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그를 폭격 중인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사진=wikimedia commons)
[야구공작소 이해인]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슈퍼스타가 탄생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지금 그 주인공은 빅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아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다. 블루제이스 팬들은 1999년에 태어나 이제 갓 만 19세가 된 그를 하루빨리 토론토로 데려오라고 외치고 있다.
이렇게 팬들이 게레로에 열광하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번째로 최근 각 팀의 최고 유망주들이 메이저리그 레벨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를 비롯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 그리고 뉴욕 양키스의 글레이버 토레스, LA 다저스의 워커 뷸러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한 워싱턴 내셔널스는 게레로와 같은 나이이자 AAA를 거치지 않은 후안 소토를 메이저리그로 불러들이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게레로는 이런 선수들 사이에서도 오타니, 아쿠나와 함께 최고로 평가받은 선수다. 게다가 지금 더블A에서 가장 어린 나이의 선수임에도 0.421/0.472/0.697, 8홈런의 성적을 거두며 리그를 폭격하고 있다.
두번째 이유는 부진에 빠진 토론토의 성적이다. 토론토는 21일 4연패를 당하며 22승 25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4위에 올라있다. 특히 5월 들어 타선이 타율 0.228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현재 토론토 타선에는 확실한 구멍이 하나 있다. 겨울에 FA로 영입했으나 OPS 0.509로 기대에 못 미치는 지명타자 켄드리스 모랄레스다. 모랄레스를 대신해 수비 부담이 없는 지명타자 자리를 게레로가 대신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 2가지만 보면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콜업이 매우 타당한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구단의 사정은 항상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복잡한 법이다. 토론토는 지금 그를 올려서는 안 되는 처지에 있다.
조시 도날드슨과 3루수 딜레마
토론토는 내년 팀의 굵직한 기둥들을 떠나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중심타자 조시 도날드슨을 비롯, 선발투수 마르코 에스트라다와 J.A. 햅이 FA 자격을 얻는다. 이 공백을 메우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 게 게레로다. 당장 타격 실력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수비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게레로는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하기 전, 스카우트들에게 수비 실력에 대해 혹평을 받았다. 단기간에 빠르게 성장을 이뤘지만 지금도 메이저리그 수준이라는 평가를 내리긴 섣부른 감이 있다. ESPN의 유망주 전문가 키스 로는 지난 18일 기고한 글에서 “아직 수비 능력은 평균 조차도 안 된다. 아니 (20-80 스케일에서) 40점도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수비 범위는 제한적이며 땅볼을 잡는데 어색한 동작들이 더러 있다. 또한 아직 강한 어깨를 조절하지 못해 우익수 방면으로 공을 날리기도 한다. 스텝을 통해 공을 앞에서 잡는 것이 아닌 백핸드를 사용한다”라며 게레로의 수비 능력에 대해 많은 비판을 했다.
결국 관건은 게레로의 수비 실력이 얼마나 빠르게 성숙되느냐다. 성장을 위해선 기회가 담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서는 기회를 잡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팀내 최고스타 도날드슨의 포지션이 3루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게레로가 당장 데뷔한다면 지명타자 위주로 기용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반대로 게레로를 3루수로, 도날드슨을 지명타자로 기용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3루수 수비를 자랑하는 도날드슨을 수비 때 벤치에 앉힌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시즌 초반 겪었던 데드암 증세도 최근에는 극복한 상태다. 도날드슨의 지명타자 전환은 땅볼 유도 위주의 투구를 하는 토론토 선발진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선택이다.
혹은 도날드슨을 트레이드한다는 파격적인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토론토는 아직 와일드카드 경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슈퍼스타의 값어치는 트레이드 마감시한인 7월이 가까워질수록 높아지기 때문에, 설령 트레이드를 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호세 바티스타와의 작별 이후 평균 8000명 가까이 줄어든 관중을 붙잡기 위해선 도날드슨을 포기할 수 없다. 결국 여러모로 경기 외적인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도날드슨 트레이드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포지션 적인 딜레마는 6월부터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유격수 알레드미스 디아즈와 트로이 툴로위츠키가 곧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두 선수가 돌아오면 토론토 내야진은 포화상태가 된다. 그렇게 되면 게레로의 수비 출장 시간은 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또 하나의 문제 – 서비스 타임
경기 외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는 서비스 타임, 즉 FA 자격 획득 시기 조정이다. 재계약을 하지 않는 이상 구단이 빅리그에서 선수를 보유할 수 있는 시간은 6년으로 제한된다. 구단 입장에서는 무르익지 않은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올려 시행착오를 겪는 것보다, 완성된 상태로 데뷔시키는 것이 더 좋다.
리빌딩을 준비하는 팀은 이를 고려해 유망주의 데뷔 시기를 비슷하게 맞추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한다. 최상의 상태로 준비된 선수를 오래 사용함으로써 전력과 연봉 관리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서다. 현재 토론토의 핵심 야수 유망주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보 비솃, 캐반 비지오, 대니 잰슨 4명이다. 이들은 모두 아직 빅리그에 데뷔하지 않았다. 네 선수의 성장을 기다렸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시키는 게 토론토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더 좋은 수다.
이미 구단 수뇌부는 지독할 정도로 ‘서비스 타임이 시작되지 않은 선수들은 올리지 말자’라는 철칙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시즌 토론토는 6명의 야수를 마이너리그에서 빅리그로 콜업했다. 국제FA로 장기계약이 된 루어데스 구리엘을 제외하면 모두 일찌감치 빅리그에 데뷔해 서비스타임이 시작된 선수들이다.
이 밖에도 토론토는 선발 기대주들의 데뷔 시기도 느긋하게 조율하고 있다. 미래의 빅리그 선발 감으로 평가받는 라이언 보러키, 션 라이드-폴리, 조던 로마노 등이 마이너리그에서 호투를 펼치고 있지만 선발진의 구멍이 생겼을 때 빅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들 모두 아직 서비스타임이 시작되지 않은 선수들이다. 즉, 이는 서비스타임을 조정하려는 의도적인 설계에 따른 수뇌부의 이성적인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유망주 러쉬는 늘 위험을 동반한다
이런 접근이 지나치게 신중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오타니, 아쿠나 등 빠르게 성공을 거두는 선수들처럼 게레로 역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에 가득 찬 반론이다. 그러나 최상위급의 유망주들도 섣부른 데뷔 때문에 커리어를 망치는 경우가 많았다.
토론토에게도 그런 아픈 과거가 있었다. 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단장이자 토론토의 전임 단장이었던 알렉스 앤소풀로스는 원래부터 공격적으로 유망주를 데뷔시키는 성향을 보였다. 이 중 마커스 스트로먼, 애런 산체스, 로베르토 오수나 등은 AAA를 밟지 않거나 몇 경기 뛰어본 경험이 없는 데도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빠른 데뷔 전략의 부작용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한 때 훌륭한 평가를 받았던 달튼 폼페이를 필두로 미겔 카스트로, 다니엘 노리스와 같은 선수들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 올라와 현재까지도 메이저리그에서 이렇다 할만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비단 토론토뿐만 아니라 이번 시즌을 살펴봐도 이른 유망주 콜업이 가져다 주는 부작용을 살펴볼 수 있다. 게레로와 같은 3루수이자 지난 시즌 훌륭한 활약을 펼쳤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라파엘 데버스 역시 그러한 경우다. 데버스는 팀 사정에 의해 AAA에서 9경기만 치르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지난 시즌 58경기에서 10홈런과 OPS 0.819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둔 그는, 그러나 올해는 잦은 수비 실책과 함께 타석에서도 OPS 0.705를 기록하는데 그치고 있다.
리툴링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21일 북미 현지에는 게레로에 대한 소문이 난무했다. 토론토가 리차드 우레나를 AAA로 강등시킨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팬들은 드디어 게레로가 올라올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이번에도 게레로의 콜업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이런 팬들의 성화에도 구단 수뇌부는 갖가지 이유들을 대며 그의 콜업을 거부하고 있다. 팬들 입장에서 “게레로에게는 더 배울 것이 남아 있다”는 얘기는 말도 안 되는 변명처럼 들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동시에 사실이기도 하다. 저조한 빅리그 성적에 압박을 받으면서도, 토론토 프런트는 장기적인 그림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리빌딩 팀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말이다. 사실 토론토의 리툴링은 스몰마켓 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지난 시즌 LA 다저스가 엄청난 승수를 쌓아놓고 시즌 막판 부진 당시 겪었던 슬럼프에 따른 기우 같은 수준이다. 토론토는 적당한 승수를 기록할 수 있는 로스터와 리그 7위에 해당하는 풍부하고 좋은 팜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기대주들 가운데 이번 시즌 부진을 겪는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리툴링은 순항하고 있다. 토론토 팬들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게레로, 그깟 유망주, 1년 정도 더 참았다가 보면 된다.
출처: MLB, Sportsnet, Yahoo Sports, Milb, ESPN Insider
에디터=야구공작소 박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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