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 엑소더스의 역사

 

[야구공작소 차승윤]또 하나의 왕조가 끝났다. 삼성 라이온즈의 FA 외야수 최형우와 투수 차우찬이 각각 KIA와 LG로 이적을 택하면서 2016시즌 9위를 기록했던 삼성이 이전의 우승 행렬을 이어가는 것은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이미 권혁, 배영수, 박석민, 나바로, 벤덴헐크가 이적했고 안지만은 불명예스러운 일로 팀을 떠났으며 사령관이었던 류중일 감독마저 재계약에 실패하며 삼성 왕조의 주요 멤버들은 박한이, 이승엽, 윤성환 정도밖에는 남지 않았다.

삼성 왕조 몰락의 이유로 모기업의 투자 감소, 원정 도박 사건, 팜의 황폐화 등 여러 요소가 거론된다. 그렇다면 삼성은 단지 불운하게 예상치 못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무너진 것일까?

 

왕조, 역사는 반복된다

KBO리그에서 왕조는 보통 특정 기간 동안 우승을 반복하며 리그를 지배한 팀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팀들이 바로 15년 동안 9회 우승에 빛나는 해태 타이거즈(83, 86~89, 91, 93, 96, 97), 7년 동안 4회 우승의 현대 유니콘스(98, 00, 03~04), 4년 동안 3회 우승한 SK 와이번스(07, 08, 10) 그리고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11~14)다.

이들의 공통점은, 최전성기를 누린 몇 년을 넘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전력 하락에 시달렸다는 부분이다. 삼성이 겪는 어려움은 왕조를 건설했던 대부분의 팀이 직면했던 부분이었다. 무엇이 그들의 장기 집권을 방해했을까?

 

왕조, 유지비는 비쌌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연봉은 실력을 평가받는 하나의 지표다. 1년차 선수가 아니고서야 잘하는 선수일수록 연봉은 올라가고 우승팀에 잘하는 선수가 많은 것 역시 당연하다. 게다가 팀이 연달아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연봉 역시 연달아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왕조 팀들의 평균 연봉은 언제나 리그 상위권이었다. 그리고 왕조가 유지되면 될수록 팀을 유지하는 것은 구단에게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특히 통합 4연패의 위업을 남긴 삼성의 경우, 우승 첫해(2011)를 제외한 이후 4년간 연봉 1위를 차지하며 2012년 60억, 2014년 70억에 이어 2015년에는 사상 최초로 팀 연봉 80억을 돌파했다. 현대와 SK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대는 왕조 말기인 2003년 팀 연봉 2위, 2004년 1위를 기록했고 SK 역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한번도 연봉 2위 밖으로 벗어나지 않으며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실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구단의 재정을 담당해야 할 프런트에게 이와 같은 연봉 증가는 결코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팬들에게는 우승만이 지상과제일지 몰라도 구단 입장에서는 우승을 위한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 특히 현재 KBO리그는 모기업에 의해 시혜적으로 운영되는 구조이기에 구단주가 일정 횟수 이상의 우승에 투자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고비용은 언제라도 모기업으로 하여금 야구단에 등을 돌리게 할 수 있다.

 

<현대 유니콘스/ SK 와이번스/ 삼성 라이온즈 우승 다음해 팀 연봉 순위>

 

FA의 딜레마

강팀은 필연적으로 매년 FA 리스트와 마주쳐야 한다. 주전 선수들이 꾸준한 출전으로 빠르게 FA 자격을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FA 제도 초창기에 사라진 해태를 제외하면 왕조의 후반기에 이르러 왕조의 공신들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팀을 떠났다. 현대는 2003년 시즌 후 주전 2루수 박종호, 2004 시즌 후에는 주전 유격수인 박진만과 4번 타자 심정수를 라이벌 삼성에게 내주며 왕조를 마감했고, SK는 2011 시즌 후 정대현, 이승호를 시작으로 2013년 정근우, 2016년 정우람, 정상호, 윤길현을 붙잡지 못하며 왕조 멤버의 절반 가까이를 상실했다. 이러한 흐름은 삼성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2014 시즌 후 권혁과 배영수의 이적을 시작으로 2015년 박석민이 NC로 떠나갔으며 2016년 최형우와 차우찬마저 떠나가며 왕조 시절 투/타의 주요 선수들을 잃게 되었다.

문제는 FA 선수를 모두 잡을 수도, 잡지 않았을 때 대체재를 마련할 수도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있다. 왕조를 일구며 FA 자격을 취득한 선수는 대개 해당 포지션에서 리그 최정상급 선수인 경우가 많다. 몸값이 오를 대로 오른 리그 최정상급 선수를 매번 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최정상급 선수를 온전히 대체할 선수가 쉽게 나올 리도 없다.

실제로 SK는 정근우의 이적 이후 아직도 2루에서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고, 리그 최고의 포지션이었던 삼성의 3루 역시 주인을 찾지 못하면서 결국 이원석이라는 새로운 FA 이적생으로 채워야 했다. 살 수 없는 선수들은 달리 채울 수도 없음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령화, 그리고 육성

KBO리그에서 우승 전력인 팀의 리빌딩은 알면서도 좀처럼 실행할 수 없는 난제다. 드래프트 제도에 의해 최상위 유망주를 고를 수 없으므로 팜에 있어 타 구단에 비해 밀리는 것이 첫째 이유다.

하지만 우승팀의 문제는 단순히 드래프트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성적 지상주의일 수밖에 없는 팀의 내외적 요소들이다. 매년 모기업은 리그 1, 2위 수준의 연봉을 팀에 투자하며, 팀 전력 역시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전력이다. 거기에 실제로 우승을 계속 현실화하고 있다면 구단과 감독은 주전 중심의 win-now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불리한 드래프트 상황과 결합하면서 발생한다. 4년 내외의 고정된 1군 엔트리는 곧 팀의 고령화로 이어진다.

현대의 경우 왕조가 시작된 1998년에는 야수 평균 연령이 28.2세, 투수 평균 연령은 27세였지만 왕조 막바지인 2004년에는 야수 평균이 29.8세, 투수 평균이 27.9세로 올라갔다.

아마 야구에서 즉시 전력을 수혈하지 못하게 된 SK와 삼성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2007년 평균 27.7세의 야수들과 평균 29.3세의 투수들로 정상에 올랐던 SK는 연이은 투수 육성에 성공으로 마지막 우승까지 27~8살 나이대의 투수 평균 연령을 기록했다. 하지만 우승에 실패한 2011년과 2012년에 와서는 각각 29.5세와 29.3세로 상승세를 보인다. 삼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2010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왕조를 건설하기 시작했을 때 삼성 야수의 평균 연령은 28.5세, 투수는 27.6세였다. 이것이 왕조의 말기인 2014~2015년에 이르면 각각 야수는 29.7세와 29.6세, 투수는 둘 다 30.5세를 기록한다. win-now를 지향하면서 1군에 유망주의 자리를 내주지 못하고 달려야 했던 왕조 팀의 슬픈 이면이었다.

 

지속될 수 없는 왕조, 두산은 다를까?

이런 이유로 해태 왕조의 15년에 걸친 장기집권은 단순히 9번의 우승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승권의 팀을 오랜 시간 지속시키는 것은 단순히 우승권의 팀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태의 전성 시절에는 FA 제도가 없었고, 프로야구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 아마추어에서 즉시 전력들을 수혈하기 용이했다는 차이점이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왕조들은 해태가 누린 특권들을 더는 누리지 못한다. 아마 야구는 즉시 전력을 보급해 주지 못하고, 호성적은 곧 고액 FA 신청으로 이어진다. 모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의 구단 구조에서 왕조의 쇠락과 해체는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장기간의 전력 유지를 위해서는 충분한 팜을 갖춰 왕조와 그 다음, 그리고 그 다음까지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 그저 이러한 그림을 현실화하는 일이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러한 구 왕조들의 종말 속에, 새로이 왕조의 좌(座)를 쌓아가는 팀이 두산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원년에 가장 먼저 2군 구장을 세운 구단이며, 2000년대 이후 젊은 선수들을 대거 육성해내며 리그 최강의 뎁스로 우승에 도전했던 구단이기 때문이다. 김경문 체제가 시작했던 지난 2005년을 전후해 두산은 한 해가 멀다 하고 주전급 야수들을 배출했다. 2006년 이종욱과 고영민, 2007년 김현수, 2010년 양의지와 이성열, 2011년 오재원, 2013년 민병헌, 김재호 등 매년 새로운 얼굴들이 많은 기회를 제공받았다. 또한 이들은 대부분 일정한 시기 동안 퓨처스리그에서 묵혀졌던 선수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들이 아닌, 구단의 적절한 플랜과 육성 속에 만들어진 자원이라는 것이다.

2016 한국시리즈 우승 후 실린 기사(‘시스템, 새로운 두산 왕조를 세우다.’)에서 이복근 두산 스카우트 팀장의 인터뷰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아마 시절의 명성, 성적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일반적인 드래프트 전략과는 달리 두산은 성장 가능성을 중점을 두고 퓨처스리그에서 기본기부터 다시 만들어 완전 경쟁 체제 속에서 자원들을 하나하나 올려 보낸다는 것이다. 두산이 장기적 관점에서 유망주들을 관리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팀 스타일 속에서 두산의 평균 연령도 낮을 수밖에 없다. 올해 두산 야수의 평균 연령은 28.3세인데, 재밌는 것은 2013년 준우승했을 때부터 4년 동안 두산 야수진 평균 연령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2013년부터 두산 야수진의 평균 연령은 28.6-28.3-28.2-28.3으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투수진 역시 올해 정재훈의 합류로 처음으로 평균이 30세를 넘겼지만, 역시 작년까지 28.7-28.9-28.6세를 기록했다. 매년 팀의 전력 대체가 원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다.

엑소더스에 대해, 이미 두산은 2013년 이종욱과 손시헌, 최준석이라는 주요 전력을 포기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2년 후 두산은 완벽한 대체 선수들과 함께 우승컵을 들었다. 선수 한두 명에게 의존하지 않은 채 창단 이래 30년 넘게 육성에 의존한 두산의 체질이라면 이때까지 왕조들이 겪은 팀의 붕괴는 없을지도 모른다. 두산이기에, 팬들은 몇몇 선수들과 이별하더라도 새로운 역사와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팀이기에 2년 연속 FA 선수를 붙잡은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우승의 주요 멤버인 오재원, 김재호, 이현승과의 재계약은 그들과 함께 왕조를 이어나가겠다는 구단의 강한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FA 선수의 잔류, 심지어 장원준이라는 시장 최대어의 영입에도 팀 연봉 순위가 하락 중인 것 역시 두산 왕조의 지속성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13년 55억 1700만 원으로 3위, 2014년 51억 8300만 원으로 2위를 기록했던 두산의 팀 연봉은 2015년 장원준의 영입이 있음에도 59억 7500만 원을 기록하며 6위로 내려갔다. 2016년에도 전년도의 우승과 오재원의 FA 잔류로 팀 연봉이 상승했지만(67억 6400만 원), 오히려 연봉 순위는 한 단계 내려간 7위를 차지했다. 갈수록 과열되는 시장 속에서 두산은 상대적으로 효율적으로 페이롤을 관리해 왔다. 물론 앞으로도 누적될 호성적과 연봉 상승, 양의지와 민병헌이라는 대형 FA를 생각하면 두산의 페이롤 관리가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적어도 과열된 시장에서 현재까지 눈에 띄는 행보인 것은 분명하다.

리그 최강의 1군, 준비된 2군, 구단의 의지까지 갖춰진 두산에게 장기 집권의 장애물은 상위 팀들에게 더 불리해진 드래프트 지명 순서뿐이다. 과연 두산은 빠르게 쇠락했던 지난 왕조들의 철로를 피할 수 있을까?

 

기록제공: Statiz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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