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전광호] 온통 흰색 바탕의 도화지 위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가 하늘을 수놓고 인공지능 반딧불이 까만 하늘 위에 오륜기를 그린다. 아이언맨이 나타나는가 하면 하늘하늘한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이 공중을 비행하고,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서로의 몸을 부딪친다.
새빨갛고 샛노란 돌들이 캔버스를 구르기 시작하면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도화지 위를 “영미야~” 소리를 지르며 비질하고 뛰어다니는 소녀들도 만날 수 있다.
Passion. Connected.
우리는 지금 푸른 잔디와 붉은 흙 위를 구르고 달리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지만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우리 땅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모든 응원을 집중했다.
하지만 올림픽의 대표선수들을 응원하는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1등, 최고, 금메달에만 환호하지 않았다. 성적보다는 팀워크를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기기 시작했고 은메달과 동메달이 얼마나 귀하고 고마운 수확인지 알게 되었으며, 정정당당하게 이룬 2위가 반칙과 편법으로 얻은 1위보다 훨씬 값진 성적임을 이해하고 응원하게 되었다.
어사화
어사화는 임금이 과거에 급제한 우수한 인재들에게 내리는 상이다. 복두(머리에 쓰는 관에 일종)에 어사화를 꽃은 과거급제자들은 3일 동안 시내를 돌며 행진했다고 알려지는데 이들은 축하를 받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함께 받았을 것이다. 평창올림픽에서는 메달리스트에게 어사화를 쓴 마스코트 수호랑 인형을 선물했다. 메달리스트의 노고를 치하하는 것 외에도 그 자리의 무게감과 책임감도 함께 간직하라는 깊은 뜻을 숨겨 넣어 그 의미를 더한 것이다.
우리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서울 모 구단의 두 선수가 성폭행혐의로 수사를 받는 다는 소식을 접하고 야구팬들은 다시 한 번 실망감에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잊을만하면’ 터지는 선수들의 사건사고에 KBO도 사실관계가 명확히 소명되기 전까지 해당 선수들의 모든 활동을 금지하는 것으로 빠른 진화에 나섰다. 한 편 학생야구의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폭행한 것이 드러나 무기한 자격정지, 3년 자격정지를 받는 등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야구는 1982년 원년부터 2017년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수많은 사건 사고와 함께 성장했다. “운동하면 먹고 살기 힘들다” 는 말이 통용되던 시기를 한참이나 지나 이제는 매년 겨울 어떤 선수가 얼마에 FA계약을 할 것인지, 100억 원이 넘을 것인지 넘지 못 할 것인지를 점치는 시대가 되었고 그 엄청난 금액이 야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위화감마저 조성한다는 성토가 들려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받는 연봉은 그 옛날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났음에도 프로선수로서 직업을 대하는 선수들의 의식과 마음가짐은 전혀 늘어나지 않은 듯하다.
2017년 KBO는 1차 이사회에서 제151조 (품위손상 행위) 경기외적인 품위손상행위에 기존 기타 인종차별, 성폭력 외에 음주운전, 도박, 도핑을 추가했다. 지난 몇 년간 지속되어왔던 선수들의 원정도박 문제와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잦은 음주운전 적발은 흥행의 신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KBO입장에서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규약을 통해 품위손상 행위의 범위를 넓혀 그 심각성을 이해한다는 취지의 회의결과를 도출시켰다.
그러나 KBO가 사건사고에 대해 내리는 처벌은 팬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처벌수위와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건사고 자체에 대한 실망감과 질타는 당연한 것이고, 그 처벌의 방식과 강도에 대한 온도차는 더욱 극명하다.
사건사고에 연루된 선수는 KBO의 자체징계와 구단의 징계, 이 두 가지 징계를 함께 받아야 한다. 구단은 KBO가 여론보다 약한 처벌을 내릴 경우 구단 자체징계를 통해 그 징계의 가중을 조절하고 팬들은 그 징계수위에 따라 그 선수를 용서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한다.
야구는 정말 잘하는 강정호 선수(사진= 넥센히어로즈 제공)
최근 우리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음주운전 사건은 메이저리그에서 최초로 동양인 내야수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던 강정호 선수 사건이었다. 강정호 선수의 음주운전은 현장이 적나라하게 찍힌 블랙박스 화면이 공개되면서 더욱 파장이 커졌고 과거 2번의 음주운전 경력이 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지면서 더욱 팬들의 공분을 샀다.
물론 그러한 중죄를 지은 이유로 어렵게 입성한 메이저리그로 다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강정호는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의 복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단 한 번의 음주운전도 아닌 3번의 음주운전 경력이 있는 그의 빅리그 복귀를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최근 국내선수의 사례는?
2014년 삼성라이온즈의 중견수였던 정형식 또한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구단에서 임의탈퇴처리 되었다. 선수를 방출하거나 2차드래프트의 형식을 통해 타구단으로 보내는 등의 방식이 아닌 임의탈퇴를 공시한 것은 사실 상 구단이 할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징계에 해당한다. 임의탈퇴 후 다수의 야구커뮤니티에서는 군 문제를 해결하고 여론이 수그러들 때 즈음하여 정형식을 복귀시킬 것이라는 예상을 주로 내놓았으나, 올해 초 일본 독립리그 트라이아웃에 참가하는 등의 행보로 보아 원구단이 다시 정형식을 중용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두 선수의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를 인식하는 팬들의 입장에는 다소 입장차이가 존재한다.
같은 잘못을 3번씩이나 반복하면서도 조금 더 실력이 있고 조금 더 명성이 있다는 이유로 재기를 꿈꾸고 있는 선수와 같은 죄를 지었지만 구단에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중징계를 받는 것은 과연 공평한가.
이는 사실 징계와 처벌에 대한 명확한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 된 후로 수많은 음주운전 선수들이 존재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그 죄를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만약 지금의 기준으로 그때 당시 선수들을 징계했다면 아마 우리가 영웅으로 칭하는 수많은 전설들은 기량을 꽃피우기 전 글러브를 벗어야 했을 것이다.
같은 죄목 다른 처벌.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실력이 출중하여 그 경제적 가치가 높은 선수에게는 조금 유한 처벌을 주고 상대적으로 구단에서의 입지가 좁은 선수는 기업과 구단 이미지재고를 위해 강한 처벌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말이다.
이 답 없는 도돌이표에 어떻게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음주운전은 본인이 혼자 피해를 감수하는 형태의 범죄가 아니다. 본인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거리의 수많은 죄 없는 운전자와 보행자를 잠재적 피해자로 만드는 아주 질이 나쁜 범죄이다. 그리고 KBO의 지난 과오를 돌아보면 음주운전으로 적발 된 선수들은 대부분 1번이 아닌 2번, 많게는 3번까지도 같은 잘못을 반복해왔다.
그것은 잘못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음주운전 같은 중범죄의 경우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바로 선수생명을 마감시켜야 한다. 법은 소급될 수 없고 이미 느슨할 대로 느슨해진 처벌은 그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더 늦기 전 <원아웃제>를 도입해야 한다.
음주운전뿐만 아니라 프로선수로서 야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범죄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일벌백계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 경범죄를 저지를 경우엔 FA자격을 1년간 미루는 등의 금전적 처벌을, 중범죄의 경우 야구장에 다시 설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
<원아웃제>를 도입하려면 도입에 앞서 리그가 적극적인 소양교육에 힘써야 한다. KBO선수들은 신인 드래프트 이 후 딱 한 번 소양교육을 받는다. 그 이후 선수들은 프로야구 선수가 갖춰야 할 소양교육을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다(구단 차원의 소양교육은 그 정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리그를 관장하는 KBO차원에서의 소양교육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프로선수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는 매년 강조하고 주지시켜도 모자람이 없다. 적극적인 교육을 통해 징계와 처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언제 어디서 누가 되더라도 같은 기준의 일관성 있는 징계와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시즌 종료 후 공식훈련까지 더욱 많은 시간이 생기지 않았는가! 소양교육을 위해 시간과 예산을 투자하는 편이 사고를 수습하고 선수를 잃는 비용보다 훨씬 의미 있고 경제적이다.)
선수는 실력만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사진=KBO 제공)
우리는 많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통해 대한민국을 알리는 것에 집중해왔다. 그 때문에 기형적으로 성적을 내기 위해 운동에만 몰두하는 엘리트체육을 육성시킬 수밖에 없었고, 야구는 특히 그 정점에 있었다.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위해 주말리그제를 정착시키고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차근차근해가고 있지만 그 노력이 결실을 이루기 위해서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일은 바른 곳을 향해 돌아가야 이치가 맞고 시간이 걸리는 일은 산을 옮기는 것이라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 구단이 수 십 년을 키워온 선수가 한 순간에 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빼앗지 않으면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은 위험에 노출 되고 우리가 사랑하는 야구의 이미지는 더욱 신뢰를 잃어간다. 범죄를 두둔하고 야구로 보답하라는 결과지상주의 발상은 최소 야구에서부터 사라지길 바란다.
팬이 외면하는 프로스포츠는 존재의 가치가 없다. 멋진 홈런과 호수비에 열광하는 팬들이 우리 곁엔 아직 많이 남아있고 우리는 충분히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가지고 있다. 무엇이 두려운가. 성적과 연봉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 일관성 있는 강력한 처벌만이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야구를 바르게 사랑하는 길이다.
훌륭하게 기량을 갈고 닦아 많은 금액을 손에 쥔 선수들에게 이제는 본인이 가진 부와 명성에 맞는 책임감과 직업의식을 다시 한 번 스스로 환기시킬 수 있게 무거운 어사화를 꽂아 주는 것이 좋겠다.
에디터=야구공작소 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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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벌백계!
말이필요없다.무조건 퇴출!우리나라 프로 선수들 프로의식이 부족하다.
선수명성에 따라 처벌이 다른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네요
이때만해도 넥센이 트레이드 뒷돈준게 나오기전이니 선수 뿐 아니라 구단자체도 의식변화가 필요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