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점가치 돌아보기
야구에는 3가지 아웃카운트(0, 1, 2)와 8가지 주자 상황(주자 없음, 1루, 2루, 3루, 1·2루, 1·3루, 2·3루, 만루)이 있고, 이들의 조합은 총 24가지의 아웃-주자 상태를 만들어 낸다. 이때 각 상태마다 그 상태로부터 이닝 종료 시까지 평균적으로 몇 점의 득점이 발생하는지를 계산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25년 KBO리그에서는 무사 1루에서 이닝 종료 시까지 평균 0.943점의 득점이 발생했다. 이런 방식으로 각 아웃-주자 상태마다 이닝 종료 시까지 평균적으로 발생하는 득점을 계산한 것을 기대득점(RE24)이라 한다. 기대득점은 세이버메트릭스의 근간을 이룬다.
< 2025년 KBO리그 기대득점 >
기대득점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이 이벤트별 득점가치(RV)다. 여기서 이벤트라 함은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 볼넷, 삼진, 아웃 등 타석 결과를 의미한다. 각 이벤트의 득점가치는 그 이벤트가 평균적으로 기대득점을 얼마나 높였는지를 계산해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25년 1루타의 득점가치는 0.494점이었는데, 이는 1루타가 나오기 전후의 기대득점 차이가 평균 0.494점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러 야구 통계 사이트의 이벤트 가치를 보면 한 가지 재밌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고의4구가 아닌) 볼넷, 고의4구, 몸에 맞는 공의 가치가 서로 다른 것이다. 특히 고의4구의 경우에는 자료에 따라 득점가치를 음수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세 이벤트는 타자주자가 1루까지 진루하고 나머지 주자는 타자에 밀리는 주자만 진루한다는 점에서 서로 (거의) 완전히 같은데 왜 그런 것일까?
< 2025년 KBO리그 주요 이벤트의 득점가치 >
최근 약 10년 사이에 트래킹 데이터의 등장과 함께 세이버메트릭스는 다방면으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여러 세이버메트릭스 지표가 측정(추정)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엄밀한 수학적·형식적 정의는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기대득점이나 득점가치를 포함한 여러 지표를 계산하는 방법은 알려져 있는데, 정작 그 지표가 의미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과 실제로 의미하는 것이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 고의4구의 득점가치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이 글에서는 득점가치의 정의에 집중해, 우리가 득점가치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고 실제로 계산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한다. 이를 통해 왜 현재 계산 방식에서 고의4구의 가치가 음수가 나올 수 있고, 왜 해결이 어려운지 논의해 본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기대득점은 사전에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기대득점의 정의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로 한다.
두 가지 평균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이벤트의 득점가치는 이벤트 전후의 평균적인 기대득점 변화량을 의미한다. 2025년 KBO리그에서 홈런의 득점가치가 1.417점이라고 하는 것은 홈런이 나왔을 때 평균적으로 기대득점이 1.417점 상승했다는 뜻이다.1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물어서 “평균적으로”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크게 두 가지 ‘평균’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1)실제로 홈런이 나온 타석 상황들의 평균이고, 다른 하나는 (2)리그 평균적 타석 상황의 평균이다. 여기서 ‘상황’은 편의상 아웃-주자 상황으로 한정해서 생각한다.
(1)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2025년 KBO리그에서 실제로 홈런이 나온 타석은 총 1191개다. 이 1191개 타석의 전후 기대득점 변화량을 구한 뒤 평균한 것을 2025년 KBO리그의 홈런 득점 가치로 정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산한 홈런 득점가치는 2025년 KBO리그에서 실제로 발생한 홈런이 평균적으로 기대득점을 몇 점 높였는지를 상징한다. 이런 점에서 (1)의 득점가치는 관측 평균이다.
(2)는 조금 더 복잡하다. 먼저 2025년 KBO 리그 전체의 24가지 아웃-주자 상황 분포가 있다. 예를 들어 전체 55996타석 중 무사 주자 없는 상황은 13248번, 2사 만루는 802번 있었다. 다음으로 1191번의 홈런 타석에서의 아웃-주자 상황 분포가 있다. 이때는 무사 주자 없는 상황은 329번, 2사 만루는 68번 있었다.2
이제 여기서 하나의 가정이 들어간다. 아웃-주자 상황이 타자의 홈런 생산 능력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가정이다. 물론 실제로는 아웃-주자 상황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WAR를 비롯해 현재까지 필자가 알고 있는 어떤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도 타자가 특정한 아웃-주자 상황에 더 자주 들어섰다는 점을 별도로 보정하진 않는다. 즉 세이버메트릭스는 이미 암묵적으로 아웃-주자 상황이 타격에 미치는 영향이 없거나 무시할 만한 수준이라고 가정하고 있고, 그런 가정 하에서 만든 지표들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크게 무리한 가정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가정 하에서 홈런이 나온 타석의 아웃-주자 분포는 KBO리그 전체 아웃-주자 분포와 같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연 등에 의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 따라서 실제로 홈런이 나온 타석의 전후 기대득점 변화량을 홈런 타석의 아웃-주자 분포가 리그 전체 아웃-주자 분포와 같아지도록 가중평균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구한 득점가치는 ‘2025년 KBO리그의 임의의 타석에서 홈런이 나왔다고 했을 때 평균적인 기대득점 상승량’을 의미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2)의 득점가치는 표준화된 평균이다.
이 득점가치는 ‘2025년 KBO리그가 시즌 종료 후에도 가상으로 계속 진행된다고 했을 때 홈런이 가지게 될 가치’로 이해해 볼 수도 있다. 가상으로 무한히 진행될 리그에서는 (우리의 가정이 맞다면)홈런 타석의 아웃-주자 분포가 리그 전체 아웃-주자 분포가 같아질 것이다. (2)는 미리 가중평균으로 아웃-주자 분포를 일치시켰으므로, 앞으로의 타석에서 홈런이 가지게 될 가치를 더 정확하게 근사한다.
< 홈런 타석과 리그 전체 타석에서 아웃-주자 분포 차이 >
득점가치: 고의4구
두 접근을 염두에 두고 고의4구의 득점가치 문제를 생각해 보자. 고의4구는 우리가 득점가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좋은 예시가 되어준다. 고의4구는 아웃-주자 상황에 크게 의존하므로 (1)의 방식대로 고의4구의 득점가치를 구한 경우 고의4구의 득점가치가 극단적으로 낮아지며 자료에 따라서는 음수 가치를 보고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고의4구가 음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보고 1회 초부터 고의4구를 계속하면 완봉이 가능하다고 말한다고 하자.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는 (1) 방식 계산에 대한 오해가 있는 것이다. (1) 방식은 후향적으로 과거 리그에서 실제로 고의4구가 발생한 아웃-주자 상황을 반영하는 방식이다. 주로 주자 2·3루와 같은 때에 나올 텐데, 이때 타자주자 한 베이스 진루의 가치는 일반적인 상황보다 작을 수밖에 없다. 즉 고의4구 시 아웃-주자 분포는 리그 전체 아웃-주자 분포와 완전히 다르고, (1) 방식은 전자로 구한 것이기에 후자에 적용하면 잘못된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그러면 고의4구에 (2) 방식을 적용하면 일반 볼넷과 같은 가치를 갖는 것으로 확인될까? 아쉽게도 고의4구는 (2) 방식을 아예 적용할 수조차 없다. (2) 방식을 적용하려면 24가지 아웃-주자 상황 각각에 대해 최소 하나 이상의 고의4구가 있어야 하는데, 고의4구는 24가지 아웃-주자 상황 중 10가지 상황에서 하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3
이렇게 고민하다 보면 ‘애당초 고의4구의 득점가치를 일반 볼넷이나 몸에 맞는 공과 별도로 산출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임의의 아웃-주자 상황에서 고의4구, 볼넷, 몸에 맞는 공의 타석 전후 아웃-주자 상황 변화는 같고 기대득점 변화량도 같다. 그러면 당연히 득점가치도 같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 이는 (2)에 가까운 생각이다.
실제 계산은 대부분 (1)로 이뤄진다. 이 접근은 아웃-주자 상황에 따라 볼넷과 몸에 맞는 공이 나오는 경향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아웃-주자 상황에 따라서 경향성이 똑같진 않을 것이므로 같다는 가정을 도입하는 (2)보다 더 ‘정확’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논의에 공감한다면 어느 한쪽이 더 ‘정확’하다는 표현 자체가 별로 정확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1)이든 (2)든 대세에 지장은 없다.
사실 득점가치를 어느 수준까지 세분화해서 구할지도 정해진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야구 통계 사이트에서 아웃의 득점가치를 삼진아웃과 필드아웃으로 구분해 제공한다. 그런데 꼭 구분하지 않고 합치면 안 될까? 또는 반대로, 필드아웃을 다시 땅볼아웃과 뜬공아웃으로 구분하는 건 어떤가? 땅볼아웃에서 다시 병살타를 구분하는 것은? 구분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왜?
정답은 없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작업,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에 맞게 세분하면 된다. 예를 들어 표준화된 접근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하면 고의4구, 볼넷, 몸에 맞는 공을 합쳐서 득점가치를 구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득점가치를 구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이다.
정리해 보자. 현재 사용되는 이벤트 득점가치는 이벤트 전후의 평균적인 기대득점 변화량으로 정의되고 있으나 그것이 정말로 ‘모든’ 상황의 평균은 아니다. 과거에 이 이벤트가 발생한 상황에서의 평균이며 이를 통해 이벤트가 발생한 아웃-주자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이버메트릭스에서 아웃-주자 상황이 타자 퍼포먼스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를 추가로 가정하고 표준화 작업을 거치면 볼넷-몸에 맞는 공처럼 같은 유형의 이벤트가 같은 득점가치를 갖게 된다. 그러나 고의4구와 같이 이벤트 발생이 아웃-주자 상황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에는 우선 가정이 맞지 않고, 표준화도 불가능하다.
최근 세이버메트릭스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기초를 점검해야 한다. 추정하려고 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어떻게 추정해야 하는지, 실제로 우리가 추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모두들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지만 누군가는 가끔 뒤를 돌아봐 주길 바란다.
참조 = hardhit.ai, 프로야구 넘버스 북 2025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박두산, 전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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