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바라만 볼 것인가?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

1990년대 후반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은 후, 수많은 우리나라 유망주가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이에 KBO는 1998년 한국 야구계는 미국 진출을 막기 위해 여러 규정을 도입했다.

몇몇은 이러한 불이익을 감수하고 메이저리그의 꿈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추신수, 김선우, 류제국처럼 몇몇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데뷔에 성공했지만, 대부분은 메이저리그 데뷔조차 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2012년 메이저리그에 국제 유망주 보너스 풀 제도가 도입되었다. 더 이상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이전처럼 국제 유망주에게 많은 돈을 쓸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2010년대에 들어서 미국으로 직행하는 유망주들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이제 많은 유망주를 영입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최상급 유망주를 노리기 시작했다. 미국으로 떠난 심준석, 장현석, 김성준, 문서준 모두 만약 KBO 드래프트에 참여했다면 전체 1순위, 못해도 1라운드 상위 순번에 지명될 것이 유력한 선수들이었다.

 

왜 미국으로 향하는 것일까?

유망주에게 미국 직행은 분명히 위험부담이 큰 도전이다. KBO 드래프트에 참여해 높은 라운드 지명에 지명받는다면 팀의 핵심 유망주로 대우받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났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받을 대우는 기대할 수 없다.

미국 직행을 두고 몇몇 사람은 미국의 좋은 시스템 아래에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의 경쟁은 KBO 퓨처스리그와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하다. 그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2년간 프로 무대에서 뛸 수 없다. 상무 입대 역시 불가능해 병역 특례를 받지 못한다면 현역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선수들의 결정에는 여러 이유가 따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계약금의 차이다.

올해 박준현, 김성준, 문서준이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최대어로 평가받았다. 이 중 박준현은 KBO에 남아 전체 1순위 지명받아 한국에 남았고, 김성준과 문서준은 각각 텍사스 레인저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을 맺으며 미국으로 떠났다.

박준현이 키움으로부터 받은 계약금은 7억 원인 반면, 김성준은 계약금으로 120만 달러(약 16억 원), 문서준은 150만 달러(약 21억 원)를 받았다. 이러한 계약금의 차이는 선수들이 미국 진출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야구는 비싼 스포츠다

한국에서 야구 선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먼저 학교에 매달 100만 원가량의 회비를 내야 한다. 대회가 있는 기간이면 대회 참가비와 숙박비도 부담해야 한다. 동계 훈련을 해외로 가게 된다면 최소 2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하다. 최근 유행하는 여러 사설 아카데미에 들어가는 수업료까지 더해진다면 그 비용은 더 늘어난다.

게다가 많은 준비물이 필요하다. 캐치볼만 한다고 해도 공과 글러브가 필요하다. 경기하기 위해서는 배트, 포수 장비와 같은 장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이 장비들의 가격은 높은 편이다. 아마추어 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 재도입이 논의되는 배경에는 나무 배트로 인한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것도 한몫하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매년 3,000만 원이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야구선수의 꿈을 위해서 최소 2억 7,000만 원이 필요하다. 이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도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선수들에게 첫 금전적인 수입인 계약금은 더욱 중요하게 다가오게 된다.

 

계약금은 그대로?

2005년, 심정수는 FA 자격을 취득한 후 삼성 라이온즈와 4년 최대 60억 원의 계약을 맺으며 역대 FA 계약 최고액을 경신했다. 그해 여름, 기아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은 한기주는 10억 원에 계약을 맺으며 신인 계약금 최고액을 경신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25년, FA 시장의 규모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현시점 FA 계약 최고액은 양의지가 두산과 맺은 6년 최대 152억 원이다. FA 시장에서 특급 선수들의 100억 원 규모의 계약은 이제 보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해 신인 계약금 최고액은 여전히 한기주의 10억 원이다. 올해 박준현이 받은 계약금 7억 원은 1997년 임선동과 2002년 김진우의 계약금과 같다. 화폐가치를 고려하면 신인 계약금의 규모는 과거와 비교해 더 작아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장의 규모는 야구 인기와 함께 증가하면서 전반적인 시장의 규모도 같이 증가했다. 하지만 신인 계약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오히려 계약금의 규모는 줄어든 것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KBO 구단은 드래프트 이후가 돼야 유망주와 협상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미국 구단들은 구단의 할당된 국제 유망주 계약금이 남아있는 한 언제든지 유망주와 협상할 수 있다. KBO 드래프트에 참여하기 전에 선수가 빅리그 구단과 합의를 이룬다면 이때 KBO 구단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매년 빅리그 구단들의 국제 유망주 보너스 풀이 증가하고 있다. 2012년 모든 팀이 290만 달러의 보너스 풀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 가장 많은 보너스 풀을 받은 팀들은 755만 달러(약 109억 원), 내년에는 803만 달러(약 117억 원)로 늘어난다. 갈수록 빅리그 구단들이 한국 유망주에게 더 많은 돈을 쓰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2023년 몇몇 빅리그 구단들은 중학생이던 방영웅과 이현승의 신분 조회를 요청했다. 그리고 올해 1월 이현승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피츠버그 파이리츠와 계약을 체결했다. 이현승이 피츠버그와 계약하며 받은 계약금은 16만 달러(약 2억 3,680만 원)다. 참고로 올해 KBO 드래프트 전체 11번(2라운드 1번) 지명받은 김지석의 계약금이 1억 6,000만 원이다.

계약금의 규모를 늘리는 것은 구단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신인 계약금도 엄연한 지출이기에, 지출이 늘어나는 것은 구단 운영에 있어 불확실성이 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MLB 팀들도 한때 계약금 문제로 많이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슬롯 머니

2011년까지 MLB 역시 KBO처럼 신인 계약금에 어떠한 제한도 없었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브라이스 하퍼와 같은 특급 유망주들은 거액의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고 40인 로스터에 포함되며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가난한 구단들은 드래프트에 있어 선수의 잠재력보다 본인들의 예산이 우선시되었다. 머니볼 드래프트로 유명한 오클랜드의 2002년 드래프트 전략에는 오클랜드의 적은 예산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사무국은 2012년부터 슬롯 머니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1라운드부터 10라운드까지 각 지명 순번마다 쓸 수 있는 계약금을 정해둔 것이다. 구단은 계약금으로 나가게 될 지출이 정해졌고, 선수는 슬롯 머니를 근거로 본인들이 원하는 계약금을 구단에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과 한국의 환경이 다른 만큼 슬롯 머니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슬롯 머니를 통해 선수에게 어느 정도의 계약금을 줄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현시점 KBO 구단들은 드래프트에 참여하기 전 선수들과 접촉할 수 없다. MLB 구단들이 고등학교 선수들에게 구체적인 제안을 하는 동안 KBO 구단들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만약 슬롯 머니 시스템이 있다면 선수에게 KBO 구단이 어느정도 계약금을 줄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 슬롯 머니의 규모를 늘린다면 선수는 합당한 계약금을 받을 수 있고, 구단은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즉 슬롯 머니라는 시스템을 통해 구단과 선수 모두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선수들은 드래프트에 참여하기 전 생기는 금액적인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고, 구단은 매년 계약금으로 쓰게 될 지출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매년 아마추어 야구가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신인 선수들에게 중요한 계약금에는 큰 투자를 하고 있지 않다. 정작 구단들은 매년 선수가 부족하다고 말하며 신인 계약금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액을 FA 시장과 외국인 선수에게 쏟아붓고 있다.

그동안 규약이라는 채찍을 앞세워 선수들의 마음을 돌리자고 했다면, 이제는 선수의 마음을 돌릴 당근을 던져줄 때이다. 그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가장 큰 당근은 더 많은 계약금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변화가 없다면 최상급 유망주는 계속해서 미국을 향할 것이다. 여러 제도 개선을 통해 선수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참조 = 조선일보, KBO, 스포츠경향, Baseball America

야구공작소 탁원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이금강, 장호재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변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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