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하지 말라, 그대에게는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사진1. 2015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열린 미네소타 트윈스의 홈 구장 타겟 필드(출처=U.S Air Force)

[야구공작소 김동민] 1933년 첫 개최 이래 올해로 역대 86번째 개최[1]를 맞은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사이영 상, 월드시리즈 우승 등 최고의 자리를 목표 삼아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이지만, 올스타에 선정되는 것 역시 큰 영광이다. 승패에 관계 없이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야구 팬 모두의 축제라는 점, 그리고 팬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좋아하는 선수를 뽑아 올스타전에 출전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올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새로운 투표 방식을 도입했다. 한 번의 팬 투표로 올스타를 뽑았던 기존 방식에서 2단계 투표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수정한 것이다. 올스타 선정 방식의 역사와 새로운 투표 방식이 가져온 결과를 살펴본다.

 

올스타 선정 방식의 역사

사진2. 미국의 전 대통령 해리 트루먼의 아내인 베스와 딸인 마가렛이 올스타 투표를 하는 장면(출처=Wikimedia Commons)

현재 올스타 선수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선발된다. 먼저 팬 투표는 말 그대로 팬들이 직접 그들의 올스타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팬들은 타자만 뽑을 수 있다. 아메리칸 리그는 지명타자까지 9명을, 내셔널 리그는 지명타자를 제외한 8명을 뽑아 총 17명의 명단을 제출하게 된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1인당 하루 5번, 최대 35번까지 명단 제출이 가능하다.

올해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여기에 변화를 줬다. 지난해까지는 포지션별 최다 득표자가 바로 올스타에 선정됐지만 올해부터는 최다 득표 1~3위 선수를 대상으로 최종 투표를 다시 진행한다. 중간 투표에서 아무리 많은 표를 받아도 최종 투표에서 이기지 못하면 올스타 선발 출장은 불가능하다.

두 번째로 사무국과 감독, 선수들이 최고의 투수와 함께 팬들에게 선정 받지 못한 타자들을 추천해 총 47명(AL 23명, NL 24명)의 올스타를 선발한다. 이렇게 되면 리그별로 32명의 로스터가 꾸려진다. 지난해까지는 리그별로 ‘파이널리스트’ 1명씩을 재투표로 결정해 명단에 추가했으나 올해는 이 제도가 사라졌다. 단, 부상 등으로 결원이 발생할 경우 올스타팀 감독과 사무국이 대체 선수를 선발한다.

사진3. 첫 올스타전인 1933년…이 아닌 1937년 올스타전의 아메리칸 리그 라인업 중 7명. 모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출처=Wikipedia)

첫 올스타전은 1933년,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 구장이었던 코미스키 파크에서 열렸다. 꿈의 경기가 처음 개최됐을 때는 현재와 대동소이한 방식으로 선수를 선발했다. 감독 추천과 팬 투표를 결합해 올스타를 뽑은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모든 팀의 감독이 아니라 당시 올스타전을 처음 생각해낸 언론인 아치 워드(Arch Ward)가 선정한 감독만이 선발에 참여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팬 투표도 제한적이었다. 팬들은 메이저리그 사무국 또는 아치 워드의 신문사 ‘워즈 페이퍼(Ward’s Paper)’, 미국 내 최고의 언론사 중 하나였던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에 투표 명단을 보내야 했다.

팬 투표에 번거로움을 느낀 사무국은 1935년부터 이 방식을 없애고 감독 추천으로만 로스터를 꾸리게 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한 팬들이 계속 항의한 끝에 1947년 투표권을 되찾았다. 팬 투표는 1957년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잠시 중단되기도 했으나 1970년부터 다시 지금과 비슷한 방식의 올스타 선정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100% 온라인 투표로 전환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잘못된 시도들

올스타전이 시작된 지 86년, 부정투표가 없지는 않았다. 처음 적발된 것이 앞서 언급한 1957년의 불미스러운 사건이다. 당시 올스타 선발 출전 야수 8명 중 7명이 신시내티 레즈 선수들로 채워지면서 야구계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유일한 예외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루수이자 전설이었던 스탠 뮤지얼이었다. 조사 결과 전체 투표수의 절반 이상이 신시내티에서 이뤄진 부정투표라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커미셔너였던 포드 프릭은 외야수 둘을 행크 애런과 윌리 메이스로 교체한 뒤 팬 투표 제도를 없애기에 이르렀다.

1970년 팬 투표가 부활하고 온라인 방식이 도입되자 부정투표도 진화했다. 1999년 보스턴 레드삭스 팬이자 프로그래머였던 데이빗 라이트맨, 크리스 낸더가 온라인 투표 수를 부풀리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노마 가르시아파라 등 보스턴 선수들을 올스타로 만들기 위해 온라인 투표 수를 2만 5,000표 이상 부풀렸다. 이는 당연히 적발됐고 모두 폐기 처분됐다.

사진4. 2015 올스타전의 논란 대상 중 하나였던 오마 인판테(출처=Flicker Keith Allison)

모든 투표가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지도록 바뀐 2015년에도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캔자스시티 팬의 몰표로 마이크 트라웃을 제외한 모든 포지션이 캔자스시티 로열스 선수들로 채워진 것이다. 당시 신임 커미셔너였던 롭 만프레드가 몰표로 의심되는 6,500만 표 이상을 취소시킨 뒤에야 원만한 투표가 이뤄질 수 있었다.

 

최종 투표가 끼친 영향

한국 시간으로 6월 28일 발표된 올스타 투표 결과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다.

표1. 아메리칸 리그 1루수 부문 투표 결과(출처=mlb.com, ESPN)

아메리칸 리그 1루수의 경우 루크 보이트가 근소하게 중간 투표 1위를 차지했으나 최종 투표에서는 카를로스 산타나가 압도적이었다. 중간 투표로 끝났다면 선발 출장을 아쉽게 놓쳤을 산타나는 최종 투표를 통해 다시 기회를 얻었다. 결국 이번 올스타전의 개최지이자 자신의 홈 구장인 프로그레시브 필드의 1루를 지킬 수 있었다.

표2. 아메리칸 리그 지명타자 부문 투표 결과(출처=mlb.com, ESPN)

아메리칸 리그 지명타자 부문도 비슷하게 흘러갔다. 중간 투표는 J.D. 마르티네즈가 압도적이었으나 최종 투표에서는 오히려 헌터 펜스가 상당한 차이로 1위에 오른 것이다. 펜스는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올스타 라인업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역시 최종 투표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하지만 펜스는 부상으로 참석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올스타 선발 라인업에는 마르티네즈가 포함되었다.

표3. 내셔널 리그 2루수 부문 투표 결과(출처=mlb.com, ESPN)

마지막으로, 올해 최대의 반전이 일어난 내셔널 리그 2루. 중간 투표에서 1위 절반 수준의 득표에 그쳤던 케텔 마르테가 최종 투표에서는 선두로 올라섰다. 100만표 이상의 격차가 최종 투표에서 뒤집히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앞선 사례들의 공통점은 두 가지다.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 팀의 선수들이 중간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점, 그리고 인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팀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 중인 선수들이 최종 투표에서 그들을 제쳤다는 점이다. 작년이라면 당연히 보이트와 마르티네즈, 그리고 알비스가 올스타 라인업에 포함됐을 것이다.

 

최종 투표에 대한 반응, 그리고

사진5.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공식 트위터 계정. 사진에는 없지만 카를로스 산타나의 올스타 선정 투표 유도를 위해 계정 이름을 #VoteLos로 바꾸고 관련 트윗을 올리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출처=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공식 트위터 계정)

최근 클리블랜드 닷컴(cleveland.com)의 조 노가(Joe Noga)는 “이제 올스타 투표를 조작하기란 얼마나 쉬운가?”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올렸다. 노가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이번 올스타 투표가 조작될 거라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올해 바뀐 시스템은 양키스나 컵스 등 빅 마켓 팀에 유리하게 작용하거나 올스타 선발 자격이 있는 몇몇 선수들을 배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 그러나 2단계 투표 시스템은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각 팀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소속 선수에 대한 투표를 독려할 기회를 줬다. 바로 이것이 MLB와 선수 협회가 제도 변경을 통해 바랐던 결과다.”

결국 반어적인 표현으로 올해 바뀐 제도를 긍정 평가하는 내용이다. 앞선 예상과 달리 중소 마켓 팀과 팬들이 합심해 흥미로운 이변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중간 투표에서 많은 표를 받았던 빅 마켓 팀 선수들이 최종 투표에서 탈락하거나, 뽑히더라도 득표율이 떨어진 것은 과거 영향력이 적었던 팬들의 손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다.

내가 뽑은 선수가 아까운 표 차이로 올스타전에 나오지 못해 실망한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한 번 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 올해 도입된 제도의 취지다. 첫 해 결과만 놓고 보면 꽤 성공적이다. 하지만 86년의 역사를 가진 올스타 선발 제도가 변화무쌍했던 만큼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는 계속 지켜봐야 할 것이다.

 

출처=mlb.com, ESPN, FoxSports, Cleveland.com

에디터=야구공작소 김남우 & 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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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 2게임이 열린 1959~1962년은 묶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계엄령으로 여행제한 조치가 내려진 1945년을 제외하고 올스타전은 매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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