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시즌 리뷰] LG 트윈스 – 두 마리 토끼

시즌 성적: 정규시즌 4위(71승 71패 2무), 플레이오프 진출

 

[야구공작소 오주승] ‘자기 불구화 전략(self-handicapping strategy)’, 다른 말로 ‘핑계 만들기 전략’이라고도 불리는 이 전략은 예견 가능한 실패에 대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사전에 다양한 핑계들을 만들어 두는 행위를 말한다.

양상문 감독은 시즌 시작 전 “당장 성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독이 해야 할 임무는 5년, 10년 뒤에 이 팀이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준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사실상 리빌딩을 선언했다. 서비스 타임이 몇 년 남지 않은 베테랑과 신인급 유망주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리빌딩을 진행하는 메이저리그와 달리 KBO리그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전면적인 리빌딩을 시행하기 어렵다. 유망주에게 좀 더 기회를 주는 정도에 그치는 KBO리그식 리빌딩은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 특히 LG는 지난 11년의 암흑기 동안 수 많은 감독들의 리빌딩 선언과, 리빌딩 실패를 겪은 팀이다. LG 팬들에게 양상문 감독의 리빌딩 선언은 달가울 리 없었다.

 

상큼했던 출발, 잊고 싶은 7월

출발은 상큼했다. 개막 2연전을 모두 끝내기로 이겼다. 특히 개막전에서는 이천웅의 홈런과 양석환의 끝내기가 터지며 성공적인 리빌딩에 대한 기대도 한껏 부풀어올랐다. 양상문 감독은 계속해서 젊은 선수들을 기용했다. 채은성, 이천웅, 유강남 등 젊은 선수들이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듯 활약을 이어갔다. 연패도 있었지만 연승으로 균형을 맞추며 5월까지 5할 승률을 유지했다. 리빌딩과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듯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6월 12일 이후 5할 승률을 회복하지 못했다. 양상문 감독이 깜짝 마무리로 밀었던 임정우가 무너졌다. 임정우는 6월 7일부터 14일까지 7경기 동안 무려 4패를 기록했다. 선발 투수진도 붕괴됐다. 지난해 1, 2선발을 담당했던 우규민과 소사는 작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우여곡절 끝에 데려온 외국인 선발 코프랜드는 스카우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전반기 동안 홀로 타선을 이끌었던 히메네스도 올스타 브레이크를 기점으로 부진에 빠졌다.

5할 승률이 무너진 이후 7월 26일까지 45일 동안 승률 0.281을 기록하며 승패 마진은 –14까지 떨어졌다. 5위와의 승차는 6.5게임까지 벌어져 올해도 유광잠바는 장롱 속에서 나오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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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LG의 에이스로 거듭난 허프(사진=LG 트윈스 제공)

외국인 교체, 그리고 대 반전

LG는 7월 8일 외국인 선수 교체를 단행한다. 실망만을 안겨줬던 코프랜드를 보내고 오래 전부터 후보로 거론되던 데이비드 허프를 영입했다. 한편 같은 시기 한화에서도 에릭 서캠프로 외국인 선수를 교체했다. 허프와 마찬가지로 서캠프도 오래 전부터 KBO 리그에 올 수 있는 선수로 거론되었기에 둘의 활약에 관심이 집중됐다.

공교롭게도 둘은 전반기 마지막 날 동시에 KBO리그에 데뷔했다. 이날 성적은 서캠프의 판정승. 안정적이었던 서캠프와 달리 허프는 불펜으로 나와 1과 2/3이닝동안 3피안타 1실점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불안감을 안겼다.

그러나 허프는 데뷔전 이후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주며 후반기 반등의 중심이 된다. 허프에 류제국까지 원투 펀치의 활약으로 팀이 안정되자 나머지 선수들도 힘을 내기 시작했다. 정성훈, 박용택, 오지환 등 팀의 기둥들이 타격을 이끌었고, 김용의, 양석환, 이천웅 등 젊은 선수들도 타격에 눈을 떴다.

투타의 조화 속에 9월 17일, LG는 불가능해 보였던 –14의 승차를 극복하고 5할 승률에 복귀한다. 그리고 LG는 2014년 이후 2년 만에 가을야구를 맞이한다.

 

MVP

전반기 – 히메네스

2015년 첫 31경기에서 OPS 0.641, 이후 39경기에서 OPS 1.014을 기록하며 극명한 전후 차이를 보였던 히메네스. 시즌 말미에 살아난 모습으로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어떤 성적이 진짜 히메네스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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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네스의 15년 전,후기, 16년 전,후반기 기록비교

걱정과는 달리 전반기 히메네스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338/.393/.602의 타율/출루율/장타율은 히메네스를 페타지니 이후 LG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칭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또한 전반기에 터뜨린 22홈런은 99년 이병규 이후 LG 팀 역사상 2번째 30홈런 타자 배출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채은성, 박용택 등도 분발했지만 전반기 LG의 타선은 히메네스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반기의 활약을 후반기까지 끌고가지는 못했다. 후반기가 되자 히메네스는 2015년 첫 31경기의 히메네스로 돌아왔다.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찬스를 번번히 날리는 모습은 LG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하지만 전반기 히메네스의 MVP급 활약이 없었다면 LG의 가을야구도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후반기 – 오지환

박용택 이후 LG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거듭나고 있는 오지환. 매년 더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팬들의 기대에는 2% 미치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시즌 후 군 입대를 선언하고 맞이한 2016시즌,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주루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하며 개막전 선발을 강승호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부상 복귀 후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6월 17일 퓨처스에 내려가기 전까지 오지환의 성적은 고작 0.184/0.309/0.286에 홈런 3개. 커리어 전체에서 가장 페이스가 나빴다.

2오지환의 퓨처스 강등 전후 성적비교

하지만 퓨처스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7월 이후 오지환은 완전히 달라졌다. 복귀한 오지환은 0.337/0.435/0.618에 17홈런을 기록하며 LG 팬들이 기대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부진에 빠진 히메네스 대신 LG 타선을 이끌었고,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이었다. 결국 오지환은 타율, 출루율, 장타율, 홈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잠실 최초 20홈런 유격수라는 타이틀은 덤이었다.

KBO리그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오지환의 위상은 최고 유격수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유격수 조정 타격 생산성(wRC+)은 126.6으로 2위(김재호, 110.5)와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 거기에 부상으로 적은 출장 시간을 소화했음에도 유격수 WAR 1위에 오르며 많은 팬들 사이에서 국가대표 유격수 후보로 당당하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선수가 됐다.

 

아쉬운 선수 – 이병규(7)

올해로 프로 10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작은’ 이병규는 젊은 LG의 외야진에서 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 동안 각종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 받은 선수였다. 매년 이병규에게 달리는 가정은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이었다.

그리고 올해, 매년 붙었던 가정은 드디어 현실이 됐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 그 자체였다. 0.272/0.389/0.400, 7홈런. 평범한 타자였다면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겠지만 LG가 이병규에게 기대한 모습은 아니었다. 이천웅, 채은성, 이형종, 김용의 등 새로운 얼굴들이 이병규의 자리를 잘 메꾸었지만 이병규의 부진은 자칫 LG에게 큰 악재가 될 수 있었다. 한 해 동안 부진했던 이병규는 결국 시즌 막판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도 탈락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Key Point – 새로운 얼굴들

이병규, 박용택, 이진영 등으로 대표되던 LG의 외야에 채은성, 이천웅, 이형종, 문선재 등 20대 선수들이 등장했다. 조인성 이후 마땅한 선수가 없었던 포수 자리에는 유강남이라는 젊은 포수가 등장했다. 김지용과 임정우는 각각 셋업과 마무리로 자리를 굳히며 LG의 뒷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

위기도 많았다. 한번 흔들리면 다 같이 흔들렸다. 시즌 동안 3연패 이상만 7번이나 기록했고 최대 6연패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젊은 선수들답게 분위기를 타면 무섭게 달아올랐다. 4연승 2번, 5연승 1번, 6연승 1번, 그리고 8월 3일 ~ 12일 사이에는 무려 9연승을 올렸다.  꾸준히 순위를 유지하는 안정적인 시즌은 아니었지만 젊은 기관사들이 운행하는 롤러코스터는 결국 가을까지 그 동력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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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는 이 모습을 볼 수 있을까?(사진=LG 트윈스 제공)

마치며

시즌 시작 전 LG의 선전을 예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2015년 구단 최초로 9위라는 성적표를 받았지만 스토브리그 동안의 전력 보강은 정상호 1명을 영입하는 데 그쳤다. 2016년 LG가 선전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우주의 기운’을 믿는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시즌 중간 현수막 사태까지 겪으며 리빌딩은 실패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양상문 감독은 뚝심으로 밀어붙였고, 기어코 젊은 선수들의 힘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하며 시즌 전의 리빌딩 선언이 단지 성적 부진을 대비한 ‘면피성’ 발언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LG 팬들은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두 번째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와일드카드, 준플레이오프에서 KIA, 넥센을 차례로 잡아내며 유광잠바를 입는 행복도 꽤 오래 누릴 수 있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하위권으로 분류됐던 팀이 3위까지 올랐다는 것은 박수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기록 출처 – Statiz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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