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의 사회적 역할㉒ 보이지 않는 관중이 말해주는 것 上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지난 시리즈는 한국 야구의 변화가 특정 인물의 성과에 의존해 왔다는 점을 살펴봤다. 변화는 인물과 함께 시작됐고, 인물이 떠나면 함께 사라졌다. 그 결과 다양성은 구조로 자리 잡지 못했다.

MLB와 NPB는 이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해왔다. 접근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관중 경험을 개인의 판단이나 현장의 재량에 맡기지 않았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두 리그는 이를 리그 차원의 책임으로 관리해 왔다. 이러한 방식은 관람 환경을 일정한 기준 아래 유지하게 했고, 변화가 축적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했다.

이번 시리즈는 이 구조적 한계를 관중석에서 살펴본다. 장애인 관람 환경은 한국 야구가 변화를 어떤 방식으로 다뤄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의 장애인 접근성은 제도나 설계에 기반하지 않는다. 현장의 배려와 임시적 조치에 의존하고 있다. 관람 경험 역시 매번 새로 구성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같은 리그 안에서 다른 기준으로 운영되는 관중 경험

2025년 한국 프로야구는 관중 1,1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관중 접근성의 기준은 리그 안에서 전혀 통일돼 있지 않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프로야구 10개 구장의 장애인석 설치 비율은 최대 3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고척스카이돔은 전체 좌석 16,000석 가운데 280석(전체 대비 1.75%)을 장애인석으로 확보했다. 반면 인천 SSG랜더스필드는 23,000석 중 14석(0.06%)에 그쳤다.

< 표 = 프로야구 구장 장애인석 설치 및 운영 현황 >

이 격차는 구장 규모나 노후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현행 법체계에서 야구장은 ‘공연·관람장’이 아닌 ‘운동시설’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장애인석 설치는 의무가 아니라 권장 사항에 머문다. 결과적으로 관중 접근성은 리그의 기준이 아니라 지자체와 구단의 판단에 맡겨진다. 같은 리그 같은 시즌을 치르면서도 접근성의 기준은 제각각 적용된다.

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어느 구장이 더 잘했는가가 아니다. 관중 경험이 리그 차원의 책임으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접근성은 흥행과 수익 논리 앞에서 쉽게 뒤로 밀린다. 장애인석 설치 비율의 격차는 그 결과를 수치로 보여준다.

 

가장 먼저 조정되는 좌석이 말해주는 것

2025년 개장한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는 좌석 운영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했다. 당초 장애인 우대 좌석으로 활용될 예정이었던 일부 좌석은 실제로 착석이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됐다. 이동형 일반석이 설치되면서 접근 동선도 막혔다.

이후 해당 좌석들은 특별석 등 다른 용도의 좌석으로 전환돼 판매됐다. 이 과정에서 구단이 수익을 확대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기로 했던 좌석을 임의로 변경한 것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관련 단체들은 장애인 좌석 전환을 통해 부당한 수익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 장애인 좌석 표기가 가려진 특별석 >

문제 제기는 지자체의 시정 통보로 이어졌다. 보건복지부가 전수조사를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나왔다. 결국 구단은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관련 단체와의 협의, 시설 개선 계획도 함께 내놓았다.

사태는 단기간에 수습됐지만, 문제의 원인은 그대로 남았다. 이 사건을 단순한 운영 실수로 보기는 어렵다. 해당 구장은 신축 구장이었다. 그럼에도 관중 접근성은 설계 단계에서 핵심 기준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해당 좌석은 반드시 유지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조정 가능한 자원처럼 취급됐다. 흥행과 수익을 우선하는 판단이 내려진 순간 가장 먼저 조정된 것도 이곳이었다. 이는 특정 구단의 선택이라기보다 명확한 기준이 부재한 구조에서 비롯된 장면이다.

 

관중의 조건은 고정돼 있지 않다

관중은 하나의 평균적인 집단이 아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은 263만 1천 명이다. 전체 인구의 5.1%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율은 55.3%다. 장애 유형 역시 이동과 체력 소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한다.

이 수치는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관중은 시간이 흐르며 누구나 신체적·환경적 제약을 갖게 된다. 지금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관중도 나이가 들면 계단과 장거리 이동이 부담이 된다. 장시간 관람에 따른 체력 소모와 군중 밀집 환경 역시 같은 맥락이다. 스포츠 비즈니스와 스타디움 설계에서 말하는 ‘관중 경험(Spectator Experience)’은 관람 행위뿐 아니라 이동·동선·체류 환경 전반을 포함하며, 이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계속 변화한다.

< 비장애인에게도 아찔한 고척 스카이돔의 계단 >

지금 한국의 야구장은 지금의 평균 관중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이 기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관중을 주변부로 밀어낸다. 접근성 문제는 현재의 소수를 위한 배려를 넘어 ‘미래의 관중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가장 불편한 조건을 기준으로 설계할 때

관중 경험을 설계할 때 가장 불편한 조건을 기준으로 삼으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이동 동선이 완만해지면 고령 관중과 가족 단위 관중이 편해진다. 안내가 명확해지면 처음 방문한 관중의 불안이 줄어든다. 좌석 접근성이 개선되면 장시간 관람에 따른 피로도도 낮아진다.

2023년 KBO가 일부 구장에서 운영 중인 음성 중계 서비스는 접근성을 제도 형태로 도입한 사례다. 다만 이 역시 특정 조건에 국한돼 있다. 전체 등록장애인 가운데 해당 서비스의 주요 대상인 시각장애인은 9.4%에 불과하다.

< 접근성이 아니라, 여전히 도움이 전제에 가까운 음성 지원 서비스>

반면 다수를 차지하는 관중이 겪는 제약은 이동과 좌석 구조에 더 가깝다. 접근성 논의가 도입이 쉬운 서비스에 머무는 한, 관중 경험의 핵심은 바뀌지 않는다.

접근성은 보호나 권리 주장의 문제가 아니다. 관중 경험의 하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다. 가장 불편한 조건을 기준으로 설계된 야구장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관중을 포용한다. 반대로 그 기준을 외면한 야구장은 특정 집단뿐 아니라 취약한 일반 관중까지 동시에 배제한다.

야구장의 접근성은 특별한 요구가 아니다. 관중이 바뀌어도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는지가, 관중 1,100만 시대 이후의 야구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참고 =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KBO, 한화이글스, 고척스카이돔, 조선일보, 중앙일보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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