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원영)
2017년 성적 : 3위(80승 2무 62패, 준플레이오프 패배)
프롤로그 – 1년 간의 롯데
[야구공작소 양정웅] 2016년 후반기 에이스였던 조쉬 린드블럼이 딸의 건강문제로 팀을 떠났고, 후반기 부진에 시달린 브룩스 레일리와는 고심 끝에 재계약을 맺었다. 린드블럼의 공백은 파커 마켈로 메웠고 황재균의 공백에 대비해 앤디 번즈를 영입했다. 결국 우려대로 황재균이 또 다른 자이언츠로 이적했지만 같은 날 프랜차이즈 스타 이대호가 4년 150억원에 롯데와 계약을 맺고 친정으로 복귀했다.
롯데는 지역 라이벌 NC 다이노스와의 개막 3연전에서 2승 1패를 거두며 상쾌하게 출발했다. 5월까지 11홈런 31타점, OPS 1.066을 기록한 이대호의 활약은 무서웠고 10경기에 나와 6승 2패와 평균자책점 1.58을 기록한 박세웅의 초반 활약은 감히 ‘최동원’이라는 이름이 거론될 정도였다. 돌아온 송승준은 부활투를 펼쳤고 불펜 강화를 위해 kt 위즈에서 영입한 장시환은 어느 정도 제 역할을 해줬다.
그러나 개막도 하기 전에 마켈이 (잠만 자다가) 팀을 떠났고, 대체 외국인선수 닉 애디튼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4월에는 전준우, 6월에는 번즈가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졌다. 레일리와 애디튼까지 부진으로 퓨처스리그로 내려가면서 롯데는 한때 외국인선수가 엔트리에 한 명도 없는 상황도 찾아왔다. 심판진의 잦은 오심과 이대호의 부진은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격이었다.
후반기 최고의 투수 중 하나로 거듭난 레일리. 여름 반등의 신호탄이었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6월까지 34승 39패, 승률 0.466로 힘들게 버티던 롯데는 7월부터 반등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기존 윤길현–장시환–손승락의 필승조를 재편했고 부진에 빠졌던 애디튼을 린드블럼으로 대체했다. 7년 만에 사직 마운드에 돌아온 조정훈과 불펜으로 돌아간 박진형까지 가세하면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대망의 8월, 롯데는 6번의 스윕승을 가져오는 등 승패마진 +11을 수확했고 8월 3~4주차에는 2주 연속 5승 1패를 기록했다. 최준석이 돌아오면서 전준우-손아섭-최준석-이대호로 이어지는 상위 타선이 안정됐다. 후반기 최고의 투수 레일리와 구원 1위로 올라선 손승락, 배장호-조정훈-박진형의 중간계투진의 활약까지 이어지며 롯데는 후반기 ‘역전의 명수’로 떠올랐다. 7위로 시작한 순위는 어느새 4위가 돼 있었다.
8월 승률 2위에 이어 9월에도 13승 6패로 승률 1위를 달린 롯데는 기존 팀 최다승인 75승을 가볍게 경신했고 결국 80승을 기록하며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2승 3패로 패퇴하긴 했지만 탈락 직전 마지막 희망을 보여준 4차전은 롯데의 올 시즌을 요약하는 경기였다.
터닝 포인트 – 8월 4일 넥센 히어로즈전
8월 4일 넥센전에서 결승 3타점 2루타를 치고 나가는 신본기. 이날의 승리는 후반기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롯데는 8월의 시작인 LG와의 3연전에서 스윕패를 당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홈에 돌아와 넥센을 맞이했다. 7월 후반 잠시 살아났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롯데로서는 넥센과의 3연전이 무척 중요했다.
그러나 첫 경기 1회초부터 5점을 헌납했다. 3회말 이대호의 홈런 등으로 4점을 따라갔지만 4회초 곧바로 서건창에게 홈런을 허용하며 스코어는 다시 7대4가 됐다. 롯데의 무난한 패배가 예상됐다.
그런데 4회말, 손아섭의 행운이 겹친 안타가 나왔고 최준석-이대호의 연속 적시타로 2점을 따라갔다. 이후 실책으로 만들어진 2사 만루의 찬스에서 신본기의 3타점 적시타 등을 묶어 4점을 추가하며 롯데가 역전에 성공했다. 박시영-이명우-배장호-박진형-조정훈으로 이어지는 불펜은 남은 5이닝을 단 1실점으로 막고 승리를 지켜냈다.
이날의 승리를 발판 삼아 롯데는 송승준의 100승을 마침표로 넥센과의 3연전을 스윕했다. 이 시리즈는 선수단에 많은 자극제가 됐다. 실제로 조원우 감독은 9월 인터뷰에서 “LG전 3경기를 내준 후 넥센전을 모두 역전하면서 분위기가 살아났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조원우 감독은 8월 중순 “승부처는 없다. 매 경기가 다 중요하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지난해에는 추락의 씨앗이었던 2연전 기간에서 승리를 쓸어 담으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2연전 기간 승률 2016년 0.394, 2017년 0.714)
발전한 선수 – 영건 트리오
영건 트리오의 활약으로 인해 롯데는 올 시즌 투수왕국의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왼쪽부터 김원중, 박세웅, 박진형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지난 수 년간 롯데는 ‘유망주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이왕기, 나승현, 이상화, 하준호 등 상위 라운드에서 지명한 투수 유망주들이 1군 무대에서 꽃피우지 못하고 은퇴, 이적, 타자 전향 등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2015년 이후 몇몇 유망주들이 두각을 보이는가 싶더니 올해 드디어 김원중-박진형-박세웅으로 이어지는 20대 초반 영건들이 팀의 주축선수로 거듭났다.
김원중-박진형-박세웅의 주요스탯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라운드에 지명된 김원중은 그 동안 부상과 군 복무 등으로 인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지난해 받은 2번의 선발등판 기회에서도 6이닝 8실점으로 무너지며 유망주 잔혹사에 또 하나의 이름을 추가할 뻔 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비교적 로테이션을 잘 소화하며 100이닝을 넘겼다. 특히 NC전에서 올려준 3승은 후반기 순위싸움에서 요긴하게 작용했다.
지난해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쏠쏠히 활약해준 박진형은 올 시즌 초반 소모포어 징크스에 시달리는 듯했다. 제구가 흔들리며 선발로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했다. 하지만 후반기 박진형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구원으로 짧은 이닝을 소화하는 대신 위력이 배가된 스플리터를 선보였다. 타자들은 ‘구원투수’ 박진형의 스플리터에 연신 방망이를 헛돌렸다(전반기 스플리터에 50% 이상 스윙한 경기 1회, 후반기 11회).
박진형의 드라마틱한 성적변화
박세웅은 ‘성장’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이미 지난해 그 가능성을 많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올 시즌에는 유망주에서 확실히 벗어나 당당히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섰다. 시즌 10번째 등판까지 피홈런을 하나도 허용하지 않았고, 8월 8일까지 2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며 전반기 어려웠던 팀의 기둥 역할을 했다. 비록 후반기에 12피홈런을 허용하는 등 구위가 다소 하락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는 전반기 구원진의 난조로 많은 이닝을 소화한 탓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LVP – 윤길현
여기서 문제 하나. 2017년 롯데 팀 내 홀드 1위는 누구일까? 최다등판 2위의 배장호? 후반기에만 10홀드를 챙긴 박진형? 그것도 아니라면 부활한 조정훈이나 이적한 장시환일까? 싱겁게도 답은 이미 제목에 나와있다. (윤길현 13홀드, 박진형 11홀드, 장시환 10홀드, 조정훈 8홀드)
4월에 주로 추격조로 나온 윤길현은 5월부터 구위가 살아나며 7경기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5월 28일 광주 KIA전에서 끝내기 만루홈런을 허용한 이후 다시 기복 있는 모습을 보였다. 6월 초순 4경기 연속 홀드 이후 부진에 빠지며 등판 기회를 잃었다.
특히 이 시기는 마무리 손승락의 등판이 잦아지던 때였기에 윤길현의 부진은 더 타격이 컸다. 8월 15일 두산전에선 7점차에서 등판해 5점을 내줬고 당연히 쉬었어야 할 손승락이 등판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이 경기 이후 윤길현은 부상으로 퓨처스리그로 내려갔다. 여름부터 윤길현이 활약을 해줬다면 손승락을 비롯, 불펜의 부담이 크게 줄었을 텐데, 이를 염두에 둔다면 윤길현을 가장 아쉬운 선수로 꼽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이다.
MVP – 이대호 & 앤디 번즈
이대호의 가치는 좋은 성적만이 아니었다. 패배의식을 지우고 롯데를 ‘임전무퇴’의 팀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지난해보다 순위가 5계단이나 오른 만큼 올해의 롯데에는 좋은 활약을 펼쳐준 선수가 많았다. 생애 첫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8월 MVP 손아섭, 후반기 반등의 원동력이었던 9월 MVP 레일리, 3년 만에 구원왕을 차지한 손승락까지. 그렇지만 올해 팀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수훈 선수를 꼽자면 바로 이대호와 앤디 번즈의 이름이 불려야 할 것이다.
이대호는 세부 스탯만 보면 해외 진출 전보다 오히려 아쉬운 성적이었다. 6~7월에는 부진에 빠지며(OPS 0.785) ‘차라리 박종윤이 그립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대호는 이대호였다. 8월에만 10홈런 26타점, OPS 1.030을 기록하며 상승하는 팀의 간판타자로서 중심을 잡아줬다. 생애 두번째 30홈런-100타점은 덤이었다. 이대호는 자칫 처질 수 있는 분위기를 다잡으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구단과 팬들이 기대한 리더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번즈의 수비를 보는 롯데 팬들은 이런 생각을 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번즈의 스탯은 이대호보다 더 보잘 것 없다. 2루타 38개, 홈런 15개로 갭 파워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 하지만 번즈의 진가는 수비에 있었다. 여러 데이터와 경험을 조합해 이뤄진 ‘번즈 시프트’는 타자들에겐 통곡의 벽이었다. 더욱 긍정적인 것은 번즈의 수비를 경험한 같은팀 내야수들의 수비도 덩달아 좋아졌다는 점이다. 번즈는 땅볼 유도 비율이 가장 높은(땅볼/뜬공 비율 1.18) 롯데의 투수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군만마와 다름없었다.
마치며 – ‘조석두’와 ‘보석두’ 사이
준플레이오프 5차전 패배 직전 괴로워하는 조원우 감독. 그러나 이 경기 전까지 조원우 감독은 모든 이들이 기대한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사진 = 중계화면 캡쳐)
롯데 자이언츠의 올 시즌은 팀 창단 이래 손에 꼽을 만한 해였다. 한 시즌 팀 최다승, 월간 최다승 신기록을 달성했고 최초로 순위표 아래에 일곱 팀이나 둔 시즌이었다.
여기에 조원우 감독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조원우 감독은 지난해 초보 감독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2연전 기간을 승부처로 잡고 선수들을 최대한 아끼면서 기회를 노렸지만 플랜 B를 보여주지 못하며 결국 반등에 실패했다. 융통성 없는 모습에 팬들로부터 ‘조석두’라는 멸칭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조석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선수들을 관리한 보람을 가을야구로 느낄 수 있었다. 지난해를 반면교사로 삼아 “승부처는 없다”고 선언하면서도 선발 로테이션을 철저히 지켜줬고 박세웅을 제외한 젊은 선수들의 체력을 확실히 안배해줬다. 이는 후반기 순위싸움에서 큰 원동력이 됐다. 포스트시즌의 용병술은 다소 아쉬웠지만 이는 양 팀 선수진의 뎁스 차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조원우 감독은 재계약에 성공했다. 롯데 구단 역사상 세 번째 감독 재계약이다(1996년 김용희, 2000년 김명성 감독). 구단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계약기간 3년을 보장해주며 조원우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이제 남은 오프시즌에서의 과제는 팀의 주축인 손아섭, 강민호의 잔류, 그리고 떠난(?) 황재균을 대체할 선수 영입이라고 할 수 있다. 희망이 가득했던 2017년 하반기의 끝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롯데팬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스토브리그를 주시하고 있다.
기록 출처 : 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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