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차승윤] 신인 드래프트에서 대졸 선수가 지명될 때면 구단 관계자들로부터 이런 표현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당장 내년 시즌 1군 투입이 가능한 즉전감이다.”
“결정구가 프로 수준이다.”
고졸 선수들에게는 쉽게 붙지 않는 이 수식들은, 대졸 선수들을 상대로는 식상하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흔하게 사용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졸 선수들은 즉시 전력감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실제로 그럴 실력이 있든 없든 말이다.
프로야구가 30년이 넘도록 흥행을 이어오는 동안, 수많은 선수들이 신인 지명을 통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중 몇몇 선수들은 신인 시절부터 눈에 띄는 기량을 선보이며 즉전감 이상의 성공한 지명으로 자리 잡았다. 80년대의 김시진, 이순철, 선동열 혹은 2006년의 류현진과 같은 선수들이 그렇게 선수생활의 초입부터 전설적인 커리어를 써내려 간 주인공들이다. 이러한 야구사의 거인들 중에는 대졸 선수들도 적지 않았다. 사실, 염종석과 정민철이 고졸 신인으로 등장하여 고졸 출신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기 시작한 1992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신인 선수들은 대학을 거쳐 프로에 입문했었다. 당시의 대졸 신인들은 상당수가 리그에서 활약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기량을 선보이며 지명한 구단과 스카우트를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졸 선수의 지명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여전히 대졸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지명하는 구단들도 몇 있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어 전체 지명권의 과반 이상은 고졸 선수들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올해 열린 2017년 신인 2차 지명회의에서 지명을 받은 대학 선수는 겨우 23명에 불과했다. 1차 지명에서 두산에게 지명되었던 동국대 최동현을 합산한다면, 총 110명의 지명권 중 대졸 신인들을 향해 사용된 지명권은 단 24장에 불과했던 셈이다.
무엇이 대졸 선수들을 외면당하게 했나
구단이 대졸 신인들을 기피하게 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했을 것이다. 혹자는 대학에 진학한 선수들이 고교 때 지명 받지 못한, 상대적으로 “뒤쳐진” 자원이기 때문에 뽑지 않은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졸 신인들 역시 리그에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대졸 기피현상이 단순히 대졸 선수의 포텐셜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는 분석은 그리 적절치 않다. 실제로 대졸 출신 선수들의 올시즌 활약을 살펴보면 그들 역시 고졸 선수들 못지 않은 가능성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개중에는 1군 엔트리에 머무르는데 그치지 않고 주전급 성적을 기록하며 빠르게 자리를 잡은 케이스도 더러 관찰된다. 오히려 문제는 가능성이 아닌 완성도에 있다. 대학에서 보낸 4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슷한 연차의 고졸 신인들과 완성도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2016시즌 주요 대졸선수 성적>
이쯤에서 우리는 대졸 기피현상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을 어렵지 않게 떠올려볼 수 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나이가 곧 벼슬인데, 대학 선수들이 4년만큼의 시간 동안 그에 상응하는 기량 향상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해외파 복귀선수들이 지명 명단에 대거 등장하면서 즉시 전력감이라는 측면에서도 이전만큼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점점 발전하는 프로야구의 육성체계 역시 대학야구의 도태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어린 예비전력들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이 잘 이루지지 않았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어느 구단이건 2군 구장이 완비되어 있고 퓨처스리그를 통해 1군에서 통할 만한 전력까지 선수들을 육성하는 데 무리가 없다. 대부분의 대학야구 팀들이 감독과 투수코치가 코칭스태프의 전부인데 반해 프로구단은 2군도 투수, 타격, 수비 등을 전담하는 코치진을 갖추고 있으니, 대학야구가 계속해서 육성에서 뒤쳐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코치진의 질 또한 계속 프로로서 활약하다가 그 능력과 기여를 인정받고, 은퇴하자마자 코치로 취임하는 프로 구단의 코치들 쪽이 한 수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육성의 양과 질 모두가 프로 구단만 못한 상황이니, 대학 야구라는 시스템이 선수와 구단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은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수들과 구단의 대학야구를 향한 관심이 줄어들수록 대학야구를 향하는 지원자의 양과 질 역시 하락하게 된다. 경쟁력 낮은 자원과 시스템이 맞물리면서 상황은 선수를 만들어 내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선수마저 갉아먹는 양상으로 악화되고 있다. 대학야구의 투수 부문 사정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리그에는 경기를 제대로 소화할 수조차 없는 수준의 투수들이 대부분이고, 경기를 실제로 맡길 수 있는 투수는 팀마다 두세 명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이 두세 명이 돌아가며 선발과 마무리를 번갈아 소화해야만 ‘야구’가 가능하고 토너먼트 통과가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대학리그에서 120구 이상의 투구나 연투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투수들이 대부분 고교야구에서부터 무리한 투구를 거쳐온 선수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학 투수라는 자원에 대한 구단의 의심은 더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구단과 선수가 대학야구에 대해 나쁜 인상을 품기 시작하면 대학야구의 시스템과 자원 상황은 한층 더 척박해지게 된다. 상황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대학은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프로 종목으로의 진출을 염두에 두고 들어온 스포츠 특기생이라 하더라도 대학의 본분이 교육에 있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학 야구는, 대학은, 그리고 코칭스태프는 자신들의 본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일단 대학 스포츠가 예전과 같은 명성이나 홍보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대부분의 운동부들이 언론과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지 오래고, 심지어 재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일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때문에 운동부에 대한 대학의 지원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고, 그나마 있는 인력과 예산도 감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작년 12월 한국대학야구연맹 감독자회의에서 장채근 홍익대 감독을 비롯한 대학 감독들이 토로했던 대학야구의 현실처럼, 대학야구는 사회와 학교 모두에게 외면 받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학내 긴축의 제일 대상으로 지목 받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된 관심은 받지 못하고 있으며, 외부적으로는 KBO의 후원을 받는 고교야구에 비해 뚜렷하게 후원을 받지도 못하면서 프로로의 자원 수급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는 것이다(「대학야구 감독들 “우리에게도 관심이 필요합니다”」, 스포츠서울, 2015.12.24).
이렇게 대학부터가 운동부를 운영하는 데 소극적이 되면서 대학야구의 운영 전반에도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대학야구의 적지 않은 지도자들이 척박한 환경과 부족한 지원을 탓하면서 스스로 정체되어 있으며, 경기의 대부분이 토너먼트라는 것을 이유로 무계획적인 선수 기용과 구시대적인 육성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선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사실 지도자의 노력과 선택을 통해 벗어날 수 있음을 이미 많은 다른 지도자들이 증명한 바 있기에, 이같은 이들의 항변은 의구심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매년 터지는 입시비리 사건은 대학 스포츠가 애초부터 선수들의 교육과 지도에는 관심조차 없이 사적 이익만을 추구해온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만든다. 대학과 대학야구 지도자들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는지, 스스로 더 좋은 선수와 팀을 만들 기회를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KBO 최초로 11년 연속 20도루에 성공한 정근우. 청소년 대표팀 주장임에도 지명을 받지 못한 채 고려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SK에 2차 1라운드로 입단, KBO 역대 최고의 2루수로서 수많은 기록을 써나가며 현역 대졸 선수 중 가장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변화 없이는 반전도 없다
아마야구의 생존을 위해 구단들에게 대학 선수를 더 많이 뽑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한 경쟁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프로 스포츠 리그에 출신에 따른 일정 TO를 강제한다면 해당 종목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대학 선수들이 고교 선수들에 비해 지명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고, 결국 이들이 프로 시장에서 과거의 입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구단의 육성 시간을 1, 2년이나마 절약시켜줄 수 있는 즉시전력, 혹은 준 즉시전력으로서의 비교우위를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이는 대학과 지도자, 선수 모두의 변화가 동반된 다음에야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다.
“고교 때 아들에게 야구는 매 경기 매 순간이 가르침의 연속이었습니다. 가령 1루로 나가서는 1루 코치님이 투수를 보면서 타이밍을 뺏는 법, 투수를 읽는 법을 가르쳐주시면서 도루의 기본부터 알려주셨어요. 끊임없이 배울 수 있고, 야구가 늘 수 있으니 선수들은 야구가 재밌고 팀이 강해질 수밖에 없죠.”
어느 야구 명문고 출신 선수의 부모가 이야기한 내용이다. 대학야구 지도자들에게 이러한 교육을 해줄 역량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대학에게 고교 야구부만큼의 지원을 해줄 능력이 모자라지도 않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인생의 스승으로서 스스로가 지닌 힘의 무게를 돌아보고 선수가 아닌 스스로의 부족함을 극복해야 하며, 대학은 지금의 근시안적이고 무계획적인 운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양자가 당장의 1승에 매달리기보다 진정한 배움과 성장을 추구할 때, 대학야구는 다시금 즉시 전력감 선수들의 황금어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기록 출처: STATIZ
야구공작소 차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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