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
야구에서 ‘명확한’ 스탯은 선수의 강점을 평가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다만 시즌 초반의 성적은 작은 표본 탓에 크게 출렁인다. 일시적인 호조와 부진, 상대 투수와 타구의 운이 함께 반영되기 때문에 관측되는 등락을 모두 실제 경기력의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모든 기복이 통계적 착시는 아니다. 타자의 신체와 운동 수행 역시 기계처럼 매번 같은 출력을 내지 못한다. 명백한 부상이나 기술 변화가 없는데도 타이밍과 판단, 움직임의 일관성이 무너진다면 타격 과정의 어느 지점이 흔들렸는지를 나눠 살펴볼 필요가 있다.
타격의 감각을 결정하는 요인들
신경계·감각계·내분비계의 상태 변화는 이러한 기복을 설명할 수 있는 여러 기전이다. 이 글에서는 그중 신경계의 관점에서 타격 부진을 세 단계로 나눠 살펴보고자 한다.

< 투구 구속에 따른 공의 도달 시간과 타자 시야각 변화 >
타격은 대략 0.4초라는 극도로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지는 정밀한 작업이다. 타자는 투수의 릴리스와 공의 초기 궤적을 보고 투구를 예측해야 한다. 그 예측에 맞춰 뇌와 척수는 운동 명령을 만들고, 운동신경은 전기 신호를 근육으로 전달한다.
근육에서는 이 신호가 수축으로 이어지고, 각 신체 부위에서 발생한 힘은 골반과 몸통, 팔과 배트를 거쳐 임팩트 지점까지 전달된다.
공이 도착한 뒤 동작을 처음부터 고칠 시간은 없기 때문에 초기 예측의 비중이 크다. 따라서 일련의 과정은 지면에서 만든 힘을 골반과 몸통, 팔과 배트로 전달하는 동안 거의 동시에 진행된다.
정리하면 타격은 다음 세 단계를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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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를 읽고 예측하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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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움직임을 조직하고 명령하는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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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근육이 힘을 만들어내는 단계
어느 한 단계라도 일관성을 잃으면 타자는 같은 스윙을 했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결과를 경험할 수 있다. 이 글은 타격 부진을 이 세 지점으로 나눠 살펴보자는 제안이다.
타격의 일관성을 흔드는 세 가지 경로
피로나 컨디션 저하는 이 세 단계 가운데 어느 지점에든 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경기 기록만으로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부진이 나타날 수 있는 경로를 세 갈래로 나눠 본다.
- 투구 예측과 운동제어의 불일치

< 타자의 머리·시선 방향과 실제 공의 위치 관계 >
타자는 투수의 릴리스와 공의 초기 궤적으로 이후 경로를 예상한다. 동시에 뇌는 준비한 운동 명령이 어떤 스윙을 만들지도 미리 추정한다.
운동제어 이론에서는 이를 ‘순방향 내부 모델’이라고 부른다1. 타격은 스윙을 시작한 뒤 판단을 처음부터 바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러한 예측에 크게 의존한다.
이때 피로나 주의 상태의 변화가 투구 정보의 해석과 예측 정확도를 떨어뜨린다면, 타자는 실제 공과 자신의 예상 사이에서 더 큰 오차를 경험할 수 있다. 여기에 지나친 기술 수정이나 의식적 보상이 더해지면 일시적인 타이밍 오차가 장기적인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배트 스피드가 유지되는데 헛스윙과 Chase%가 늘어난다면 이 단계를 먼저 살펴볼 수 있다.
- 중추 피로와 운동 출력의 변화
근육 자체가 지치지 않았더라도 뇌와 척수에서 근육으로 보내는 신경 출력은 항상 일정하지 않다. 중추신경계에 피로가 누적되면 운동신경원으로 전달되는 중추 구동2이 감소하거나 신호가 전달되는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 그 결과 운동 출력의 일관성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 척수(spinal cord)의 운동신경원과 근섬유로 이루어진 운동단위(motor unit) >
타격은 골반과 몸통, 팔과 배트가 정교한 시간차를 이루어 움직여야 하는 작업이다. 중추 구동이 흔들리면 힘의 크기뿐 아니라 각 부위가 힘을 내는 시점도 달라질 수 있다. 같은 구종을 상대할 때 파울 방향이나 임팩트 지점의 변동이 커진다면 운동 명령과 협응의 변화를 살펴볼 단서가 된다.

< 연속 결합 동작으로서의 스윙 >
- 말초 피로와 흥분-수축 연결의 변화
뇌가 운동 명령을 내렸다고 해서 곧바로 근육이 힘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운동신경의 전기 신호가 근섬유에 전달되면 칼슘 이온이 방출되고, 근수축 단백질이 활성화된다. 전기적 신호가 기계적 수축으로 전환되는 이 과정을 ‘흥분-수축 연결(Excitation-Contraction Coupling, ECC)’3이라고 한다.

< 흥분 – 수축 모델 도식화 >
강한 근수축이 반복되면 근육 내부의 환경도 달라진다. 피로가 지속되면 동일한 신경 명령에도 근육이 만들어내는 힘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신경근 접합부 이후 힘을 생산하는 능력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초 피로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4
말초 피로는 힘의 크기와 발현 시점을 함께 흔들 수 있다. 타자는 평소와 같은 스윙을 했다고 느끼더라도 배트 스피드가 낮아지거나 궤적의 변동이 커질 수 있다. 배트 스피드와 회전 출력이 함께 줄고 통증이 동반된다면 이 단계를 우선 살펴볼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곧바로 타격 부진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말초 피로는 타자의 출력을 흔들 수 있는 여러 생리학적 경로 가운데 하나다.
사이클과 기복. 두 악우가 찾아왔을 때
타격감이 떨어지면 흔히 근력 저하나 신체의 이상부터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같은 스윙이 매번 동일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근육에만 있지 않다. 투구를 읽는 과정과 움직임을 조직하는 운동 명령, 실제 힘을 만들어내는 출력 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일관성이 무너졌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물론 모든 슬럼프를 신경계의 문제로 설명할 수는 없다. 실제 타격 성적은 표본 변동과 상대 투수, 기술 변화, 심리 상태, 통증과 부상 등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따라서 헛스윙률, 배트 스피드 등의 개별 지표가 원인을 확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단계를 먼저 점검할지 정하는 단서로는 작용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회복도 단순히 근력만을 되찾는 과정으로만 볼 수 없다. 투구 정보를 다시 정확히 읽고, 움직임의 시점을 조정하며, 근육의 출력을 되찾는 과정이 함께 포함돼야 한다.
타격 사이클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부진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않고 예측·명령·출력의 세 지점으로 나눈다면, 원인을 보다 구체적으로 점검하고 그에 맞는 대응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회복은 흐트러진 예측과 운동 명령, 실제 출력을 다시 하나의 시간선에 맞추는 일이다.
참조 =
Maffiuletti NA, Aagaard P, Blazevich AJ, Folland JP, Tillin NA, Duchateau J. Rate of force development: physiological and methodological considerations. European Journal of Applied Physiology. 2016;116(6):1091–1116. doi:10.1007/s00421-016-3346-6.
Kishita, Ueda & Kashino(2020), 김식현. 골격근의 활동 의존적 가소성. 대한고유수용성신경근촉진법학회지. 2008;6(1):41–51.
Driveline OpenBiomechanics
Daniel Walsh·Alan Sved, Motor unit,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Kishita, Ueda & Kashino(2020), Figure 1A–B, CC BY 4.0.
야구공작소 서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박인이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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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lpert DM, Miall RC, Kawato M. Internal models in the cerebellum.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998;2(9):338–347. doi:10.1016/S1364-6613(98)01221-2.
- 뇌와 척수가 운동신경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보내는 신경 출력.
- Calderón JC, Bolaños P, Caputo C. The excitation–contraction coupling mechanism in skeletal muscle. Biophysical Reviews. 2014;6(1):133–160. doi:10.1007/s12551-013-0135-x.
- Allen DG, Lamb GD, Westerblad H. Skeletal muscle fatigue: cellular mechanisms. Physiological Reviews. 2008;88(1):287–332. doi:10.1152/physrev.00015.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