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은 KBO리그에서 하이 패스트볼을 가장 많이 던지는 투수다. (사진=기아 타이거즈 제공)
[야구공작소 이승호] 높은 포심, 하이 패스트볼은 낮은 포심보다 타자들의 헛스윙을 효과적으로 끌어낸다. 헛스윙이 되지 않고 공이 배트에 맞은 경우에도, 통념과 달리 높은 포심이 더 안전하다.
하이 패스트볼의 장점이 알려짐에 따라 KBO리그에서도 하이 패스트볼의 구사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실투로 낙인 찍혔던 높은 포심이 이제는 KBO리그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무기가 된 것이다.
야구에서 투구는 연속되는 과정이다. 초구에 승부가 갈리지 않는 이상 타자는 2개 이상의 공을 상대해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러한 투구의 연속성을 ‘피칭 시퀀스’라고 부른다. 좋은 피칭을 위해서는 효과적인 피칭 시퀀스를 갖춰야한다.
피칭 시퀀스와 함께 메이저리그에서 각광받는 이론 중 피치 터널이 있다. 피치 터널은 투수의 구종들이 타자들의 스윙을 결정 시점에서 같은 궤적을 공유하는 구간을 말한다. 따라서 이 구간이 길면 길수록 타자들은 구종 구분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쉽게 말해 비슷한 궤적으로 오다가 변하는 공이 일찌감치 다른 궤적으로 오는 공보다 위력적이라는 뜻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피치 터널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피칭 시퀀스를 찾는 ‘피치 디자인’ 열풍이 불고 있다. 투수에게 자신이 가진 공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볼배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투수는 자신이 가진 무기를 백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하이 패스트볼은 그 자체로도 강력한 무기지만 그것만 던질 수는 없다. 투수는 하이 패스트볼을 던지기 위해 미리 다른 구종을 던지고, 반대로 다른 구종을 던지기 위해 하이 패스트볼을 던진다.
그렇다면 하이 패스트볼은 어떤 공과 함께 던져야 효과적일까? 이번 글에서는 하이 패스트볼의 직전 공(셋업 피치)으로 어떤 공이 좋은지 살펴보고, 다음 글에서는 하이 패스트볼 다음으로 어떤 공을 던지면 좋을지 살펴본다.
참고:
1. ‘하이 패스트볼’은 아래 <그림1>의 ‘하이 패스트볼 존’에 던진 포심으로 정의한다.
2. ‘셋업 피치’는 ‘하이 패스트볼 바로 전에 던진 공’으로 정의한다.
3. 2017~2019년 KBO 리그 데이터를 사용했다.
4. 구종은 포심, 투심,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포크로 나눴고 커터는 슬라이더, 싱커는 투심으로 분류했다.
5. 피안타율/피장타율은 인플레이 됐을 때만을 다룬 값이다.
셋업 피치- 구종별
먼저 평균적으로 셋업 피치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을 던진 결과는 위와 같다. 다음은 셋업 피치별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다.
전체적으로 14%~15%정도의 헛스윙률을 보이고 있다. 구종별로는 포크 이후에 던진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가장 높았고 반대로 포심 이후에 던진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가장 낮았다. 패스트볼 계열보다는 변화구 계열 뒤에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높아지는 모습이었다.
셋업 피치에 따른 하이 패스트볼의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은 어땠을까? 각각의 셋업 피치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이 인플레이가 됐을 때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을 살펴봤다.
재미있는 결과였다. 여섯 구종 중 포심만 전체 평균보다 좋은 결과를 보였고 나머지 다섯 구종은 모두 평균보다 결과가 나빴다. 앞에서 헛스윙률은 셋업 피치가 포심인 경우가 가장 낮았던 것과는 정반대다.
셋업 피치 – 구종/코스별
여기에 추가적으로 고려해 볼 만한 요소가 있다. 바로 앞서 언급한 피치 터널과 관련된 부분이다. 구종별로 하이 패스트볼과 피치 터널을 공유하는 구간이 존재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셋업 피치별로 하이 패스트볼과 효과적으로 연계되는 코스가 다를 것이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그림2>와 같이 높낮이로 코스를 5구간으로 분류했다.
존의 중심부 높이를 중단으로 정했다. 그리고 하이 패스트볼 구간을 상단, 그 위 구간은 최상단으로 정의했다. 반대로 그 아래는 무릎 높이의 하단과 그보다 더 낮은 최하단으로 나눴다. 이렇게 셋업 피치를 다섯 코스로 나눈 후에 여섯 가지 구종에 따른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과 피안타율/피장타율을 구했다. 총 30개의 결과값 중 헛스윙률 상위15 구종/코스는 다음과 같다.
헛스윙률 상위15 구종/코스
코스를 나누지 않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보통 변화구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높았다. 포심은 단 하나도 없었고 투심도 단 두 개였다. 코스별로는 보통 높은 변화구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높아졌다. 최상단 체인지업의 경우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을 무려 21.8%까지 높였다. 헛스윙률 상위15에 하단, 최하단의 셋업 피치는 단 3건에 불과했다. 일반적으로 낮은 코스 이후에 던지는 하이 패스트볼이 위력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와는 상반되는 결과다.
구종/코스별 하이 패스트볼 헛스윙률 하위15도 살펴보자.
헛스윙률 하위15 구종/코스
구종별로는 역시 포심, 투심 등 패스트볼 계열의 공이 많았다. 코스별로는 낮은 공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급감한 모습이었다. 특히 셋업 피치가 최하단으로 들어간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이 매우 낮았다. 모든 구종을 한꺼번에 살펴봐도 최하단 이후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은 11.5%로 나머지 경우(14.7%)보다 3%P 정도 낮았다. 존보다 한참 낮은 코스의 셋업 피치는 하이 패스트볼의 헛스윙률을 오히려 감소시킨 것이다. 다만 최상단과 최하단의 공은 볼카운트 자체를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높은 변화구가 낮은 변화구보다 하이 패스트볼의 셋업 피치로서 효과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공이 배트에 맞는 경우는 어떨까? 우리는 이미 셋업 피치로 포심을던진 경우 헛스윙률은 낮았지만 동시에 피안타율/피장타율도 낮았음을 확인했다. 헛스윙률이 낮다고 타격 결과까지 나쁘진 않다는 것이다. 구종/코스에 대해서도 피안타율, 피장타율을 살펴보자.
피안타율 하위 15 구종/코스
먼저 피안타율 하위15 구종/코스다. 흥미롭게도 헛스윙률 상위15에 해당하던 구종/코스(노란색 표시)가 9개나 포함돼있다. 헛스윙률이 높다고 해서 함부로 하이 패스트볼을 연계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구종별로 살펴보면 완급조절의 대명사 체인지업의 결과가 가장 나빴던 점이 눈에 띈다. 체인지업은 최하단을 제외한 모든 코스에서 하이 패스트볼의 위력을 반감시켰다. 이에 대해서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가 있다.
하단, 최하단 포크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도 피안타율이 나빴다. 브레이킹볼 계열의 슬라이더와 커브는 반대였다. 높은 슬라이더와 커브 이후에 들어간 하이 패스트볼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이제 셋업 피치별 하이 패스트볼의 피안타율 상위15 구종/코스도 살펴보자.
피안타율 상위15 구종/코스
포심이 눈에 띈다. 존의 하단을 제외한 모든 코스의 공이 효과적이었다. 같은 패스트볼 계열의 투심도 상단, 최상단에서 하이 패스트볼의 셋업 피치로 효과적이었지만 표본이 적어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변화구 중에서는 포크를 주목해서 볼 만하다. 존 중단 이상으로 포크가 들어간 이후 하이 패스트볼의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매우 낮았다. 앞의 헛스윙률 결과와 함께 정리하면 높은 포크는 헛스윙률과 타격 생산성 억제를 동시에 잡는 효과적인 셋업 피치인 셈이다.
물론 높은 포크 그 자체는 실투에 가깝다. 하지만 실수로 던진 높은 포크가 공략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다면 다음 공으로 하이 패스트볼을 구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존 중단 이하로 들어간 커브도 좋은 셋업 피치였다. 특히 중단과 하단의 커브 이후에 던진 하이 패스트볼은 높은 헛스윙률과 타격 생산성 억제,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다만 같은 브레이킹볼 계열의 슬라이더는 조금 달랐다. 무릎 높이의 하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이 패스트볼의 위력을 높여주지 못했다. 하이 패스트볼 이전에는 슬라이더보다는 커브가 좀 더 나았던 셈이다. 거의 모든 코스에서 좋지 못했던 체인지업은 유일하게 최하단에서 셋업 피치로 효과적이었다.
지금까지는 특정 구종/코스 이후에 하이 패스트볼의 위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봤다. 이제 하이 패스트볼 이후에는 어떤 구종/코스가 효율적이었는지 알아보자. (다음 편에서 계속.)
에디터= 도상현, 오연우
인포그래픽= 최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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