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티켓은 없다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LG 트윈스의 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끝났다. 29년 만의 우승만큼 화제가 된 건 티켓이었다. 전량 온라인 예매가 이루어진 탓에 고령층 팬들은 표를 구하기 힘들었다. 특히 LG에는 MBC 청룡 때부터 야구를 봐온 올드팬이 많았다. 소량의 티켓이라도 현장 판매해 달라는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컸다.

올드팬이 느낀 ‘디지털 소외’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필자 역시 티켓 일부를 현장 판매하는 제도에 동의한다. 다만 KBO, 구단, 협력사 측은 반기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 예매는 수익 확보와 운영 측면에서 매우 편리하기 때문이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계속되는 한 고령층은 야구장에서까지 디지털 소외를 경험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디지털 포용’ 아이디어 세 가지를 제시한다. 현장 판매만큼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최대한 점진적인 접근법을 담았다. 본격적인 논의 전에 ‘디지털 소외’의 원인부터 제대로 들여다보자. 

 

온라인 예매를 어려워하는 이유

노인들은 왜 온라인 티켓예매를 어려워할까? 신경 마케팅 분야의 전문가 한스-게오르크 호이젤 박사는 아세틸콜린이라는 호르몬에서 원인을 찾는다. 아세틸콜린은 학습 능력을 담당한다. 나이가 들면 아세틸콜린 분비량이 줄어든다. 정보처리 능력과 처리 속도도 덩달아 느려진다. 25세가 초당 약 40비트의 정보를 처리하는 반면 65세는 해당 수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고령층은 화면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한다. 디지털 기기에 친숙하지 않다는 점도 주된 원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만지며 자란 젊은 세대와 다르다. 노인들은 기기/서비스별로 다른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조사 결과도 앞선 내용을 뒷받침한다. ‘2021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이상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은 ‘인터넷 비 이용층’ 중 고령층이 98.4%였다. 비이용 이유로는 78.9%가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를 꼽았다. 

< 출처 = 2021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노인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기차표를 끊거나 식사를 주문하는 것과 같은 일상 활동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지자체 차원에서 인터넷/키오스크 사용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야구 티켓 예매 같은 특수한 활동은 어디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자녀에게 매번 부탁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디지털 소외’를 극복하는 ‘디지털 포용’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지털 포용 전략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첫 번째는 UX/UI 리디자인이다. 단순히 글자를 크게 키우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컨대 한 페이지에 하나의 정보만 제시하는 방법이 있다. 정보 처리 속도가 느린 고령층의 특성을 고려한 디자인이다. 전체 구매 여정이 길어질 수 있으니 진행 바를 삽입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야구 예매에 적용한다면 마치 OX 퀴즈를 만드는 것처럼 페이지를 디자인할 수도 있겠다. 인원, 좌석 구분, 주차 여부를 차례로 물으면서 여러 답안을 선택지로 제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고객 연령대에 맞는 세일즈 문구를 활용하는 일이다. 

‘2022 디지털 정보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 비 이용 고령층의 97.7%는 앞으로도 인터넷을 이용할 의향이 없음을 드러냈다. 힘겹게 UX/UI를 개선해도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표현을 바꾸는 것만으로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세일즈 문구는 마케팅을 논할 때 쉽게 놓치는 것 중 하나다.

< 출처 = 2022 디지털 정보격차 보고서 >

고령층에게 세일즈할 때는 두 가지를 지켜야 한다. 바로 ‘간단’과 ‘안심’이다. 노인들은 정보처리 속도가 느리다. 핵심만 간단하게 전달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적합한 창의적인 세일즈 문구에도 흥미를 잘 느끼지 못한다. 따라서 행동 변화가 적다는 것을 강조하거나, 그들에게 익숙한 것과 비교하는 접근법이 효과적이다.

예) “5가지 질문에만 답하면 티켓이 자동으로 예매됩니다.”
      “매표소 직원의 질문에 답하듯이 버튼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미디어 플라자’를 도입할 수 있다. 이는 정순둘 교수와 남석인 교수가 제안한 모델이다. 시니어 디지털 플라자는 노인들의 디지털 학습 공간이다. 언제든 방문할 수 있고, 눈치 볼 필요 없이 일대일로 마음껏 질문할 수도 있다. 

이에 착안해 ‘베이스볼 디지털 플라자’를 열 수 있다. 야구장 주변 팝업 부스 혹은 지역 내 공공 예약 공간을 이용한 행사로 작게 출발하면 된다. 만약 봉사 시간이 인정된다면 온라인 환경에 익숙한 중고등학생을 자원봉사자로 초빙할 수도 있겠다. 야구라는 공통된 주제로 소통하며 노인들의 외로움 역시 해소될 수 있다. 현실화된다면 단순 야구 표 예매를 넘어 단절된 1, 3세대 간 소통의 창으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경제적&사회적 관점의 조화

이쯤에서 반박하고 싶을 것이다. 이 귀찮은 일들을 누가, 왜 해야 하는가? 야구 티켓은 충분히 잘 팔리는 중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이 글은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인간이 완전히 합리적인 존재(Econ)가 아니듯, 경제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다. 때로는 사회적인 관점도 필요하다. 고전 경제학 논리에 지배되던 기업도 사회공헌과 ESG 경영을 추구하는 시대다.

애플의 주주총회는 ‘관점의 공존’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누군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능을 개발하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투자자본수익률(ROI)이 형편없는 일에 왜 투자하냐는 것이었다. 최고경영자 팀 쿡은 공식 석상임을 감안하면 아주 강력한 표현으로 반감을 표시했다. “우리는 그 문제에 대해 x같은(Bloody) ROI는 따지지 않습니다.”

티켓 역시 협력사, 구단, 협회, 나아가 팬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프로야구는 지금까지 사회적 가치가 컸던 산업이다. 그만큼 특정 계층이 소외되는 현상이 반갑지만은 않다. 이럴 때일수록 팬들의 작은 관심이 도움이 된다. 얼마 전, 한국시리즈 티켓을 65세 이상 팬에게 정가 양도하겠다는 글이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노력이 하나둘씩 모일수록 제도적인 변화도 힘을 얻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소외’에 맞서 ‘디지털 포용’을 고려하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했다. 오늘날 야구가 사랑받을 수 있게 해주었던 이들이 점점 야구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표현을 빌리면, 어떤 것들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어야 한다. 저 유리집에다 넣어 그냥 그대로 간직해야 한다. 현장 판매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고령층 팬들도 자유롭게 예매하고 직관하는 날을 위해 다 함께 고민해 볼 때다. 

 

참고 자료 = 『뇌, 욕망을 풀다』, 《2021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2022 디지털 정보 격차 보고서》

야구공작소 조훈희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오연우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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