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 140년 동안 풀지 못한 3피트 문제에 새롭게 접근한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

KBO 리그에서 홈과 1루 사이에서 주자가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3피트’ 논쟁은 2023년에도 이어졌다. 7월 20일 KBO는 하반기부터 “규정을 세분화해 명확히 적용하겠다”라고 발표했지만, 하반기 일정 첫날부터 이 문제로 사달이 벌어지는 등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불만이 발생하는 규정이 아니다. 3피트 라인이 신설된 1882년 이후 계속 수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규정이다. 야구의 발원지인 미국에서도 주자의 주루권과 수비의 수비권이 충돌하는 이 상황, 특히 우타자가 구조적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시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해 10월 2일부터 11월 11일까지 열린 메이저리그의 교육리그인 애리조나 가을리그(Arizona Fall League)에서 케케묵은 ‘3피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새로운 규칙을 도입했다. 

“The 45-foot runner’s lane, which begins halfway between home plate and first base, will be maintained. But instead of forcing the runner to be in foul territory (right of the foul line), the runner will now be deemed in compliance with the rule as long as both feet remain on the dirt path between home and first.”

홈 플레이트와 1루 베이스 사이 정중앙 부분부터 시작되는 45피트 길이의 주자 레인은 유지된다. 그러나 주자가 반드시 파울 영역에서 달리지 않아도 되며, 주자의 두 발이 홈과 1루 사이의 흙 영역에 남아있다면, 주자는 규칙에 맞게 주루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림으로 자세하게 살펴보자.

< 그림 1 >

<그림 1>에서 현행 공식야구규칙 및 OBR 기준 주자가 수비 방해 선고를 받지 않을 수 있는 주루 방식은 파란색으로 표시된 3번이 유일하다. 나머지 1번, 2번, 4번 주루 방식은 현행 규칙에 따르면 옳지 않은 주루 방식으로, 만약 심판이 이렇게 달린 주자가 수비의 송구를 방해했다고 판단하면 수비 방해를 선고할 수 있다. (공식야구규칙 5.09(a)(8); OBR 5.09(a)(11))

하지만 올해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도입한 신규정에 따르면 위 <그림 1>에서 2번 주루 방식은 정당한 주루가 된다. 여기서 ‘흙 영역’은 파울선과 내야 잔디 사이의 흙 지역을 뜻한다. 따라서 2번처럼 달리다가 야수의 송구를 방해했더라도 수비 방해가 되지 않는다. 두 발이 파울선과 3피트 라인으로 둘러싸인 영역인 주자 레인(Runner’s Lane)을 벗어났지만, 흙 영역 위를 달렸기 때문이다. 

 

실제 주자들은 어떻게 달렸나

그러면 선수들은 새롭게 바뀐 규정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확인해 보자. 필자는 ‘3피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인 투수 땅볼, 포수 땅볼, 3루 땅볼에서 우타자가 어떻게 달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2023 애리조나 가을리그 전체 경기를 살펴봤다. 먼저 우타자가 희생번트를 댄 것이 투수 땅볼이 된 경우 두 가지를 소개한다. 

위 상황은 2023년 10월 12일 서프라이즈 사과로스(Surprise Saguaros)와 솔트 리버 래프터스(Salt River Rafters)의 경기 1회 말 2번 타자 제이스 보웬의 희생번트 장면이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타자는 45피트 지점을 지난 후에도 계속 파울라인 왼쪽의 페어지역에서 달리고 있다. 기존 규정에서는 정당하지 않은 주루지만 올해 애리조나 가을리그의 규정에서는 정당한 주루다. 

위 상황은 2023년 10월 13일 글렌데일 데저트 독스(Glendale Desert Dogs)와 스코츠데일 스콜피온스(Scottsdale Scorpions)의 경기 10회 말 6번 타자 제레미 리바스의 희생번트 장면이다. 여기에서도 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파울선 안쪽 흙 부분에서 달리고 있으며, 3피트 레인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마지막 사례는 기존 규칙대로라면 아웃이 선언될 수 있었으나 바뀐 규칙 덕분에 아웃이 선언되지 않은 경우다. 2023년 11월 7일 래프터스와 메사 솔라 삭스(Mesa Solar Sox)와의 경기 4회 말 9번 타자 코너 파볼로니의 3루 땅볼 장면이다. 여기에서도 타자주자는 파울선 우측이 아니라 좌측의 흙 영역에서 달리고 있다. 그로 인해 포구하려는 1루수와 타자주자가 충돌하며 정상적인 포구가 이뤄지지 못했지만, 1루심은 수비 방해를 선언하지 않았다. 신규정에 따라 타자주자는 정당한 주루를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해석과 우려

만약 2023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도입한 규정이 정식으로 야구 규칙에 도입된다면 가장 환영할 선수는 주력이 빠른 우타자일 것이다. 내야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전력으로 달릴 때의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타자에게 3피트 레인이 강제되지 않는다면 기존과 비교해 최소 한 걸음 이상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 그림 참고) 

좌타자는 새로운 규정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을 것이다. 좌타자는 1루 파울라인 오른쪽에서 타격하므로 그대로 파울라인 오른쪽으로 달려야 1루까지 최단 거리가 된다. 원래부터 굳이 파울라인 왼쪽으로 갈 이유가 없었으므로 규정이 바뀌어도 큰 영향이 없다. 도리어 좌타자가 파울선 안쪽으로 달리면 새로운 규정에도 불구하고 수비를 고의로 방해할 목적으로 주루했다는 판정을 받을 수 있다. 

< 그림 2 = 좌 : 현행 규정에 따른 주루 방식, 우 : 2023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허용된 주루 방식 >

수비수 입장에서는 새로운 규정이 반갑지 않다. 1루로 송구하는 야수는 주자가 자신과 1루수 사이 공간에 들어올 가능성이 커진 만큼 송구가 좀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한편 새로운 규정은 필연적으로 1루수와 우타 타자주자가 베이스 위에서 충돌할 확률을 높인다. 홈과 1루 사이에서 주자가 3피트 폭 영역 내에서만 달릴 수 있도록 주루방식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1882년으로, 무려 1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당시 내셔널리그는 1루 베이스에서 야수와 주자의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3피트 라인 규정을 신설했다. 하지만 주자가 페어지역에서도 달릴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2013년 8월 13일 대구에서 조동찬이 부상을 입었을 때처럼 주자와 야수가 부딪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도가 성문화된다면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시도가 공식적으로 야구 규칙에 편입된다면 우타자의 주루 방식은 위 <그림 2>와 같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는 단순히 주루 방식이 바뀌는 것 이상으로 야구의 양상을 제법 바꿀 파급력을 갖고 있다. 왜 그럴까?

좌측은 필라델피아 시티즌스 뱅크 파크, 우측은 휴스턴 미닛 메이드 파크의 모습이다. 파울선을 기준으로 우측 파울 지역에는 3피트 이상 폭의 흙이 펼쳐져 있다. 반대로 파울선 좌측은 흙 영역이 좁다. 사진을 참고하면 두 구장에서 내야 잔디의 경계는 파울라인에서 대략 베이스 폭 정도 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탬파베이 트로피카나 필드나 부산 사직구장의 모습을 보면 내야 잔디의 경계와 파울라인 사이의 거리가 훨씬 멀다. 이 두 구장은 파울선 좌우 흙 영역의 폭이 동일한 것처럼 보이며, 이는 곧 내야 잔디의 경계가 파울선에서 3피트 떨어져 있음을 뜻한다. 

KBO 다른 구장들의 경우 2023년 기준 대전, 수원, 인천 구장은 파울선 좌측 흙 영역의 폭이 3피트보다 좁았고 나머지 구장은 좌우 폭이 3피트로 같았다. 그러면 왜 어떤 구장은 흙 영역이 좁고 어떤 구장은 넓은 것일까? 무엇이 정답인지 야구 규칙 책을 열어보자. 

좌측은 OBR의 Appendix 1, 우측은 공식야구규칙의 그림 1. 경기장 구획선이다.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정식 구장에서는 파울선을 기준으로 좌우 3피트 폭의 영역은 흙이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전에 KBO, MLB 모두 흙 영역이 3피트보다 좁은 구장에서도 경기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경기장 구획 규정 중 이 부분은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3피트 시도는 ‘두 발이 에 있으면 정당한 주루다’라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현재는 구장마다 흙 영역의 폭이 다르기에 필연적으로 경기장 구획 규정을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경기장 구획을 재정의해야 한다. 아래의 두 가지 시나리오를 고려할 수 있다. 

 

1) 야구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

첫 번째 시나리오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규칙대로 내야 잔디의 경계를 파울선 기준 3피트 떨어진 지점으로 통일하도록 각 구단에 지시하는 것이다. 큰 변화가 필요하지 않으며, 기존에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구장의 관리원들이 잔디를 더 깎고 주로를 확장하면 된다. 

2) 야구 규칙의 개정

그러나 수비하는 입장에서 주자가 파울선에서 좌측으로 3피트 떨어진 지점에서 1루로 향해 달려오는 것은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주자가 송구 경로를 크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주자와 야수의 충돌 위험도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대로 규정 변경을 통해 내야 잔디를 공식적으로 넓힐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다. 3피트로 설정된 파울선 좌측 흙 영역의 폭을 현행 베이스 크기인 18인치(1.5피트), 혹은 과거 베이스 크기인 15인치(1.25피트)로 좁히는 방식이다.

 

어느 방향이든 불필요한 충돌을 방지해야

필자는 다른 글에서 야구가 소프트볼처럼 보조베이스를 도입해 야수와 주자의 불필요한 충돌을 구조적으로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3피트 규정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우타자의 주루 퍼포먼스가 개선되겠지만, 늘어날 선수 부상이 더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 3피트 라인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면 부상 위험을 그나마 덜 높인다는 측면에서 경기장 구획을 바꾸는 2번 시나리오를 더 선호한다. 우타자의 주루 공간을 넓히면서도 수비진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6명의 MLB 구단 대표, 4명의 선수 대표, 1명의 심판 대표로 구성된 합동경기위원회(Joint Competition Committee)에 속한 MLB 심판 빌 밀러는 2023 애리조나 가을리그에서 도입된 ‘3피트’ 규칙을 정식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즉 홈에서 1루 사이의 흙을 밟으면 정당한 주루를 한 것으로 규칙을 변경하자는 것이다. 위원회는 45일간의 검토 기간을 거친 후 해당 안을 MLB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 전에 투표에 부칠 것이다. 위원 반수 이상이 찬성한다면 MLB 타자주자는 2024년 시즌부터 홈에서 1루에 도달하는 데 더 넓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2023년 12월 21일, MLB는 ‘3피트’ 규칙의 변경을 공식 발표했다. MLB가 채택한 방법은 상술한 두 가지 시나리오 중 두 번째로, 파울선 좌측 흙 영역의 폭이 18인치(1.5피트)와 24인치(2피트) 사이로 새롭게 규정될 예정이다. 다만 2024년의 경우 일부 구장(특히 트로피카나 필드를 비롯한 인조잔디 구장)을 대상으로는 유예기간이 적용될 예정이다. 

새로운 3피트 규칙이 도입된 덕분에 2024년 메이저리그는는 지금까지와 제법 다른 내용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주자의 주루 경로, 야수의 송구 경로, 잔디와 흙 경계선에 걸친 타구의 양상 등이 지금과는 이질적일 것이다. 그러나 규칙을 준비하는 인사들이 항상 선수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이 규칙을 다듬어가기를 바란다. 

 

참고 = MLB, SBS, Big Baseball, KBO 비디오판독센터, Sports Illustrated, CBS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야구공작소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이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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