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에게: 팬들에게 야구 데이터의 길을 열어주세요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박경진 >
2026년 2월, 일본 프로야구(NPB)는 ‘NPB+’라는 공식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NPB와 코나미, 소니가 협력해 개발한 이 앱에서는 호크아이(Hawk-Eye) 시스템으로 측정한 트래킹 데이터를 일반 팬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투수가 던진 공의 구속과 회전수, 무브먼트와 타구속도 같은 트래킹 데이터도 확인할 수 있다. 앱에는 중계 영상으로나 볼 수 있던 투구와 타구의 궤적 같은 3D 시각화도 포함되어 있다.
< NPB+ 앱 소개 이미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데이터를 볼 수 있다’고 홍보한다 >
‘NPB+’ 출시가 갖는 의의는 명확하다. 야구 중계에서나 간간이 접하던 데이터를 팬들이 직접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앱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광고가 많다는 불만도 있고, 과거 경기 데이터를 찾아보기 불편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접근하기 어려웠던 정보를 일반 팬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다.
사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MLB의 공식 데이터 플랫폼인 베이스볼 서번트(Baseball Savant)에서는 스탯캐스트(Statcast)로 측정한 투구·타구 데이터를 누구나 검색할 수 있다. 단순히 화면에서 수치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하는 조건에 맞는 데이터를 CSV 파일로 내려받아 직접 분석할 수도 있다.
< MLB 트래킹 데이터를 무료로 제공하는 베이스볼 서번트 >
예를 들어 특정 투수가 올 시즌 던진 슬라이더의 구속과 무브먼트를 모두 내려받거나, 특정 타자가 만들어낸 타구의 속도와 발사각을 직접 분석할 수 있다. 리그에서 제공하지 않는 통계가 궁금하다면 데이터를 내려받아 스스로 계산하면 된다.
그렇다면 KBO리그에서는 어떨까?
트래킹 데이터까지 갈 필요도 없다. 기본적인 경기 기록부터 생각해보자.
볼 수는 있지만, 가져갈 수는 없다
KBO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선수들의 타율과 평균자책점, 경기별 기록 등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데이터를 다른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한 팬이 지난 10년간 KBO리그의 타자별 월간 성적을 분석하고 싶다고 해보자. 홈페이지에서 선수별 기록을 하나씩 찾아볼 수는 있다. 그러나 원하는 기록을 한꺼번에 내려받거나 프로그램으로 불러올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은 제한적이다
물론 웹페이지에 표시된 데이터를 직접 복사하거나 손으로 받아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경기와 선수의 기록을 일일이 옮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럴 때 프로그램을 이용해 웹사이트의 정보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방법이 크롤링(Crawling) 또는 스크래핑(Scraping)이다.
KBO리그의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려는 사람들, 특히 프로그래밍 지식을 갖춘 이들에게 이런 방법은 낯설지 않다.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데이터 접근 경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베이스볼 서번트처럼 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없기 때문에, KBO 공식 사이트 등지에서 직접 기록을 수집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KBO는 2026년 9월 홈페이지 이용약관 개정을 공지하면서, 사전 동의 없는 자동화된 대량 데이터 수집과 재활용에 대한 제한을 강화했다. 크롤링이나 스크래핑 같은 자동화된 데이터 수집 행위를 직접적인 규제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 KBO 홈페이지 이용약관 >
웹사이트 운영자가 무분별한 크롤링을 제한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봇(Bot)을 활용한 과도한 수집 요청은 서버에 부담을 줄 수 있고,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공식적으로 데이터를 가져갈 방법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용자들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부터 제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순서일까?
데이터는 있는데, 쉽게 쓸 방법이 없다
이 문제는 단순히 팬들이 야구 기록을 분석하기 불편하다는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KBO리그에서는 경기 기록뿐 아니라 선수 등록과 말소, 선수 이동, 등록일수, 연봉 등 다양한 정보가 매일 생산되고 관리된다. 구단 운영과 선수 평가, 계약과 관련된 업무에서도 활용되는 정보들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 역시 외부 프로그램에서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식적인 데이터 제공 체계가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어떤 선수가 언제 1군에 등록되고 말소됐는지, 특정 기간 동안 등록일수가 얼마나 누적됐는지, 선수의 소속팀이나 신분이 언제 바뀌었는지를 프로그램으로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부 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화면에 표시된 정보를 읽는 것과 수백 명의 선수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관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 KBO는 홈페이지에 기초 정보를 게시하고 있지만, 자동화된 수집 방식은 제공하고 있지 않다 >
기록을 제공하는 기관이 데이터를 CSV나 JSON처럼 구조화된 파일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하거나, 공식 API를 제공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API는 외부 프로그램이 정해진 방식으로 데이터를 요청하고 받아올 수 있도록 만든 통로를 말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특별히 새로운 기술도 아니다. 이미 다양한 공공기관과 민간 서비스에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KBO에서는 일반 이용자가 공식 기록을 프로그램으로 불러오거나 대량으로 내려받을 수 있는 환경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단순히 팬들이 야구 기록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록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인 구단에게도 충분한 편의성이 제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KBO는 구단 운영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일반 팬에게 공개된 홈페이지와는 별도의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를 화면에서 조회할 수 있다는 것과 실제 업무에 활용하기 편리한 형태로 제공한다는 것은 다르다. 프로그램에서 직접 불러올 수 있는 API나 CSV, JSON 등의 데이터 제공 수단은 여전히 부족하다.
결국 구단 실무자들조차 필요한 정보를 일일이 확인하고 옮겨 적거나, 담당자에게 별도로 문의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경기와 선수 운영에 관한 정보를 관리하는 기관이 정작 그 정보를 활용해야 할 구단에 충분한 데이터 접근 수단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기록을 수집하고 검증하며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하는 작업에는 비용이 든다. 문제는 비용 자체가 아니라, 기록을 생산하는 데 직접 참여한 구단조차 그 데이터를 필요한 형태로 제공받고 활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록의 관리와 이용 권한을 어떻게 설계했는가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일반 팬이나 외부 연구자에게 충분한 데이터 접근 경로가 제공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활용을 막는 것은 다르다
이것이 KBO가 보유하거나 관리하는 모든 데이터를 누구나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다. 경기 기록을 수집하고 검증하는 데에는 비용이 들고, 데이터를 관리하는 시스템에도 운영비가 필요하다. 특히 트래킹 데이터는 측정 장비와 기술을 제공하는 업체와의 계약 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다.
구단 내부에서 수집하는 훈련 데이터나 선수의 신체 측정 정보, 스카우팅 평가와 같은 자료는 더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이런 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공식 경기에서 발생한 기본 기록과 선수 등록·말소 같은 운영정보를 활용하는 문제는 별도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떤 선수가 3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나 특정 날짜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특별한 분석 기술이나 영업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물론 개별 사실과 이를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한 데이터베이스의 권리는 법적으로 구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모든 활용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MLB 역시 모든 데이터를 퍼블릭 도메인으로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공식 데이터에 관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으며, 상업적인 이용이나 무단 재배포에는 별도의 제한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베이스볼 서번트에서는 상당한 양의 트래킹 데이터를 직접 검색하고 내려받을 수 있다.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유지하면서도 팬과 연구자가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KBO 역시 비슷한 접근법을 검토할 수 있다. 기본적인 경기 기록은 공식적으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하고, 프로그램에서 사용할 수 있는 API를 제공할 수 있다. 개인적인 분석이나 비상업적 연구에는 비교적 폭넓은 이용을 허용하되, 데이터를 대규모로 재판매하거나 상업적 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별도의 라이선스를 요구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사람들은 비공식적인 크롤링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든다. KBO 역시 데이터 이용량과 사용 목적을 관리할 수 있다.
비공식적인 크롤링과 스크래핑을 제한하려면, 이를 통하지 않고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적어도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정당한 수요에 대해서는 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AI가 코드를 짜주는 시대
이 문제를 지금 다시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생성형 AI의 발전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야구 데이터를 직접 분석하려면 상당한 기술이 필요했다.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통계 프로그램이나 파이썬, R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룰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AI 코딩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이런 작업을 수행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프로그래밍을 잘 모르는 사람도 AI에게 원하는 분석을 설명하고 코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팬이 이렇게 질문한다고 생각해보자. ‘지난 5년간 우리 팀 신인 타자들의 데뷔 첫 100타석 성적을 비교해줘. 출루율과 장타율을 계산하고,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한 선수들을 그래프로 보여줘.
과거에는 이런 분석을 직접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적절한 데이터만 제공된다면 AI가 필요한 코드를 작성하고 분석 결과를 만들어줄 수 있다.
물론 AI가 만들어준 코드와 분석 결과를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 된다. 잘못된 데이터 처리나 통계 해석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에 공식 데이터에 대한 접근마저 제한된다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불완전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자료에 의존하게 될 수 있고, AI가 제시한 분석 결과가 실제 기록과 일치하는지 검증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미 생성형 AI가 부정확한 정보를 사실처럼 제시하는 문제는 여러 분야에서 지적되고 있다. 야구 데이터 분석이라고 예외일 이유는 없다. 특히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사용자가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잘못된 정보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 AI의 잘못된 답변에 의존한 판단은 사회 각 분야에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
공식 데이터가 제공된다고 해서 이런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신뢰할 만한 기본 데이터를 확보하고 분석 결과를 비교 및 검증할 수 있는 환경은 마련할 수 있다. AI를 이용한 데이터 분석이 쉬워질수록, 누구나 접근하고 검증할 수 있는 공식 데이터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는 셈이다.
물론 AI가 가져올 변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앞으로는 공개된 데이터를 이용해 새로운 통계를 만들고, 웹사이트를 개발하고, 자신만의 분석을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MLB의 공개 데이터를 활용한 다양한 분석 프로젝트와 팬 제작 서비스가 존재하는 것도 이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 MLB 공개 데이터를 활용한 시각화 프로젝트의 예시. 타구속도, 발사각도(상하, 좌우)에 따른 안타확률을 3D로 나타냈다 >
KBO 데이터 역시 충분한 접근 환경이 마련된다면 새로운 분석과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할지, 어떤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지는 별도로 검증해야 한다.
하지만 데이터 접근 자체를 제한한다면 그런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조차 줄어든다.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는 비용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이익은 비교적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무단 이용을 통제하고, 기존의 사업적 권리를 보호하며, 데이터 관리에 따르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반면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기회는 쉽게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만들어지지 못한 분석 사이트가 몇 개였는지, 진행되지 못한 연구가 얼마나 있었는지,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야구에 관심을 갖게 됐을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그렇다고 데이터 공개가 무조건 더 큰 이익을 가져온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 이용 수요와 운영 비용, 구단 및 사업자의 권리 관계를 검토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작은 범위부터 공개하고 그 효과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KBO가 당장 MLB 수준의 트래킹 데이터 플랫폼을 만들 필요는 없다. 기본적인 경기 기록을 공식적으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 선수 등록과 말소, 소속팀 변경 같은 운영정보를 프로그램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다.
데이터의 활용 범위와 권리 관계를 정리하고, 개인적인 분석과 연구에 대한 명확한 이용 기준을 마련하는 일도 필요하다.
크롤링을 무제한으로 허용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크롤링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먼저 만들자는 것이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은 충분히 제공하지 않으면서, 데이터를 수집하는 방법부터 제한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문제를 이용자에게 떠넘기는 것에 가깝다.
AI가 데이터 분석과 프로그래밍의 장벽을 낮추고 있는 지금, 이런 접근 방식이 가져올 기회비용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KBO가 모든 통계 자료를 대신 알려주는 서비스만이 아니다. 자신이 궁금한 것을 직접 찾아보고,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의 창을 원하는 이들도 있다.
KBO가 고민해야 할 것은 데이터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뿐만이 아니다. 그 데이터를 활용하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가능성을 놓치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참조 = NPB+, KBO 홈페이지, 베이스볼 서번트
야구공작소 익명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익명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박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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