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저스 이야기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은빈 >
완성의 계절이었고, 미완의 계절이었다.
정상에 오른 순간이었지만, 향하는 정상은 여전히 앞에 있었다.
LA 다저스는 지난 9월 17일 신시내티 레즈를 8-2로 꺾고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확정했다. 5년 연속이자 최근 14시즌 중 13번째 지구 우승. 포스트시즌 진출도 14년 연속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간 메이저리그 최장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기록에도 나란히 섰다. 이쯤 되면 정규시즌의 다저스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기록처럼 보인다.
우리는 보통 정규시즌을 한 팀의 전력을 확인하는 가장 믿을 만한 과정으로 생각한다. 하루의 승패에는 운이 개입하지만 162경기가 쌓이면 결국 강한 팀과 약한 팀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다저스를 바라볼 때는 이 익숙한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앤드류 프리드먼 다저스 야구운영부문 사장은 지구 우승 뒤 “매년 시즌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전체적인 시각을 갖기가 어렵다.”라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마무리하며 10월을 맞이하느냐.”라고 말했다.
정규시즌의 성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 다저스는 그 긴 시즌의 끝에 어떤 팀을 남겨놓느냐가 중요해졌다. 가장 강한 팀을 162경기 내내 반복해서 내놓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한 팀을 마지막에 남길 수 있느냐의 문제다.
어쩌면 다저스를 이해하려면 이제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다저스를 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162경기를 견디는 다저스와, 그 긴 시간이 끝난 뒤 비로소 나타나는 다저스다.
< 다저스의 지구 우승 축하는 초가을의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출처 = Dodgers >
162경기의 다저스, 17경기의 다저스
지난해 두 다저스 사이의 거리는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통계의 계산 방식은 이렇다. 먼저 각 선수의 직전 3시즌 WAR를 가중평균해 최근 몇 년간 보여준 기본적인 수준을 정한 뒤, 정규시즌과 포스트시즌에서의 출전 비중을 반영한다. 타자는 타석 수를, 투수는 레버리지를 반영한 투구 이닝을 기준으로 한다.
쉽게 말하면 좋은 선수들이 로스터에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선수들이 실제 경기에서 얼마나 큰 몫을 차지했는지를 보는 것이다. 높은 기존 전력을 가진 선수들이 더 많은 타석과 중요한 이닝을 책임질수록 팀 전체의 수치도 높아진다.
< 1969년 개편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팀 WAR 가중평균 상승폭 상위 10팀 >
이 기준에서 2025년 다저스의 변화는 극단적이었다. 출전 비중으로 가중한 선수들의 기존 WAR 수준은 정규시즌 2.52에서 포스트시즌 3.38로 높아졌다. 상승폭은 +0.86. 1969년 지구제 도입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팀 가운데 가장 컸다. 2001년 애리조나의 +0.82와 1989년 오클랜드의 +0.79도 넘어선 수치였다.
그렇다고 이것이 ‘최근의 다저스라면 으레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1년 전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2024년 다저스의 차이는 +0.28이었다. 같은 구단의 포스트시즌에서도 1년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포스트시즌에서 얼마나 잘했는지를 평가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선수들이 10월에 갑자기 더 잘 치고 더 잘 던져서 3.38이 된 것이 아니다. 더 높은 기존 전력을 가진 선수들이 정규시즌보다 많은 이닝과 타석을 차지하면서 실제 경기에 투입된 선수들의 전력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2025년 다저스는 10월에 갑자기 강해진 팀이라기보다, 10월에 더 강한 형태로 재구성된 팀에 가까웠다.
물론 이런 재구성 자체는 포스트시즌의 특성이기도 하다. 정규시즌에는 이닝과 타석이 넓게 분산되지만, 10월에는 휴식일을 이용해 로테이션을 줄이고 주전의 몫을 늘릴 수 있다. 경기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전력은 좋은 선수에게 집중된다.
그렇다면 2025년 다저스 역시 모든 포스트시즌 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조금 더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뿐이었을까.
68.5%보다 중요한 25.8%
두 다저스 사이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 곳은 마운드였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월드시리즈 우승팀을 살펴보면,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주력 선발진이 정규시즌에 책임진 팀 전체 이닝의 비중은 평균 32.6%였다. 포스트시즌에서는 50.9%로 높아졌다. 상승폭은 평균 18.3%포인트였다. (60경기 단축 시즌이었던 2020년도 포함한 수치다.)
< 2019 ~ 2025년 월드시리즈 우승팀 주요 선발과 이닝 비중 비교 >
10월이 되면 주력 선발의 몫이 커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19년 워싱턴은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와 맥스 슈어저를 중심으로 한 주력 선발진의 이닝 비중이 정규시즌 52.1%에서 포스트시즌 70.4%로 높아졌다. 좋은 선수에게 전력을 집중하는 것은 다저스만의 10월 운영법이 아니다.
2025년 다저스도 방향은 같았다. 다만 변화의 폭이 달랐다.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블레이크 스넬, 타일러 글래스나우, 오타니 쇼헤이가 정규시즌에 차지한 이닝은 전체의 25.8%였다. 포스트시즌에서는 68.5%까지 치솟았다. 상승폭은 42.6%포인트. 앞선 여섯 우승팀 평균의 두 배가 넘었다. 네 투수는 포스트시즌에서 일부 구원 등판까지 합쳐 113이닝을 책임졌다. 정규시즌에 여러 투수에게 흩어졌던 이닝이 10월에는 네 명에게 한꺼번에 몰렸다.
그런데 여기서 더 눈여겨볼 숫자는 68.5%보다 25.8%다.
포스트시즌에서 에이스에게 많은 이닝을 맡기는 팀은 흔하다. 놀라운 것은 훗날 10월의 대부분을 맡게 될 네 투수가 정규시즌에는 전체 이닝의 4분의 1 정도만 던졌는데도 다저스가 93승을 거뒀다는 사실이다. 야마모토와 스넬, 글래스나우, 오타니가 선발로 나선 경기는 합쳐 73경기였다. 나머지 89경기는 다른 투수들이 시작했다.
10월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다저스가 치른 포스트시즌 17경기의 선발 마운드는 모두 네 명이 나눠 맡았다. 정규시즌의 절반이 넘는 경기를 책임졌던 다른 투수들은 포스트시즌 선발 로테이션에서 사라졌다.
< 2025년 다저스의 로테이션: 오타니, 야마모토, 스넬, 글래스나우 출처 = Sports Illustrated >
타선에서도 마이클 콘포토는 정규시즌 138경기에서 486타석을 소화했지만, 포스트시즌 로스터에서는 빠졌다. 정규시즌 동안 여러 선수에게 분산됐던 이닝과 타석, 역할이 10월에는 가장 좋은 선수들에게 집중됐다. 일종의 ‘전력 압축’이다.
하지만 이를 처음부터 계산된 결과로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스넬과 글래스나우, 사사키 로키는 부상으로 자리를 비웠고 오타니의 투수 복귀도 6월에야 이뤄졌다. 25.8% 자체는 계획된 숫자가 아니었다. 다만 그 공백을 견디고 복귀를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다저스의 선수층과 운영 방식이 작용했다.
그래서 93승의 의미는 더 커진다. 결손 자체는 계획 밖의 일이었지만, 그 결손을 흡수한 과정까지 우연으로만 볼 수는 없다. 2025년 다저스의 놀라움은 두 다저스 사이의 거리가 이례적으로 컸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거리의 출발점조차 93승 팀이었다는 점이다.
부재의 가격
그렇다면 두 다저스 사이의 거리가 이만큼 컸는데도, 첫 번째 다저스는 어떻게 93승을 할 수 있었을까.
맥스 먼시는 지구 우승 뒤 올 시즌을 돌아보며 누군가 전력에서 빠질 때마다 다른 선수가 그 자리를 메웠다고 말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다저스가 반복해 온 일이기도 하다.
흔히 이를 두고 ‘뎁스가 깊다’라고 말한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주전이 빠졌을 때 다음 선수가 그 공백을 얼마나 잘 메우느냐는 뎁스의 중요한 부분이다. 다만 다저스의 경우 그 효과는 빠진 자리를 단순히 메우는 데만 있지 않다.
대부분의 팀에서 핵심 선수의 이탈은 한 명의 결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가 맡아야 할 이닝과 타석을 더 낮은 수준의 선수들이 나눠 가져야 하고, 그 차이는 162경기를 거치며 승패로 쌓인다. 결국 핵심 선수의 부재에는 일종의 가격이 붙는다.
다저스는 그 가격을 낮추는 데 유리한 조건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2025년 CBT 페이롤은 약 4억 560만 달러로 추산됐고 MLB Pipeline의 팜 시스템 평가에서는 프리시즌 4위, 미드시즌 1위에 올랐다. 외부에서 검증된 전력을 더할 재정력과 조직 내부에서 선수를 계속 공급할 기반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셈이다.
서로 다른 장점처럼 보이지만 두 조건은 긴 시즌에서 같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자리만 놓고 보면 중복처럼 보이는 자원도 부상과 부진이 반복되는 162경기에서는 보험이 된다. 좋은 선발이 있는데 또 다른 선발을 확보하고, 당장 자리가 분명하지 않은 선수까지 보유하는 것도 결국 선택지의 폭을 넓히는 일이다. 한 선택지가 사라져도 다음 선택지로 내려가며 생기는 전력 손실이 작다면 주축의 부재가 팀 전체에 미치는 비용도 그만큼 줄어든다.
그리고 그 비용이 낮아질수록 팀 운용에도 여유가 생긴다. 재활 중인 선수의 복귀를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하나의 계획이 틀렸을 때 다른 조합을 시험할 수도 있다. 정규시즌의 공백을 다른 선수들로 버틸 수 있다면, 핵심 선수에게 반드시 4월부터 9월까지의 모든 이닝과 타석을 요구할 필요도 줄어든다.
이런 구조에서는 선수의 가동률에 따르는 위험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선수가 자리를 비우더라도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면 같은 부상 위험이 팀에 주는 부담 역시 달라진다. 다저스가 가동률이 낮은 선수를 의도적으로 선호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결손을 흡수할 능력이 클수록 같은 위험의 가격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다저스의 가장 큰 사치는 비싼 선수를 많이 보유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좋은 선수를 사용하지 못하는 시간의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 스넬과 글래스나우는 2026시즌을 실질적으로 8월부터 시작했다 출처 = MLB >
한 팀의 실력은 하나일까
이렇게 보면 93승이라는 숫자의 의미도 달라진다.
93승은 2025년 다저스의 최고 전력이 얼마나 강했는지만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오히려 팀이 얼마나 큰 손실을 흡수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어떤 팀을 90승 전력, 95승 전력이라고 말한다. 162경기를 통해 드러난 평균적인 경기력을 그 팀의 ‘진짜 실력’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과 상한은 같은 말이 아니다.
정규시즌이 수많은 선수 조합의 평균을 보여준다면, 10월의 질문은 조금 다르다. 지금 가진 선수들 가운데 얼마나 강한 조합을 동시에 그라운드에 올려놓을 수 있는가. 2025년 다저스에서 흥미로운 것은 평균이 높았다는 사실과 상한이 높았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 둘 사이의 거리마저 이례적으로 컸다는 점이다.
정규시즌에는 대체 선발이 포함된 다저스도 있고, 핵심 타자가 빠진 다저스도 있다. 어떤 날에는 벤치 선수가 더 많은 역할을 맡고, 다른 날에는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온 선수가 빈자리를 채운다. 서로 다른 형태의 다저스가 162경기를 통과하며 필요한 승리를 쌓는다. 그리고 10월에는 그 많은 형태 가운데 가장 좋은 쪽으로 이닝과 타석, 역할을 집중한다.
이렇게 보면 깊은 선수층의 의미도 달라진다. 단순히 ‘백업까지 잘한다’는 것만이 아니다. 다저스의 뎁스는 선수의 수보다, 만들 수 있는 팀의 수에 가깝다. 이런 방향을 원하는 팀은 다저스뿐이 아니다. 다저스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은 그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느냐다.
따라서 다저스에게 정규시즌은 이미 완성된 하나의 팀을 162번 반복해서 보여주는 시간이 아니다. 여러 형태의 다저스로 필요한 승리를 쌓으면서, 그해 마지막에 가장 유효한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규시즌은 다저스의 실력을 측정하는 과정인 동시에 마지막에 사용할 다저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가능한 것은 첫 번째 다저스가 이미 충분히 강하기 때문이다.
< 다저스의 여유는 (자금을 포함한) 여러 방면의 안전 장치에서 나온다 출처 = Sportico >
두 번째 다저스를 기다리며
그리고 이제 다저스는 다시 그 과정의 끝을 향하고 있다.
2026년의 다저스는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과 지구 우승을 확정했다. 그러나 10월에 어떤 팀이 그라운드에 설지는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정규시즌을 통과해 온 첫 번째 다저스의 모습은 거의 드러났지만 두 번째 다저스는 아직 만들어지는 중이다.
물론 지난해와 같은 변화가 다시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2025년의 기록적인 격차가 다저스가 가진 구조에서 반복될 수 있는 결과였는지, 아니면 여러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특별한 한 해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선택지를 가진 팀이라도 짧은 포스트시즌의 불확실성까지 없앨 수는 없다. 더 좋은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과 그 선수들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무키 베츠는 지구 우승 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너무 집중할 필요는 없다. 결국 도착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 다저스의 모습은 이미 드러났다.
이제 남은 것은 그 긴 시즌이 어떤 두 번째 다저스를 만들어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참조 = MLB, Baseball Reference, CBS Sports, ESPN, Fangraphs, Sportico, The Athletic
야구공작소 김예찬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정세윤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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