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양승호] 롯데 자이언츠의 뜨거웠던 2017시즌이 마무리되었다. 롯데는 지난 15일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0대9로 패배하면서 또다시 탈락의 쓴 잔을 들이키고 말았다. 구원진과 조쉬 린드블럼의 대활약에 힘입어 시리즈를 4차전까지 팽팽하게 끌고 갔지만, 5년 동안의 가을야구 공백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7위에서 3위까지 올라섰던 시즌의 아쉬운 마무리였다.
롯데는 지난 10시즌 동안 6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뤄냈다. 이는 동일 기간 두산 베어스(8회),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이상 7회)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횟수다. 그러나 이 6번의 포스트시즌 중에서 상위 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던 경우는 2012시즌 단 한 번뿐이었다. 2009년에는 준플레이오프 최초로 1차전에서 승리하고도 시리즈를 내주는 진기록을 수립했고, 2011년에는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지만 3위 SK에게 업셋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러한 포스트시즌 잔혹사의 1차적인 원인은 기본적인 전력의 차이와 타격 사이클의 저하에 있었다. 언론에서 항상 지적하던 경험 부족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계속되는 ‘가을 악몽’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흐름을 완전히 상대팀에게 넘겨줬던 ‘한 판’들에서의 실패에 있었다. 각각의 패착으로 인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시리즈는 고무줄처럼 늘어져버렸고, 분위기는 갑자기 ‘싸해’지고 말았다. 롯데의 팬이라면 이 장면들이 결코 ‘몰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의 포스트시즌 잔혹사에서 중대한 변곡점(물론 나쁜 쪽)으로 작용했던 순간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2008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 송승준 비긴즈
2008년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 환하게 웃고 있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눈은 3차전 이후 눈물로 가득 차고 말았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8년 만에 진출한 포스트시즌, 삼성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의 1차전 선발로 나선 선수는 송승준이었다. 에이스 손민한이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시리즈에 선발로 등판했다는 이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송승준이 삼성전에 강했기 때문이었다(4경기 3승 1패 3.22). 후반기 페이스 역시 팀내 선발투수들 중에서 가장 좋았다(3승 무패 1.87).
1회초부터 연속 안타를 얻어맞으며 다소 불안하게 경기를 시작한 송승준은 카림 가르시아의 홈 보살에 힘입어 위기를 탈출했고, 2회에는 볼넷 하나만을 허용하면서 4타자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문제는 3회였다. 한 점의 리드를 안고 마운드에 오른 송승준은 3연속 피안타로 동점을 내주더니, 이어 박진만과 채태인에게 연속 적시타를 허용하면서 순식간에 마운드를 내려오고 말았다. 후속투수 이용훈이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면서 송승준의 최종 성적은 2.2이닝 5실점이 되었다.
12대3으로 대패하면서 1차전을 내준 롯데는 상승의 동력을 잃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주장 조성환까지 극심한 부진에 빠지면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2차전과 3차전은 접전으로 흘러갔지만, 한번 넘어간 분위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8년 만의 가을야구는 허무한 ‘4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2009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 송승준 라이즈
‘김현수 거르고 김동주’에서 ‘김거’인 장면. 이후 장면은 본문을 확인하시라. (사진 = 중계화면 캡쳐)
승패마진 -13을 극복하고 또 한 번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2009년. 롯데는 포크볼을 앞세운 조정훈의 호투에 힘입어 9년 만의 포스트시즌 승리를 거뒀다. 상대팀 두산 베어스의 2차전 선발투수로 나선 금민철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하기는 했지만, 홈으로 돌아와 펼치는 3, 4차전에서 충분히 반격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3차전의 선발투수로 낙점된 투수는 송승준. 여름에 3연속 완봉승을 거둔 이래로 페이스가 다소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그를 대체할 선발투수는 롯데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가을야구 무대를 밟은 송승준은 1회부터 최준석에게 행잉 커브를 공략당하면서 적시타를 내줬다. 불안한 투구는 2회에도 이어졌다. 송승준은 연속 안타와 실책, 적시타를 차례로 허용하며 한 점을 더 실점했다. 계속되는 1사 2, 3루 상황에서 롯데의 배터리는 타석에 들어서는 김현수를 고의4구로 걸러 보냈다. 상대전적(12타수 4안타 1홈런)과 더블 플레이를 염두에 두고 내린 선택이었다. 그러나 롯데는 잊고 있었다. 다음 타자 김동주가 송승준에게 더 강했다는 사실을(8타수 4안타 1홈런).
그리고 롯데는 멸망했다.
[History] 전설의 김거김 (2009년) / spotv
순식간에 7대0으로 벌어진 스코어는 쉽게 뒤집히지 않았다. 박기혁과 이대호, 가르시아가 홈런을 쏘아 올리며 끈질긴 추격전을 펼쳤지만 한껏 벌어진 점수차에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이어진 4차전에서도 실책 퍼레이드를 펼친 롯데는 결국 또 한 번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2009년의 추석 연휴는 그렇게 롯데팬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2010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 아무튼 애드벌룬 탓임!
애드벌룬은 말이 없었다. 애드벌룬 탓을 하기에 롯데는 너무 많은 찬스를 날렸다. (사진 = 중계화면 캡쳐)
2010년이야말로 ‘올해는 다르다’고 외쳐볼 만했던 시리즈였다. 지난 2년 동안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듯 선발투수들은 제 역할을 다했고, 타선은 결정적일 때 집중력을 발휘했다. ‘김거김’의 굴욕마저 ‘조거이(조성환 거르고 이대호)’로 되갚아준 롯데는 원정에서 2승을 싹쓸이하면서 어느새 플레이오프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홈에서 열린 3차전. 롯데는 직전 시즌 ‘롯데 킬러’로 이름을 날렸던 홍상삼을 상대로 1회부터 연속 3안타를 기록하며 2점을 선취했다. 흐름이 롯데 쪽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순간, 2루 주자 조성환이 루상에서 견제사를 당했다. 그리고 분위기는 급격하게 두산 쪽으로 넘어갔다. 4회초 무사 만루에서 ‘대호 터널’을 통과하는 손시헌의 타구로 승부를 뒤집은 두산은 순식간에 6대2까지 점수차를 벌렸다.
따라잡을 기회는 있었다. 롯데는 5회말 전준우의 홈런 등으로 3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1점 차까지 따라붙었다. 그리고 6회말, 다시 타석에 들어선 전준우가 또 한 번 잘 맞은 타구를 날렸다. 그런데 이 타구가 마침 바람을 타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있던 애드벌룬에 맞으면서 그라운드 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심판진은 합의 끝에 이 타구를 아웃으로 선언했고, 그것으로 롯데의 추격은 끝이 났다.
이어진 4차전에서 롯데는 포스트시즌 잔루 신기록을 세우며 11대4로 대패했고, 2승 2패로 맞선 5차전에서도 큰 점수차로 패하며 시리즈를 마감했다. ‘사직서 끝낸다’던 로이스터 감독의 말은 정말 그대로 실현됐다. 진짜로 ‘사직서 내고’ 사령탑에서 물러나게 되었던 것이다(실제로는 구단 측이 재계약 포기).
4차전 롯데 타선의 잔루 발생 상황
2011년 플레이오프 1차전 – Cause you are my girl~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3안타를 기록한 손아섭. 하지만 지금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9회말의 그 타구뿐이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제공)
양승호 감독이 신임 사령탑으로 부임한 2011년. 롯데는 시즌 초 내홍을 겪으며 하위권으로 처졌지만, 분위기를 다잡은 후반기에 대폭발하며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인 페넌트레이스 2위를 달성했다. 부푼 기대를 안고 시작한 플레이오프 1차전, 롯데는 구단 최초로 포스트시즌 선두타자 홈런을 쏘아 올린 김주찬의 활약에 힘입어 산뜻하게 경기의 막을 올렸다. 투수진의 난조로 경기 중반 잠시 역전을 허용했지만, 8회초 이대호가 천적이었던 정대현에게 동점 적시타를 뽑아내면서 흐름을 다시 롯데 쪽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동점 상황에서 맞이한 9회말 정규시즌 마지막 공격. 롯데는 선두타자 황재균의 2루타와 조성환의 좌전안타로 무사 1, 3루를 만들어내며 경기를 끝낼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대타로 나선 손용석이 투수 땅볼로 아웃 당했지만, 다음 타자였던 김주찬이 고의4구로 걸어 나가면서 1사 만루의 기회가 이어졌다.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이날 3안타를 기록하고 있던 손아섭. 손아섭은 “바뀐 투수의 초구를 공략하라”는 격언 그대로 바뀐 투수 정우람의 초구를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런 노래가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Cause you are my girl~ You’re the one that I envision in my dreams~”
2루수 정근우의 정면으로 향한 손아섭의 타구는 거짓말처럼 깔끔한 병살타로 이어졌다. SK는 바로 다음 이닝에 정상호의 좌월 홈런을 앞세워 결승점을 뽑아내는 저력을 과시했다. 롯데는 이후 시리즈를 2승 2패까지 끌고 갔지만, 1차전에서의 이 허망한 패배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2008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3회 박한이의 적시타가 터졌을 때의 전광판. 다음 타자 박석민에게도 적시타를 허용하며 ‘6’은 ‘7’로 바뀐다. (사진 = 중계화면 캡쳐)
롯데가 포스트시즌에서 허무하게 내줬던 경기들의 패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빅 이닝을 허용한다. 예컨대 2008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의 3회, 2009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의 2회, 그리고 올해 준플레이오프 1차전의 11회처럼 투수진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분위기를 상대에게 완전히 넘겨줘버린 경기들이 많았다.
또 잔루를 너무 많이 남겼다. 포스트시즌 잔루 신기록(17잔루)을 세웠던 2010 준플레이오프 4차전이 대표적이다. 2008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2010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2011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벌어진 난동과 오물 투척 같은 사례들은 이러한 가을야구 잔혹사에 방점을 찍은 ‘데코레이션’이라 볼 수 있겠다.
과연 부산 갈매기가 이 잔혹한 가을의 악몽을 뚫고 비상할 날은 언제일까? 아쉽지만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잔혹사에 또 한 줄을 추가하고 말았다.
기록 출처: STATIZ, KBO 연감
소위 화끈함은 있지만, 끈적함이 없음… 끈적해야 잘 넘어지지 않고, 상대방을 물고 늘어질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