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4일(이하 한국시각) 미국의 스포츠 전문 매체인 ‘SB 네이션’에 실린 글 하나가 한국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도마에 올랐다. 내용은 간단했다. 올해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수비력은 전반적으로 형편없으며 그 중에서도 외야진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비평 글이 화제가 된 것은 글의 후반부 내용 때문이었다. 김현수의 수비가 메이저리그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었던 것.
아마 김현수를 KBO리그 시절부터 지켜본 팬이라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김현수는 심심치 않게 ‘KBO리그에서 가장 안정적인 수비를 펼치는 좌익수’라는 평을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김현수의 수비 지표는 정말로 밑바닥을 치고 있었을까. 야구는 기록의 경기다. 기록 앞에서는 슈퍼스타도 만년 후보도 공평하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기록이 말해 줄 것이다.
비판의 근거
김현수에 대한 비판은 UZR(Ultimate Zone Rating)과 DRS(Defensive Runs Saved)라는 상세한 수비 관련 지표를 토대로 이뤄지고 있다. UZR과 DRS는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각광받는 수비 평가 지표다. 단순히 실책 숫자의 많고 적음만 따져서는 몸을 날리는 호수비와 평범한 수비를 구분할 수 없다. UZR과 DRS는 수비의 기본 요소들을 하나씩 채점하는 식으로 ‘좋은 수비력’의 실체에 접근한다.
UZR과 DRS는 야구장을 바둑판처럼 수십 곳의 영역으로 나눈다. 이렇게 영역을 나누면 각 타구가 향한 위치에 따라서 수비의 난이도를 달리 평가할 수 있다. 전력질주를 해서 잡아내야 할 정도로 수비하기 어려운 타구를 잡아내면 많은 점수를 주는 식이다.
여기에 실책과 각종 영리한 수비 등으로 세부적인 영역을 나누며, 포지션에 따라서도 점수를 다르게 매긴다. 가령 외야수의 경우 강한 송구 능력으로 주자의 진루를 얼마나 억제했는지가 점수에 들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적게는 5개, 많게는 9개 이상의 영역에서 선수를 평가해 그 점수를 더한 것이 UZR, DRS 값이다.
김현수는 27일까지 좌익수로만 507이닝을 소화했다. 500이닝을 넘게 뛴 좌익수는 메이저리그 전체에 20명이 있는데, 이 중에서 김현수의 UZR은 18위, DRS는 19위에 올랐다. 즉 준 주전 이상 급의 선수들 중에선 거의 최악의 성적을 낸 것이다. SB 네이션의 비판은 타당했다.
어디서 점수가 깎였을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김현수는 외야수로서 전반적인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 등을 평가받았다. 그런데 김현수의 수비 범위와 송구 능력은 UZR과 DRS 양쪽에서 모두 마이너스 점수가 매겨졌다. 둘 다 메이저리그 평균에 미달했다는 뜻이다.
수비 범위에서는 DRS의 기준으로는 -6점, UZR의 기준으로는 -3.8점이 매겨졌다. 좁은 수비 범위로 인해 리그 평균 선수가 수비했을 때보다 각각 6점, 3.8점을 손해 봤다는 뜻이다. 실제 타구 처리 결과는 어땠을까. 야구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에서는 야구 스카우트 전문 기업인 ‘인사이드 엣지’에서 제공하는 타구 처리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김현수는 평범한 난이도의 타구를 수비할 때는 실수가 없었다. 그러나 중간 난이도(수비 확률 40~60%) 타구를 처리할 때 9번 중 3번밖에 성공하지 못 했다. 가장 어려운 난이도(수비 확률 1~10%)의 타구는 5번 중 한 번도 잡지 못 했다. 즉, 쉬운 문제는 맞혔지만 중간 난이도 문제에서 실수가 있었고, 변별력을 위한 어려운 문제는 전혀 풀지 못 했다.
다른 선수들의 성적은 어땠을까. 신시내티의 외야수 애덤 듀발은 27일까지 메이저리그 좌익수 UZR과 DRS에서 모두 2위에 올라 있다. 듀발의 UZR 기준 수비 범위는 좌익수 3위, DRS 기준 수비 범위는 1위다.
듀발은 27일까지 좌익수로 892⅓이닝 수비에 나섰는데, 쉬운 타구를 놓치는 실수가 몇 차례 있었다. 대신 중간 난이도 타구 7개를 전부 잡아냈고, 가장 어려운 타구 6개 중에도 하나를 잡아냈다. 쉬운 문제에서 저지른 실수를 어려운 문제 여러 개를 맞히면서 크게 만회했다.
타구 개수에서 알 수 있듯이 잡아내기 어려운 타구를 만날 기회는 아주 드문 편이다. 그렇지만 그런 문제를 맞히느냐 맞히지 못 하느냐에 따라서 수비 실력에 대한 평가가 크게 갈린다고 볼 수 있다.
김현수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도 유효할까
이렇게 자료를 살펴보면 김현수에 대한 저평가가 어느 정도 합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이대로 김현수가 영원히 ‘수준 미달의 좌익수’로 남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UZR과 DRS 값은 매년 크게 오르내리는 일이 잦다. 수비력을 평가하는 기준 중에서 가장 호평을 받는 UZR과 DRS지만, 1년 단위 기록이 높은 신뢰도를 갖지 못 한다는 약점이 있다. 매년 수비수가 갖는 수비 기회의 숫자와 난이도가 크게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어려운 타구를 적게 접한다면 높은 점수를 딸 기회도 줄어든다. 그래서 선수의 UZR과 DRS를 볼 때는 3년 이상 누적된 기록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실제로 피츠버그의 앤드류 매커친은 2012년에 -8.8점의 UZR로 메이저리그 중견수 중 18위에 그쳤다. 그러나 한 해 뒤인 2013년에는 UZR이 6.9점으로 크게 상승했고, 2014년에는 다시 -10.8점으로 크게 떨어지며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였다. 김현수도 반전을 이뤄낼 여지가 있다.
둘째 이유는 김현수의 수비 실력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메이저리그에 갓 데뷔해 환경에 몸을 익혀가는 중인 ‘신인’이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빠른 타구 속도, 주자들의 빠른 발, 십여 개의 새로운 구장들까지. 그가 10년 동안 몸에 익힌 KBO리그의 수비 환경을 뒤로 한 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중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큰 반전의 가능성을 점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근본적으로 KBO와 MLB는 환경 자체가 다르다. KBO리그 시절 김현수의 경쟁 상대는 주로 삼성의 최형우, LG의 이병규(7), 한화의 최진행처럼 발이 느린 선수들이었다. 반면 현재 김현수와 같은 포지션에 서는 선수들은 샌프란시스코 앙헬 파간, 피츠버그의 스탈링 마르테, 토론토의 멜빈 업튼 주니어, 마이애미의 크리스티안 옐리치 등이다. 이들은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한 시즌 20도루 이상을 기록한 빠른 발을 갖고 있다.
김현수는 발이 빠른 선수가 아니다. 2008년 13도루를 기록한 것이 KBO리그 통산 최고 기록이었다. 경험과 타구 판단 능력이 동등하다는 전제 하에, 외야 수비는 결국 발 빠르기와 반응 속도 등 운동 신경의 함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평균 이하라는 성적표를 받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선수에 대한 평가에는 다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수비력에서는 뒤처질지 모른다. 그러나 김현수는 자신의 장점이 방망이에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증명하고 있다. 원 글의 저자도 이 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기에 ‘오해하지 말라. 나는 김현수를 정말로 좋아한다.(“Don’t get me wrong; I really like Kim.”)’는 부연 설명을 적었다.
사실 이런 부차적인 이야기가 없어도 이미 우리는 김현수라는 ‘타자’의 진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김현수가 10년 가까이 달고 산 ‘타격 기계’라는 별명이 그의 진짜 능력을 말해 준다.
기록 출처 : STATIZ
야구공작소
박기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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