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매니 마차도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야구공작소 김준업] 메이저리그 역대 최저 승률에 도전하는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7월부터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매물로 내놓았다. 응원팀의 무브를 바라보는 두 가지 팬심은 서로 충돌했다. 서비스타임을 다 채울 때까지 응원팀에 머물렀으면 좋겠는데, 이런 팀에 계속 붙들려 있는 것이 과연 팀과 팬들을 위한 길일 것인가. 머리로는 팔아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오랫동안 지켜본 프랜차이즈 스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은 서운하다.
결국 일은 벌어졌다. 시즌이 개막할 때만 해도 이런 그림은 상상하지 못했다. 정들었던 유니폼을 벗었고 그가 없는 라인업은 아직도 낯설다. 지난 몇 년간은 투수가 삼진을 잡을 때보다 3루로 흘러가는 땅볼을 맞을 때 더 신난 적이 있었다.
‘기록지 상에선 우리가 최고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필드에서는요, 우리가 최고입니다.’
겸손한 인터뷰와 달리 몇 년 동안 기록지에서는 언제나 매니 마차도만 빛나고 있었다. 마차도가 없는 경기에 더 익숙해지기 전에, LA다저스 유니폼을 입은 그에게 무뎌지기 전에, 그를 지켜봐온 기억의 편린들을 하나씩 주워 나열해본다.
성장형 프랜차이즈 스타
풀타임 첫 시즌에 따낸 플래티넘 골드글러브, 홈런보다 2루타를 많이 생산하는 갭 파워 히터, 오클랜드를 상대할 때 집어던진 배트, 양 무릎을 수술한 유리몸, 요다노 벤츄라와의 주먹질, 35홈런을 기록하는 슬러거, 20개 도루도 가능한 준족,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수비를 못하는 유격수. 이제 갓 26세를 맞이한 매니 마차도를 나타내는 표현은 매우 다양하다.
팬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매니 마차도의 팔로우 스루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데뷔 때부터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스타가 있고, 기대하지 않았던 무명의 선수가 갑자기 폭발해 팬들의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다. 부족한 점이 보이지만 점점 성장하는 유형의 스타도 있다. 마차도는 다양한 유형이 접목된 볼티모어의 성장형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마차도는 아직도 대부분의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실력은 인정받지만, 인성이 못나서 구설수를 일으키는 사고뭉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볼티모어를 응원하며 매일 마차도를 본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좋지 못했던 모습보다 좋은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가 성장한 과정을 알고 있기에, 그가 보여준 모습을 믿고 있기에, 필자는 마차도가 더 그립다.
혜성 같은 등장
볼티모어는 1974년 이후 여름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유격수를 지명한 적이 없었다. 상위 라운드에서 주로 투수를 지명해온 볼티모어는 2010년 드래프트에서 5툴을 모두 갖춘 유격수 매니 마차도를 지명했다. 브라이스 하퍼, 제임스 타이욘에 이은 전체 세 번째 픽이었다.
190cm의 건장한 체격을 갖춘 마차도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타율 .639에 12홈런, 17도루를 기록했고, 송구 능력과 수비 범위는 이미 메이저리그에 통한다는 평가를 받던 탑 유망주였다.
마이너에서 차근차근 성장한 그는 2012년 여름에 콜업되었다. 미겔 테하다와 멜빈 모라 이후 차세대 유격수와 3루수를 키우지 못한 볼티모어는 2011년부터 J.J.하디와 매니 마차도를 필두로 강한 수비력을 보여주게 된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환상적인 수비 센스와 준수한 타격을 보여준 그는 닉 마케이키스, 맷 위터스에 이은 차세대 스타로 떠오른다.
스무 살 매니 마차도, 훼이크 후 런다운 유도 (사진=MLB CUT4)
기록지로 보는 마차도
매니 마차도의 시즌별 기록은 일반적인 선수들과는 다르다. 약간은 부족한 공격력을 막강한 수비력으로 커버하는 시즌도 있고, 수비 수치가 안 좋은 대신 공격 수치가 굉장히 높아진 시즌도 있다. 그리고 시즌의 절반밖에 소화를 못한 경우도 있다. 마차도가 겪어온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면 그의 기록지는 그저 기복이 있는 선수일 뿐이다. 그러나 볼티모어 팬들은 그가 성장한 과정을 알고 있다.
볼티모어는 마차도가 데뷔한 2012시즌에 쇼월터 매직으로 가을야구에 진출했다. 늘 약팀으로 평가받던 팀이 단숨에 재미있는 야구를 하는 팀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데뷔 첫 풀타임 시즌인 2013년에는 크리스 데이비스의 홈런과 함께 그의 수비 하이라이트가 전국적으로 조명받았다.
수비가 탄탄했던 J.J.하디가 볼티모어의 고정 유격수 자리를 지키게 되면서 데뷔 때부터 3루수로 시즌을 치르던 마차도는 2013시즌 말 왼쪽 무릎 슬개골이 이탈하는 부상을 당해 수술을 받는다. 수술 후 돌아와 순조롭게 성적을 끌어올리나 싶더니 반대쪽 무릎 슬개골이 이탈하는 부상을 당한다. 2014년 8월부터 일찌감치 시즌아웃을 당한 마차도는 바로 고정 수술에 들어갔고 오프시즌 동안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근육을 키운다.
두 번째 무릎 부상, 두 번째 시즌 아웃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확실하게 재활을 마친 마차도는 양 무릎에 대한 부상 걱정을 덜어냈다. 욘더 알론소의 여동생 야이니 알론소와 결혼하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도 강해졌다. 2015시즌 그는 벌크업으로 인해 수비 범위가 좁아진 대신 35홈런과 20도루를 기록한다.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펼친 그는 공수주를 모두 갖춘 명실상부한 볼티모어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2016시즌에도 이전 해와 비슷한 퍼포먼스를 보였던 마차도는 2017시즌에 일시적인 부진을 겪었다. 볼티모어는 오프시즌에 그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2년간 보여준 퍼포먼스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해 크게 매력이 있는 카드가 아니었다는 평이 나왔다.
그러나 자유계약을 앞둔 2018시즌이 개막하자마자 커리어하이 기록 페이스를 찍으면서 대형 계약을 위한 초석을 다지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팀이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게 될 상황에 놓이면서 마차도를 둘러싼 트레이드설이 5월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여러 팀이 영입 경쟁을 한 끝에 지난 7월 18일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마차도가 볼티모어에서 기록한 통산 성적은 .283 / .335 / .487, wRC+120이다. 그가 기록한 27.7이라는 WAR(팬그래프 기준)은 팀 역사상 17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특히 마차도보다 적은 경기를 소화하면서 더 높은 fWAR를 기록한 볼티모어 선수는 바비 그릭과 프랭크 로빈슨뿐이다.
매니 마차도의 볼티모어 오리올스 통산 성적
메이저리그의 대표 망나니로
매니 마차도에 대한 이야기가 오르내릴때마다 기사 댓글란과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인성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여러 번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가장 큰 사건은 경기 중 배트를 고의로 던진 사건이다.
2014년 6월초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홈 시리즈에서 마차도는 진루 도중 조시 도날슨에게 태그를 당한 후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헬멧을 집어던지고 화를 냈다. 경기 도중 흔히 벌어질 수 있는 태그였기에 마차도가 과하게 반응했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이튿날 벌어진 경기에서 마차도가 휘두른 배트가 오클랜드의 포수 데릭 노리스의 헬멧에 맞았다. 그러나 마차도는 사과 없이 웃고만 있었고, 결국 오클랜드의 투수 페르난도 아바드가 마차도의 타석에서 무릎 쪽으로 공을 던졌다. 마차도는 무릎 쪽으로 두 번째 공이 날아오자 고의적으로 헛스윙하며 손에서 배트를 놓았고, 그것은 3루수 쪽으로 날아갔다. 이후 그는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충동을 조절 못하는 비호감 선수로 찍히게 된다.
이 사건 이후 경기 중 자그마한 불협화음이 일어날 때마다 마차도에 대한 비난은 쏟아졌고, 볼티모어팬들은 감내해야 했다. 그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볼티모어 팬들은 그의 성장을 알고 있다
2015시즌 돌아온 마차도에게 일어난 변화는 성적뿐만이 아니었다.
‘빅리그 유니폼을 입고 필드에 서는 것은 일종의 특권입니다.
이 특권은 단 1구, 1타만에 날아갈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지금은 그 특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압니다.’
그라운드에서 경기 도중 다쳐서 시즌 아웃 되는 일을 두 번이나 겪은 마차도는 빅리그 선수로서의 책임감을 알게 되었다.
2015년 9월, 워싱턴 내셔널스의 조나단 파펠본이 위협구와 몸을 맞히는 공을 던졌을 때 그는 직접적으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았다. 오히려 폭력적인 사태를 예상하고 제일 먼저 뛰쳐나온 벅 쇼월터 감독이 뻘쭘한 상황에 놓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아직 완전히 성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2016년 6월에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요다노 벤츄라가 마차도에게 99마일의 위협적인 공을 던졌을 때에는 직접 뛰어나가 주먹을 내지르며 싸웠다. 그러나 상대팀 타자와 종종 문제를 일으키던 벤츄라였기 때문에 마차도에 대한 비난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비록 그의 펀치는 빗나갔지만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마차도가 매우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준 건 2017시즌초였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서 마차도가 위험한 주루로 더스틴 페드로이아에게 부상을 입히는 일이 벌어진다. 보스턴의 투수진 중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 맷 반즈, 크리스 세일이 번갈아가면서 그에게 위협구를 던져댔어도 끝까지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물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보스턴에 대한 존경심을 잃었다고 분노를 표출했지만, 적어도 그라운드에서 싸움을 하는 일은 없어졌다.
아직은 낯선 리빌딩
유격수 풀타임 첫 시즌에 최악의 수비 스탯을 찍고 있던 마차도는 다행히 다저스로 이적한 후 호수비를 보여주고 있다.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끝나면 그는 그토록 원하는 유격수 자리를 보장해줄 팀으로 비싼 몸값을 받고 갈 것이다.
물론 볼티모어가 그를 FA로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리빌딩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는 볼티모어를 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 어느새 잭 브리튼이 뉴욕 양키스로 팔렸고, 애덤 존스와 브래드 브락, 심지어 로테이션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케빈 거즈먼도 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마차도가 남기고 간 다섯 명의 유망주들과 브리튼이 남긴 유망주들은 볼티모어 팜에 오자마자 상위권에 배치되었다. 다저스에서 건너 온 유스닐 디아즈는 오자마자 팜 2위에 올랐고, 양키스에서 넘어 온 유망주 딜런 테이트는 헌터 하비를 제치고 투수 유망주 1위에 올랐다. 볼티모어는 거의 10년만에 리빌딩을 하고 있고, 팬들은 너무 오랜만에 보는 이 형국이 낯설다.
프랜차이즈 스타를 떠나보내며
볼티모어의 레전드 3루수이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브룩스 로빈슨의 후계자로 불린 매니 마차도는 적어도 2016년까지는 인터뷰를 통해 팀에 남고 싶다는 의사를 종종 밝혔다.
‘제 몸 속엔 오렌지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팀은 마차도의 장기계약 의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고, 그를 잡는 대신 크리스 데이비스를 사상 최악으로 평가될만한 거대 계약으로 붙잡았다.
지난 겨우내 여기저기 매물로 언급된 마차도는 팀에서 진행하는 팬사인회에 처음으로 불참했다. 자신을 팔려고 내놓은 구단에 대해 실망한 것이 아니라 어린 팬들이 ‘정말로 팀을 떠날 거냐’고 묻는 질문이 버티기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오늘도 그의 수비를 찾아본다 (사진=Flickr Keith Allison, CC BY SA 2.0)
필자는 외야 수비보다 변수가 많은 내야 수비를 좋아한다. 어떤 불규칙 바운드건 어떤 난코스건 땅볼을 베어핸드로 잡은 후 강하게 1루로 뿌리는 마차도의 멋진 수비를 좋아했다. 그 누구보다도 볼티모어 유니폼이 어울리던 그를 매일 응원했다. 언제나 팀과 팬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매니 마차도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옅어질 것이다. 언젠가는 또 다른 프랜차이즈 스타가 태어날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가 너무 그립고, 잊기 싫다. 그런데 그가 없는 경기에서,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다음 프랜차이즈 스타를 찾고 있다.
이제는 투수의 땅볼 유도보다 삼진이 더 좋다. 낯선 익숙함에 무뎌지기 전, 오늘도 스무 살의 마차도가 보여준 그 수비를 찾아본다.
출처: fangraphs.com, baseball-reference.com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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