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photos/baseball-foul-ball-hit-baseball-bat-1434829/
MLB에서 하이 패스트볼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투구 추적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며 ‘직구를 높게 구사하는 것이 투수에게 좋다’는 명제는 수차례 증명되었다. 구글에 ‘fangraphs high fastball’ 만 검색해보자. (2021년 12월 10일 현재) 첫 링크 글은 하이 패스트볼 전략이 구속, 회전수 그리고 공인구와 상관없이 효과적이라고 얘기한다. 둘째 링크 글은 2021년 초에 기록적인 노히터 행진과 삼진 증가 추세의 이유로 하이 패스트볼 전략의 확대를 든다.
야구공작소에서도 하이 패스트볼을 주제로 많은 칼럼이 나왔다. 모두 MLB에서의 결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대신 KBO 리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우선 KBO리그에서도 하이 패스트볼이 충분히 효과적이라는 칼럼이 있었다. 하이 패스트볼에 비교적 인색했던 KBO리그의 풍토가 변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또한 하이 패스트볼 전후 각각 최적의 구종과 로케이션이 무엇일지 모색한 시리즈물까지 있었다.
수많은 글이 하이 패스트볼의 효용을 지지하는 것에 비하면 이 글의 제목은 가히 이단에 가깝다. 이 글이 도발적인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계]
우선 본 글은 최근 다섯 시즌의 MLB 데이터를 활용했다. 최근 다섯 시즌은 십진법이 익숙한 현대 인류에게 주는 안정감 외에도 나쁘지 않은 기간이다. 2017년 찰리 모튼이라는 투수가, 2018년 게릿 콜이라는 투수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하며 싱커를 앞세운 땅볼유도형 투수에서 ‘하이 (포심) 패스트볼’ 전략을 적용한 후 성공가도를 달렸을 뿐만 아니라, 이 두 투수 외에도 본격적으로 하이 패스트볼이 대중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먼저 ‘하이 패스트볼’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필요하다. ‘패스트볼’은 포심, 투심 그리고 싱커를 포함하도록 했다. 그리고 ‘하이’, 즉 ‘높은 코스’는 톰 탱고가 제안한 존 분할 아이디어를 활용한다(이 아이디어는 한 야구공작소 칼럼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포수가 뛰어올라 받아야 하는 너무 높은 공이나 스트라이크 존 좌우로 크게 빠지는 등 터무니없는 코스를 제외하기 위해 [스트라이크 존의 상단 1/3과 그 주변부]를 ‘하이’라고 규정한다. 말로 하면 복잡하니 직관적으로 아래 그림에 빨갛게 표기된 구역을 보자. 감이 그래도 오지 않으면 여기 있는 영상 몇몇 링크들을 참고하도록 하자. 본 글에서는 ‘하이 패스트볼’을 ‘하패’라 종종 간략하게 표기한다. ‘하패’는 2017년 전체 패스트볼의 22.9%였으나 2021시즌에는 26.1%로 증가했다.
[본론]
우선 우리가 그동안 익숙해왔던 데이터부터 시작하자. 직구 계열의 구사율, SwStr%(헛스윙/투구 비율), Whiff%(헛스윙/스윙 비율) 등이다.
*검정 사각형은 스트라이크 존이다. 빨간 사각형은 이 글에서 정의한 ‘하이 패스트볼’ 구역이다.
역시 하이 패스트볼은 투수의 친구다. 타자들이 말 그대로 ‘손도 못 대는’ 코스다. 이 코스의 공을 건드린다면 어떨까? 약한 타구가 나올 것이며, 타율은 낮을 것으로 보인다. 글쎄, 다음 자료를 보자.
x타율 (eXpected 타율)은 타율의 기댓값을 뜻한다. 패스트볼이 높은 코스에 들어왔을 때의 성적과 비교하기 위해, 2열의 기댓값은 구종을 패스트볼로 한정 지은 후 산출했다. 마지막 4열은 분모에 ‘하패’에 해당하는 숫자를(2열을), 분자에 전체 패스트볼에 해당하는 숫자를(3열을) 넣은 값이다. wRC+에서 + 표기가 내포하듯 연도별 조정을 의미했다. MLB 공인구는 지난 5년간 몇 차례 변했는데, 시즌 별로 달랐던 공인구 차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2017시즌부터 2021시즌까지의 타구속도/타구각도 구획별 기댓값을 산출해 일괄 적용했다. 이는 아래에 나올 x장타율 (장타율의 기댓값), xwOBA (wOBA*의 기댓값)도 마찬가지다.
*wOBA: weighted on base average의 약자로, 타석의 결과에 득점가치에 상응하는 가중치를 매기고 출루율 스케일로 변환시킨 스탯.
마지막 행이 이상하다. 지난 5년간 구속은 상승하기만 했으니 하이 패스트볼에 대한 x타율은 내려가기만 해야 하는데, 2021시즌에 뜬금없이 반등한 모습이다.
야구 데이터에 조금 익숙하다면 타율 대신 장타율을 보고 싶어 할 수 있다. 혹시 위의 표는 단타 위주의 타격 결과물이 아니었을까?
표가 암시하는 바는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x장타율의 스펙트럼으로 보면 ‘하패’에 대한 타자들의 반응은 그동안 더 좋아지기만 한 듯하다.
야구 데이터에 더욱더 익숙하다면 타율도 장타율도 아닌, wOBA 스케일을 보고 싶어 할 수 있다. 2루타에 단순 1이나 2가 아닌, 기대득점에 상응하는 가중치를 매긴 수치는 하이 패스트볼에 대한 기존의 상식을 증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세 번째 표마저 앞서 두 표가 가리키는 바가 일치한다. 2021시즌 하이 패스트볼 트렌드에는 미묘한 불편함이 늘어났다. 종합하자면 ‘하패’가 헛스윙을 더욱 자주 유도하는 트렌드만 변하지 않았을 뿐, 투구가 스윙이 닿았을 때까지 감안한다면 타자의 반격이 어느새 시작된 모습이다.
아직도 표에 신뢰가 가지 않는가? 그럼 그림을 보자. 아래에서 밝은색일수록 시즌별 패스트볼에 대한 평균 수치보다 높았음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 하이 패스트볼로 규정한 빨간 구획으로 밝은색이 번져감을, 즉 타자들의 반응이 날렵해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맺음]
새로운 현상이나 트렌드의 발견은 ‘왜?’라는 다음 질문의 촉매제다. 아쉽게도 이 글은 그에 대한 답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 이 글의 논리가 다행히 받아들여지고 이후 논의의 촉매제가 되어 힌트들이 쌓이길 바랄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야구가 수없이 진화해왔다는 사실이다. 지난 10년간만 봐도 복수의 트렌드가 살고 죽었다. 야구 경기에서 상세한 데이터가 기록되면서 타구, 특히 땅볼이 종종 당겨친 방향에 위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 땅볼을 아웃으로 변환하기 위해 야수를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수비 시프트가 탄생했다. 따라서 투수의 덕목은 땅볼을 유도하는 것이 되었다. 변형 패스트볼을 개발해 낮게 투구하는 것이 그 실천 방법이었다. 반대로 타자들이 살기 위해서는 낮은 공을 공략해야 했다. 그것도 땅볼 대신 공을 띄워야 했다. 독자는 이 현상을 ‘플라이볼 혁명’이라는 표현으로 들었을 것이다. 마침 동일한 타구속도와 각도에서 비거리가 늘어난 공인구가 이를 부채질했다. 타자들의 장군에 대한 투수들의 ‘멍군’ 가운데 하나가 하이 패스트볼이었다. 시기적절하게 도입된 트랙맨은 추정이 아닌 측정된 회전수를 내놓았다. 이 회전수를 얼마만큼 무브먼트로 변환하는지의 비율인 회전 효율 개념도 소개되었다. 직구 구속의 향상과 더불어 회전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진화하는 야구는 체스 혹은 가위바위보 등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최근에 투수가 하이 패스트볼이라는 수로 앞서가는 모양새였다. 과연 타자의 다음 수가 시작된 것일까? 하이 패스트볼은 향후 몇 년간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번외1]
앞서 그림들을 보면 하이 패스트볼에 대한 타자들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그 구획 하단으로도 색이 밝아졌음을, 즉 타자들의 성적이 좋아졌음을 관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타자들이 ‘하이 패스트볼’을 잘 다루었기보다 ‘패스트볼’을 잘 다룬 것은 아니었을까?
구획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아래 표에서 ‘하패’는 그동안 글에서 규정한 ‘하이’ 구획이다. ‘로패’는 스트라이크 존 및 그 주변부(톰 탱고 정의를 빌리자면 heart & shadow)에 해당하면서 그보다 낮은 구획이다. ‘하패’에 대한 타자들의 성적이 2019년 이후 반등한 것에 비해 낮은 코스에 대한 성적은 2019년 이후 대동소이했음을 알 수 있다.
[번외2]
지금까지 논의는 타자가 헛스윙을 하든 타구를 만들어내든 ‘스윙했을 시 결과’를 다루었다. 잘 ‘보는’ 것이 잘 치는 것을 선행한다고들 한다. 혹시 타자들이 하이 패스트볼을 더 잘 ‘골라내고’ 있지는 않을까?
크게 변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골라내기보다는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스윙을 하고 있다고 표현할 여지도 있다. 타구의 질이 좋아진 점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타자들이 하이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번외3]
2021년 6월 21일, MLB 사무국은 투수들이 투구할 때 그립감을 늘리는 이물질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6월 20일까지 직구 계열 회전수는 리그 평균 2260회에 육박했으나, 이후 직구 계열 회전수는 리그 평균 2200회가 되었다. 혹시 하이 패스트볼 붐의 강력한 조력자였던 회전수가 줄면서 하이 패스트볼의 위력이 줄어든 것은 아닐까?
‘증거 불충분’과 ‘그렇지 않다’가 섞여 있다. 우선 증거 불충분은 ‘제재 전’과 ‘후’가 각각 계절이 다른 반쪽짜리 시즌이라는 점에서 온다. 이물질 제재가 투수들의 부상을 증가시키는지 여부조차 확답을 내리기 조심스러운 시점에서, 투수의 공에 반응해서 나오는 타자의 데이터는 더욱 확답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를 주장한 것은 아래 표 때문이다. 6월 21일 전후로 나누었을 때 하이 패스트볼에 대한 타구의 질은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소폭 하락했을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번외4]
이 글을 읽고서 ‘하이 패스트볼은 투수에게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 글은 ‘하이 패스트볼의 위력이 이전에 비해 조금 감소했을 수 있다’고 제안할 뿐이기 때문이다. 앞서 어느 그림을 보더라도 타자들이 강세를 보인 밝은 구역은 스트라이크 존 하단에 더 많이 분포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100점짜리 답이 5점 깎인 것에 실망해서 50점짜리 답을 선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야구공작소 곽창현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장원영, 홍기훈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