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 에반스 단장에게 전하는 직언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바비 에반스 단장(출처=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트위터)

 

[야구공작소 김동윤] 10여 년 전, 우리 나라에서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없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찾아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LA 다저스 같은 일부 인기팀을 제외한다면 영어 해설과 버벅거리는 인터넷을 경험하며 연고도 없는 팀에 빠져드는 것도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역동적인 폼으로 불꽃 같은 강속구를 던지는 조그만 투수 한 명이 이역만리  야구팬들의 마음을 홀렸다. 이 선수가 바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오랜만에 등장한 전국구 스타 팀 린스컴이었고, 그로 인해 샌프란시스코라는 팀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 떄부터 2006년 드래프트에서 린스컴을 뽑은 샌프란시스코의 단장 브라이언 세이빈의 인생도 달라졌다. 그전까지는 배리 본즈라는 뛰어난 스타를 보유하고도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해 많은 비판을 받던 세이빈 단장이었다. 하지만 린스컴을 시작으로 매디슨 범가너, 버스터 포지라는 3년 연속 터진 드래프트 1라운더 잭팟 덕분에 현재는 명예의 전당이 거론되는 단장이 됐다.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결과물은 물론이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준 유망주들과 타 팀에서 왔지만 빠르게 샌프란시스코에 녹아든 베테랑들의 조합은 팬들이 애정을 쏟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일까, 2014년 우승 후 샌프란시스코 수뇌부가 조직개편을 단행했음에도 팬들의 지지는 변하지 않았다. 18 년간을 이끌어 온 세이빈 단장의 영전과 십여 년간 그를 보좌해  바비 에반스의 단장 취임은 아름다운 세대교체로 보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이때부터 조금씩 우승 전 모습으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배리 본즈 말년의 세이빈 단장처럼 에반스 또한 베테랑들의 기록과 반등을 믿었다. 신인을 중용하는 현 메이저리그의 트렌드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그렇게 큰 돈을 들여 영입하거나 재계약을 맺은 선수들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다. 원하는 선수 보강도 신임 단장에게 쉬운 일은 아니어서 FA 시장과 트레이드에서 매번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했고,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한 결과는 대부분 실패에 수렴했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렇게 3년 연속 사치세를 지불하면서도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하는 팀이 됐다.

 

지속된 실패와 황폐해진 팜은 팬들에게 구단의 비전을 의심하게 했고 신뢰를 거두게 만들었다. 비전 없는 프런트를 향한 팬들의 대답은 AT&T 파크로의 발길을 끊는 것이었다. 7년간 이어온 530경기 연속 홈 경기 매진 기록은 에반스 단장 재임 3년 만에 중단됐다.

 

이처럼 2018년 9월 현재까지 단장으로서 에반스 단장의 점수는 낙제에 가깝다. 단장으로서의 적응기와 우승에 대한 추억이 더 이상 방패가 될 수 없는, 이제 에반스 단장이 오롯이 팬들의 비판에 맞서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거듭되는 악수, 반복되는 실패

[표 1] 4년간 에반스 단장의 성과(출처=팬그래프)

*2018년은 현지시간 9월 9일 기준

 

2014년 범가너에 의지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룬 후의 샌프란시스코와 에반스 단장은 한 사람에게 의존한 후유증을 다음해 톡톡히 겪었다. 포지, 범가너, 크로포드 같은 핵심 선수들의 젊음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에반스 단장은 2015년 겨울부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첫 투자가 시작된 2016년 샌프란시스코는 눈부신 전반기를 보냈지만 그것은 회광반조일 뿐이었다. 2016년 전반기를 메이저리그 전체 1위(57승 33패)로 마치는데 모든 힘을 쏟아낸 샌프란시스코는 이어지는 후반기에서는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2016년 후반기 ML 승률 27위) 핵심 선수들의 노쇠화와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세가 염려돼 에반스 단장은 외부 영입으로 그 불안감을 메워보려 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이때 언론을 통해 나타난 에반스 단장의 단점은 크게 선구안과 협상력으로 나눌 수 있다. 선구안에 대한 비판은 에반스 단장이 외부 선수를 영입하며 열거했던 팀과의 시너지 효과가 빛을 보지 못하며 제기됐다. 부상에 대한 위험성에 대해서도 애써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이 문제였다. 협상력에 대한 비판은 외부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몇몇 선수에게 과한 계약을 안겨줬다는 것에서 나왔다. 결국 에반스 단장은 선수의 가치를 잘못 산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계약이 매년 누적되면서 결국 팀의 재정과 본인의 입지에도 위협이 됐다.

 

단장이 된 후 그의 특징은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주위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전략을 고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구단 관계자들이 그를 결과로 평가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결과로 말하는 직책이 단장이라는 자리지만 과정이 알려지지 않은 단장의 결정은 실패할 경우 많은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좋지 못했다.

 

[표 2] 2015~2017년 겨울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영입 선수(합류 당시)

 

그동안 영입한 선수들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책이었고, 차선책인 만큼 리스크도 존재했다. 많은 이들이 그 리스크에 대해 지적했지만 에반스 단장은 부정적인 측면은 애써 외면했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생각한 긍정적인 측면을 통 큰 계약으로 증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로 시장의 외면을 받던 선수들에게 에반스 단장의 이런 모습이 믿음이라는 형태로 다가와 입단을 결심하게 했지만 구단에게는 도박이었다.

 

현재 에반스 단장이 작심하고 데려온 베테랑들의 상황은 좋지 못하다. 쟈니 쿠에토는 올해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토미존 서저리)로 일찍 시즌을 마감하고 2020년을 바라보고 있다. 30대 중반이 가까워진 제프 사마자와 마크 멜란슨은 특별한 부상이 없음에도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전성기 실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디너드 스팬과 앤드류 맥커친은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한 채 트레이드 됐고, 에반 롱고리아의 모습도 실망스럽다.

 

베테랑들의 부진과 함께 최근 유망주들의 성공이 잦아지는 메이저리그 추세도 팬들의 반발이 거센 이유다. 냉정히 말해 지난 몇 년간 샌프란시스코의 유망주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동안 에반스 단장이 내보낸 선수 중에서도 소위 말해 대박이 난 선수도 없긴 하다. 문제는 어린 선수들을 내보내고 데려온 고액 연봉의 베테랑 선수들이 그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활약을 하는 데서 생긴다.

 

2015년 겨울, 쟈니 쿠에토와 제프 사마자를 데려옴과 동시에 우승 멤버들과 재계약을 하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액인 3억 달러 이상을 지출하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는 많은 지출을 했음에도 어떤 측면에서도 나아지지 못했다. 에반스 단장의 베테랑 영입이 연달아 실패하고 지난해를 최악의 시즌으로 끝내자 본격적으로 그의 능력에 의구심을 가지는 여론이 생겼다. 단장 특별 보좌로 있던 세이빈 단장이 다시 일선으로 복귀한 것도 그 이유다. 하지만 그런 조치에도 지안카를로 스탠튼을 영입한다는 소식에 MVP를 수상한 스탠튼도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팬들의 현재 프런트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에반스 단장의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에반스 단장 한 명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2014년 범가너의 그 날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선수들은 차례로 무너졌다.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맷 케인부터 힘을 잃어가는 버스터 포지의 부상까지 지난 4년간 있었던 중심 선수들의 잇따른 이탈은 화려했던 지난 날의 그림자였다. 에반스 단장 부임 이전에도 우승 멤버들의 하락세를 염려하는 사람들은 있었다. 꾸준히 세이빈의 옆에서 운영에 관여한 에반스 단장도 그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들의 부담을 덜어줄 베테랑들을 영입하려 한 것이다.

 

매년 보강이 필요했던 이유

2015년 고령화된 선발진(범가너 제외) : 평균 이닝 4.45, ERA 4.25, 평균 연령 33세

2016년 불안한 뒷문 : ERA 3.65(ML 15위), 블론세이브 30개(ML 1위), fWAR 2.2(ML 22위)

장타가 부족했던 3년(2015~2017) : 홈런 394개(ML 29위), 장타율 .395(ML 26위)

 

최우선으로 했던 선수들을 놓친 것도 에반스 단장만 무능했다고 힐난하기는 어렵다. 놓친 선수들은 경쟁팀의 놀랄 만한 제의가 있던 선수(2015년의 잭 그레인키), 마음이 확고했던 선수(2016년의 아롤디스 채프먼, 켄리 잰슨), 여건이 맞지 않던 선수(2017년 오타니 쇼헤이, 지안카를로 스탠튼)들이었고 샌프란시스코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원했던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했다면 거기서 멈췄어야 하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나 높아진 팬들의 기대,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핵심 선수들의 나이, 샌프란시스코 시와 연계한 대규모 프로젝트를 앞둔 시점에서 사장단이 결정한 목표는 팀의 지속적인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여기에 황폐화된 산하 마이너리그 상황과 주축 선수들의 높아진 연봉으로 인해 아슬아슬해진 팀 연봉도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에반스 단장 입장에서는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고, 결국 위험 부담은 있지만 ‘반등’만 한다면 확실히 팀에 도움이 될 베테랑들을 영입에 나선 것이다. 외통수의 상황에서 쿠에토와 멜란슨에게는 옵트아웃 조항을 걸어놓은 점이나 본래의 실력에 비해 저렴한 연봉을 받고 있던 맥커친과 롱고리아를 영입한 일은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장은 결과로 말하는 자리

 

하지만 현실은 늘 뜻대로 되진 않는다. 그가 생각했던 희망찬 미래는 철저히 부정당했다.

올해도 에반스 단장의 선택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메이저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연봉을 쓰는 팀임에도 승률 5할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있다. 미래를 위해 뒤늦게 사치세 초기화를 시도했지만 아직 팀에는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표 3] 2019년 이후 잔여계약(선수별 팀 옵션 제외)

 

팬들은 더 이상 맥커친과 롱고리아와 같이 ‘과거 대단했던’ 선수들의 활약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들을 대체하기 위해 올라온 ‘미미하지만 어린’ 선수들의 활약에 더 주목했다. 그리고 올해는 베테랑 선수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올라온 신인들이 고무적인 모습(현지시간 8월 31일 기준, 신인 fWAR 5.1)을 보여주며 앞으로의 샌프란시스코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가 필요한 시점

 

20년 전 세이빈 단장은 성공확률이 높지 않던 유망주를 믿기보다는 그들을 팔아 최고의 선수가 있을 때 검증된 선수들을 모아 우승에 도전했고 숱한 실패를 겪었다. 에반스 단장의 초기 행보는 20년 전 우승에 모든 것을 걸었던 세이빈 단장의 행보와 닮았다. 그동안 강산은 두 번이 바뀌었고, 이미 10년 전 그 방법은 잘못됐음을 스스로 증명했던 팀이 샌프란시스코다. 그 실패와 성공의 과정을 겪은 팬들이기 때문에 팬들은 잠깐의 기다림이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팬들은 더 이상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허황된 목표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원하고 있다.

 

이번 시즌 내내 샌프란시스코가 겨울에 또 다시 브라이스 하퍼라는 비싼 탈곡기를 구입하기 위해 긴축 재정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수확에 필요한 탈곡기가 아닌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랄 종자와 그것을 부지런히 키워줄 일꾼들이 필요하다. 오히려 종자를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지금 있는 녹슨 농기계들을 팔아야 할 시점이다. 부디 이번 겨울은 지난 4년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진 않길 바란다.  

 

출처 – Spotrac.com, Fangraphs.com, Baseball-reference.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오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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