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
지난 시리즈에서는 한국 야구에서 말하는 ‘지역성’을 다뤘다. 지역 특화로 설명되는 활동이 실제로 지역 간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확인했다.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영역과 생활권 안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영역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함께 다뤄지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프로그램의 이름과 형식은 다양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 운영 방식과 참여 경험에서는 유사한 흐름이 이어진다.
환경 영역도 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 야구장에서 진행되는 환경 관련 활동은 일정한 형태로 반복된다. 경기 전후 구장 주변 정화 활동이 대표적이다. 일회용품 줄이기 캠페인과 특정 기념일 참여 프로그램도 이어진다. 경기 종료 후 관중석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장면도 익숙하다.
하지만 관람 현장에서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말 경기에서도 자가용 이용 비중은 일정 수준 유지된다. 경기 중 식음료 소비는 대부분 일회용 용기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경기 전후 이동과 소비 방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여는 있었지만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홈구장 잠실 야구장의 경기가 끝난 후 >
왜 환경 활동은 걷기와 줍기에 머무르는가
현재 야구 생태계의 환경 활동은 몇 가지 행동으로 좁혀진다. 야구장 주변 걷기, 쓰레기 줍기, 분리배출이다.
이 방식은 실행이 쉽다. 참여 인원을 모으기에도 부담이 적다. 사진과 보도자료로 정리하기에도 유리하다. 그래서 많은 활동이 같은 형태로 반복된다. 경기 전후 구장 주변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다. 이후 수거량과 참여 인원을 기록해 발표한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눈에 보인다. 정리도 빠르다. 문제는 이 방식이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지점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기는 평균 3시간 이상 이어진다. 관중은 경기 전후와 관람 중에 여러 차례 식음료를 구매한다. 음료와 간식을 담은 용기는 경기 종료와 함께 폐기된다. 응원 도구도 사용 이후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 경기 후에 쓰레기를 수거해도 발생 방식은 유지된다. 분리배출을 안내해도 쓰레기통이 넘치면 일반폐기물과 재활용품이 섞인다. 부피가 큰 일회용기가 한꺼번에 쌓이면 현장 관리도 어려워진다. 수거 작업은 늘어나지만 발생량은 줄지 않는다.
과거 롯데 자이언츠의 ‘봉다리 응원’은 이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활동은 관중석 쓰레기 문제에서 출발했다. 구단은 관중에게 비닐봉를 나눠줬다. 팬들은 쓰레기를 좌석이 아니라 봉투에 담았다. 이후 봉투를 머리에 쓰고 응원하는 문화로 이어졌다. 관중석에 남는 쓰레기는 줄었다. 쓰레기통을 그라운드로 던지는 행동도 사라졌다. 현장 질서와 팬 참여가 동시에 확보됐다.

< 2006년 경기 전 관중에게 비닐봉지를 배포하며 시작된 ‘봉다리 응원’은 2019년 이후 중단됐다. >
하지만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정리 방식은 바뀌었지만 일회용품 사용은 유지됐다. 비닐봉지 역시 추가 폐기물로 남았다. 이 사례는 처리 방식의 개선에 머문다. 소비 방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현재 환경 활동도 같은 위치에 있다. 쓰레기를 어떻게 치울지에 집중한다.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조건은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비슷한 활동이 반복되고 결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알고 있지만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
야구장 쓰레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는 팬은 이미 많다. 문제는 인식이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회용기 사례에서 이 차이가 드러난다.
이유는 이용 과정에 있다. 관람객은 다회용기를 사용할 수 있는 매장을 찾기 어렵고, 반납 위치도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반납함이 부족하면 이동 동선이 길어진다. 관람객은 야구를 보러 온다. 경기 전에는 입장을 서두르고, 경기 중에는 짧은 시간 안에 구매를 마친다. 경기 후에는 인파 속에서 빠르게 이동한다. 이 흐름 안에서 번거로움이 생기면 기존 선택이 유지된다.

< NC다이노스가 대중교통 이용 활성화와 관람 접근성 개선을 위해 입장권 할인 제도를 도입했다. >
대중교통도 같은 구조다. 구단은 이용을 권장하고 일부 구장은 접근성도 좋다. 버스 배차 조정이나 티켓 혜택도 일부 운영된다. 하지만 안내는 대부분 혼잡 회피에 머문다. 환경을 위한 선택이라는 설명은 부족하다.
자가용 이용이 늘어나면 경기장 주변 정체가 심해진다. 대기 차량이 늘면서 배출가스도 증가한다. 경기 종료 후에는 환경오염 물질 배출이 특정 시간대에 집중된다. 이 영향은 관람 경험과 주변 생활권까지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 연결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관람객에게 대중교통은 환경 선택이 아니라 편의의 문제로 남는다.
이미 스포츠 생태계의 조건이 된 환경문제
환경은 이미 경기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폭염과 집중호우다. 최근 KBO리그는 폭염 대응을 위해 경기 시작 시간을 늦추고 있다. 일부 경기는 고온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관람객 안전을 위한 냉방 공간과 음수 시설 운영도 이전보다 중요해졌다. 더운 날씨가 길어질수록 전력 사용과 현장 운영 부담도 함께 커진다.
강수 패턴 변화도 영향을 준다. 우천 취소 자체는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리그 규모가 커지고 관중과 이동 수요가 늘어나면서 의미도 달라졌다. 우천 취소가 반복되면 일정 재편과 이동 일정 변경이 이어진다. 갑작스럽게 편성된 경기에서는 운영 인력과 교통 관리 부담도 함께 증가한다. 비가 많이 내린 뒤에는 그라운드 복구와 잔디 관리 작업도 추가된다.
환경 변화는 이제 경기 결과만이 아니라 경기장 안팎 운영 전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이제는 관람객 이동과 소비 방식, 경기 운영 과정까지 함께 관리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 우천으로 취소된 경기는 KBO리그 규정에 따라 재편성된다. >
이 변화는 단순히 날씨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스포츠 산업에서는 기후 변화 대응 자체가 운영 평가 기준으로 연결되고 있다.
국제 스포츠에서는 탄소 배출과 에너지 사용, 관람객 이동 방식까지 포함한 지속 가능성 기준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영국 등에서는 구단과 경기장이 공적 자금을 확보할 때 환경 계획 제출을 요구받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기업 역시 ESG 기준에 따라 후원 대상을 검토하는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즉, 지금의 환경 문제는 경기장 주변 정리 활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운영 과정에서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지가 리그와 구단의 평가 요소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준은 실제 운영에도 적용되고 있다. 경기장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팬의 이동과 소비 방식까지 포함한 변화가 요구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의 스포츠 기후 행동 협정이다. 이 협정은 스포츠 단체가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공개하고, 운영 과정에서 기후 영향을 줄이기 위한 계획과 결과를 지속적으로 관리하도록 요구한다. 경기장 시설 운영뿐 아니라 관람객 이동, 일회용품 사용, 에너지 소비까지 함께 관리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환경 문제를 별도 캠페인이 아니라 경기 운영 전체의 기준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K League는 국내 스포츠 단체 중 먼저 이 흐름에 참여했다. 2021년 UN에 서약을 제출한 이후 환경 책임 강화와 기후 영향 저감 등 다섯 가지 원칙을 이행하며 매년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리그 운영과 관람 경험을 함께 바꾸는 방향으로 기준을 맞추기 시작했다.
해외 구장 운영에서도 변화는 확인된다. NPB의 한신 타이거즈는 2군 구장에 에너지 절감 설비와 운영 기준을 함께 도입했다. 조명과 공조 시스템, 에너지 관리 체계를 통해 사용량을 줄이고 시설 이용 방식을 바꾸는 접근이다. 환경을 별도 활동으로 분리하지 않고 운영과 관람 경험 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한국 야구에서도 환경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다.

< 2군 구장 ECO 캠페인. 시설 운영과 선수 PR을 결합해 환경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
한국 야구의 환경 문제는 관람 방식이 바뀌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 야구의 환경 문제는 관람 방식과 연결돼 있다. 많은 관중이 경기 전후 차량으로 이동하고, 경기 중에는 일회용 용기를 사용해 식음료를 소비한다. 주말 경기일수록 경기장 주변 정체는 길어진다. 경기 종료 후에는 차량과 관중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혼잡도 커진다. 경기 중에는 짧은 시간 안에 구매와 소비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일회용품 사용도 쉽게 줄지 않는다.
관람객 수가 늘어날수록 폐기물 처리와 교통 관리 부담 역시 함께 증가한다. 경기 후 관중석을 정리하고 분리배출을 안내해도 이용 방식 자체가 유지되면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KBO리그도 환경 활동의 기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행사 참여 인원이나 쓰레기 수거량 중심으로 결과를 정리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는 경기장 운영 과정에서 실제 변화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구단별 대중교통 이용 비율과 경기 종료 후 주변 혼잡도를 시즌 단위로 공개하고 비교할 수 있다. 특정 시간대에 관중이 몰리지 않도록 출구별 분산 퇴장 운영을 도입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다회용기 역시 단순 도입 여부가 아니라 실제 회수율과 재사용 횟수까지 관리해야 한다. 경기별 폐기물 발생량 변화도 함께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경기 이후 얼마나 치웠는지를 보여주는 단계에서 벗어나, 관람 과정 안에서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 한국 야구의 환경 활동도 이제는 걷기와 줍기 이후의 단계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
참고 = 녹색연합, 부산광역시보, 매일일보, NC다이노스, SportsEngland, SSG랜더스, 한신타이거즈,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강상민, 박인이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최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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