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재빈 >
“나도 널 좋아했던 그 시절의 내가 좋아.”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에서 남주인공은 첫사랑이자 옛 연인에게 2년 만에 전화해 이렇게 말한다. 첫사랑의 추억은 단지 그 사람을 좋아해서 남는 것이 아닌 그 시절의 나를 그리워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첫사랑의 아련함을 생생히 담은 이 영화는 10년이 넘긴 지금까지 첫사랑을 다루는 대표적인 영화로 회자되고 있다.
팬들이 유망주들에게 보이는 애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팬들은 유망주가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는 미래를 꿈꾼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과 밝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현실이 되었을 때 그 시절의 그 유망주를 사랑했던 나를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하지만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내가 사랑했던 유망주’들이 실제로 스타가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기대받은 만큼의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매년 팬들을 애태우는 만년 유망주가 되기도 한다. 부상으로 팀의 아픈 손가락이 되거나 때로는 다른 팀에서 잠재력을 터뜨리면서 씁쓸한 입맛을 다시게도 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KBO 구단별로 기대치가 높았지만, 기대에 못 미쳤던 유망주들을 모아봤다. 대상은 2010년 드래프트 이후에 뽑혔으면서 현재 KBO리그에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유망주들을 톺아보면서 그날의 추억으로 되돌아가보자.
1. 한화 이글스 – 유격수 하주석 (2012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계속 널 좋아하게 해줘.”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매년 ‘제2의 이종범’의 수식어를 가진 선수들이 드래프트에 나온다. 하지만 그중 가장 이종범에 근접했던 야수 유망주는 2012년 드래프트의 하주석이었다. 1학년 전국 대회에서부터 4할에 근접하는 고타율로 이름을 날린 하주석은 고교 3년 통산 .388/.448/.575을 기록, 유격수로서는 훌륭한 성적을 올리면서 최대어로 주목받는다.
그의 성적보다 스카우트들이 더 주목했던 것은 하주석의 운동 능력이었다. 유격수로서는 다소 큰185cm의 신장에도 불구하고 프로에서 유격수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평을 받았다. 여기에 빼어난 어깨와 증량하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파워 잠재력까지 갖춘 완전체 내야수 유망주였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를 받고 한화에 입단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프로에서 하주석은 큰 문제에 직면한다. 훌륭한 신체 능력에 비해 타석에서의 참을성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프로 투수들의 몸쪽 낮은 변화구에 하주석은 전혀 대처하지 못하면서 부침이 시작됐다. 한화의 뎁스는 준비가 되지 않은 프로 1년 차 야수를 곧바로 KBO 무대에 데뷔시킬 수밖에 없을 만큼 얇았다. 충분히 성장할 여유조차 없었던 하주석은 데뷔 후 2년 동안 152타석에서 54개의 삼진을 당했다(K% 35.5%). 퓨처스리그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을 기록하지 못한 하주석은 2년간의 쓴 프로 경험을 뒤로 한 채 상무로의 입대를 선택한다.
상무에서의 경험은 하주석에게 다시금 유망주로서의 여유를 벌어줬다. 타석에서의 참을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지만(상무 2년 49볼넷/100삼진) 스트라이크 존의 공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면서 다시금 최고의 유망주 자리를 차지했다. 당시 상무의 주전 3루수로 활약한 구자욱(삼성)과 함께 상무의 타선을 이끈 하주석은 복귀 후 첫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면서 한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타석에서의 부족한 인내심이 결국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2016시즌 441타석에서 OZSwing%(스트라이크 존 밖에 스윙할 확률) 36.0%를 기록한 하주석은 그 이후 단 한 차례도 그보다 개선된 OZSwing%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특히 몸쪽 아래로 들어오는 변화구에 대한 대처가 되지 않았고, 이를 파악한 투수들은 이 코스를 집요하게 공략했다. 고등학교 때 고평가받았던 수비 능력은 연차가 쌓이면서 더 원숙해졌지만, 타격에서의 고질적인 문제를 7시즌 동안 해결하지 못했다. 2019시즌 불의의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당하면서 운동 능력 또한 고점에서 내려왔다. 여기에 올 시즌을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으면서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실망을 안겨줬다.
분명히 하위권 팀의 주전 유격수로의 역할을 수행할 만할 능력은 있다. 하지만 이제 30대 초반에 들어선 하주석은 더 이상 성장 잠재력을 논할 나이가 아니다. 아마추어 시절 보여준 툴이 실제 경기에서 꾸준하게 발현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작년에는 인플레이 타구 속도, 하드 히트 비율 등 타구 지표가 리그 평균 이하를 기록했다. 타석에서의 참을성 문제 또한 10년 가까이 해결되지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리그 수위권 선수로서의 성장은 요원해 보인다.
2. kt 위즈 – 좌완투수 박세진 (2016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다시 돌아올 두 번의 기회는 없다고 생각하고 삶을 살아야 해.” – 어바웃 타임(2013)
삼성 라이온즈는 2016년 드래프트에서 큰 고민에 빠졌다. 연고지에서 150km/h를 상회하는 구속과 좋은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는 우완투수 최충연과 1학년부터 꾸준히 경북고등학교의 에이스를 맡았던 박세진이 동시에 드래프트에 나왔기 때문이다. 2년 전인 2014년 삼성은 대구상원고 좌완투수 이수민과 경북고 우완투수 박세웅 중 좌완 투수의 이점을 높이 평가해 이수민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수민은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주지 못했고 박세웅은 리그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로 발돋움한 상황이었다.
2년 전과 비슷한 상황에 삼성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우완투수 최충연을 1차 지명으로 선택한 것. kt는 자연스럽게 전국 단위 1차 지명으로 박세진을 선택했다. 당시 좌완투수 중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178cm의 작은 키와 다소 통통한 체형은 우려를 자아냈지만, 성적만큼은 당시 최대어 이영하(두산), 김대현(LG)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었기에 kt 팬들은 박세진에게 안정적인 선발 투수가 될 것을 기대했다.
프로에서 박세진의 발목을 잡은 것은 구속이었다. 고교 시절에도 최고 141km/h로 빠른 편이 아니었지만, 프로에서는 그 정도에도 못 미치는 구속을 보여주면서 타자를 압도하지 못했다. 평균 136km/h의 구속은 프로 타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고, 이는 수치로도 드러났다(2016년 패스트볼 컨택률 95.9%, 피OPS 1.300). 변화구 또한 구속을 상쇄할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타 상대로 던지는 커브와 체인지업은 전혀 위협적이지 못해 좋지 않은 패스트볼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좋게 평가받던 운영 능력 또한 긴 이닝을 끌어가지 못했기에 의미가 없었다.
박세진이 고교 시절 고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완성된 투구 폼과 그에 걸맞은 빼어난 운영 능력이었다. 하지만 프로에 와서 이 부분은 도리어 단점이 됐다.. 하체로 무게 중심을 지탱하면서 끌고 나오는 동작이 좋다는 투구폼은 확실히 완성도가 높았지만, 이 투구 폼으로도 130km/h 중후반대의 공을 던진다는 것은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178cm의 작은 키에 메카닉 교정으로 구속을 끌어낼 수 없는 폼의 좌완 투수는 더 이상 매력이 없었다. 프로 3년 차인 2018년에는 신인 시절보다 구속이 더 떨어지면서 평균 134.7km/h를 기록했다. 결국 2020시즌을 끝으로 입대를 선택하면서 KBO 무대에서 잠시 퇴장했다.
올 시즌 군대에서 돌아온 박세진은 많은 변화를 이뤘다. 과도했던 체중(87kg)을 82kg까지 감량했다. 3루로 과도하게 기울던 몸의 무게 중심을 일관적으로 세웠다. 그 결과 온전히 자신의 무게를 공에 실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입대 전 133.8km/h에 머물던 구속을 142.6km/h까지 10km/h 가량 상승시켰다. 아직 패스트볼 의존도가 높고 일관적인 구속 유지가 가능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거의 사라져 갔던 기대치를 조금이나마 올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성공적으로 시즌을 보낼 수 있다면 팀의 좌완 불펜으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모습은 전체적으로 팀의 1차 지명 선배 심재민을 떠올리게 한다. 중학 시절 140km/h를 상회하는 구속으로 기대를 모았던 심재민은 성장이 정체되면서 프로에 와서도 140km/h 초반대의 공을 뿌리는 데 그쳤다. 하지만 다양한 레퍼토리와 좌완의 이점을 바탕으로 2015년 데뷔 이래 꾸준한 불펜 투수로서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성장이 정체된 점과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는 좌완투수라는 점이 박세진과 닮았다. 만약 지금의 구속 성장세를 유지하며 고교 때의 원숙한 구종 조합을 보여준다면 박세진의 미래는 그다지 비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3. 삼성 라이온즈 – 우완투수 최충연 (2016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성장하는 동안 가장 잔인한 것은 여학생은 남학생보다 성숙하며, 그 성숙함을 견뎌낼 남학생은 없다는 것이다.” –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2016년 드래프트에서 가장 빛나는 투수였다. 물론 선린인터넷고의 원투펀치인 이영하와 김대현이 당장의 기량에서는 더 위의 평가를 받았지만, 189cm/85kg의 성장이 기대되는 몸에 149km/h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최충연은 최고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다. 박세진과의 1차 지명 경쟁에서 승리했던 것은 이 무한한 성장 잠재력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189cm의 큰 키에 투구 시 머리가 고정되지 않던 최충연에게 입단 초기 제구 불안은 필연적이었다. 하체를 주저앉으며 전진력을 만드는 입단 전의 폼을 완전히 바꿨다. 정지 동작을 추가하고 타점을 올리면서 189cm의 큰 신장을 활용하고자 했다. 상체의 반동을 줄이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임팩트 순간 모든 힘을 모아 던지던 그동안의 최충연과 다르게, 프로 입단 후 좀 더 부드럽게 무게 중심을 넘기는 연습을 하면서 제구를 잡고자 했다. 이 성과는 프로 3년 차인 2018년에 열매를 맺는다. (85.0이닝 101삼진 26볼넷 ERA+ 147.3,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발탁). 하지만 그 결실 아래 비극의 씨앗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었다.
삼성의 이와 같은 교정 작업은 분명히 훌륭한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이 작업을 1군 무대에서 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입단 2, 3년 차인 2017년과 2018년 최충연은 도합 169이닝을 던졌다. 2017년에는 42경기 중 6경기를 선발로 출장하면서 고정된 보직도 없었다. 2018년에는 순수 불펜으로 70경기를 던지면서 85.0이닝을 소화했다. 혹사로 은퇴한 대표적인 선수 김윤동(전 KIA)이 2년 동안 163이닝을 소화하고 이듬해 어깨 부상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우려스러운 관리였다. 여기에 당시 삼성의 김한수 감독은 2019년 선발 전환까지 추진하면서 부담을 더했다.
결국 이런 불안 요소는 최충연을 그가 가장 찬란해야 할 시기에 바닥까지 추락시키고 말았다. 2019년 구속과 제구가 동반으로 망가지면서 최악의 시즌을 보낸 최충연은 시즌 이후 음주운전 사고까지 일으키면서 한 시즌 출장정지를 당했다. 누적된 피로가 결국 터지면서 2020년 말에는 팔꿈치 수술까지 받았다. 이 기간에 공익 근무로 병역을 해결하며 결과적으로 2년에 달하는 공백 기간이 생겼다. 2022시즌에 비로소 복귀했으나 예전만큼의 구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충연은 여전히 140km/h 중후반대의 구속과 좋은 슬라이더로 상대를 윽박지를 수 있는 투수이다. 지난해 다시 팔 스윙이 돌아오며 기대감을 모은 최충연은 2023시즌 다시 팔 스윙을 끌고 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깨의 장전 동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이에 따라 밀어 던지는 듯한 투구를 자주 보였다. 물론 작년 수준의 구위를 다시금 보여줄 수 있다면 준수한 불펜 요원으로서의 기대치는 있다. 하지만 무리한 상체 위주의 폼과 혹사로 인한 부상 이력으로 예전의 기대받던 잠재력을 보여주기는 힘들 것이다. 이미 구속이 전성기인 2018년(146.8km/h)에서 4km/h 정도 떨어진 상황이다(142.8km). 신체 능력이 정점인 20대 중반에 들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향 후 몇 년간 자신의 잃어버린 구속을 찾아야 할 것이다.
4. KIA 타이거즈 – 우완 투수 한승혁 (2011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8번)
“만약 운명의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에 끝은 없을거라 생각했었다.” –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2016)
KIA와 한승혁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당초 한승혁은 광주일고 좌완투수 유창식과 함께 2011년 드래프트의 최대어로 꼽혔다. 최고 150km/h 초반의 공을 꾸준히 뿌릴 수 있는 유일한 드래프티였다. 따라서 1라운드 8번째를 가지고 있던 KIA와는 인연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한승혁은 KBO 드래프트 참가와 MLB 진출 사이에서 드래프트 전날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KIA보다 순번이 높은 구단들은 한승혁에게 1라운드 지명권을 쓰는 것을 주저했다. KIA는 과감하게 1라운드에서 한승혁의 이름을 불렀고 그제야 한승혁은 드래프트장에 나타났다.
프로에서도 한승혁은 명성 그대로 강속구를 던졌다. 최고 157km/h에 이르는 패스트볼에 100구가 넘어도 150km/h 초반대를 꾸준히 기록하는 구속만은 KBO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안우진(키움)이 등장하기 전까지 평균 구속 150km/h의 벽을 넘은 유일한 선수(2017년 평균 구속 151.2km/h)였다. 비록 리그의 타고투저와 맞물리면서 괄목할 만할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평균 구속이 꾸준하게 올라갔으며 느리지만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무기인 구속이 건재했으니 KIA 팬들은 연차가 쌓이면서 KIA 선발진의 핵심이 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한승혁의 확실한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패스트볼이 도리어 발목을 잡았다. 구속 자체는 150km/h 초반을 꾸준하게 뿌릴 정도로 빨랐으나 이상하리만큼 잘 컨택되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평균 151.2km/h를 던진 2017년에도 패스트볼의 컨택율은 84.0%, 피OPS는 1.049의 좋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유망주 시절 한승혁은 패스트볼 의존도가 큰 투수였다. 구사율이 70%가 넘어가는 패스트볼이 상대 타자들에게 공략당하면서 자신감을 잃어갔다. 여기에다가 빈약한 변화구와 커맨드의 부재가 겹쳤다. 제1 변화구로 사용하는 포크볼은 타자가 속을 수 없을 만큼 낮은 코스에 제구되었으며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 상단에 꽂을 커맨드 능력 또한 없었다. 결국 한승혁은 구속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 상태로 강속구 투수에서 기교파 투수로의 변모를 꾀하게 된다.
한승혁은 전역 이후 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를 장착하면서 피칭 패턴에 변화를 주었다. 구속만큼의 위력을 보이지 못하는 패스트볼을 고려한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선택이었다. 초반 투심 패스트볼과 합을 맞춘 슬라이더가 자리 잡으면서 호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회전수가 부족한 패스트볼은 한승혁의 발목을 잡았다. 투심 패스트볼로 장타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최대 장점이었던 구속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이 스터프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한승혁의 변화구들은 역부족이었다. 결국 2023년 시즌을 앞두고 KIA는 변우혁을 대가로 한승혁을 한화로 트레이드하면서 KIA와 한승혁의 ‘운명적인 사랑’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여전히 팀에서 롱 릴리프 혹은 하위 로테이션을 맡아 줄 역량은 있다. 위력과 별개로 150km/h를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재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하나로 KBO에서 살아남기에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안우진(키움), 문동주(한화) 등 150km/h 중반을 계속 기록하는 투수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타자들도 점차 150km/h 이상의 공에 적응하고 있다. 한승혁의 압도적 장점이었던 구속이 더 이상 타자들에게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리그 환경의 변화는 한승혁의 기대치를 점점 낮추고 있다. 긴 이닝을 끌어줄 수 있고 여전히 높은 평균 구속을 던지는 만큼 한화 팀 내에서의 유망주들을 보호하는 뎁스용 투수의 역할이 평균적인 기대치가 될 것이다.
5.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임병욱 (2014년 신인드래프트 1차지명)
“어쩌면 다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 건축학개론(2012)
고척스카이돔 시대의 키움을 대표하는 선수는 아무래도 김하성(샌디에이고)일 것이다. 7시즌 동안 키움에 31.2의 sWAR을 선물해주고 미국으로 떠난 김하성은 완벽한 툴 플레이어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고척 시대의 ‘첫사랑’이라고 한다면 키움 팬들은 주저 없이 임병욱을 꼽을 것이다. 190cm에 가까운 키로 유격수를 소화했던 운동 능력과 3학년 때 급격하게 올라온 타격 능력은 임병욱의 잠재력을 증명했다. 이 결과 배병옥(개명 후 배정대, kt)을 제치고 키움(당시 넥센)의 1차 지명을 받을 수 있었다. 지명 후 경기에서 도루를 시도하자 당시 구단주였던 이장석 대표가 “거금을 주고 데려왔는데 몸을 사려야 한다”고 발언할 정도로 당시 임병욱을 향해 거는 구단의 기대치는 매우 컸다.
데뷔 시즌을 발목 부상으로 날렸지만 2015년에 돌아온 임병욱은 퓨처스리그를 평정했다. 데뷔 시즌에 132타석에서 10개의 홈런, .372/.462/.743의 성적으로 무력시위를 펼쳤다. 이듬해에는 KBO에서 265타석 동안 8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동기 김하성이 20홈런–20도루를 넘는 등 연차에 걸맞지 않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기에 다소 묻혔지만 사실상 2년 차를 맞는 고졸 야수의 성적으로는 손색이 없었다. 키움은 내야의 김하성과 외야의 임병욱을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착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순탄대로일 줄 알았던 임병욱의 성장을 막은 첫 번째 요인은 부상이었다. 이미 데뷔 시즌인 2014시즌을 부상으로 날린 임병욱은 2017년 또다시 팔꿈치 부상과 엄지손가락 인대 파열로 46타석 소화에 그쳤다. 당초에 큰 키로 부상 우려 때문에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임병욱이었지만 외야수 전환 이후에도 크고 작은 부상이 따라다녔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447타석에서 wRC+ 96, 13홈런으로 무난한 첫 풀타임 시즌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타구 각도가 발목을 잡았다. 2018시즌 후 덕 레타 코치와 훈련한 임병욱은 다음 시즌에 단 한 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타구의 평균 속도는 빨랐지만(타구 속도 상위 8%, 하드 히트 비율 상위 12%) 좀처럼 공을 띄우지 못하며 빠른 타구를 내야에 갇히게 했다. 2020년에는 또다시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면서 뒷걸음질쳤다. 그 사이 2017년 1차 지명자 이정후가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주전 중견수 자리를 자리했고 임병욱은 상무로 쫓기듯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2년 동안의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임병욱의 과제는 간단하다. 부상 없이 건강하게 시즌을 치르는 것. 포지션 변경 이후 외야수로서 임병욱의 수비는 충분히 리그 수위권에 들어갈 만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수많은 부상에도 운동 능력은 여전하며 타석에서도 하드힛을 충분히 뽑아낼 수 있다. 다만 2018년 이후 고정된 타구의 발사 각도를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평균 정도의 타격 능력과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수비 능력으로 팀에 연평균 WAR 3 정도를 안겨다 줄 수 있는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임병욱이 시즌을 건강하게 보낸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키움 팬들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선수가 되려면 먼저 시즌을 건강하게 보내는 것이 급선무가 될 것이다.
참고 = KBO, Statiz
야구공작소 조광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민경훈, 도상현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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