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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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은 이제 더 이상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있지 않아요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공식야구규칙 1.02~1.04에 따르면 야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공격팀의 목적은 타자를 주자로 만들고 주자를 진루시켜 모든 베이스를 닿게 하는 것이고, 수비팀의 목적은 상대방의 타자가 주자가 되는 것과 주자의 진루를 막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목적의 게임에 공, 배트, 그리고 글러브가 더해지고, 선, 면, 그리고 공간이 더해지니 세상 이렇게 복합한 스포츠가 만들어졌다.
야구를 즐기는 팬들이 야구 규칙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당연히 방해와 관련된 규칙일 것이다. 타자의 방해, 주자의 방해, 야수의 방해, 심판의 방해, 관중의 방해 등 공식야구규칙에 서술된 방해에 관한 부분만 한가득하며, 더 나아가 어떤 것이 공격 측의 방해로 인정되는지, 어떤 것이 수비 측의 방해로 인정되는지에 대해서는 심판의 판정이라는 요소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심궁해 시리즈는 이번 화를 비롯해 다수의 에피소드를 통해 야구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방해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이른바 방해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는 홈과 1루 사이에서 종종 발생하는 방해인 3피트 라인 방해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 데이브 마르티네스 워싱턴 내셔널즈 감독: 나는 억울합니다 >
3피트 라인 방해란?
3피트 라인이란 본루(홈 플레이트)와 1루 사이를 이은 파울-페어선 우측에 그려진 선으로, 본루와 1루 사이를 이은 선과 평행한 선이다. 3피트 라인은 45피트의 직선으로, 본루와 1루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우측으로 3피트 떨어진 곳에서 출발해 1루 베이스와 평행한 지점까지 이어진다.
모든 타자주자는 원칙적으로는 홈 플레이트와 1루 사이의 후반부를 달리는 동안 파울-페어선과 3피트 라인 사이 공간에서 달려야 한다. 만약 타자주자가 본루에서 1루 사이의 후반부를 달리는 동안 3피트 라인의 바깥쪽 또는 파울-페어선 안쪽으로 달려 1루로 송구하는 야수를 방해했다고 심판원이 판단하는 경우 타자주자는 수비방해로 간주한다. (5.09(a)(9)) 물론 타자주자가 타구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려 이 지역에서 수비가 벌어지지 않는다면 당연히 방해 또한 성립하지 않는다. 한쪽 발이라도 그 영역 바깥쪽에 위치하게 된다면 이는 잘못된 주루 방식이다.
3피트 라인의 역사
사실 3피트 라인 방해라는 반칙 행위는 19세기 말 발명된 근대 야구가 오늘날의 현대 야구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잦은 빈도로 발생하는 역설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야구 규칙의 변천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처음에 야구가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3피트 라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3피트 라인이 도입된 것은 최초로 야구 규칙이 명문화된 니커보커 규칙(Knickerbocker Rules)이 만들어진 지 약 40년 후인 1882년이다.
3피트 라인이 만들어진 이유는 선수의 부상을 줄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왜냐하면 당시 야구장의 구조 때문에 타자와 1루수의 충돌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 1882년 내셔널리그 공식야구규칙 중 야구장 도면 >
태초의 야구장에서는 지금과 달리 파울-페어선이 베이스 중앙을 가로지르는 형태였다. 따라서 1루를 지키는 야수는 페어 지역에 있는 베이스를 사용하고, 타자주자는 파울 지역에 있는 베이스를 사용하도록 규제하기 위해 1루와 본루 사이의 후반부에 그림과 같이 3피트 라인이 그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1887년 지금의 야구장처럼 베이스가 온전히 페어 지역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3피트 라인 방해라는 문제가 복잡해진다. 규칙위원회는 타구가 베이스에 맞으면 무조건 페어로 간주할 수 있도록 베이스를 페어 지역으로 넣어버렸지만, 그로 인해 타자주자가 온전히 주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페어 지역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어졌다. 즉, 지금과 같은 3피트 라인 방해가 문제가 된 것은 무려 100년이 넘은 역사를 자랑한다.
그로 인해 Official Baseball Rules(메이저리그 공식 규칙, OBR)의 3피트 라인 규정에는 타자를 위한 한 가지 예외 사항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내용은 한국의 공식야구규칙에는 번역이 되어있지 않다.) OBR 5.09(a)(11)의 Comment에 따르면 타자주자는 1루를 밟기 위한 목적으로 1루 직전에서 발을 닿거나 뻗거나 슬라이딩을 통해 3피트 라인을 벗어날 수 있다고 서술되어 있다.
3피트 라인 방해의 성립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 타자주자에 의한 3피트 라인 방해가 성립될까?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기준점이 있으며, 이 모두를 통과해야 3피트 라인 방해가 성립된다.
첫 번째는 주자가 3피트 라인 바깥쪽으로 달렸는지 아닌지이다. 주자가 파울-페어선과 3피트 라인이 가리키는 영역 바깥쪽으로 달려야 3피트 라인 방해가 성립할 수 있다. 안쪽 영역에서 주자가 송구에 맞는 등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3피트 라인 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3피트 라인 밖으로 달린 주자가 야수의 1루 송구를 방해했는지 여부이다. 전제는 당연히 1루로 송구가 정상적으로 가고 있어야만 한다. 아무리 타자가 3피트 라인을 지키지 않고 주루했다 하더라도 1루에 송구가 이뤄지지 않았거나, 혹은 1루에 송구받을 사람이 없어 야수가 송구할 수 없었다면 3피트 라인 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만약 악송구가 발생해 공이 주자에 상관없이 1루를 지키는 야수 멀리 날아가 버린다면 3피트 라인 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반대로 주자가 3피트 라인을 지키지 않은 채 주루했는데도 불구하고 1루를 지키는 야수가 정상적으로 수비를 했거나, 1루를 지키는 야수가 포구 후 공을 떨어트리는 경우에는 3피트 라인 방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2023년 4월 2일 클리블랜드와 시애틀과의 경기 장면이다. 조시 내일러가 투수 땅볼을 친 후 1-2-3병살이 유력해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졌지만, 1루수 타이 프랑스가 놓쳐버렸다. 이때 내일러가 파울-페어선 안쪽으로 달렸기에 3피트 라인 방해처럼 보였지만, 프랑스가 송구를 충분히 포구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했기에 주심 브레넌 밀러는 수비방해를 선언하지 않았다.
< 타자주자가 3피트 라인 안쪽으로 달렸지만 1루수가 충분히 공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사례의 경우 1루수가 공을 포구하지 못했지만 3피트 라인 방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준점이 충족된 상황에서 심판이 이를 수비방해로 판정해야 수비방해가 된다. 야구에서의 방해는 소수의 몇 가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심판의 판정에 따라 방해 여부가 결정된다. 3피트 라인 방해 또한 자동으로 방해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방해를 선언해야만 비로소 방해로 인정받게 된다.
2019년 KBO가 3피트 라인 방해 규칙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1루에 정상적인 송구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3피트 라인 방해를 선언한 적이 있었다. 야수가 수비를 하는데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심판이 선제적으로 수비방해를 선언한 엄연히 과도한 판정이었다. KBO는 1년 내내 이 문제로 논란에 시달리다 바로 다음 해 2019년식 3피트 라인 방해 시행세칙을 폐지했다.
나는 억울합니다
위 상황은 이 글의 첫 번째 사진의 주인공, 데이브 마르티네스 워싱턴 내셔널즈 감독이 스크린샷을 들고 오심이라고 호소하고 있는 2023년 6월 14일의 상황이다. 타자주자 제이크 마이어스는 파울-페어선 안쪽으로 달리다가 포수 송구에 머리를 맞았지만, 이 경기의 구심인 제레미 릭스는 3피트 라인 방해를 선언하지 않았다.
마이어스가 규칙을 준수해 주루했다면 수비가 이뤄졌을 수 있었기에 당연히 수비방해가 선언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릭스 구심이 수비방해를 선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상황은 수비방해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대로 경기는 끝이 나버렸다. 마르티네스 감독은 심판에게 강력하게 어필하며 퇴장당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사실 마르티네스 감독은 이번뿐만이 아니라 2019년 월드시리즈 6차전을 비롯해 2021년 두 차례 3피트 라인 방해 건으로 퇴장을 당한 적이 있다. 물론 그때는 이번과는 다르게 자신이 지휘한 내셔널즈 선수들이 3피트 라인 밖으로 달려서 수비방해를 선언 받은 것을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다. 어쩌면 마르티네스 감독이 스크린샷을 들고 호소한 이유는 ‘나는 이걸로 손해만 봐왔는데, 왜 내가 당하니까 안 불러주냐?’는 억울함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참고 = ABC, 19cbaseball.com, Close Call Sports, Naver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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