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KBO리그 외국인 선수 스카우팅 리포트 – 데이비드 헤일

[야구공작소 임선규, 박기태] 지난 7월 7일, 오승환 선수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7회에 등판해 시즌 10호 홀드를 기록했다. 평범한 야구팬이라면 오승환의 투구에 주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화 팬이라면 상대 팀 마운드에 서 있었던 선수를 좀 더 눈여겨봐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 선수는 선발 투수의 난조로 인해 3회에 일찌감치 등판, 5.2이닝 동안 1실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 주인공은 KBO리그의 전반기가 끝난 13일 한화 이글스의 새로운 외국인 투수로 영입된 데이비드 헤일이다.

 

배경

데이비드 헤일의 아마추어 시절 이력은 독특했다. 먼저 출신 대학이 예사롭지 않다.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프린스턴 대학이 그의 모교다. 헤일은 3학년 시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된 뒤에도 공부와 야구를 병행했다. 가을마다 한 학기씩 이수해, 2년 뒤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은 ‘배우신 투수’다. 다른 독특한 이력은 대학 시절 투수보다 타자에 좀 더 집중했었다는 점이다. 헤일은 팀의 핵심인 중견수를 맡아 팀을 이끌었다. 특히 2학년 시절에는 0.339/0.350/0.559의 뛰어난 타격 성적을 냈고 적잖은 홈런과 도루를 기록하며 호타준족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반면 투수로는 3년간 총 126이닝만을 던졌으며, 성적 역시 인상적이지 않았다. 더 넓은 대학 타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여름 케이프 코드 리그*에서도 41이닝 동안 24개의 볼넷을 내주는 등 부진했다.

*케이프 코드 리그 (Cape Cod League) : 대학 무대 최고의 선수들을 모아 여는 여름 리그. 아마추어 타자의 경우 이 리그에서 처음으로 나무 방망이에 대한 적응도를 테스트한다.

뛰어나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스카우트들은 그의 투수로서 잠재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평균 시속 93마일, 최고 시속 97마일까지 나오는 뛰어난 패스트볼과 이상적인 체격(188cm, 97kg) 등을 매력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부족한 투수 경험은 오히려 어깨의 피로도가 낮다는 쪽으로 좋게 해석됐다. 2009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유망주 평가 전문매체인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헤일을 전체 76위 유망주로 선정했다. 현재 애리조나의 마무리 투수로 뛰고 있는 브래드 박스버거(69위), 보스턴 레드삭스의 불펜 투수 조 켈리(70위), 콜로라도 로키스의 주전 2루수인 DJ 르메이휴(73위)가 그와 엇비슷한 평가를 받고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들이다. 현재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고 있는 브룩스 레일리는 당시 82위에 선정되었다. 헤일은 실제 드래프트 현장에서도 3라운드 전체 87번째에 호명되며 애초 평가와 비슷한 순위표를 받아 들었다.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1년에 마이너리그 한 단계씩을 통과하며 차근차근 성장한다. 크게 뛰어나지도 부진하지도 않은 평범한 모습이었다. 공부를 병행하던 2011년까지는 선발과 불펜을 오갔으며, 2012년부터는 선발에 집중했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 해인 1202년 더블 A에서 145.2이닝을 던지며 본인의 커리어 최다 이닝을 기록하기도 했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팀의 40인 로스터에 등록되며 메이저리그 무대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리고 2013년 시즌 막판인 9월 메이저리그로 승격했다. 그는 주어진 2번의 기회를 잘 살려냈다. 첫 번째 경기였던 샌디에이고 전에서는 5이닝 무실점 9삼진을 기록했으며, 두 번째 경기인 필라델피아 전에서는 6이닝 1실점 5삼진을 기록했다.

이때의 활약을 발판삼아 2014년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개막 5인 로테이션에 포함되는 기쁨을 얻었다. 4경기 동안 23.1이닝 6실점 평균자책점 2.31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기존 선발 마이크 마이너의 복귀로 불펜 자리로 옮겼다. 이후 그는 팀의 롱릴리프 역할을 맡으며 메이저리그에서 풀시즌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시즌이 끝난 뒤 헤일은 팀의 로스터 개편 과정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로 트레이드됐다.

불행하게도 2014년이 그의 미국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헤일은 콜로라도 이적 후 사근, 장딴지 근육 등에 연이어 부상을 입고 급격히 부진에 빠졌다. 2015년에는 78.1이닝 동안 6.09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당시 팀 내 경쟁자이던 요한 플란데에게 자리를 빼앗겼다(아이러니하게도 헤일의 자리를 뺏은 플란데는 헤일보다 먼저 KBO리그를 찾았고 실패했다). 헤일은 트리플A로 강등된 이후에도 6점대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반등하지 못했다. 2016년에는 볼티모어 산하 트리플 A에서 뛰었지만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했고, 이후 LA 다저스, 미네소타 트윈스, 뉴욕 양키스 등으로 연이어 이적하며 저니맨 생활을 하며 대부분 시간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서두에서 말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전의 2번째 투수로 나온 것이 가장 최근 메이저리그 등판 기록이다.

(야구공작소 임선규)

 

스카우팅 리포트 – 명과 암

헤일은 포심 패스트볼, ‘싱커’ 혹은 ‘투심’으로 불리는 싱킹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슬러브 스타일의 변화구를 주로 구사한다. 최근 KBO리그 구단에서 변형 패스트볼 스타일의 공을 던지는 외국인 투수를 영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는데(스캇 다이아몬드, 제이크 브리검, 타일러 윌슨, 앙헬 산체스 등) 헤일도 이러한 추세를 잇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경기에서 헤일은 시속 140~150km 수준의 패스트볼, 시속 120km 후반대의 체인지업과 커브(혹은 슬라이더)를 던졌다. 헤일의 커브는 슬라이더만큼 빠르지만 평범한 슬라이더보다 휘는 각이 조금 더 커서 슬러브 스타일에 가깝다.

헤일의 투구 전략은 이렇다. 우타자에게는 몸쪽으로 붙는 싱커와 포심 패스트볼을 섞어 던지고, 결정구로는 커브 위주에 체인지업을 섞는다. 좌타자에게는 마찬가지로 싱커와 포심 패스트볼 베이스에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많이 사용한다. 결국 핵심이 되는 것은 헤일이 가장 자신 있게 던지는 싱커와 체인지업이다.

싱커는 헤일이 2013년 스프링캠프에서 투수 코치에게 사사한 공이다. 이전까지 헤일은 좌타자 상대로는 좋은 체인지업의 이점을 살려 호성적을 냈지만, 우타자에게 고전하고 있었다. 탈출구가 된 것이 우타자의 몸쪽으로 붙는 싱커의 추가였다. 각이 큰 슬러브 성 변화구와 싱커의 조합은 투심-싱커를 구사하는 오른손 투수의 고전적인 우타자 공략법이다.

 

좋게 보기: 싱커, 투구폼, 체인지업, 선발 이력

헤일은 5년간 싱커를 던지면서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냈다. 싱커 장착 전과 후의 마이너리그 기록을 보면, 싱커를 처음 익힌 2013년 이후 볼넷 허용률이 조금씩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이전까지는 스스로가 ‘피처’가 아닌 ‘쓰로워’였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대로 늦은 나이에 투수로 전업한 뒤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진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낮은 팔각도, 긴 익스텐션을 가진 투구폼으로 던지는 싱커는 그동안 KBO리그에서 보기 힘들었던 형태의 움직임을 가진 공이 될 것이다. 정교한 제구력을 가졌다고 하긴 어렵지만, 헤일은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다. 우타자에게 던지는 싱커는 좀처럼 바깥쪽이나 한가운데로 향하지 않는다. 한화는 송은범이 올해 투심을 장착해 재미를 보고 있다. 그런데 투구폼의 특성을 생각해볼 때 헤일의 싱커(투심)는 송은범의 그것보다 더 지저분한 움직임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헤일이 싱커보다 자신 있어 하는 구종은 체인지업이다. 헤일의 체인지업은 표본은 적지만 헛스윙 유도에 있어 메이저리그에서도 수위권에 꼽힐만한 탁월한 성과를 냈다. 투수와 반대 손을 쓰는 타자 공략에 유리한 체인지업의 특성상, 헤일은 좌타자를 상대로 더 좋은 성적을 기록해왔다. 그러나 싱커와 비슷한 방향으로, 하지만 더 깊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은 오른손 타자에게도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다.

최근까지 마이너리그에서 계속 선발로 뛴 것도 가점 요소다. 불펜으로 뛰다가 KBO리그에 오는 투수 중에는 선발로 보직을 바꾸면서 구속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헤일을 두고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2017년, 2018년 연속으로 트리플A에서 평균보다 나은 ERA를 기록한 사실에선 경험이 쌓이며 한층 발전했다는 신호를 볼 수 있다.

헤일의 전임자가 된 제이슨 휠러는 사실 가지고 있는 무기의 특색이 약한 편이었다. 큰 신장을 이용해 내리꽂는 각도를 살린 투구가 가능했지만 빠른 공의 스터프가 부족했고, 결정구라고 할만한 변화구가 없었으며, 제구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런 단점을 보완할 만큼 빼어난 수준이 아니었다. 이에 비하면 헤일은 움직임이 좋은 빠른 공과 확실한 결정구를 갖고 있으며, 휠러와 비교했을 때 제구력이 크게 뒤떨어지지도 않는다.

 

나쁘게 보기: 커리어, 스터프, 스트라이크 존

헤일은 싱커와 체인지업이란 좋은 무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싱커를 던지는 투수가 으레 그렇듯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은 좋지 않았다. 헤일이 트리플A에서 뛴 5시즌 중, 리그 평균보다 탈삼진 비율이 높았던 시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즉, 소위 맞혀 잡는 스타일의 투수라고 할 수 있다.

KBO리그는 이런 맞혀 잡는 투수가 활약하기 점점 어려운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이런 유형의 투수가 성공을 거둔 사례로는 KIA 타이거즈의 팻 딘이 있다. 하지만 팻 딘은 장점을 살린 2017년과 달리 단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2018년을 보내고 있다. 헤일은 구속은 약간 빠를지언정(평균 시속 146km) 스터프가 뛰어난 투수는 아니다(평균 이하의 탈삼진 능력).

헤일의 강점으로 꼽히는 제구력도 성공의 열쇠로 확신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동안 스터프보다는 제구력을 앞세운 투수가 한국에서 대부분 실패한 것을 떠올리면 쉽게 설명이 된다. 성공을 거둔 투수는 대부분 평균 이상의 스터프를 갖고 있었다. 전임자 휠러는 스터프가 아닌 제구력을 내세운 투수였고, 이전해 트리플A에서 좋은 성적(ERA 3.07)을 거둔 것이 좋게 평가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스터프, 탈삼진 능력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었다.

낮은 공에 박한 스트라이크 존은 헤일에게 부정적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담뱃갑을 똑바로 세운 것처럼 세로로 긴 모양이지만, KBO리그의 스트라이크 존은 가로로 긴 모양을 하고 있다. 심판들은 밑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존 아래쪽으로 들어갈 때 스트라이크 판정을 박하게 하는 성향이 있다. 밑으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즐겨 쓰는 헤일에게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어쩌면 옆으로 휘는 슬라이더/커브를 더 적극적으로 던지는 게 좋을 수 있다. 그렇지만 헤일의 슬라이더/커브는 특출난 공이 아니다.

 

전망

외국인 선수의 미래를 예상할 때는 대체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보이기 마련이다(‘급’이 다른 몇몇 예외가 있기는 했다). 올 시즌 새롭게 한국을 찾은 외국인 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LG의 타일러 윌슨을 떠올려보자. 야구공작소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윌슨을 두고 지난 몇 시즌 동안 줄어든 탈삼진 기록을 불안요소로 지적했지만, ‘2014년 수준을 회복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도 있다’는 반대편의 전망이 지금까지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세스 후랭코프처럼 시즌 전 예상을 완전히 뒤엎은 경우도 있다. 반대로 부정적 전망이 맞은 사례도 있다. 나쁜 평가만 받은 두산의 지미 파레디스가 그랬고, 이제 한화를 떠나게 된 휠러의 경우도 그렇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헤일의 프로필을 살펴보면 확실하게 KBO리그를 지배할 투수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하게 실패할 투수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장점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동안 성공한 사례를 되새겨볼 때 그 장점이 강렬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타일러 윌슨, 헨리 소사, 더스틴 니퍼트, 메릴 켈리, 에스밀 로저스 등 그동안 KBO리그를 지배한 투수 같은 느낌은 오지 않는다. 사실 그만한 투수를 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한국과 일본 리그에서 외국인 투수 수요가 높아지며 미국 구단이 높은 이적료를 책정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메이저리그 안에서도 투수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헤일이 휠러보다 잘할 수 있을까? 적어도 휠러보다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휠러는 엄청나게 나쁜 투수는 아니었지만, 이닝 소화력이나 상대 타자를 압도하는 면에서 포스트시즌을 기대하게 된 한화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한화가 기대하는 뛰어난 2선발의 기준에는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헤일은 리그를 압도하는 에이스가 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퍼즐이 맞아 떨어진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한화는 시즌 전 장단점이 뚜렷한 키버스 샘슨을 영입했다. 지난해 8위를 기록한 뒤, 5위만 해도 성공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팀에게는 충분한 여유가 있었고, 덕분에 샘슨은 단점을 보완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받았다. 그리고 샘슨은 지금까지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하지만 샘슨과 달리 헤일은 전반기 2위를 달성하고 포스트시즌을 위해 외국인 투수를 교체한 팀에 영입되는 것이다. 앞으로 헤일에게 주어질 시간, 한화에 남은 인내심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이것이 헤일에게 주어진 확실한 과제다.

(야구공작소 박기태)

참고 : Baseball America, Baseball Reference, Baseball Savant

(일러스트=야구공작소 황규호)

ⓒ야구공작소. 출처 표기 없는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상업적 사용은 별도 문의 바랍니다.

Be the first to commen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