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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타율 0.045 체인지업은 왜 최악의 구종일까

By 정승환
2026년 3월 16일 5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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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

구종별 피안타율이나 피OPS 등의 스탯은 구종의 위력을 서술할 때 자주 인용된다. 얼핏 보면 굉장히 직관적이다. 덜 얻어맞는 구종이 더 좋은 구종이라는 소리는 당연한 것처럼 들린다.

여기 피안타율이 0.045인 체인지업을 던지는 투수가 있다. 하지만 그 체인지업은 그 투수가 던지는 최악의 구종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유리 페레즈의 사례

그 투수는 바로 2023년의 유리 페레즈다. 아래의 구종별 스탯만 보면 페레즈는 마치 좋지 않은 포심을 위력적인 변화구로 상쇄하는 변화구 위주의 투수처럼 느껴진다. 과거의 스펜서 스트라이더같이 위력적인 포심을 던지는 투수들도 포심의 피안타율이나 피OPS가 가장 높은 경우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페레즈는 그들과 달리 포심의 헛스윙률마저도 리그 평균보다 낮다.

< 2023년 유리 페레즈의 구종별 스탯 >

하지만 페레즈의 최고 구종은 포심이다. 반면 피안타율 0.045, 피OPS 0.170을 기록한 체인지업은 페레즈 개인을 넘어 리그 전체에서도 최악의 구종 중 하나였다. 말도 안 되는 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각 구종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스트라이크는 중요해

< 2023년 유리 페레즈의 Zone% >

페레즈는 포심을 제외한 나머지 어떤 구종도 구종별 평균보다 존 안에 자주 던지지 않았다. 2스트라이크에서 변화구를 존 밖에 던져 헛스윙 삼진을 유도하는 것은 좋다. 투수 입장에서 최고의 결과 중 하나다. 그러나 그 상황까지 가기 위해서는 우선 2스트라이크를 만들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페레즈는 정교한 커맨드를 보유한 투수가 아니다. 변화구로는 확실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없으니 포심으로 최대한 많은 스트라이크를 확보해야 했다. 소위 말하는 양궁 피칭이 강제된 것이다.

존 안으로 들어오는 공이 포심 밖에 없으니 타자들은 당연히 페레즈의 포심만을 노렸다. 아무리 좋은 포심이라도 얻어맞을 수밖에 없다. 평균 97마일 이상의 구속, 평균 이상의 익스텐션, 그리고 리그 최정상급의 수직 무브먼트를 가진 페레즈의 포심이 아닌 일반적인 스펙의 포심이었다면 결과가 훨씬 더 참혹했을 것이다.

물론 변화구를 존 밖에 자주 던진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스윙을 많이 유도하면 된다.

< 2023년 유리 페레즈의 Chase% >

슬라이더와 커브는 포심의 희생에 힘입어 존 바깥 스윙을 많이 유도하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체인지업은 그러지 못했다. 난사에 가까운 로케이션은 타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Location+는 페레즈의 체인지업에 73으로 리그 최악 수준의 평가를 내렸다.

< 2023년 유리 페레즈의 체인지업 히트맵 >

구종을 평가할 때 분모가 스윙인 헛스윙률보다 분모가 모든 투구인 스윙 스트라이크 비율이 더 유용한 이유다. 아무리 헛스윙률이 높아도 타자가 스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 2023년 유리 페레즈의 체인지업 스탯 >

스윙 빈도를 고려한 체인지업의 스윙 스트라이크 비율은 리그 평균을 간신히 넘겼다. 존 안에 거의 던지지 않았으니 콜 스트라이크 비율은 0.7%라는 충격적인 수치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둘을 합쳐 좋은 스트라이크 비율을 나타내는 CSW%는 리그 하위 4%에 그치고 말았다.

< 2023년 유리 페레즈의 구종별 Putaway% >

결과적으로 페레즈의 체인지업은 탱킹 구종인 포심보다도 삼진을 잡지 못했다.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한 것이다. 리그 상위권의 탈삼진 능력을 뽐낸 슬라이더나 커브와 대조된다.

 

칠 수 없는 공은 과연 좋은 공일까

피안타율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페레즈의 체인지업이 그렇게 압도적인 피안타율과 헛스윙률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애초에 페레즈가 타자들이 칠 수 있는 곳으로 체인지업을 던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다 선구안이 좋지 않은 타자들이 한 번씩 휘두를 순 있겠지만 그 빈도는 매우 드물다. 타자가 휘둘러 주지 않는다면 그저 볼 카운트가 하나 올라갈 뿐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베이스볼 서번트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공을 Waste 존으로 분류한다. 말 그대로 버리는 투구라는 뜻이다. 그 Waste 존에 들어간 체인지업은 피안타율 0.067, 헛스윙률 74.1%를 기록한다. 이 두 가지 스탯만 보고 그 체인지업이 좋은 체인지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뛰어난 타자라도 홈플레이트에 처박히는 공을 안타로 만들 수는 없다.

< Waste 존 체인지업 예시 >

볼넷을 포함하는 피OPS나 피wOBA는 한 가지 결함이 더 존재한다. 어떤 구종이 얼마나 많이 볼로 이어지 간에 3볼에서만 던지지 않는다면 그 구종은 볼넷을 주지 않은 구종이 되어 버린다.

페레즈의 체인지업이 그렇다. 2023년 페레즈의 체인지업은 100구 이상 던져진 모든 체인지업 중 두 번째로 낮은 스트라이크 비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페레즈는 체인지업을 3볼에서 단 한 번도 던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페레즈의 체인지업은 볼넷을 단 한 개도 내주지 않은 체인지업이 됐다. 피안타율보다 피출루율이 더 높은 이유는 몸에 맞는 공 두 개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리그 전체로 넓혀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볼넷 비율이 가장 높은 구종은 포심이고 가장 낮은 구종은 스플리터다. 일반적으로 포심은 제구가 쉬운 구종, 스플리터는 제구가 어려운 구종으로 여겨지는 것을 생각하면 역설적이다. 애초에 개별 구종을 평가하려고 만든 스탯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다.

 

구종 가치의 함정

이제 마지막으로 구종 가치가 남았다. 구종 가치는 다른 스탯과 다르게 타석의 결과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꼭 볼넷이 아니더라도 볼을 던지면 감점된다. 이렇게만 들으면 3분의 2가 볼인 페레즈의 체인지업 구종 가치는 당연히 좋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페레즈의 체인지업 100구당 구종 가치는 0.8으로 상위 30%에 들 정도로 좋았다. 그렇다면 구종 가치는 왜 페레즈의 체인지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할까?

구종 가치는 모든 볼을 똑같이 감점하지 않는다. 0-2 카운트에서의 볼을 2-0 카운트에서의 볼보다 적게 감점한다. 0-2 카운트와 1-2 카운트의 기대 득점 차이가 2-0 카운트와 3-0 카운트의 기대 득점 차이보다 적기 때문이다.

< 2025년 카운트별 볼 RV/100 감점 >

페레즈는 2023년 던진 체인지업 중 94.7%를 빨간색 박스로 표현한 카운트에 던졌다. 볼을 던져도 구종 가치 감점이 가장 적은 카운트 5개다. 평균적으로 100구당 약 3.3점 정도밖에 감점되지 않는다.

2스트라이크에서 삼진을 잡을 경우에는 100구당 구종 가치 22점을 준다. 페레즈가 체인지업 8개를 던져서 그중 7개가 볼이고 단 한 개만 삼진으로 이어져도 구종 가치 총합은 0에 수렴하는 것이다.

체인지업이 페레즈의 기대 득점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맞다. 그러나 페레즈가 체인지업을 잘 던져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웬만해서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밖에 없는 카운트에서만 체인지업을 던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 유리한 카운트를 형성하는 데에는 체인지업이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다. 체인지업이라는 구종 특성상 페레즈가 리그 최정상급 구위의 포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더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며

구종의 퍼포먼스를 단 한 가지 스탯으로 재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한 목적으로 개발된 구종 가치 또한 투수가 구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다른 구종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구종은 없다. 단순히 결과적인 스탯뿐만이 아니라 구속, 무브먼트 등도 마찬가지다. 특정 구종을 평가하려고 하더라도 시야를 그 구종 하나에만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그 구종을 던졌는지, 그 구종이 다른 구종과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그 구종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참조 = Baseball Savant, Pitcherlist

야구공작소 정승환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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