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왜 외국인은 안 되는데?

성민규 신임 롯데 단장(왼쪽)과 공필성 롯데 감독 대행. /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야구공작소 양정웅] 2019 KBO 리그의 최하위 자리는 리그 일정이 95% 이상 진행된 9월 23일에 결정됐다. 5월 8일 10위로 추락한 이후 이렇다 할 반등 없이 결국 꼴찌의 불명예를 안게 된 팀은 바로 롯데 자이언츠였다. 2004년 이후 첫 최하위였고,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에 모두 꼴찌를 기록했다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운 시즌이었다. 그러나 최하위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신임 감독이 한 시즌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물러났다는 것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롯데는 3년 계약의 첫 번째 시즌을 보낸 조원우 전 감독을 전격 경질하고 양상문 당시 LG 트윈스 단장을 감독으로 선임했다. 양상문 감독은 2004년과 2005년에 이미 롯데 감독직을 역임해 이 자리가 낯설지 않은 인물이었다. 현재 롯데의 주축 선수들과도 감독 및 코치 시절(2009~2010년)에 인연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양상문’과 ‘감독’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전(前)’이라는 글자를 붙여야 한다. 전반기를 34승 2무 58패(승률 0.370), 10위로 마감한 양상문 감독은 결국 올스타 브레이크였던 7월 19일 감독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자신을 데려온 이윤원 단장과 함께였다. 계약을 한 시즌도 채우지도 못하고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후 롯데 감독 자리는 공필성 수석코치가 대행을 맡아 지키고 있다.

양상문 전 감독의 모습. /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이후 공석이던 단장 자리는 팀의 중심타자 이대호와 동갑내기인 37세의 성민규 전 시카고 컵스 스카우트가 맡게 됐다. 역대 롯데 단장 중 최연소라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파격적인 인사였다. 성민규 단장 체제 하에서 롯데는 유명 외국인 팬 케리 마허 씨를 구단에 채용하고 ‘팬그래프’ 칼럼니스트였던 김성민 씨를 영입하는 등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우여곡절 많았던 롯데의 2019년 시즌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제 롯데는 ‘대사(大事)’를 준비해야 한다. 바로 정식 감독 선임이다.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자리가 우리나라에 10자리밖에 없는 귀한 일자리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롯데의 감독 선임 작업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지난 9월 19일 롯데는 제리 로이스터 전 감독을 비롯, 스캇 쿨바, 래리 서튼 등 외국인 감독 후보를 공개했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후보를 공개하는 것은 전례가 없었던 사건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외국인은 안 됨. 아무튼 그럼.’

그런데 이상하다. 롯데의 차기 감독을 언급하는 기사들 중 외국인 감독을 반대하는 사례가 많다. 9월 24일에 나온 롯데 감독 관련 기사 제목은 다음과 같다.

 

무조건 파격+눈치보기 지양…현실 지도자 필요하다

향수 젖은 도박? 로이스터, 롯데라면 가능?

A->AA->AAA->ML 쿨바,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파격의 연속 롯데, 외인감독은 하이 리스크

‘감독 조기발표 통해 리더십 세워야’ ‘철밥통’ 롯데 코치진 물갈이 절실

 

여러모로 봐도 외국인 감독 선임에 긍정적인 헤드라인은 아니다. 내용을 봐도 마찬가지. 바닥까지 내려간 롯데 상황에서 모험수는 위험하다, 현 상황에서는 국내 현실을 잘 아는 감독이 필요하다, 트레이 힐만 전 SK 감독처럼 아시아에서 지도자 경험이 있어야 한다, 쿨바나 서튼처럼 초보 감독을 데려오느니 차라리 국내 코치가 낫다, 베테랑 감독이 젊은 단장에게 조언을 해주는 모양새가 좋겠다, 등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감독 개별로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로이스터 전 감독은 고령인데다가 향수에 젖은 도박이고, 현재 KBO 리그의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 쿨바는 KBO 공백기가 길고 뚜렷한 성과가 부족할 뿐더러 소통 문제가 걸린다. 서튼은 사람은 좋으나 역량을 검증받지 못했다. 거의 ‘위기탈출 넘버원’ 수준의 걱정이다.

 

외국인 감독이어도 괜찮아

롯데 차기 감독 후보에 오른 로이스터 전 감독. / 사진=롯데 자이언츠 제공

외국인 감독이 롯데의 반등을 위한 치트키는 아니다. 순수 외국인으로 보기 어려운 송일수 감독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KBO 리그에서 외국인 감독이 맡은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적은 없다. 그러나 표본이 너무 적다. (로이스터 3시즌, 힐만 2시즌) 또한 감독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우려 역시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 외국인 감독 후보자가 저마다 리스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이 무조건 모험수이고 ‘하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는 이전의 외국인 감독, 로이스터에게서 보지 않았던가. 로이스터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지만 ‘No Fear’로 대표되는 공격적인 야구, 그리고 적극적인 소통과 수평적 리더십의 표본으로 남아있다. 한국시리즈커녕 플레이오프조차 오르지 못했지만 많은 후대 감독들에게 롤 모델로 꼽히는 감독이 바로 로이스터 감독이었다. 외국인 감독은 당장 성적이 나오지 않더라도 새로운 야구관을 전파할 수 있는 존재다.

물론 1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실패한 송일수 감독의 사례처럼 KBO 리그와의 오랜 단절은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으로 ‘KBO 리그를 최근에 경험한 외국인’만 뽑아야 한다면 아무도 뽑을 수 없다. 이제 KBO 리그도 메이저리그의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운영방식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의 야구가 이상에서 현실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현장에서 꾸준히 종사해 온 롯데의 외국인 감독 후보들은 언어소통 문제를 제외하고는 적응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언급되고 있는 (외국인이 아닌) 다른 감독 후보의 조건이 롯데를 살릴 수 있을까. 국내 현실을 잘 아는, 그리고 경험이 많은 베테랑 감독. 이미 롯데가 보유하지 않았던가? 1985년 프로야구에 입문한 이래 한 시즌도 빠지지 않고 현장, 혹은 이외의 일로 리그에 참여했던 양상문 전 감독이 위의 조건에 해당하는 감독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꼭 외국인일 필요는 없지만, 꼭 아닐 이유도 없다

롯데가 외국인 감독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롯데 구단은 외국인 감독 후보를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현재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 공필성 감독대행을 포함한 KBO 리그 내의 감독 후보 4~5명에 대해서도 야구에 대한 철학, 열정, 팀에 대한 적합성을 판단할 수 있는 심층 면접 과정에 있다”고 밝혔다. 내국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그렇지만 내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과 내국인에게’만’ 문호를 개방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단지 위에서 언급한 이유만으로 외국인 감독을 후보에서 배제하는 것은 최적의 감독을 찾아야 하는 롯데에게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외국인 감독에 대한 거부반응, 그리고 롯데의 개혁 프로세스에 대한 견제를 ‘단장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젊은 단장이 왔으니 컨트롤하기 좋지 않겠냐는 것이다. 진실은 외부에서 알 수 없지만 성민규 단장이 흔들릴 수 있는 여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 단장은 이러한 시선을 뒤로 한 채 묵묵히 감독 후보들을 만나고 있다. 아무쪼록 롯데 구단이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의 기준에 맞는 감독을 선임하기를 바란다. 그 사람의 국적은 신경쓰지 않는 것도 같이 바란다.

케리 마허 교수와 이야기하는 성민규 단장.(왼쪽) / 사진=캐리 마허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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