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궁.해] 구심은 이제 더 이상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있지 않아요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2023년 5월 27일, 광주에서 LG와 KIA의 경기가 열렸다. 인기가 많은 두 팀의 경기인 만큼 많은 팬이 이 경기를 시청했다. 그런데 이날따라 구심이 여러 차례 의아한 판정을 내리며 의도치 않게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자연히 구심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그중 상당한 주목을 받은 의견이 구심이 홈플레이트 뒤에 똑바로 위치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위 사진은 좌타자가 타석에 있는 경우다. 나광남 구심은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있지 않았다. 오른발이 좌타석에 걸쳐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좌타석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우타자인 경우는 어땠을까?

그렇다. 우타자가 있을 때는 반대로 우타석 쪽으로 치우쳐 구심의 왼발이 우타석에 걸쳐 있다. 좌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와 우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 구심의 위치가 명확하게 달랐다.

이날의 석연치 않은 판정의 원인으로 구심의 치우친 위치 선정을 꼽는 팬이 많았다.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서 투구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스트라이크/볼 판정이 잘못된다는 것이었다. 스트라이크존의 좌우 경계는 홈플레이트의 좌우 경계이니 홈플레이트 바로 뒤 정중앙에 심판이 위치해야 몸쪽과 바깥쪽 공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구심의 위치는 틀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구심은 지금부터 설명할 슬롯 포지션(Slot position)에 있었기 때문이다. 

 

구심은 포수와 타자 사이에 있어야 한다. 

2023년 5월 29일 MLB 양키스와 매리너스의 경기 장면을 보자. 이날의 구심인 벤 메이는 좌타자가 타석에 섰을 때는 좌타석 쪽으로, 우타자가 타석에 섰을 때는 우타석 쪽으로 치우쳐 위치했다. 


미국 마이너리그 AA에서 활동 중인 김재영 심판도 좌타자와 우타자 때 각각 좌타석, 우타석 쪽으로 치우쳐 위치했다.

구심이 이처럼 타자와 포수 사이 공간(‘슬롯’)에 위치하는 것을 ‘슬롯 포지션’이라고 부른다. 미국 심판계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하다. KBO의 다른 심판이나 JTBC의 인기 야구 예능 최강야구에 나오는 심판도 슬롯 포지션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운데 서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왜 미국에서는 구심이 포수와 타자의 가운데인 ‘슬롯’에 위치하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슬롯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다년간의 경험과 분석에 따르면 포수 뒤로 날아가는 파울 타구의 상당수는 가운데 혹은 타자 바깥쪽으로 튕겨 나간다. 슬롯에 위치하면 정중앙에 위치하는 경우에 비해 포수 뒤로 날아가는 파울 타구에 맞을 확률이 낮아진다. 

슬롯에 위치하지 않아 부상을 당한 대한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5월 12일 롯데와 KT 경기에서 나왔다. 4회 말 류현인이 친 파울 타구에 유덕형 구심이 맞아 쓰러졌다. 맞은 위치가 구심의 어깨와 목 사이여서 곧바로 의료진이 투입되었다. 유덕형 구심은 슬롯 포지션이 아니라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있었다. 슬롯에 있었다면 파울 타구는 구심의 왼팔 위로 날아갔거나, 맞았더라도 보호장비가 제대로 갖춰진 얼굴에 맞았을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슬롯에 있으면 포수로부터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투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심이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서 있고 포수가 구심 바로 앞에 위치한다면 구심의 시야는 자연스럽게 포수의 머리 혹은 등에 가릴 수밖에 없다. 슬롯에서는 타자와 포수 사이의 빈 공간에서 홈플레이트를 관찰하므로 투구가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지 아닌지를 더 넓고 편하게 바라볼 수 있다.  


슬롯 포지션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우선 슬롯에 들어간다고 해서 파울 타구에 아예 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있을 때보다 적게 맞을 뿐이다. 

또 슬롯 포지션에서는 타자 바깥쪽 공이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판단하기 위해 상당한 연습이 필요하다. 투구가 몸쪽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경우 공과 구심의 눈이 정면에서 마주하므로 상대적으로 판정을 내리기 쉽다. 하지만 투구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는 경우 구심의 시선은 공과 대각선으로 만나므로 충분한 연습 없이는 판정이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심은 항상 같은 슬롯 포지션에 위치해야 하며 동시에 본인이 위치한 슬롯에서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의 경계가 어디에 있는지를 인지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구심이 홈플레이트 뒤가 아닌 포수와 타자 사이에 위치하는 것은 잘못된 위치 선정이 아니다. 다년간의 연구 끝에 홈플레이트 바로 뒤가 아니라 타자와 포수 사이인 슬롯에 위치해야 더 안전하게, 더 정확하게 판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심판은 이제 더 이상 홈플레이트 바로 뒤에 있지 않게 되었다. 

  

참고 = MBC SPORTS, KBS, MLB TV, 유튜브 채널 더베이스볼팩토리, JTBC, KBO, NFHS, Little League Baseball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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