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양정웅] 2010년대 들어 KBO리그에선 시즌 중 트레이드가 매년 4건가량은 있었다. 그러나 2018년에는 단 두 건밖에 나오지 않았다. 6월 7일 KIA 타이거즈 오준혁과 kt 위즈 이창진 트레이드, 그리고 7월 30일의 두산 베어스 이우성과 NC 다이노스 윤수호의 트레이드다. 넥센 히어로즈의 트레이드 뒷돈 파문으로 시장이 얼어붙은 데다가, 많은 팀이 순위 경쟁에 뛰어들면서 쉽사리 주전급 선수를 내주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제 KBO 리그의 트레이드 마감일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시즌 중 트레이드 가운데서도 7월의 트레이드는 특별하다. 7월에는 전반기 동안 팀의 약점을 파악한 구단이 적극적으로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중량감 있는 선수를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형 트레이드는 주로 7월에 터져 나왔다.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7월 트레이드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가 외야수 박찬을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로 보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생팀의 ‘로스터 채우기’용 트레이드였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이후 잠잠하던 7월 트레이드는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지난해까지 7월에 나온 의미 있는 트레이드는 어떤 것이 있었을까?
1998년 : ‘괴물’ 현대의 무차별적 전력보강
현역 말년 LG로 돌아온 박종호. 현대와 삼성에서 우승반지 5개를 받았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1996년 KBO리그에 진입한 현대 유니콘스는 창단 초 실업 야구팀인 현대 피닉스를 이용해 박재홍, 전준호 등의 선수를 영입하며 ‘괴물 구단’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1998시즌을 앞두고 쌍방울 레이더스로부터 당대 최고의 포수 박경완을 영입한 현대는 트레이드를 통한 거침없는 전력보강에 나섰다.
트레이드 마감일이었던 7월 31일, 현대는 두 건의 트레이드를 발표했다. LG 트윈스에 좌완 최창호를 주고 내야수 박종호를 받아오는 트레이드와 쌍방울에 박정현과 가내영(+현금 3억 원)을 내주고 신인왕 출신 조규제를 영입하는 트레이드다. 시즌 전 박경완을 영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현대는 공격적인 행보를 통해 팀의 약점을 메우려고 했다. 두 선수의 영입은 그 연장 선상에 놓여 있었다.
조규제의 영입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조규제는 이적 첫해 12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3.04을 기록하며 팀 투수진에 힘을 보탰으나, 이후 2년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그러나 박종호는 그 반대였다. 박종호는 이적 첫해 백업 요원에 머물렀으나, 이듬해부터 주전으로 등극했고, 2000년에는 타격왕에 오르기도 했다. 박종호는 은퇴할 때까지 현대에서만 세 차례나 우승을 경험했다.
1999년 : 삼성을 살린 ‘신의 한 수’
여러 구설이 있지만 진갑용은 ‘삼성 왕조’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선수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이만수가 본격적으로 주전에서 밀려난 1993년 이후 삼성은 한동안 포수의 부재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 최동원 트레이드 때 삼성으로 넘어온 김성현이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으나, 30대 초반 이후 노쇠화가 왔다. 한편, 타 팀에서 영입한 양용모, 박현영, 정회열은 평균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자 삼성은 칼을 빼 들었다. 주전급 포수를 영입하기로 한 것이다.
1999년 트레이드 마감기한, 두산은 당시 신인 홍성흔에 밀리며 주전 포수 자리에서 내려온 진갑용을 삼성 이상훈(+현금 4억 원)과 트레이드했다. 물론 이상훈도 기대치보다는 잘 해줬다. 2002년에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133.2이닝을 던지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7년 동안 뛰면서 3번의 골든글러브 수상과 함께 7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진갑용에 활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진갑용의 영입으로 삼성은 비로소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2005년 : 에이스와 유망주의 교환
일본에서의 약물 적발 전까지 리오스는 이른바 ‘한국형 외인’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은 선수였다. (사진=두산 베어스 제공)
외국인 선수가 트레이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KBO 리그 역사상 외국인 선수 트레이드는 2002년 브리또(SK→삼성), 매기와 에르난데스(롯데↔SK), 2003년 키퍼(KIA→두산), 그리고 2005년 리오스 트레이드뿐이다.
2005년, KIA는 당시 6승 10패 평균자책점 5.23으로 부진했던 리오스를 두산으로 트레이드했다. 내야수 김주호와 묶여 두산으로 간 리오스의 트레이드 대가는 좌완 유망주 전병두였다. 이닝이터 에이스가 필요했던 두산과 리빌딩 모드로 들어갔던 KIA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 성사된 트레이드다 . 리오스는 두산으로 이적 후 9승 2패 평균자책점 1.37으로 대활약을 펼치며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고, 2년 뒤에는 페넌트레이스 MVP도 수상했다. KIA로 간 전병두 역시 잠재력을 드러내며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선발됐다.
그러나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KIA에겐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다. 잔부상에 시달린 전병두를 KIA는 2008년 3대2 트레이드를 통해 SK로 넘겼다. 전병두는 SK에서 실력을 향상시키며 리그 수준급 좌완이 됐지만, 트레이드로 받아온 세 선수 중 두 선수는 은퇴했고, 남은 이성우마저 9년 뒤 다시 SK로 넘겼다.
2010년·2015년 : LG와 SK의 대형 트레이드
승부조작만 아니었으면 LG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을 2010년의 트레이드였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는 2004년 이상훈 트레이드를 통해 물꼬를 트긴 했으나, 이후 한동안은 트레이드를 주고받지 않았다. 그러나 2010년과 2015년, LG와 SK의 트레이드는 두 번 모두 그해 리그 전체에서도 손꼽힐 만한 큰 규모로 이뤄졌다.
2010년, 베테랑 선수를 선호하던 SK와 젊은 유망주가 필요했던 LG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성사된 3대4 트레이드가 대표적이다. LG에서는 최동수, 권용관, 안치용, 이재영이, SK에서는 윤요섭, 김선규, 박현준이 팀을 옮겼다. SK로 간 선수 중 가장 어린 이재영과 안치용이 31세, LG로 간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윤요섭이 28세였던 것에서 보이듯 양 팀 모두 확실한 목적이 있는 트레이드였다.
SK에서는 안치용이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 중 유일하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는 등 활약을 보이며 2014년까지 현역생활을 했다. LG는 윤요섭이 주전 포수와 대타 요원을 오가며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 박현준은 2011년 13승을 기록하며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으나 승부 조작에 연루되며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후 양 팀은 2015년 또 한 번의 트레이드를 했다. 정의윤, 신동훈, 신재웅이 SK로, 진해수와 여건욱, 임훈이 LG로 이적했다. 이제 3년이 지난 트레이드라 손익계산은 더 지켜봐야겠지만 대체적으로는 필승조 신재웅과 정의윤을 받은 SK의 승리라는 것이 중론이다.
2011년 : 역대급 원사이드 7월 트레이드
LG 시절의 박병호. 당시 LG 팬들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른바 ‘반년 렌탈 트레이드’가 흔하다. 당해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사실상 확정된 팀이 FA가 임박한 주축 선수를 보내는 대가로 유망주를 받아와서 리빌딩을 도모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개념의 트레이드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트레이드를 하지 않아도 20인 외 보상선수를 통해 유망주를받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1년 LG와 넥센의 트레이드는 지금까지 유일무이한 KBO 리그의 ‘반년 렌탈’ 사례로 남아있다.
시즌 초 마무리로 낙점한 김광수의 낙마 이후 LG는 신인 임찬규를 마무리로 돌리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에 7월 초 김광수를 한화로 트레이드하면서 칼을 빼든 LG는 7월 트레이드 마감기한에 또 하나의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심수창+박병호(+15억 원)(LG)↔송신영+김성현(넥센)
LG는 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는 송신영을 뒷문 강화를 위해 영입했다. 송신영은 그해 LG에서 2패 10세이브,평균자책점 1.99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김성현도 이적 후 1승밖에 못했으나 경기당 평균 5이닝은 소화했다. 하지만 지금 이 트레이드를 LG의 승리로 평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송신영은 시즌이 끝난 후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고, 김성현은 박현준과 함께 승부 조작 혐의로 영구제명됐다. 게다가 LG는 후반기 추락으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넥센으로 넘어간 박병호는 후반기에만 12홈런을 기록하더니 2012년부터 4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했다. 그리고 2018년 LG가 넥센에 뒷돈 15억 원을 더 준 것이 밝혀지며 또 한 번 LG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그 외에도 특기할 만한 7월 트레이드는?
2004년 – 박석진+김대익(롯데)↔노장진+김승관(삼성) : 시즌 초 선수단 무단이탈로 코칭스태프에게 ‘찍힌’ 노장진과 몇 년간 부상에 시달렸다 돌아온 박석진이 팀을 바꿨다. 박석진은 2005년 삼성 우승 당시 8구원승으로 불펜에서 활약했다.
2010년 – 황재균(넥센)↔김수화+김민성(+20억 원)(롯데) : 트레이드 불가 3인방 중 한 명이던 황재균의 트레이드. 황재균은 2017년 미국에 진출하기 전까지 롯데의 핫코너를 지켰고, 김민성 역시 넥센에서 실력이 만개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2년 -오재일(넥센)↔ 이성열(두산) : 거포 유망주끼리의 자리 이동. 오재일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거포의 자질을 보여주며 두산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성열은 넥센에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후 한화로 트레이드됐다.
2017년 – 김세현+유재신(넥센)↔손동욱+이승호(KIA) : 2017년 KIA의 약점이었던 불펜 강화를 위한 트레이드.김세현은 2017년 준수한 모습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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