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양정웅] 벌써 10년이 지났다. 2019년 5월 23일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기다. ‘정치’라는 분야에서 노 전 대통령은 여러 이야기를 남겼다. 그런 여러 이야기를 하기에 이 자리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의 삶이지만 우리는 그의 64년 인생에서 ‘정치’가 아닌 ‘시구’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내고자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 외의 도시에서 시구했던 역대 첫 번째 대통령이다. 그가 공을 던진 곳은 2003년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린 대전이었다. 부산 야구 명문인 부산상업고등학교(현 개성고등학교)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이 포수 조인성에게 던진 공은 역대 대통령 시구 중 가장 스트라이크에 가까운 공이었다.
현 문재인 대통령까지 합해 19대, 13명의 대통령 가운데 야구장에서 시구를 한 건 총 9명. 그중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시구를 했던 사람은 8명이다. 마운드, 혹은 관중석에서 포수를 향해 공을 던졌던 이들의 모습을 돌아보자.
프로 시대 이전의 시구 –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1948년 대한민국에 대통령제가 도입된 후 최초의 대통령 시구는 이승만 대통령이 했다. 3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던 이 대통령은 1958년 10월 21일 서울운동장 야구장(후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방한 경기에 시구자로 나섰다. 상대는 서울 올스타였는데, 사실상 국가 대표나 마찬가지였다. 오랜 미국 생활로 야구가 익숙했을 이 대통령은 볼을 받은 포수 김영조에게 거의 비슷하게 공을 던졌다.
이승만 대통령의 시구는 우리가 아는 시구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최근엔 마운드에서 시구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1950년대엔 미국에서도 대통령이 관중석에서 그라운드로 공을 던져 시구했다. 이를 따라 이 대통령도 내야 중앙 객석에서 공을 던졌다. 이날 경기는 1회 초 노아웃에서 구원 등판한 김양중의 기적에 가까운 9이닝 2실점 호투에도 불구하고 서울 올스타가 0:3으로 졌다.
미국 대통령 중 최초로 마운드에서 시구를 한 사람은 1984년 당시 대통령이던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최초로 마운드에서 시구한 대통령은 누구일까? 무려 미국보다 23년이나 앞선 1961년 윤보선 대통령이었다. 윤보선 대통령은 조선일보 주최 추계 야구대회에서 마운드에 올라 시구했다.
미국보다 먼저 마운드 시구를 한 것은 일본의 영향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1900년대 초반부터 시구를 도입했는데, 초기부터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형식을 취했다. 미국 생활을 했던 이승만 대통령과는 달리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윤보선 대통령은 구태여 미국식 시구를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구자로 나섰다. 1966년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운동장 야구장의 첫 야간경기(제일은행-한일은행) 점등식에 참석해 시구했다. 반년 후인 1967년 4월 25일에는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선린상업고등학교-장충고등학교)에서 시구를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에도 시구를 했다. 한미친선야구대회(1961년), 각 군 대항 연식야구대회, 정부 각 기관 대항친선야구대회(이상 1962년) 등 총 세 차례였다. 특히 1962년에 열린 각 기관 대항친선대회에서는 국가재건최고회의 팀의 2번 타자로 출전해 안타도 기록했다.
프로 시대 이후(1) – 전두환, 김영삼
1967년의 시구 이후 한동안 명맥이 끊겼던 대통령 시구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부활했다. 1982년 3월 27일 서울 종합운동장에선 삼성 라이온즈와 MBC 청룡의 프로야구 첫 경기가 열렸다. 만원 관중이 운집한 역사적인 프로야구의 첫 경기, 첫 시구자로 나선 사람은 바로 전두환 대통령이었다. 당시의 시대상을 말해주듯 심판은 유난히 큰 동작으로 스트라이크 콜을 했고 해설자는 시구를 칭찬하기 바빴으며, 외야 관중석에는 전 대통령 모양의 카드섹션이 펼쳐졌다.
노태우 대통령 때 잠시 쉬어갔던 대통령 시구는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 다시 나왔다. 김 대통령은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LG-태평양) 시작으로 1995년 프로야구 개막전(LG-삼성),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OB-롯데) 등 총 3회에 걸쳐 시구를 했다. 대통령 신분으로는 가장 많은 기록이다. 정규시즌뿐 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도 시구했다. 야구 명문 경남고 출신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은 초선 국회의원 시절 여야 국회의원 야구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프로 시대 이후(2) – 지방 구장 시구의 시대
여섯 번째 대통령 시구는 8년 뒤인 2003년에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 이 시구의 주인공은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의 시구는 대통령의 첫 지방구장 시구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유일한 올스타전 시구다. 휴먼 로봇 ‘아미’가 전달해준 공으로 시구를 한 노 대통령은 올스타 선수들을 격려한 뒤 3회까지 경기를 관람했다.
17대 이명박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시구를 한 적이 없다. 대신 2003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현대-SK)에서 서울특별시장 자격으로 시구를 했다. 이 대통령은 재임 시절이었던 2011년 9월 3일 잠실에서 LG와 롯데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기도 했다. 전광판 키스타임 때 영부인과 카메라에 잡히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의 한국시리즈 시구는 2013년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진다. 박 대통령은 잠실에서 열린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 시구자로 등장했다. 보안 유지를 위해 경기 시작 15분 전에 등장한 박 대통령은 한국시리즈 기념 점퍼를 입고 시구를 했다. 대통령이 정장이나 캐주얼이 아닌 야구 관련 옷을 입고 시구를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부녀 대통령 시구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올스타전 시구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맡았다. 19대 대선 당시 문 대통령은 ‘시구를 해 줬으면 하는 구단’ 투표에서 1위를 한 팀에서 시구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는데, 당시 KIA 타이거즈가 1위를 차지했다. 경기 시작 전까진 시구자가 김응용 전 감독으로 알려졌었는데, 이는 보안 유지를 위한 연막이었다. 대신 김 감독은 문 대통령에게 시구 지도를 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대통령의 시구는 보안이 생명
대통령이 지나가는 모든 동선에는 경호의 손길이 미친다. 대한민국 국가원수이자 국군 통수권자이기 때문에 만에 하나 있을 상황에도 대비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의 시구에는 철저한 보안과 경계가 동반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시구 당시 김옥경 심판은 대통령의 시구 계획을 발설했다는 이유로 모처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옥경 심판과 실제 개막전 구심이던 김광철 심판 간의 이야기가 엇갈리지만, 그만큼 보안을 중요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도 취임 후 시구를 할 계획이었다. 2008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시구를 하려 했는데 계획이 사전에 유출되면서 취소됐다. 대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구를 했다.
대통령의 시구가 결정되면 경기장엔 경호인력들이 깔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구 당시 경호원이 심판 복장을 하고 2루심으로 위장해 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같은 경호 방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시구 때는 대통령의 옆에서 등장한 구단 마스코트 철웅이와 블레오가 사실은 경호원이었던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기장 안팎으로도 삼엄한 경비가 이뤄진다. 이와 관련해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1995년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LG의 선발투수였던 이상훈은 차를 타고 잠실야구장에 출근했다. 그런데 당시 잠실야구장은 대통령 경호 문제로 차량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었다. 이를 모르고 야구장에 왔던 이상훈은 경찰 관계자와 몸싸움까지 하며 간신히 지각을 면했다. 겨우 선발로 등판한 이상훈은 8회 마운드를 내려올 때까지 1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에디터 = 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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