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어깨는 쓸수록 약해질까?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명훈 >

프로야구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는 장기간 레이스다. 긴 레이스를 달리다보면 예상치 못한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매일 등판을 대기하며, 연투와 멀티 이닝을 감당해야 하는 불펜 투수들에게 혹사는 숙명처럼 따라붙는다.

야구계는 투수 혹사로부터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투구수 제한, 이닝 제한, 그리고 100구 초과 투구에 가중치를 두며 관리하는 PAP(Pitcher Abuse Points) 등 다양한 장치를 도입해 왔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부상을 유의미하게 방지하는 시스템은 찾지 못했다.

위 혹사 방지 지표들이 실패한 근본적인 이유는 공식 기록에 남는 투구수만으로는 모든 부하를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단 10구를 던졌더라도, 불펜에서 던진 공은 집계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 전력투구와 훈련 중 가볍게 던지는 캐치볼의 차이도 반영하지 못한다.

 

ACWR의 등장

스포츠 의학과 운동 생리학계는 전통적 지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급성:만성 부하 비율(Acute:Chronic Workload Ratio, ACWR)을 투수 관리 모델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ACWR은 두 가지 변수로 구성된다. 첫째, 급성 부하는 투수가 최근 7일 동안 소화한 훈련 및 경기의 평균 부하량을 의미한다. 선수가 현재 근육과 인대에 느끼는 즉각적인 피로 상태다. 둘째, 만성 부하는 최근 28일 동안 소화한 평균 부하량이다. 선수의 신체 조직이 지속적인 자극에 적응하여 만들어진 기초 체력이자 신체 수용 용량이다.

ACWR은 급성 부하를 만성 부하로 나눈 값이다. 선수가 지난 한 달간 꾸준히 적응해 온 만성 부하 대비 최근 일주일간 얼마나 갑작스러운 급성 부하를 받았는지를 수치화한다. 이를 통해 신체 조직 손상 위험을 예측한다.

대표적으로 드라이브라인은 워크로드 개념을 활용해 투구 부하를 관리한다. 워크로드는 팔에 가해지는 모든 물리적 부하를 뜻한다. 드라이브라인은 웨어러블 기기 PULSE를 활용해 워크로드를 실시간으로 측정한 후 각 투구의 강도와 볼륨을 계산해 ACWR 산출을 위한 최종 부하 수치를 산출한다.

< 드라이브라인이 제시한 상황별 평균 워크로드 >

ACWR의 최적 구간은 0.8 ~ 1.3 사이다. 이 구간은 단기 부하가 장기 부하와 균형을 이루거나 신체가 적응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하가 완만하게 상승하는 구간이다. 투구 강도와 양을 이 구간 내로 통제할 경우, 부상 발생 확률을 최대 15배까지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반면 신체 조직에 과도한 스트레스가 단기간에 집중되면 ACWR 1.5를 초과한다. 이 구간은 위험 구간으로 급성 부하가 만성 부하보다 50% 이상 높은 상태다. 근육 파열이나 척골 측부 인대(UCL) 손상 같은 치명적인 부상 위험이 U자형 곡선으로 급증한다.

반대로 아예 공을 안 던진 채 휴식하면 어떨까? 흔히 투수는 많이 쉴수록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적절한 훈련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만성 부하가 감소하는 디트레이닝 현상이 발생한다. ACWR 0.8 미만인 과소 훈련 구간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투구수만으로도 급성 부하가 치솟아 부상에 쉽게 노출된다.

< ACWR 구간별 부상 위험 변화 >

 

정말 어깨는 쓸수록 약해질까?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투수는 어깨를 최대한 아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인체 조직은 기계 부품이 아니어서 물리적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미세한 손상을 입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절한 휴식과 영양 보충이 뒷받침된다면 이전보다 조직이 더 견고해지는 초과회복 성질을 지닌다.

과거부터 전해져 내려온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논리처럼 무작정 경기에 나서라는 것이 아니다. 오프시즌과 훈련을 통해 만성 부하를 체계적으로 끌어올려, 실전에서 마주할 최악의 시나리오를 견뎌낼 수 있는 방어막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수가 통제된 환경에서 꾸준하고 점진적으로 공을 던지면 만성 부하 수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신체 조직의 탄력성과 강도가 배가된다.

만성 부하가 충분히 높아지면 3일 연투, 우천 지연으로 인한 불펜 대기, 40구 이상 멀티 이닝 소화 등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ACWR 수치가 크게 치솟지 않는다. 불펜 투수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휴식만을 강요하는 것이 정답이 아닌 것이다.

 

이래서 괜찮았고, 그래서 괜찮지 않았다

2025년 월드시리즈 7차전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96구를 던진 선발 등판 바로 다음 날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팬들은 충분한 휴식 없이 마운드에 오른 야마모토를 보며 부상 위험을 크게 우려했다.

하지만 드라이브라인의 시뮬레이션이 내놓은 의견은 달랐다. 야마모토가 2.2이닝 동안 던진 34구는 평소 루틴으로 소화하던 불펜 투구와 비슷한 수준의 부하였다. ACWR 수치 역시 1.2 보다 낮았다.

< 선발투수 인시즌 워크로드와 ACWR 변화 시뮬레이션 >

최근 WBC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맹활약한 노경은은 지난 정규 시즌에도 77경기에 출전해 80이닝을 소화하며 35홀드를 기록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불펜 투수가 한 시즌에 70경기, 80이닝 이상을 던졌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심각한 혹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노경은은 평소 강도 높은 훈련과 커리어 내내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매우 높은 수준의 만성 부하를 구축해 둔 상태였다. 덕분에 연투나 멀티 이닝이라는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단기적인 급성 부하가 부상 위험 구간으로 쉽게 치솟지 않았다.

< 2010년 이후 노경은 정규시즌 이닝 소화 변화(1군 + 2군) >

KBO리그 투수 최다 출장 기록(1,005경기)을 보유한 정우람 역시 마찬가지다. 정우람은 커리어 초반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이닝을 소화했다. 2006년 82경기, 2008년 85경기 등판했으며, 2010년 102이닝, 2011년 94.1이닝 등 수많은 이닝을 책임졌다.

그럼에도 ‘고무팔’ 정우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진짜로 팔이 고무로 만들어져서가 아니다. 커리어에 걸쳐 높은 수준의 만성 부하를 견고하게 구축한 덕분이다.

< 정우람 시즌별 이닝 소화 변화(2008~2023) >

같은 팀에서 활약했던 권혁은 정우람과 달랐다. 권혁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두 시즌 동안 불펜 투수로 144경기(해당 기간 2위)에 출장해 207.1이닝(해당 기간 1위)을 소화했다. 그리고 2016시즌 후반 팔꿈치 통증이 생겼고, 결국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까지 받았다. 당시 팬들과 언론은 누적된 투구량이 부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많은 투구량이 아니다. 권혁은 한화 이글스 이적 직전 시즌인 2014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고작 34.2이닝만을 소화했다. 그전에도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적 당시 인대와 근육이 감당할 수 있는 만성 부하는 낮아져 있었다.

< 2010년 이후 권혁 정규시즌 이닝 소화 변화(1군 + 2군) >

그러나 한화 이적 첫해인 2015년, 불펜으로만 무려 112이닝을 소화하며 투구 이닝이 직전 시즌 대비 3~4배가량 증가했다. 시즌 개막과 동시에 필승조와 추격조를 가리지 않고 감행된 빈번한 3연투와 멀티 이닝 소화는 권혁의 ACWR 수치를 위험 구간으로 끌어올렸을 것이다.

< 4년간 권혁 불펜 구원 투구 기록(2013~2016) >

 

ACWR도 무적은 아니다

ACWR이 투수 보호에 도움은 될 수 있다. 하지만 부상을 막아주는 무적 방패는 아니다. 가장 먼저 투수 스케줄의 변동성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한다. 불규칙하게 등판하고 예상치 못한 연투를 하는 불펜 투수의 리듬을 공식에만 끼워 맞추면 왜곡이 발생하기 쉽다.

무엇보다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데이터상으로는 최적 상태더라도 수면 부족, 스트레스, 영양 불균형 등 변수가 있다면 수치과 상관없이 신체는 위험한 상태일 수 있다. 만성 부하가 아무리 높게 설정되어 있더라도, 투구라는 행위는 신체에 미세한 손상을 준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부상 방지 시스템은 진화 중이라는 사실이다. ACWR과 같은 지표가 데이터 기반 관리를 시작했다면, 이제는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기계적인 수치가 놓치기 쉬운 투수들의 불규칙한 등판이나 수면, 심리적 스트레스, 영양 상태와 같은 변수들까지 정교하게 포착해 낼 기술적 도약이 머지않았다.

투구수와 부하를 계산하는 단계를 넘어, 신체 조직이 받아들이는 미세한 신호와 보이지 않는 피로도까지 완벽히 측정하고 관리하며, 보다 확실하게 부상을 예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참조 = armcare, premierpitching, bjms, simplifaster, driveline, kbo, statiz

야구공작소 이동건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희원,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안명훈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