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
프로야구로도 사회 공헌이 가능할까.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분야가 최근엔 제법 어울리고 있다. 세간의 관심도 늘었고, 관련 마케팅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가장 적극적인 게 금융권이다. 금융사는 대고객 접점 서비스를 제공한다. 금융사에게 사회공헌활동은 마케팅의 일환이다. 경기장 밖에서도 잠재고객에게 기업 및 브랜드명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시각적・청각적으로 노출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2018년부터 올해까지 KBO 리그 타이틀 스폰서십을 맡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20년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야신야덕의 ‘야구의 신, 더 레전드’ 영상 제작을 지원했다. 은퇴선수가 출연해 야구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콘셉트였다. 선수가 목표를 달성하면 기부금을 적립했고 적립한 기부금으로 소아암 환아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했다. 또한 이승엽 장학 야구재단과 협력해 ‘이승엽 드림 야구캠프 위드 신한은행’을 전국으로 확대, 유소년 스포츠를 지원한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연고 정착에 성공한 프로야구는 지방금융지주들의 사회공헌활동과 마케팅 전략으로 효과를 발휘했다. 전국 스포츠 팬들을 대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상품 판매를 촉진하는 좋은 기회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현재는 국내 프로스포츠의 사회공헌활동이 기업과 상품의 홍보 수단으로 인식되는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과거에도 프로야구에서 사회공헌활동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부산에서 거주하며 임수혁 돕기를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경험하고 자랐다. 2000년 4월 18월 롯데 자이언츠의 포수 임수혁이 LG 트윈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 상조회는 그가 사망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매년 비시즌 부산에서 불우이웃 돕기 및 임수혁 가족 돕기 행사를 주최했다. 선수들은 행사를 찾은 손님에게 직접 음식을 서빙했다. 사인볼, 유니폼 등 상품을 현장에서 판매했고 포토타임도 열었다. 당시만 해도 사회공헌, CSR, ESG 등의 단어는 확산하지 않을 때였다. 처음엔 선수와 선수 가족을 돕는다는 취지로 시작된 활동이었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 팬뿐만 아니라 많은 부산 시민이 12월만 되면 행사를 기다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행사에 참여하려는 학생들 때문에 학원 시간이 조정되기도 했다. 야간자율학습을 쉬는 학교들까지 있었다. 정규시즌이 아니라 이 행사로 유입된 팬도 적지 않았다. 필자도 그중 하나였다. 많은 부산 시민이 12월만 되면 행사를 기다리고, 이벤트를 계기로 시범경기와 정규시즌을 보러 갔다. 행사에서 교류했던 2군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2군 구장인 경남 김해에 위치한 상동구장에 찾아가는 학생 팬들도 적지 않았다.
이 행사로 임수혁과 그가 겪은 일에 대해 많은 사람이 문제의식을 가졌다. 이는 학교 교육과 스포츠지도 현장에도 영향을 끼쳤고, 부산 지역 내에 구급차가 지나가면 차들이 비켜주는 문화도 확산되었다.
임수혁 돕기 행사는 사회공헌활동이 선수와 가족을 돕는 것을 이상으로, 기업과 구단의 홍보 이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한다.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문화를 주도하고 스포츠의 가치와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는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려준다.
< 사진 출처 = 롯데 자이언츠 >
사회공헌활동의 정의와 의의
CSR, ESG, SDGs 등 다양한 단어들을 미디어에서 접할 수 있지만 개념이 정확히 정의되지 않은 채로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다.
1. 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 사회적 책임이라고도 불리는 CSR은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동시에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2. ESG (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을 의미하며,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다. 환경 측면에서는 기후변화, 에너지 사용 등을 포함한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노동관계, 인권, 사회적 평등 등을 고려한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기업의 투명성, 윤리적 책임 등을 일컫는다.
3. 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를 뜻한다. 유엔이 제시한 17가지의 목표로 구성돼 있다. 국가 및 기업이 지구촌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촉진한다.
SDGs, ESG, CSR는 어느 쪽도 최종적으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 개념은 아래 그림과 같은 관계를 가진다.
국내 프로야구의 사회공헌활동
1. CSR의 실천 사례
국내 프로야구의 CSR 활동 중 대표적인 예로는 연고 지역사회에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제공하거나,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것이 있다. 기아 타이거즈의 다문화가족 주말 야구 체험 캠프가 좋은 사례다. 캠프 초청 대상은 광주, 전남, 전북 지역에 있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 40명이다. 기아 타이거즈는 주말 동안 이들을 함평 챌린저스 필드로 초대해 야구 기술 훈련과 시합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구단은 이를 통해 ‘재능 기부’와 함께 사회 다양성과 포용성까지 함께 실현했다.
CSR은 사회공헌과는 별개의 개념이나 국내에서는 둘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CSR 개념을 국내에 도입할 때 기업들은 세계 유망 기업의 기부자 적 역할 수행 사례들을 참고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기업의 기부자 적 역할 자체는 CSR의 기원이며 높이 평가된다. 다만 현대 사회의 CSR은 ‘기부’와 같이 특정 계층이나 단체에서 요구받았을 때 필요한 것을 지원해 주는 수동적인 형태가 아니다.
기아의 다문화가족 야구 체험 캠프 역시 마찬가지다. 해당 사례는 사회 다양성을 반영하고 사회적 가치를 재능 기부와 연계한 행사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단발적인 행사라 지속성이 부족하다.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다문화 가정이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다. 다문화 가정이 겪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지원하는지에 대한 방안도 제시해야 현대적 CSR에 보다 적합한 행사가 될 수 있다.
< 사진 출처 = 기아 타이거즈 >
2. ESG의 실천 사례
국내 프로야구의 ESG 실천 사례로 SSG 랜더스의 ‘함께 으쓱(ESG) 프로젝트’가 있다. 이 프로젝트는 ‘시너지’, ‘연대’, ‘상생’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이마트24와 함께 ‘삼진 기부 캠페인’ 및 종이 배송 봉투를 활용한 친환경 응원 도구 제작 등을 추진했다. 이는 야구장 운영 시 에너지 효율성 향상과 재활용 실천으로서의 환경(E) 활동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지역주민 대상의 사회적 가치(S) 해결 및 선수들과 관련된 노동 조건 개선 및 다양성과 포용성을 증진하는 거버넌스(G) 활동도 고려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아직도 국내 사례들은 E(환경)에 치중된 편이다. 활동 내용보다는 그 존재를 홍보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점이 보완이 필요하다. 국내 ESG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여전히 환경(E) 홍보 중심의 ESG 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사회적 가치(S)와 거버넌스(G)에 대한 중요성이 뒤처지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국내야구에서도 나타난다. 구단들 역시 사회적 가치와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야구단 및 모기업은 단순히 환경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거버넌스에 대한 활동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CSR 및 ESG는 자선 활동이 아닌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활동임을 인식해야 한다.
< 사진 출처 = 신세계 그룹 뉴스룸 >
3. SDGs의 실천 사례
국내 프로야구의 SDGs 실천 사례 중 하나로 롯데 자이언츠의 사회공헌활동이 있다. 롯데자이언츠는 유니세프(UN아동기금) 한국위원회와 파트너십을 맺어 SDGs의 목표를 추진하며 공동 사회공헌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사회공헌활동은 스포츠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구단과 철학이 일치하고 양질의 사회공헌활동을 실천하는 스폰서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함께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좋은 SDGs 실천 사례로 볼 수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유니세프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지난 10년 이상 동안 유니세프를 후원하고 유니세프 데이(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도 왔다. 또한 이들은 자이언츠 수과학놀이 15만 부를 제작하고 연고지역 초등학교에 무상으로 제공 중이다. 어린 학생들은 롯데자이언츠 캐릭터가 그려진 놀이북을 활용해 수학과 과학을 보다 쉽고 즐겁게 접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활동은 롯데 그룹의 SDGs 추진과 함께, ‘여성·아동, 환경, 상생’ 등의 목표를 기반으로 실시되고 있다. 국내 기업 중 SDGs를 실천하는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롯데 기업 특성상 일본 사회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UN회원국으로서 SDGs를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야구 레슨장 단위에서도 SDGs 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 구단은 SDGs를 통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글로벌 가치’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기존 ESG 중심 사회공헌활동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보완할 점이 있다. SDGs가 담고 있는 철학과 구체적인 목표를 어떻게 사회에 구현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의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래서 기업의 철학과 연계된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업 외부에서도 해당 기업의 활동이 어떻게 그 철학을 반영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 사진 출처 = 롯데 자이언츠 >
※ 본 칼럼은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참고 = 착한 자본의 탄생(김경식 저), Gratton, Chris; Preuss, Holger (2008). “Maximizing Olympic Impacts by Building Up Legacies”, ISO26000(국제표준화기구 사회적책임 표준), 일간스포츠 etc.
야구공작소 천태인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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