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엘리아스가 질문합니다. “팀 승률 3할을 원하는가, 크데의 30홈런을 원하는가?”
(사진=볼티모어 오리올스 제공)
[야구공작소 김준업] 2006년 가을, 캠든 야즈에 한 티셔츠를 입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팬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새를 자유롭게 풀어달라’는 구호가 적힌 옷이었다. 시위 목적은 구단주의 퇴진이었다. 그는 팀을 자기 마음대로 운영하며 파괴하고 있었고, 볼티모어의 암흑기는 어언 10년을 채워가고 있었다.
피터 앙헬로스 구단주는 끝내 꾀꼬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시위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시즌, 볼티모어는 열 번 중 세 번도 이기지 못했다. 프런트는 댄 듀켓 전 단장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장 채용 공고 한 달 만에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부단장 마이크 엘리아스를 영입했다.
엘리아스 단장은 2007년부터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2011년엔 제프 르나우가 휴스턴 단장으로 임명되며 단장 특별보좌관으로 같이 이적했다. 국내외 스카우트 총괄과 선수 육성 총괄도 맡았다. 그는 임명되자마자 휴스턴 전력분석을 총괄한 시그 메달을 부단장으로 데려왔다. 오랜 세월 프런트에 실망만 했던 팬들은 연이어 터지는 소식에 구단을 찬양하고 있다.
잘 들어라, 애초에 기대를 하니까 배신을 당하는 거다
볼티모어를 대표하는 노동 인권 변호사 피터 앙헬로스는 주와 연방 정부를 상대로 승소를 따낸 거물이었다. 볼티모어 토박이였던 앙헬로스는 고향 팀 오리올스를 운영하는 것이 오랜 염원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앙헬로스 그룹을 결성했다. 투자 유치는 성공적이었다. 세계적인 군사 소설가 톰 클랜시, <레인 맨>을 제작한 영화감독 배리 레빈슨,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팸 슈라이버 등 볼티모어 출신의 유명 인사가 연이어 투자했다.
1993시즌이 끝난 직후, 앙헬로스 그룹은 구단주 엘리 제이콥스로부터 1억 7,300만 달러에 오리올스를 인수했다. 가장 많은 금액인 4천만 달러를 투자한 앙헬로스 그룹 대표는 구단 운영을 맡게 된다. 볼티모어 출신의 유명 인사가 대거 참여할 때부터 앙헬로스 그룹은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1970년대의 강팀의 모습을 재현해주길 바랐다. 그룹의 생각도 같았다.
뉴욕 양키스와 같이 강한 팀을 만들고 싶었던 앙헬로스는 페이롤을 메이저리그 1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효과는 금세 드러났다. 팀은 2년 연속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정상은 멀었다. 월드시리즈 문턱에서 연거푸 좌절한 앙헬로스는 단장을 해고했다. 그리고 허수아비 단장을 앉힌 후 팀 운영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
구단주의 투자는 주로 거포 타자에 치우쳤다. 투·타 균형이 맞지 않는 로스터는 볼티모어를 깊은 암흑기로 안내했다. 2001년 마이크 무시나를 양키스로 보낸 뒤 볼티모어가 키운 에이스는 단 한 명이다. 2007년 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된 에릭 베다드다. 그가 활약한 것도 단 4년에 불과하다.
피터 앙헬로스는 단장에게 권한을 주기보다 지시를 내렸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감독은 칼같이 잘라냈다. 21세기에 맞는 운영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였지만 구단 운영에선 초보와 다름없었다.
댄 듀켓이 전합니다. “이 팀은 솔직히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안됩니다.”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오리올스는 2018년에도 20세기식 올드 스쿨적 운영을 한 희귀한 구단이다. 댄 듀켓 전 단장은 보스턴 단장 재임 시절 데이터 야구를 한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볼티모어에선 구단주의 기조에 맞춰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습니다
우주의 기운을 모아 가을야구에 진출한 2012년부터 구단주는 화끈하게 페이롤을 올렸다. 그러나 이런 프런트의 의지는 이치에 맞지 않는 FA 영입으로 이어졌다. 전력분석에 투자하는 대신 크리스 데이비스에게 장기 계약을 안겼다. 듀켓 체제하의 유망주는 그저 고액의 즉전감 선수 영입을 위한 소모품이었다. 팬들의 커진 기대는 큰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듀켓의 전임인 앤디 맥페일 전 단장이 모은 타자는 대부분 실력이 만개했다. 볼티모어를 가을야구로 보내는 데도 일조했다. 그러나 투수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브라이언 매터스처럼 사라지거나 제이크 아리에타처럼 다른 팀에서 터졌다. 볼티모어는 오랜 기간 동안 투수 영입에 큰돈을 쓰지 않았다. 마이너리그 투수 육성 시스템도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듀켓 단장은 룰5드래프트에 집중하는 대신 전임자들이 구축한 국제 유망주 시장 파이프라인을 모두 뽑고 철수했다. 구단의 근시안적인 정책에 대해 팬은 물론 구단 관계자까지 비난했다. 볼티모어 유일의 명예의 전당 입성 투수이자 MASN의 해설자로 활동 중인 짐 파머도 그중 하나였다.
파머는 돔 치티 볼펜 코치와 데이브 월러스 투수 코치를 대동하고 앙헬로스 구단주를 찾아갔다. 파머는 전력분석과 스카우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전성기가 끝나가는 베테랑 선수를 비싸게 사면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제 유망주 시장에 대한 투자 가치도 토로했다.
‘휴스턴의 호세 알투베는 겨우 1.5만 불짜리 선수였습니다. 지난 트레이드 데드라인 때 보낸 조나단 스콥도 9.5만 달러에 계약한 국제 유망주였고요. 메이저리그에 국제 시장 계약 출신이 꽤 늘었어요. 전체 유망주 순위만 봐도 상위 10위 중 절반 이상이 국제 유망주지요.
이 팀이 2012년부터 7년간 드래프트에 쏟아부은 금액만 얼만지 아십니까? 2600만 달러에요. 이 기간에 뽑힌 수많은 유망주 중 제대로 메이저리그에 착륙한 선수가 하나뿐입니다. 케빈 거즈먼이요. 그런데 이 친구 지난여름에 애틀랜타로 갔잖아요.’
짐 파머는 말합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거즈먼은 트레이드된 후 애틀랜타의 데이터가 볼티모어에서 접한 양의 20배 정도라고 인터뷰했다. 당연하게도 그는 애틀랜타에서 훨씬 좋은 성적을 보였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 구단주는 오랜 기간 동안 팀을 망쳐왔다. 최근 몇 년간 누린 우기는 끝났다. 남은 건 찌는 더위뿐이다. 단비는 당분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왕위를 계승하는 중입니다, 아버지
피터 앙헬로스의 두 아들인 존과 루이스는 이미 25년 전부터 구단 프런트에 개입해왔다. 어느 정도 성과도 냈다. 존은 1999년 치러진 볼티모어와 쿠바 올스타팀 간 친선 경기를 성사시켰다. 루이스는 비슷한 시기에 팀 수석 부사장을 맡은 후 2005년에 설립된 중계 방송사 MASN의 운영도 맡았다.
두 형제 모두 오랜 기간 동안 구단주 수습생활을 거쳤다. 그리고 아버지가 건강 문제로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난 지난해부터 전면에 나설 수 있었다. 구단주 명함까지 물려받진 못했지만, 실질적인 구단주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들의 첫 선택은 마이크 엘리아스였다.
피터 앙헬로스 체제 하의 전력 분석팀과 듀켓 단장, 그리고 벅 쇼월터 감독은 서로 아귀가 맞지 않았다. 고장 난 톱니바퀴들의 모임이었다. 그런 점에서 엘리아스 단장과 구단주 형제의 행보는 팬들에게 기대를 줄 수밖에 없다. 단장이 처음부터 팀을 재구성하고 구단주는 지원하는 이상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앙헬로스 일가의 새로운 얼굴들은 팀이 이 지경이 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엘리아스는 드래프트와 선수 육성으로 팜을 가꾼 팀의 우승을 경험했다. 현 성적과 팜 상황 모두 최악인 볼티모어에 가장 적합한 인재이다.
앙헬로스 형제가 외칩니다. “볼티모어 팬 여러분, 최고의 세이버 단장을 영입했습니다.”
(사진=볼티모어 오리올스 제공)
꽤 늦었지만, 볼티모어는 드디어 새로운 천 년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 두 아들은 아버지의 기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구단은 올바른 방향으로 계승되고 있다. 피터 앙헬로스의 흔적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11월의 어느 날 USA 투데이의 밥 나이팅게일 기자는 볼티모어가 마이크 엘리아스를 단장으로 선임할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흘렸다. 하지만 볼티모어는 이틀이 지나도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구단 중 메디컬 테스트 통과가 가장 어렵다는 팀답게 입단 메디컬 테스트가 남았다는 농담도 나왔다. 단장직을 잠정적으로 수락했는데 막상 팀을 진단해보니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아서 도망간 거라는 추측도 나왔다. 볼티모어는 오랫동안 새 단장을 임명할 때마다 진통을 겪었던 팀이다. 팬들은 걱정 섞인 농담을 주고받았다. 다행히 엘리아스는 단장직을 받아들였고 구단은 공식적으로 취임식을 열었다.
볼티모어의 환부는 한두 군데가 아니다. 모두 오랜 세월 깊게 곪아온 상처라 우선순위를 정하기도 힘들다. 팬들은 볼티모어가 치료와 재활을 거쳐 21세기에 맞는 메이저리그 팀이 되길 바랬다. 그리고 지금은 그 기대를 신임 단장에게 걸고 있다.
엘리아스 단장은 취임식에서 팬들에게 수술 계획을 설명했다. 언급된 주요 환부는 드래프트, 선수 육성, 국제 유망주 스카우팅, 전력분석이었다. 메이저리그 최악의 선수인 크리스 데이비스를 살려보겠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그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었다.
엘리아스는 단장으로 선임되자마자 휴스턴에서 함께 근무한 시그 메달을 부단장 겸 전력분석팀 총괄로 데려왔다. 둘은 휴스턴의 제프 르나우 단장의 핵심 보좌관이었다. 특히 메달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비행사들의 수면 패턴을 연구하던 생물물리학 엔지니어였다.
시그 메달은 고민입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나사 출신이라고 해서 크데를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메달은 2005년 카디널스에 세이버 매트리션으로 입사해 전력분석원으로 근무했다. 휴스턴 과학 부서 이사를 역임하면서 전력 분석 프로그램도 구축한 인재였다. 마이너리그에서 1년간 선수 육성에 필요한 데이터를 직접 수집해 효과를 본 적도 있다. 엘리아스와 메달은 각자의 방식대로 세인트루이스와 휴스턴의 우승에 기여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지난 시즌 볼티모어는 약 156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40년 동안 가장 낮은 관중 수였다. 경기당 2만 명을 간신히 넘겼다. 시즌 말엔 시즌권을 가진 팬이 경기를 오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 실관중이 겨우 수 천명에 불과했다. 엘리아스 단장은 부단장을 임명하기 전날, 시즌권 소유자에게 이메일을 썼다.
‘우리 팀은 미래를 책임질 핵심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트레이 맨시니, 딜런 번디, 마이클 기븐스, 세드릭 멀린스 같은 선수들이지요. 앞으로 몇 주 간은 감독 선임에 힘쓸 것입니다. 임명될 감독은 향후 오리올스의 팀 문화와 경기 스타일을 정립할 수 있는 인재일 것입니다.
팬들의 지지야말로 리빌딩 성공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팬 여러분의 성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최대한 솔직하게, 그리고 자주 여러분들과 소통하겠노라 약속하겠습니다. 언제나 책임을 지겠습니다.’
전임 단장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 온 단장은 볼티모어 지역 사회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휴스턴이 탱킹을 시작한 시기부터 근무했던 만큼 리빌딩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불만도 이해하고 있다.
이런 단체 이메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볼티모어 팬들은 갓 부임한 단장의 정성 어린 이메일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엘리아스의 몸값은 역대 메이저리그 신임 단장 중 가장 높다. 팀 운영에 관한 전권도 받았다. 처음부터 거침이 없었다. 볼티모어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개리 라지치 스카우트 총괄과 브라이언 그레이엄 선수 육성 총괄을 해임했다. 앙헬로스 일가와 친분이 두터워 참모 역할을 한 비선실세 브래디 앤더슨 부사장의 역할도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단장 선임이 늦어진 만큼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현장 스태프들이 아직 제대로 꾸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40인 로스터 정리와 논텐더 마감 기한도 지나갔다. 그래도 엘리아스 단장은 신임 감독을 계속해서 물색 중이다. 시그 메달 부단장은 전력분석팀을 재정비하며 전력분석원을 공개 채용하고 있다. 조금은 늦었지만 팀은 확실히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팬들은 개막전을 기다립니다. “봄이여, 오라”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리빌딩 프로젝트는 지난여름 핵심 선수들의 트레이드로 이미 시작했다. 부족했던 것은 이 프로젝트를 확실히 이끌 수 있는 조종사였다. 이번 비행의 손님은 팬과 팀의 모든 구성원이다. 구단주 대행 형제는 업계의 모든 전문가들이 추천한 확실한 선장을 파일럿으로 앉혔다.
피터 앙헬로스 구단주의 두 아들은 꾀꼬리를 자유롭게 풀어줬다.
자유를 얻은 꾀꼬리의 날갯짓이 아직은 어설플지라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얼마나 멀리, 어떻게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지를.
에디터=야구공작소 조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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