리를 두들겼다. 그렇게 MLB가 주관하는 경기에서 사상 최초로 체크스윙에 대한 비디오 판독이 진행됐다.

< 최초의 체크스윙 비디오 판독 결과. 스윙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

판독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호크아이(Hawk-Eye) 시스템이 추적한 길버트의 배트는 초록빛을 내면서 동선을 보여줬다. 배트의 움직임은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누가 봐도 스윙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시작부터 기계가 억울한 판정을 ‘정상화’했다.

 

45도?

그러나 이 영상을 본 필자는 판독 화면에 나타난 정체 모를 45도 각도로 그어진 점선이 궁금했다. 3루 쪽 파울선과 평행한 선이란 점은 바로 알아차렸지만, 저것이 어떤 기준을 의미하는지 영상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스윙이 저 선을 넘어야 스트라이크일지 아니면 타자의 노브가 저 선을 넘어가면 스트라이크일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리고 그 답을 확인할 기회는 곧바로 찾아왔다. 같은 경기 5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선 우타자 게릿 마틴은 3구째에 체크스윙을 한다. 그리고 그의 체크스윙에 대한 기계의 판정은 점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MLB가 왜 이런 기준을 세웠는지 모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 게릿 마틴의 체크스윙은 분명히 멀리 돌아 나왔지만, 애리조나 가을리그 규정에 따르면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

측면에서 본 마틴의 스윙은 통상적인 야구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판단하면 100이면 100 돌았다. 필자는 이전 글에서 공식야구규칙 외 다른 야구 규칙에서 체크스윙이 어떻게 정의되는지 설명했다. 배트의 배럴 끝이 홈플레이트의 앞쪽 변을 통과하거나 혹은 배트의 배럴 끝이 타자의 골반 앞을 통과하는 등의 기준이 있는 가운데, 마틴의 스윙은 아무리 봐도 스윙이다. 그러나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시행 중인 규칙에 따르면 마틴의 체크스윙은 스트라이크가 아니다. 왜냐하면 배트가 판독 화면에 나온 점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크스윙의 기준과 판독 결과를 차치하고 체크스윙 비디오 판독이 시작됐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거기에 우연하게도 좌타자와 우타자가 돌아가면서 판독을 신청하면서 호크아이가 어느 방향에서도 배트의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MLB의 새로운 정의 시도

3피트 레인의 확장, 베이스 가로막기 금지 등 다양한 규칙을 시험한다고 사전에 공표한 2023년 애리조나 가을리그와 달리 MLB는 올해 애리조나 가을리그가 시작하기 전 새로운 규칙이나 제도를 도입한다고 별도로 공지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된 지 2주 지난 시점에서 갑자기 체크 스윙에 대한 비디오 판독이 시작됐다. 최초의 체크스윙 비디오 판독이 진행된 다음 날, MLB의 샘 다익스트라는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어떠한 기준으로 체크스윙을 판정하는지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체크스윙은 배트가 홈플레이트를 기준으로 앞으로 45도 이상 넘어가면 스트라이크가 된다. 파울선이 홈플레이트의 하단 직각이등변삼각형의 꼭짓5도 이상 넘어가면 스트라이크가 된다. 파울선이 홈플레이트의 하단 직각이등변삼각형의 꼭짓점과 이어져 45도 각도를 만든다는 점을 기억해보자. 따라서 현재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는 타자의 배트가 파울선의 평행선을 통과한다면 스윙, 그러지 않았다면 노스윙이다.

각 팀은 경기당 두 번의 체크스윙 비디오 판독을 신청할 수 있으며, 투수, 포수, 그리고 타자가 판독을 신청할 수 있다. 현재 체크스윙 판독 시스템은 솔트 리버 필즈에만 설치된 상태이며, 따라서 솔트 리버 래프터즈의 홈경기에서만 진행된다.

체크스윙에서 45도란 기준은 상당히 낯설다. 첫 번째로 소개한 길버트의 스윙이야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두 번째로 소개한 마틴의 스윙은 1루심이 스윙으로 판정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왜 MLB는 통상적인 인식을 훨씬 넘어선 기준을 제시하게 됐을까? 아직 MLB가 공식적으로 왜 45도라는 기준을 도입했는지 설명하지 않았기에 필자의 생각은 가설일 뿐이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MLB의 규칙 책인 Official Baseball Rules, 그리고 이를 번역해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공식야구규칙에는 체크스윙에 대한 정의가 없다. 이를 달리 말하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체크스윙의 스트라이크 판정은 심판의 재량에 따른 결과였다.

그런 맥락에서 홈플레이트 기준 45도선 혹은 파울선은 기준선 역할을 할 수 있다. 체크스윙을 주로 판정하는 담당은 1루심과 3루심이다. 1루와 3루 뒤에 서서 타석을 바라보는 이들의 입장에서 지금까지의 스윙 여부는 순전히 단독적인 감각과 경험에 기반해 결정했다. 그러나 45도라는 기준이 생긴다면 하얀색 석회로 그어진 보조선이 역할을 해줘 ‘스윙이 파울선을 넘었다’라는 설명을 할 수 있게 된다. 파울선과 평행한 가상의 선보다 배트가 돌아버린 게 보였다면 스윙이라 말하면 된다.

스트라이크/볼 판정도 임의적이라고 하지만 구심에게는 스트라이크 존의 기준이 되는 타자의 무릎과 상체라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1루심과 3루심에겐 지금까지 그런 도우미가 없었다. NCAA 야구 규칙 책이 최초로 하프스윙을 정의했을 때 배트의 배럴 끝이 홈플레이트의 앞쪽 변을 통과하면 하프스윙이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규정은 좌우에 선 심판이 현장에서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삭제됐다. 그럴 수밖에 없다. 1루심과 3루심의 관점에서 배트가 홈플레이트의 앞쪽 변을 넘었는지 여부를 도와줄 보조적인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NCAA는 타자의 골반 앞이라는 기준만 남겨놨다. 타자의 몸이 판정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 3루심 시점에서 바라본 좌타자. 체크스윙의 기준이 파울선이 된다면 지금보다 판정을 내리기 편해질 것이다. >

이 기준이 실제로 도입된다면 한동안은 야구하는 그리고 보는 사람과 심판의 판정 간에 괴리가 상당할 것이다. 또한 판정을 내리는 심판마저 자기가 평생 해온 경험과 거리가 먼 판정을 내려야만 한다. 그러나 어려운 판정을 하는 데 있어서 시각적인 보조가 곁들여지는 점을 마다할 심판은 없을 것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MLB는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도전적인 시도를 때로는 최초로, 때로는 최종적으로 진행했다. 예를 들어서 2023년에 도입한 3피트 레인의 확장은 마이너리그에서도 실험하지 않은 규칙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3피트 규칙에 대한 구단, 선수, 그리고 심판의 반응이 긍정적이자 MLB는 합동경기위원회(Joint Competition Committee)를 거쳐 곧바로 이를 OBR에 반영했다. (OBR 2024 5.09(a)(11))

하지만 애리조나에서 시도된 모든 것이  MLB에 무조건 들어오지는 않는다. 2019년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선 트랙맨(TrackMan) 시스템을 이용한 전자동 투구 판정을 실행했다. 그러나 MLB는 5년이 지난 지금도 ABS를 MLB에 도입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 롭 만프레드 커미셔너의 발언처럼 볼 판정을 모두 기계에 맡기기보다는 챌린지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자면 MLB가 이번에 제시한 체크스윙의 기준은 최종적인 것이라 보긴 어렵다. 45도 체크스윙에 대한 관계자의 평가를 종합해 수정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를 채택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지금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하나 있다. 솔트 리버 필즈에 설치된 호크아이 시스템이 좌타자가 휘두른 배트든 우타자가 휘두른 그것이든 정확하게 추적해 기준선과 함께 배트의 움직임을 영상으로 구현한다는 것이다.

 

참고 = Daum, Baseball America, MLB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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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파울라인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겠지만 그러면 모든 타자가 타석 앞뒤 위치가 동일하다는 가정에 실행해야 선수들이 손해가 없는데 진짜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준도 명확하지 않아서 비디오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생길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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