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유망주 (2)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재빈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유망주 (1)

6. 두산 베어스 – 외야수 김인태 (2013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4번)

“내가 어렸을 때 널 알았다면, 우린 아주 행복했을텐데.” – Wish I Knew You, The Revivalists(2016)

시곗바늘을 2014시즌으로 돌려보자. 신생팀 kt의 1차 지명 선택을 받은 박세웅(현 롯데)은 퓨처스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다. 입단 3년 차를 맞은 구자욱(삼성)은 상무에서 퓨처스리그 타격왕을 차지하면서 삼성 팬들을 설레게 했다. 김하성(현 샌디에이고)은 팀 내 고졸 지명자 임병욱, 임동휘(개명 후 임지열)을 뛰어넘는 성장세로 KBO 무대 데뷔에 성공했다. 이 선수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팀의 주축 선수로 활동하거나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야구의 대표 선수들이다.

하지만 당시 이들을 뛰어넘는 최고 유망주는 다름 아닌 김인태였다. 외야수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순번인 1라운드 4번에 지명된 김인태는 입단 2년 차 .325/.448/.549 8홈런으로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파워와 내야 수비가 아쉽다는 평의 구자욱, 타격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던 김하성, 파워만 월등했던 강승호에 비해 모든 툴이 고르게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정교한 컨택트 능력과 선구안까지 다듬으면서 일반적인 ‘툴가이 유망주’에서 볼 수 없는 타격 완성도를 보여줬다.

김인태가 마주한 벽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다. 바로 팀의 외야 경쟁자들이었다. 당시 두산의 주전 외야수는 김현수(현 LG), 정수빈, 민병헌이었다. 세 선수는 2014시즌 KBO에서 11.9의 sWAR을 합작한 KBO 최고의 외야진이었다. 백업 자원으로 유력했던 정진호 또한 퓨처스리그 레벨에서 검증된 자원이었다. 이 외야진 때문에 기존 외야 유망주인 박건우(현 NC)는 만 24세 시즌까지 퓨처스리그에 머물러야 했다. 이외에도 김인태와 같이 지명된 이우성(현 KIA)이 마찬가지로 퓨처스리그에서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두산은 이런 유망주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는 팀이 아니었다. 주전 외야수 민병헌 또한 유망주 시절 탄탄한 주전 외야진에 밀려 출장 기회를 잡지 못해 만 26세부터 풀타임 시즌을 보냈다. 여기에다 2015시즌 후반 콜업된 만 25세의 박건우가 훌륭한 활약을 보여주면서(175타석 .342 .399 .513) 김인태를 위해 기회를 만들어 줄 이유는 더욱 사라졌다. 그 이듬해인 2016시즌에는 김현수가 메이저리그로 진출했지만, 그 자리는 만 27세의 중고 유망주 김재환이 완벽하게 메웠다(2016년 .325 .407 .628 37홈런). 두산의 ‘유망주 숙성’ 전략은 연이은 성공으로 당위성을 얻었다. 결국 김인태는 전역 후 첫 시즌인 2015시즌부터 2017시즌 3년 동안 단 63타석의 기회를 받는 데 그쳤다.

이후에는 크고 작은 부상이 김인태의 발목을 잡았다. 주전 중견수 정수빈이 빠진 외야 한 자리를 드디어 차지하나 했지만 옆구리 부상으로 한 달 반을 이탈했다. 정수빈이 복귀하자 줄어든 기회도 대주자로 활용도가 높은 조수행에게 주로 주어졌다. 2021시즌 공수에서 기량이 다소 떨어진 정수빈을 밀어내고 우익수 선발 기회를 받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었으나(418타석 .259 .373 .378 wRC+ 113) 이듬해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올해도 어깨 탈구 부상을 당하며 현재까지 재활 중이다.

부상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 김인태의 운동 능력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유망주 시절 기대했던 파워와 주루를 지금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김인태는 리그에서 손꼽는 참을성을 보유한 타자다. 2021시즌 이후 꾸준하게 14% 대의 BB%를 유지했다. 아웃 존 스윙률(OZSwing%) 또한 동 기간 20% 초반대로 상당히 좋은 편. 2021시즌에는 아웃 존 스윙률에서 규정타석 50% 이상을 소화한 타자 98명 중 뒤에서  15위를 기록했다. 툴가이로서의 면모는 보기 힘들지만 타석에서는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는 타자라는 것이다.

가장 큰 적은 부상이다. 햄스트링과 어깨 탈구는 언제든지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부상. 부상 복귀 이후에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자기 몸을 꾸준하게 관리할 수 있다면 코너 외야에서 리그 평균 이상의 생산력을 기록하는 스탑 갭 외야수로서의 활약은 보장할 수 있다. 김대한, 송승환 등 두산의 외야 유망주들을 보조하는 역할이 되겠지만 아직 두산에서의 김인태의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7. NC 다이노스 좌완투수 정구범 (2020년 신인드래프트 2차 1라운드 1번)

 

“모든 풋사랑의 공통점은 별똥별이다. 한순간 하늘을 눈부시게 밝히고 눈 깜짝할 새 사라지는 별똥별.” – 노트북(2004)

신생팀 특별지명이 끝난 이래 NC가 지역 1차 지명으로 초고교급의 선수를 지명한 적은 없었다. 연고지 내 고교 선수들의 유급과 전학으로 인해 1차 지명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고, 결국 연고 1차 지명에 다른 구단들의 1차 지명 선수들보다 기량이 부족한 선수들을 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2020년 드래프트의 정구범은 NC가 오랜만에 품에 안은 초고교급 선수였다. 당시 최대어 유신고 소형준(kt), 휘문고 이민호(LG)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투수임에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 미국 유학 경력으로 1차 지명에서 제외된 정구범을 NC가 2차 1번으로 품은 것은 행운이었다. 신생팀 지명 이후 오랜만에 들어온 전국 급 고교 유망주에 NC 팬들이 설렌 것은 당연했다.

정구범의 최고 장점은 고교 투수답지 않은 변화구와 제구 능력이었다. 좌타자 상대로 던지는 커브와 우타자 상대로 던지는 체인지업이 모두 레퍼토리에 녹아 있었다. 카운트를 쌓는 패스트볼 제구 역시 뛰어났다. 여기에 최고 140km/h 중반, 평균 140km/h 초반에 형성되는 구속 역시 좌완 투수인 점을 감안하면 훌륭했다. 더군다나 183cm/71kg의 마른 체형으로 프로에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소화한다면 구속이 늘어날 가능성도 높게 평가받았다. NC 팬들은 2019시즌 들어 토종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구창모와 함께 두 좌완 투수가 NC의 미래를 밝게 비추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구범과 NC의 동행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전초는 덕수고 시절부터 보였다. 전국체전에서 덕수고의 우승을 이끈 정구범의 어깨는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구단에서 어깨 부분을 집중적으로 관리했지만, 입단 후 첫 시즌이 끝날 때까지 정구범의 몸 상태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듬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깨 통증으로 재활군에 내려가며 퓨처스리그에서 6.1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즉시전력감의 모습을 기대했던 NC 팬들의 기대는 점차 회의로 바뀌었다.

반복되는 재활과 구속 정체에 염증을 느낀 정구범은 2021년 8월에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 개인 프로그램을 소화했다. 140km/h 초반에 머물던 구속을 140km/h 중반까지 끌어올렸지만 실전 감각의 부재로 인해 장점이 무뎌졌다. 패스트볼 의존도가 높아졌지만 탄착군은 지나치게 위에 형성되었고, 로케이션이 불안정해지면서 변화구에 타자들이 속는 빈도도 낮아졌다. 불펜에서는 최고 140km/h 중반대까지 형성되는 구속도 선발로는 평균 130km/h 후반에서 140km/h 초반으로 형성되는 등 경쟁력이 없었다. 2023시즌 퓨처스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고 있지만, 고교 시절의 반짝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구범은 3년 동안 어깨 통증으로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2020-22 퓨처스리그 39.2이닝). 그리고 그 여파가 지금도 남아있는 듯하다. 투구 시 어깨의 내회전이 거의 없이 바로 외회전으로 이어진다. 힘을 저장하는 동작에서 어깨 부하가 걸리게 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한 투구 동작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다른 투수들보다 힘을 장전하는 동작이 길지 않아 상당한 구속 손실로 이어진다. 정구범은 팔 각도나 익스텐션에서 우위를 가진다고 보기 힘들어 필연적으로 구속에 의존도가 높은 투수다. 증량했음에도 투구 동작에서의 힘 손실로 구속 상승이 더딘 점은 정구범의 미래를 다소 어둡게 만든다.

결국 정구범의 관건은 어깨 부상을 완전히 털어내는 것이다. 실전 공백에도 불구하고 좌우 타자 모두를 상대로 여전히 자신만의 패턴을 만들 수 있는 투수라는 것은 정구범의 분명한 장점이다. 고교에서는 장전 동작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투구 동작을 보여줬는데, 이때의 밸런스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여전히 불펜에서는 140km/h 중반대까지 던질 수 있는 만큼 경쟁력 있는 자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고교 시절처럼 반짝이는 샛별이지는 못하더라도 팀 동료 하준영처럼 1이닝을 맡길 수 있는 불펜 요원으로서의 길은 아직 열려 있다.

 

8. 롯데 자이언츠 – 우완투수 이승헌 (2018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3번)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 상처가 있는데 아프지 않다.” – 릴리 슈슈의 모든 것 (2001)

2018년 드래프트는 ‘베이징 키즈’의 출현으로 기대를 모은 드래프트였다. 실제로 안우진(키움), 강백호(kt), 곽빈(두산) 등 훗날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쏟아져 나온 드래프트 였기도 했다.

이승헌은 이 쟁쟁한 드래프티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투수로 평가받았다. 비록 유급 이력 때문에 NC의 1차 지명 후보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2차 지명에서 상위권을 예약했다. 195cm/100kg의 엄청난 체격 조건에 최고 149km/h의 묵직한 패스트볼을 던졌다. 세컨 피치였던 슬라이더의 완성도 또한 뛰어났다. 비록 2차 지명에서 야수 최대어 서울고 강백호와 서울권 최고 투수 양창섭(삼성)에게 밀리기는 했지만, 3번으로 롯데에 입단하기에는 충분한 재능이었다.

이승헌의 커리어 초반은 순탄치 않았다. 입단 첫 2년 동안의 구속이 평균 130km/h 후반에 머물면서 퓨처스리그에서 타자를 전혀 압도하지 못했다(2018-19 퓨처스 51.1이닝 ERA 6.66). 장신 투수의 고질병인 투구 밸런스 문제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당당한 체격 조건이었지만 이 체격에서 힘을 전혀 끌어내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팀의 1차 지명자 윤성빈도 2m의 가까운 키 때문에 성장이 더딘 상황이었기에 롯데 팬들의 우려는 커져만 갔다.

롯데는 방황하고 있던 이승헌에게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미국 피칭 트레이닝 센터인 Driveline Baseball을 다녀올 것을 권했다. 이 짧은 캠프 기간 이승헌은 다른 투수가 되어 돌아왔다. 평균 구속이 140km/h 중반으로 크게 상승하고 투구 밸런스가 완전히 돌아온 것. 이렇게 이승헌은 단숨에 ‘미운 오리새끼’에서 롯데 선발의 ‘백조’로 날아오를 채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퓨처스리그에서 1경기만을 던지고 바로 KBO 무대에 선발로 등판한 이승헌은 평균 144km/h의 패스트볼과 좋은 움직임의 변화구를 보여주면서 2.1이닝 노히트 피칭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데 3회 1사 1, 2루에서 타구가 머리를 향해 날라왔고 이승헌은 미처 공을 피하지 못했다. 그대로 머리에 강습 타구를 맞고 쓰러진 이승헌은 구급차에 실려 갔다. 검진 결과 미세 두부 골절 및 출혈로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했다. 이승헌을 지금까지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는 ‘상처 없는 부상’의 시작이었다.

4달 후 이승헌의 상처는 아물었고 다시 KBO 무대에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돌아온 이승헌은 시즌 전 기대치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패스트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세 개의 구종이 모두 같은 방향의 역 회전성 공이었음에도 1이닝당 하나에 가까운 삼진을 뽑아냈다. 땅볼 유도로 장타를 막는 데도 탁월했다(2020시즌 36.2이닝 34삼진 1피홈런).

그러나 이러한 성적 아래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점차 틈새를 벌리고 있었다. 이듬해 스프링캠프에서부터 구속이 떨어지며 이상 징후를 보이던 이승헌은 이미 오른손 중지에 건초염을 달고 뛰고 있었다. 머리에 공을 맞은 이후 감각에 이상이 생기면서 찾아온 부상이었다. 자연스레 악력이 떨어지면서 모든 구종에 영향이 찾아왔다. 결국 이 손가락 부상은 이승헌을 롯데 팬들의 ‘아픈 손가락’으로 만들었다.

이승헌은 2022시즌 중 현역 입대를 선택하며 잠시 KBO 무대를 떠났다. 건초염의 회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충분한 휴식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좋은 선택이다. 부상 이후 위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승헌이 가지고 있는 3개의 구종은 충분히 리그 평균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 부상을 말끔하게 털어낼 수는 없겠지만 공을 놓은 기간 회복에 진전이 있다면 선발로서 기대를 놓기에 이르다. 리그 전체로 봐도 이승헌처럼 장타 억제와 스터프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투수 유망주는 많지 않다. 이미 2020시즌 자신의 고점을  보여준 투수 유망주이기 때문에 부상의 회복 여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9. SSG 랜더스 – 우완투수 이건욱 (2014년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

“우리가 고통스러운 건, 사랑이 끝나서가 아니라 사랑이 계속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랑이 끝난 후에도.” – 시월애 (2000)

한국에서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를 유일하게 이긴 투수. 이건욱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이다. 이건욱은 고교 2학년 세계청소년 야구 선수권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일본 타자들을 8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상대 선발 투수 오타니는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이건욱의 호투에 승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오타니는 타석에서도 1안타를 기록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일본 대표팀이 이건욱에게 밀렸기에 승리와는 인연이 없었다. 이 패배 이후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오타니를 상대로 13이닝 무득점을 기록 중이다.

당시에도 특급 유망주로 이름이 알려졌던 오타니를 꺾은 이건욱의 기대치가 하늘을 찔렀음은 당연했다. SK(현 SSG)도 이 점을 높게 사면서 2억 원의 계약금으로 이건욱을 연고 1차 지명 대상자로 선택했다. 하지만 입단 후 팔꿈치 부상이 발견되면서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토미 존 서저리를 받고 프로에서의 첫 시즌을 날렸지만, 부상의 터널은 이제 시작이었다. 2015시즌 팔꿈치 부상을 회복하고 퓨처스리그에서 데뷔했으나 시즌 후 또다시 발가락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시즌 출장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연이은 부상의 여파로 퓨처스리그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남겼다(2016시즌 퓨처스리그 68이닝 49볼넷 53삼진 ERA 7.54). 이듬해에는 스프링캠프 전 옆구리 부상을 당하며 페이스를 올리지 못했다. 결국 이건욱은 4시즌 동안 아무런 실적을 남기지 못한 채 공익 입대를 선택했다.

그렇게 잊혀 갈 때쯤, 이건욱은 전역 후 2020시즌에 퓨처스리그 팀이 있는 강화가 아닌 인천으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스프링캠프를 완주한 이건욱은 선발진에 누수가 생긴 틈을 타 로테이션에 진입했다. 구속은 141.4km/h로 평범했지만 거의 12시에 가까운 팔 각도로 상당한 수직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이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 존 높은 코스에 어느정도 제구시키면서 약한 플라이를 끌어냈다. 2020시즌 뜬공 대비 내야 뜬공 비율이 36.0%로 규정 이닝 70%를 넘은 투수 42명 중 6위를 기록했다. 프로 데뷔 때부터 지적받던 높은 탄착군 문제와 빈약한 레퍼토리를 해결하지 못했지만, 복귀 첫 시즌에 로테이션을 소화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팀 내 선발인 문승원, 박종훈도 20대 중후반부터 재능을 꽃피웠기에 이건욱을 향한 SK 팬들의 기대치는 다시금 2014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구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지난 시즌에도 후반기에 불거졌던 패스트볼 탄착군 문제는 다음 시즌에 더욱 이건욱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특히 2020시즌 이건욱을 선발 자리로 올려주었던 하이 패스트볼이 말을 듣지 않았다. 과도하게 높은 패스트볼은 타자의 배트를 전혀 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2021시즌 12.2이닝 동안 19볼넷의 처참한 기록을 남긴 채 강화로 돌아갔다. 이건욱이 방황하고 있는 동안 2020년 1차 지명자 오원석이 성장하면서 선발 로테이션의 마지막 자리를 차지했다. 퓨처스리그에서 마저 특기할 만할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이건욱의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높은 코스에 들어가는 패스트볼은 경쟁력이 있지만 이는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 상단에 꽂힐 경우에만 한정된다. 이건욱의 제구 일관성 부재는 데뷔 전부터 지적받던 사항이었으며, 그 단점을 고치지 못한 채 현재 프로 10년차를 맞고 있다. 이 패스트볼을 보조할 변화구도 마땅치 않으며 이는 긴 이닝을 소화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다. SSG의 선발 자원이 그 어느 때보다 풍족한 상황에서 이건욱의 자리는 불펜 요원으로 한정된다. 불펜에서 패스트볼의 구위에 구속을 더하고 패스트볼 탄착군이 2020시즌으로 돌아온다면 팀의 뎁스에 도움이 되는 자원이 될 수 있다. 현재 퓨처스리그에서 13.2이닝 10볼넷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제구 불안을 줄이는 것이 첫 번째 숙제가 될 것이다.

 

10. LG 트윈스 – 우완투수 임찬규 (2011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난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 – 미 비포 유(2016)

2010년 고교야구의 중심은 광주일고 투수 유창식과 덕수고 우완 투수 김진영이었다. 좌완 투수로 최고 147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유창식과 이미 시카고 컵스 입단을 확정 지은 김진영은 그 해의 고교야구를 완전하게 지배했다.

하지만 이 둘 모두 맞대결에서 무릎을 꿇은 투수가 있었다. 바로 휘문고의 에이스 임찬규였다. 대통령배 8강에서 유창식의 광주일고를 상대한 임찬규는 8회에 등판해 4이닝 동안 7개의 삼진을 곁들이며 무실점으로 광주일고의 타선을 봉쇄했다. 연장에 등판한 유창식은 11회에 무너지며 패전의 멍에를 썼다. 이어진 결승전에서 김진영의 덕수고를 상대한 임찬규는 5회 2사에 등판해 덕수고의 타선을 8.1이닝 동안 틀어막았다. 선발로 나온 김진영은 끝까지 역투했지만 13회에 두 점을 내주면서 휘문고에 우승을 넘겨줬다. 당시 2순번을 가지고 있었던 LG가 불법 사전 메디컬 테스트까지 감수할 정도로 유망한 선수였다.

당시 고졸 투수가 데뷔하자마자 재능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런데도 임찬규는 데뷔하자마자 즉시 전력이 됐다. 최고 152km/h에 육박하는 패스트볼로 프로 타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패스트볼의 위력을 바탕으로 롱릴리프와 마무리를 오가는 핵심 불펜 요원으로 자리 잡았다. 이듬해인 2012시즌에는 선발에도 도전하면서 55.2이닝 ERA 4.53, FIP 4.40으로 기대할 만한 성적을 보였다. 당시 만 20세였던 임찬규의 좋은 활약에 LG 팬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LG의 선발진을 지켜 줄 선수가 등장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고교 때부터 많은 이닝을 소화한 임찬규의 피로도는 한계에 다다랐다. 고교 3학년에 이미 72이닝을 던지며 우려를 자아냈던 임찬규는 데뷔하자마자 KBO 무대에서 82.2이닝을 던졌다. 단기간에 많은 이닝을 던졌던 임찬규의 팔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 징후를 드러냈다. 2013시즌 구속이 140km/h 초반대에 머무르면서 데뷔 초의 패스트볼을 보여주지 못하던 임찬규는 이듬해 경찰청에서 토미 존 서저리 수술을 받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2016년에 돌아왔지만, 임찬규의 패스트볼은 데뷔 시즌 보여주었던 그 패스트볼이 아니었다(2016시즌 평균 구속 139.6km/h).

패스트볼의 위력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임찬규였기에 리그에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임찬규가 그 돌파구로서 찾은 것은 피치 터널이었다. 피치 터널 이론은 타자가 스윙하는 순간까지 같은 구종으로 보이다가 다른 궤적으로 갈라져 나온다면 타자가 대처하기 힘들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임찬규는 이 이론에 자신의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접목했다. 타자가 스윙하기 전까지 최대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이 움직임을 공유하게 했다. 여기에 패스트볼과 상반된 궤적을 보이는 커브의 구사율을 높였다. 파워 피처에서 기교파 투수로 다시 태어난 임찬규는 2017시즌 이후 LG의 5선발 자리를 차지했다. 비록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적이지만, LG의 선발진에서 임찬규라는 이름을 빼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시즌의 1/3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임찬규는 올해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작년을 제외하고 꾸준하게 양수의 구종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체인지업은 패스트볼을 보호하고 있다. 여기에 상대 타자들의 타이밍에 혼란을 가져오는 커브를 꾸준히 섞어주면서 이닝을 끌어주고 있다. 임찬규의 체인지업과 커브는 좌우 타자를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패턴이라는 것이 큰 장점. 2017시즌 이후 꾸준하게 피칭 디자인을 쌓아놓은 투수인 만큼 하위 로테이션 선발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는 기량은 가지고 있다. 올해 FA 재수를 선택했는데, 패스트볼의 일관성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팀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투수 요원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마치며

대부분의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한다. 때로는 짝사랑으로 가슴 속에 묻히기도 하고, 때로는 결실을 보지 못하고 애매한 인연으로 남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실을 보지 못해도 사랑하던 시절의 기억은 평생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이 기억은 사랑이 열매를 맺었을 때 뇌리를 스쳐 가면서 추억으로 남는다.

야구팬들만의 특권은 선수가 팀을 나갈 때까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키움 팬들은 임병욱을 보면서 목동 시대의 향수와 툴가이 야수에 대한 기대를 같이 품는다. 롯데 팬들은 이승헌을 보면서 부상과 함께 사라져 버린 2020시즌의 에이스를 회상하며 군 전역 이후 선발로 자리 잡을 이승헌을 내심 기대한다. 비록 입단할 때의 첫사랑은 빛이 바랬지만 언젠가 이 선수에 대한 사랑이 결실을 볼 것이라는 기대감. 이것이 우리가 유망주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이 글을 보는 모든 팬의 유망주에 대한 사랑이 그 열매를 맺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참고 = KBO, Sports2i, Statiz, NC 다이노스 공식 홈페이지

야구공작소 조광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도상현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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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

  1. 재밌는 칼럼이네요 피어나지 않는 유망주들이 많은것도 안타깝지만 그것도 인생이니까 어쩔수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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