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KBO 우승팀, 이제는 만나야 할 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

지난 4월 7일 미국 백악관에서는 익숙한 장면이 연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4년 MLB 월드시리즈 우승팀 LA 다저스를 초청해 우승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선수단은 백악관을 둘러보고 대통령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저스의 통산 8번째 우승을 기념하는 축사를 전했다. 클레이튼 커쇼는 선수단을 대표해 연설했고 대통령에게 그의 대수와 같은 4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타니 쇼헤이에게 “마치 영화배우 같다”며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장면은 화제가 됐다.

이처럼 미국에선 대통령이 스포츠 우승팀을 초청해 축하하는 문화가 오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때로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때로는 순수한 축하의 의미를 지니지만, ‘우승팀은 대통령을 만난다’는 명제는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이는 스포츠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체성과 결속을 확인하는 매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아직 낯선 풍경이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KBO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대통령을 예방한 전례는 없다. 연간 관중 수가 천만 명을 넘는 국민 스포츠임에도 대통령의 야구장 방문은 대부분 시구 행사에 국한된다. 시구 없이 야구장을 찾은 사례는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의 LG-롯데전 관람이 유일하다. 이 역시 ‘대통령도 한 명의 야구팬일 수 있다’는 인상을 남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장면은 한국에선 여전히 낯설까? 대통령과 프로스포츠 팀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스포츠는 공동체를 잇는 상징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우승팀 초청은 단순한 축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에서 스포츠는 오락을 넘어 애국심과 정체성의 상징이다. 슈퍼볼이나 월드시리즈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릴 때면 늘 ‘The Star-Spangled Banner(미국의 국가)’가 울려 퍼지고 전투기 편대가 상공을 가른다. 경기장은 단지 팬들의 열기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가치와 정서를 공유하는 상징적 무대다.

스포츠 스타들은 단순한 유명인을 넘어 사회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다. 1960년대 무하마드 알리는 병역을 거부하며 인종차별에 맞섰고 2016년 NFL 쿼터백 콜린 캐퍼닉은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으며 경찰 폭력에 항의했다. 2020년 MLB의 Black Lives Matter 캠페인 활동은 스포츠가 사회 정의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야구는 ‘National Pleasure’라는 별명처럼 미국 현대사 속에서 위로와 희망의 상징이었다. 조 디마지오는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한 시기를 지나던 미국 국민에게 큰 위안을 준 인물이다. 유럽에서 전쟁이 격화되던 1941년, 그는 지금도 깨지지 않은 56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세우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당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Did he get a hit?”이라는 인사가 일상처럼 오갔다. 이 일화는 야구가 미국인의 일상에 얼마나 깊이 녹아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백악관 초청의 전통은 1865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이 워싱턴 내셔널스와 브루클린 애슬레틱스 두 야구팀을 초청한 데서 시작해 15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엔 MLB뿐 아니라 NFL, NBA, NHL, 심지어 대학 스포츠 우승팀까지 대통령을 예방한다. 이 초청은 단순한 환대를 넘어 스포츠가 지닌 공동체적 가치와 사회적 통합의 가능성을 국가 차원에서 공인한다는 의미다. 우승팀의 주역들은 경기의 영웅을 넘어 국가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였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출처 = ESPN >

이처럼 스포츠와 정치의 접점이 제도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사회에서 스포츠가 단지 여가 활동이 아닌 ‘정체성의 일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특히 야구는 미국의 근대화와 함께 성장하며 국민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이러한 인식이 제도적 관행을 뒷받침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선 국가와 스포츠의 관계가 훨씬 느슨하다. 대통령 혹은 총리가 프로팀을 공식 초청하는 일은 드물다. 일본이나 대만, 멕시코처럼 야구가 인기 있는 국가에서도 이러한 관행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배경이 한국에는 기회가 된다. 기존에 없던 관행이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를 담을 여지가 크다. 단 한 번의 ‘의미 있는 시작’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야구가 될 수 있다.

 

KBO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정치적 성향이나 지역, 계층을 넘어 사람들이 하나의 팀을 응원하고 그 승리를 함께 기뻐하는 경험은 사회 전반의 정서적 통합을 가능케 한다. 대통령이 직접 우승팀을 축하하는 장면은 스포츠를 매개로 형성된 감정의 연대를 국가 차원에서 끌어안는 행위이자 정치가 시민의 감정에 다가서는 보기 드문 방식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런 만남은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첨예했던 2016년 대선 이후 열린 시카고 컵스의 백악관 방문이다. 당시 대통령이던 버락 오바마는 컵스의 라이벌인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팬이었다. 그는 “컵스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지만 화이트삭스 팬 중에서는 내가 최고의 컵스 팬이라는 걸 알아달라”며 유쾌하게 대통령이 우승팀의 유니폼을 입는 전통을 피해 갔다. 이에 컵스 구단은 홈구장 리글리필드의 평생 입장권을 선물하며 재치 있게 화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우리 역사를 통틀어 스포츠는 나라가 분열됐을 때도 우리를 하나로 묶는 힘이 있었다”고 말하며 스포츠가 지닌 통합의 힘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스포츠인이 대통령을 만나는 경우는 종종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뒀을 때로 한정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축구대표팀의 거리 퍼레이드와 함께 청와대 만찬이 있었다. 당시 주장 홍명보 선수는 대통령을 만나 병역 문제 해결을 직접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대통령을 예방했다는 소식은 아직 들려온 적이 없다. 이는 단순히 전례가 없어서가 아닌 한국 사회가 프로스포츠라는 문화 콘텐츠를 어떤 위치에 두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면이다.

2009년은 이 질문을 가장 선명하게 던질 수 있었던 해였다. 봄에는 김인식 감독이 이끈 WBC 대표팀이 일본과의 연전 끝에 결승에 진출하며 전국을 열광시켰다. 비록 마지막 경기에서 아쉽게 패배했지만 준우승이라는 결과는 국민적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표팀은 귀국 직후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하며 “국가 브랜드를 높인 값진 성과”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해 가을 KBO리그에서도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졌다. KIA 타이거즈는 7차전까지 가는 치열한 승부 끝에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아킬리노 로페즈의 완봉승, 나지완의 7차전 끝내기 홈런 등 그해 가을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한국 야구가 쌓아온 서사의 정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KIA 선수단이 청와대를 찾았다는 기록은 없다.

국가대표팀이 국위 선양이라는 공적 상징성을 가진 예우의 대상임은 분명하다. 국제대회의 성취는 한 국가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프로스포츠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도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KBO 리그는 규모와 사회적 파급력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단순한 여가를 넘어선 공적 기반 위에 서 있다.

40년이 넘는 역사와 정서가 쌓인 KBO리그는 중요한 국가적 상징이며 사회적 맥락으로 자리 잡았다. 프로야구가 보여주는 감동과 서사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적 자산이다. 하지만 그 가치를 공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 차이를 방치할 것인지, 아니면 성숙해진 프로스포츠에 걸맞은 새로운 인정 방식을 마련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야구는 이 새로운 전통을 시작하기에 가장 적합한 종목이다.

첫째, 프로스포츠 중 전국적인 인지도가 압도적으로 높고 세대 간 공통 감수성이 형성되어 있다. 한국에서 야구는 40년 넘게 ‘서민의 스포츠’로 자리 잡아왔다.

둘째, 야구는 특정 연고지 기반이면서도 전국적 응원을 끌어낼 수 있는 종목이다. 지역 연고는 뚜렷하지만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지지가 분산돼 있다.

셋째, 야구는 경기 수가 많고 시즌이 길어 팬과 구단, 지역 사회가 오랜 시간 서사를 공유한다. 특정 팀의 우승은 단순한 결산이 아니라 한 해에 걸친 희망과 좌절, 감정과 연대의 압축이다.

마지막으로, 야구계는 이미 비교적 안정된 리그 운영과 미디어 노출 구조를 갖추고 있어 상징적 메시지를 수용할 여건도 갖추고 있다. 야구가 시작한다면 다른 종목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 이제 우리도 대통령이 국가대표가 아닌 프로구단 유니폼을 입어야 할 때다. 출처 = SportsLogos.Net >

 

더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지금 한국 사회는 비토크라시1로 인해 양극화와 정치적 피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줄어 정치는 국민의 삶과 멀어졌다. 진영 논리는 갈수록 정교해지고 타협은 점점 더 비현실적인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비교민주주의 연구들은 포퓰리즘의 확산과 민주주의의 퇴행에 대한 경고를 지속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통령과 KBO 우승팀의 만남은 작지만 의미 있는 균열이 될 수 있다. 스포츠는 유일하게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감정적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공통언어다. 누구나 박수칠 수 있는 장면, 논쟁이 아닌 위로가 되는 풍경, 정파를 초월한 감정의 연대. 그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 아닐까.

또한 이러한 방문은 종종 지역 사회 봉사 활동과 연계되어 진행된다. MLB 팀들은 백악관 방문 일정에 맞춰 지역 고등학교에 야구 장비를 기증하거나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부상 군인과 환자들을 찾아 위로를 전하는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병행한다. 이는 단지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데 그치지 않고 스포츠 스타들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많은 선수들은 백악관 방문 전후로 공공기관과 연계된 행사에 참여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발휘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만남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으로 기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WNBA 우승팀 디트로이트 쇼크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여성 스포츠에 대한 지원 확대를 건의한 바 있다. 일부 대학팀이나 지역 기반 구단들도 체육 인프라 개선이나 유소년 스포츠 지원 등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스포츠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과 공공적 가치를 함께 지닌 문화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정치권의 조심스러움도 이해는 간다. 지역 연고 중심의 KBO리그 특성상 대통령이 특정 팀을 응원하거나 공식 행사에 초청하는 것이 정치적 편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정치인조차 지역색을 의식해 특정 팀에 대한 응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부담을 느낀다. 정치인의 시구조차도 팀 선정이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공개적 행보는 더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또한 스포츠 스타들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경계심 역시 여전해 스포츠는 여전히 공적 담론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상태다.

하지만 새로운 전통은 단 한 번의 시작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몇 가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스포츠에 대한 국가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특정 종목이나 대표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스포츠의 성과가 사회적으로 공인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연간 천만 명이 야구장을 찾고 지역 경제와 공동체를 지탱하는 시대에 이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둘째, 이러한 만남이 유소년 스포츠 육성, 지역 체육 인프라, 공공성 확대 등에 대한 제안과 연계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물론 이는 반드시 담아야 할 조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기회로 존재할 것이다. 그런 만남이 하나둘씩 쌓이면 스포츠는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 신뢰를 갖는 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셋째,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대통령 초청이 정치적 계산이 아닌 스포츠의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자리라는 믿음이 있어야만 이 문화는 오래 지속될 수 있다. 미국에서도 대통령 초청을 거부한 사례들이 있었지만 초청이라는 제도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것이 정권의 이벤트가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예우라는 인식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시작할 때다

스포츠는 공동체를 하나로 잇는 가장 강력한 매개다. 대통령이 국민과 기쁨을 나누는 장면은 결코 정치적 부담이 아니라 정치의 본령에 가까운 일이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KBO 우승팀이 대통령과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때다. 현장에서도 이미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준 바 있다.

이것은 단순한 행사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스포츠가 사회에서 어디까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처음은 미국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야구장을 한 번 더 찾아도 좋고, 우승팀에 대한 축전도 좋다. 하지만 대통령이 KBO 우승팀을 초청하는 그 첫 장면은 스포츠가 사회와 더 깊이 이어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언젠가 한국시리즈 우승팀이 영빈관에서 대통령과 함께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왜 KBO 우승팀은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바라는지에 대한 더 깊은 물음을 품고 있다.

그 물음에, 이제는 응답할 때다.

 

참조 = MLB, ESPN, The New York Times, NBC News, 조선일보

야구공작소 김예찬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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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토크라시(Vetocracy) : ‘거부’를 뜻하는 ‘비토(Veto)’와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성어로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모조리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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