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
“심판이 궁금해, 심궁해”는 현역 야구 심판이 심판에 대한 억울함을 스스로 해소하기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서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야구 심판과 규칙에 대해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평소에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아래 그림은 2023년 5월 23일(현지 시간) 토론토와 탬파베이 경기의 9회 초 장면이다. 마운드에는 투수가 아닌 야수 루크 레일리가 등판한 상황이다. 레일리는 10-1로 끌려가던 8회 초부터 등판했었다. 즉, 탬파베이는 이미 이 경기를 포기한 상태에서 9번째 수비 이닝을 마무리하려고 했다. 당시 레일리가 키어마이어를 상대로 던진 두 번째 공은 화면상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난 곳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주심은 볼이 아니라 스트라이크를 선언했다.
이날의 주심 브레넌 밀러는 경기가 늘어졌기 때문에 볼을 스트라이크로 불렀을까? 정말로 집에 빨리 가고 싶어서 저런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불렀을까? 그렇지 않다. 9회 초 토론토가 무려 9득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기의 경기 시간은 고작 2시간 31분에 불과했다. 메이저리그에서 2023년 시즌에 치러진 447경기의 평균 경기 시간은 2시간 38분인 점을 고려하면, 이 경기는 평균 경기 시간보다 빨리 끝난 경기였다. 그러면 왜 저 49.6mph의 어깨높이로 온 공은 왜 스트라이크가 되었을까?
스트라이크 존은 고정된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은 경기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특히 프로 심판이라면 더욱 규칙에 맞는 스트라이크 존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관된 스트라이크 존을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은 심판에게 당연히 중요하지만, 스트라이크 존은 경기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공식야구규칙에 따르면 스트라이크 존은 유니폼의 어깨 윗부분과 바지 윗부분 중간의 수평선을 상한선으로 하고, 무릎 아랫부분을 하한선으로 하는 홈 베이스 상공을 말한다. 그러나 사실 야구 규칙 어디에서도 구심이 스트라이크 존을 자의적으로 늘릴 수 있다는 말은 없다. 그러면 스트라이크 존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필자의 말은 잘못된 것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는 야구 규칙의 속을 확인해야 한다.
야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경기에서 실제로 적용되는 내용이 아닌 공식야구규칙의 후반부는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8장 심판원은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없을 장이다. 이 장에는 심판의 의무와 활동, 그리고 권한이 열거되어 있다. 야구인들이 흔히 ‘스트라이크와 볼은 심판의 고유 권한’이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한 근거가 8.02(a)에 있다. 8.02(a)에 따르면 투구가 스트라이크이냐 볼이냐에 대한 심판원의 판단에 따른 재정은 최종의 것이며, 선수, 감독 또는 코치가 그 재정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8.02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정말 읽어본 사람이 몇 되지 않을 ‘심판원에 대한 일반지시’라는 단락이 나온다. 야구 심판이 경기 내외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지침을 서술한 것으로, 야구라는 종목에서 심판이라는 개념이 최초로 공식화되고 명문화된 1845년 니커보커 규칙(Knickerbocker Rules) 때부터 쌓여온 심판원에 대한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글이다.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사항 여덟 번째 문단(메이저리그 공식야구규칙에서는 여섯 번째 문단)은 ‘심판원은 경기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로 시작한다. 경기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이 짧은 한 문장에 담긴 뜻은 무엇일까? 경기에 생기는 무엇이고, 심판원은 이걸 어떻게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일까? 해당 문장의 영어 원문은 ‘Keep the game moving’이다. 즉, 야구의 흐름이 멈추려 한다면 심판이 이를 살려서 게임을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탬파베이:토론토 경기에서 밀러 구심이 아주 높은 공에 스트라이크를 선언한 이유는 그가 빨리 경기를 끝내기 위해서 아무 공이나 스트라이크로 부른 것이 아니다. 경기의 흐름을 끊지 않기 위해 그가 선택한 방식이다. 이미 탬파베이는 야수를 마운드에 올리며 이 경기를 상대에게 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런 상황에서 토론토는 추가로 10득점을 내는 것으로 응답했지만, 구심은 그 경기에서 토론토가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도록 스트라이크 존을 확대했다. 1구는 바깥쪽 높은 쪽 빠졌기에 치기 어렵지만, 2구는 가운데 높은 쪽으로 들어온 공이기에 ‘쳐볼 만한’ 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스트라이크가 된 것이다.
야수가 투수보다 제구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하기에, 일반적인 스트라이크 존을 그대로 가져가면 스트라이크보다 볼이 훨씬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만약 구심이 야수가 등판한 상황에서도 규정에 따른 스트라이크 존을 고집한다면 경기가 끝나기 위해서는 타자가 일부러 볼에 스윙해서 죽어주든지, 아니면 마운드에 있는 선수가 스트라이크를 던져주든 지를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구심이 스트라이크 존을 확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투수 입장에서는 조금 더 편하게 나머지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으며, 타자 입장에서도 평소라면 어이없는 위치에 날아오는 공을 쳐야 할 수밖에 없는 정당한 근거가 생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심판원 그 누구도 스트라이크 존을 규정보다 일부러 축소하지 않는다. 스트라이크 존이 작아지면 당연히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기보다는 기다리게 되며, 이는 경기의 박진감을 떨어트린다. 지나치게 많은 사사구는 경기의 흥미를 떨어트리며, 결국 경기를 하거나 보러 온 사람, 그리고 심판을 포함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스트라이크 존이 바뀌려면?
심판원이 경기가 지루해지지 않고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스트라이크 존을 확대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경기 시작부터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운영하는 방식이다. 공식야구규칙은 어디까지나 프로 선수를 위한 규칙이다. 따라서 아마추어에게 공식야구규칙에 명시된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한다면, 속된 말로 바로 앞 문단에서 설명한 ‘사고’가 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구심은, 특히 아마추어 경기라면 두 팀의 실력을 경기 전에 파악해 그날의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한다.
두 번째 방식은 경기의 흐름에 따라서 스트라이크 존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프로 경기나 아마추어 경기를 가리지 않고 앞서 언급한 경기처럼 한 쪽이 오늘 경기를 내주겠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혔을 때나 혹은 양 팀이 투수를 모두 소진했을 때 등의 상황이 발생한다면 심판은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야 한다. 어쨌든 경기는 시간제한이 설정되어 있지 않는 이상에야 9회까지 모두 마쳐야 경기가 끝난다. 한 쪽 팀이 경기를 제대로 끝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심판이 경기가 끝날 수 있도록 조절해야 한다. 팽팽한 상황 혹은 한 쪽이 경기를 끝까지 할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면, 심판은 자의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서는 안 된다.
세 번째 방식은 규칙에 적힌 스트라이크 존을 통째로 바꾸는 방식이다. 야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스트라이크 존은 꾸준히 변해왔다. 현대식 스트라이크 존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1887년이다. 당시 규칙에 따르면 타자의 무릎 위에서 어깨 사이에 오는 공이 홈플레이트를 통과하면 스트라이크가 되었다. 100년의 세월 동안 스트라이크 존은 다양하게 변화했으며 공식야구규칙에 서술된 현재의 스트라이크 존은 1996년에 확립되었다.
결론
다시 두 번째 방식으로 돌아가 보자. 혹자는 야구계의 명언인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제시하면서,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역전 가능성이 산술적으로 0이 아닌 상황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넓혀 경기를 진행하는 방식이 심판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심판뿐만이 아니라 선수와 팬 모두가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원하는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런 상황에서 심판이 초지일관한 존을 운영한다면 그저 눈치가 없는 벽창호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면 심판이 그런 순간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반박이 들어올 것이다. 거기에는 정답이 없다. 경기의 흐름과 맥락을 잘 읽고 따라가며,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심판이 판단해야 한다.
글을 정리하자면, 스트라이크 존은 경기 중에도 변할 수 있다. 즉, 퇴근존은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퇴근존이 있고, 그렇지 않은 퇴근존이 있다. 전자의 경우 선수와 팬 대부분 심판의 결정을 수긍하며 내일을 기약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분노하는 것은 열이면 열 후자일 것이다. 선수,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야구를 즐기는 팬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판정은 경기의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숨통을 끊어버린다. 모든 심판이 이를 항상 유념하면서 일신우일신의 자세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참고 = MLB, Mlbrun, Baseball-Almanac, Steve the Ump, Boston Globe
야구공작소 이금강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소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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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 the game moving’
순간 머리가 띵해지는 부분이였습니다.
흥미로우면서 양질의 글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