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두 번째 스무살] 2009년 – ‘송삼봉’의 탄생

* 이 연재물은 ‘KBO 박스스코어 프로젝트’와 함께 합니다.

2009년 롯데 자이언츠의 MVP를 꼽으라고 한다면 다승왕 조정훈, 그리고 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쟁을 펼친 홍성흔을 꼽을 수 있다. 두 선수는 시즌 초반 팀이 흔들리던 상황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쳤고, 팀이 바닥을 치고 본격적으로 4강 싸움에 접어들었을 때는 놀라울 정도의 성적을 내면서 끝내 롯데를 가을잔치로 이끌었다. 불과 1년 전까지도 전력 구상에 없던 조정훈, 그리고 FA로 데려왔지만 활약 여부가 불투명했던 홍성흔은 리그에서 손꼽히는 성적을 내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2009년 롯데’라는 팀을 의인화한다면 아마 그 주인공은 송승준이 될 것이다. 최종 성적만 놓고 본다면 무난한 결과를 냈지만 시즌 초반 바닥을 뚫고 내려간 성적, 그리고 날이 풀리면서 반등에 성공했다는 점이 2009년 롯데와 송승준의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다. 여기에 어렵게 올라간 포스트시즌에서 허무한 결과를 냈다는 점은 덤이다.

에이스 손민한이 시즌 전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못하면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송승준에게 개막전 선발 중책을 맡겼다. 송승준은 히어로즈를 상대로 6이닝 2실점 호투를 펼치며 개막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후 3경기에서는 13이닝 19실점으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특히 4월 22일 SK 와이번스전에서는 박경완에게 만루홈런을 내주면서 900타점 허용투수가 됐고, 시즌 평균자책점도 9.00까지 올랐다. 송승준은 4월 한 달 동안 3패를 적립하는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송승준은 4월 28일 KIA 타이거즈전(6이닝 무실점)을 시작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다음 등판인 5월 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후부터는 거칠 것이 없었다. 특히 6월 10일부터 7월 10일까지의 한 달은 어느 팀을 만나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투구를 보여줬다. 이 기간 송승준은 49이닝 동안 단 2점만을 내주며 평균자책점 0.36을 기록했다. 6월 23일 두산전에서 홈런 2방을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송승준은 당시 김시진이 가지고 있던 선발 40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에 도전할 뻔했다. 이날 허용한 2실점이 너무 아쉬워서였을까, 송승준은 다음 3경기에서 아예 역사를 쓰게 된다.

6월 28일, 자신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한화 이글스를 만난 송승준은 ‘괴물’ 류현진과 선발 대결을 펼쳤다. 1군 데뷔전이었던 오장훈이 선발 출전하고 지명타자 홍성흔이 시즌 처음으로 1루 수비를 보는 등 다소 혼란스러운 경기였지만 송승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8회까지 한화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단 87구만을 던진 송승준은 결국 9회에도 등판, 개인 통산 두 번째 완봉승을 달성했다.

기세를 올린 송승준은 이번에는 거함 SK를 맞닥뜨렸다.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 유독 SK에 약한 모습을 드러낸 롯데는 이해 5월까지 SK를 상대로 15연패를 기록하는 등 열세를 보였다. 4월 23일 경기에서는 주장 조성환이 채병용의 투구에 머리를 맞으면서 한 달 넘게 결장하는 일도 생겼다. 여기에 송승준의 선발 맞상대는 2009시즌 들어 잠재력을 터트리면서 평균자책점 1위에 올라있던 송은범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송승준 본인 역시 2009시즌 SK를 만나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송승준의 연승 행진이 여기서 끊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7월 4일, 사직야구장에서 두 팀의 맞대결이 시작됐다. 이날 경기 전 시구자는 롯데와는 떼놓을 수 없으면서도 조금은 멀리 떨어진 이름, 바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최동원은 당시 KBO 리그 메인 스폰서였던 온라인 게임 ‘마구마구’의 초청으로 5년 만에 사직 마운드에 올랐다. 현역 시절의 날카로운 이미지는 없었지만 여전한 하이 키킹 투구폼을 선보이며 만원 관중의 박수 갈채를 한 몸에 받았다. 최동원의 경남고 22년 후배인 송승준은 선배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반갑게 인사를 받은 최동원은 “롯데에서 내 뒤를 이을 선수는 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프지 말고 잘해라”라는 덕담을 남겼다.

대선배의 응원을 등에 업은 송승준은 4회까지 단 1안타만을 내주며 쾌조의 출발을 보였다. 그 사이 롯데는 1회 2사 1, 2루, 2회 1사 만루, 4회 1사 1, 2루 등 여러 차례 찬스를 만들었으나 좀처럼 득점으로 연결하지를 못했다. 송은범은 여러 위기 속에서도 5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텼다. 송승준 역시 5회 초 최정의 사구와 정상호의 텍사스 안타로 주자를 쌓았으나 나주환을 중견수 뜬공, 김강민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아무 일 없던 듯 이닝을 마감했다.

6회 초 SK가 무사 1루 기회를 살리지 못하자 드디어 롯데가 득점에 성공했다. 6회 말 홍성흔과 카림 가르시아의 연속 안타로 롯데는 무사 1, 3루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7번 박종윤이 좌익수 쪽 뜬공을 날렸다. 대주자로 나섰던 3루 주자 전준우가 홈을 밟으면서 롯데는 먼저 0의 균형을 깼다. 점수를 올리기는 했지만 롯데는 7회부터 등판한 SK의 정우람-박현준-전병두 세 선수에게 추가점을 올리지 못하면서 불안한 리드를 이어갔다. 어쩌면 송승준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송승준의 구위는 걱정을 그런 날리기에 충분했다. 6회와 7회 각각 피안타를 기록하고도 점수를 내주지 않은 송승준은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뛰어난 피칭을 선보였다. 8회를 삼자범퇴로 마친 송승준은 2경기 연속 완봉승에 도전했다. 선두타자 이재원을 체크스윙 삼진으로 처리한 송승준은 4번 조동화도 좌익수 이인구의 호수비로 잡아냈다. 마지막 타자 박정권을 상대로 풀카운트 승부를 펼친 송승준은 포크볼을 결정구로 선택했다. 타이밍을 뺏긴 박정권은 빗맞은 타구를 날렸고, 공은 유격수 박기혁의 글러브로 들어갔다.

2경기 연속 완봉승을 달성한 후 기뻐하는 송승준(사진=롯데 자이언츠)

2경기 연속 완봉승. 주먹을 불끈 쥔 송승준은 자신을 리드한 포수 최기문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완봉승을 자축했다. 이날 114구를 던진 송승준은 삼진 9개를 기록하는 동안 산발 4안타만을 내주면서 SK의 8연승을 저지했다. 그리고 송승준은 시즌 8승과 함께 개인 8연승을 질주했다.

경기 후 송승준은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어머니께서 오늘 나가시면서 SK는 꼭 잡았으면 좋겠다고… 지금까지 평생 한 번도 ‘이겨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팬들이 응원해주셔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라는 말도 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연속 무실점 행진을 ‘21이닝’으로 늘린 송승준은 다음 등판이었던 7월 10일 히어로즈전에서 결국 대기록을 완성한다. 좌완 에이스 이현승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를 보여준 송승준은 이날도 9이닝을 홀로 책임지며 무실점으로 호투, KBO 리그 역대 5번째로 ‘3경기 연속 완봉승’을 달성한 투수가 됐다. 이른바 ‘삼봉 선생’의 시작이었다. 첫 4경기에서 무승 3패 평균자책점 9.00이었던 송승준의 시즌 기록은 9승 3패 평균자책점 3.22로 완전히 달라졌다. 롯데가 기다리던 에이스 송승준의 모습이 드디어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두 달 동안 이어졌던 송승준의 호투 행진은 다음 등판이었던 7월 16일 경기에서 5점을 내주면서 그 끝을 알렸다. 연속 완봉승 이후 3경기에서 23점을 내준 송승준은 에이스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잃은 송승준은 8월 1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2점만 내줬음에도 5회 1사 만루 위기를 만들자 마운드를 내려가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시즌 후반 어느 정도 성적을 복구하며 13승을 거둔 송승준은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선발투수로 내정됐다. 추석 전날 열린 이 경기에서 송승준은 ‘김현수 거르고 김동주’라는 명장면을 남겼다. 결과는? “(경기장을) 나가는데 사람들이 죽이겠다고 계란을 던졌다”라는 송승준 본인의 회고로 대신한다.

2009년 7월 4일 SK-롯데전 박스스코어(사진=KBO 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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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롯데 자이언츠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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