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안’의 함정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

선구안의 함정

우리는 일반적으로 ‘순출루율(Isod)’이 높은 선수를 보고 선구안이 좋다고 부른다. 이는 전통적인 분류법엔 부합하지만, 순출루율이 높은 타자들의 특성을 완전히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한국에서 표현하는 ‘선구안’이 볼과 스트라이크를 구분하는 능력에 국한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누가 선구안이 좋은 타자인가?

보통 순출루율이 0.080 이상 나오고, BB%가 10%를 넘어가는 타자들을 ‘선구안이 좋다’, ‘눈야구를 한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홍창기, 권희동, 나승엽이 그 예시다. 메이저리그로 확장하면 추신수나 조이 보토, 맷 카펜터 등이 뽑힌다.

< BB% – 순출루율 환산 >

이들이 뛰어난 선구안을 기반으로 좋은 생산성을 기록하는 타자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볼과 스트라이크를 골라내는 능력’만으로는 이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말하기엔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

< 홍창기와 권희동의 통산 성적 >

홍창기와 권희동은 매년 0.09 이상의 순출루율을 기록하는 교타자다. 이렇게 통산 슬래시 라인만을 비교하면 출루율은 홍창기, 장타력은 권희동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전체적인 타석 접근법(Plate Discipline)을 비교하면 차이가 갈리는 편이다.

< 홍창기와 권희동의 통산 인 존-아웃 존 스윙% >

< 홍창기와 권희동의 통산 Meatball%, Meatball Swing% >

둘은 한가운데 몰리는 실투(Meatball)에 대한 대처와 아웃존 스윙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홍창기는 존 바깥의 공에는 스윙을 잘 참아내지만 한가운데 공에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한편 권희동은 존 밖의 공에 더 스윙하고, 좋은 타구를 만들 수 있는 실투엔 소극적이다. 바로 이것이 타석 접근법(디시플린)의 차이이다.

 

타석 접근법이 뭐길래

Plate Discipline. 이 단어는 쉽사리 정의 내리기 어렵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는 ‘참을성’과 같은 어투로 사용하기도 했고, 한글로 직역하면 ‘타석 접근법’이라는 애매한 용어가 된다. 이는 너무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Zone Awareness, Pitch Selection, Patience 등으로 나누어야 한다. 다만 이 분류조차 정답은 아니며, 타석 접근법이라는 큰 틀을 크게 분류한 것에 가깝다.

  • 존 인식(Zone Awareness)

‘존 인식’은 존의 안(In zone)과 밖(Out zone)을 구분하는 능력을 말한다. 따라서 기성의 선구안이 뜻하는 바에 가깝다.

  • 구종 선택(Pitch Selection)

‘구종 선택’은 날아오는 공 중에서 타격할 공을 고르는 의사결정 능력이다. 특정 존에 자주 스윙하는 타자들이 보통 해당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인내력(Patience)

‘인내력’은 특정 카운트가 되기를 기다리거나 투구 수를 빼는 전략적 행동이나 경향이다. 인내력이 높고 신중한 타자는 실투도 카운트가 유리하다면 거르는 편이다.

이처럼 타석 접근법은 단순히 하나의 요소에 기대어 설명할 수 없으며, 동시에 여러 요소를 고려하고 있는 용어다. 예시로 베이스볼 서번트에서는 타석 접근법에 헛스윙률(Whiff%)과 스윙(Swing%), 초구 스윙(1st Pitch Swing%), 존 컨택(Zone Contact%) 등 컨택 능력까지 포함시켜 판단한다.

< 애런 저지 – Plate Discipline >

< 조이 보토 – Plate Discipline >

애런 저지는 강력한 파워에서 나오는 최고 수준의 장타력과 준수한 선구안을 가지고 있다. 보토 역시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았고, 개중에서도 선구안은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 둘의 순출루율(IsoD)은 각각 0.119와 0.115로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타격 접근법은 다소 갈리는 편이다.

먼저 존 밖의 공에 손이 나가는 비율인 chase%에서 차이를 보인다. 커리어 평균은 동일하지만(28.4%), 보토가 0.134이라는 역대급 순출루율을 기록한 2016년을 보면 chase%가 13.2%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로 저지는 10%대로 떨어진 적이 손에 꼽는다.

이는 타자 성향 외의 요소가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투수들은 피장타를 우려해 강한 파워를 가진 저지와의 승부를 피해 가거나 고의사구로 내보낸다. 한국에선 2025시즌 안현민이 대표적인 예시다.

공통점도 존재한다. 두 명의 선수 모두 실투 적극성(Meatball Swing%)이 높다. 구종 선택이 탁월하고 스윙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실투 적극성이 낮다면 존 정립이 되어있지 않거나 소극적이고 신중한 접근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하비에르 바에즈 – Plate Discipline >

하비에르 바에즈는 전성기 기준 인존-아웃존-미트볼 스윙%가 전부 높아 소위 말하는 ‘막스윙’ 유형의 선수였다. 구종 선택 능력이 전무한 타자지만 강한 파워로 이를 상쇄한 케이스다. 그러나 2022년부터 인존 스윙과 미트볼 스윙이 전부 하락하면서 삼진 회피 능력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 김하성 – Plate Discipline >

김하성은 바에즈와 반대로 2022년보다 초구-인존-아웃존-미트볼 스윙%를 모두 하락시켰다. 단순히 스윙을 안 내는 것이 아닌 컨택 능력(Whiff% 19.1% -> 17.8%)을 개선했고, 이러한 참을성을 기반으로 높은 순출루율(0.091)을 기록했다.

 

자신만의 존이 있어야 선구안이 좋은 타자

2022년, KBO에서 이정후는 볼넷 66개를 얻어내는 동안 삼진은 단 32개를 기록했다. 이처럼 압도적인 볼삼비는 ‘볼넷은 많이, 삼진은 적게’라는 고전적인 좋은 선구안의 표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순출루율과(0.072) 낮은 meatball swing%를 보았을 때 신중한 접근과 최고 수준의 컨택으로 2스트라이크 이후 삼진 탈출 능력이 뛰어난 스타일에 가깝다.

< 2022년 KBO 규정타석 70% 기준 meatball swing% >

< 2022년 규정타석 70% 기준 삼진회피능력(Putaway%) >

‘진짜’ 빼어난 선구안과 적절한 인내력(실투 적극성)을 갖춘 타자들은 오히려 루킹 삼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선호하는 구역이 확고하고, 이와 같은 이유로 구석(Shadow Zone)에 소극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 추신수 2013 Swing/Take >

< 홍창기 2021 Swing/Take >

< 후안 소토 2024 Swing/Take >

추신수, 홍창기, 소토 모두 각자 리그에서 뛰어난 선구안으로 주목을 받았던 타자이다. 이들은 Shadow Zone에 스윙을 잘 하지 않고, 존 가운데 Heart Zone엔 공격적으로 대처하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카운트가 불리하더라도 원하는 곳에 오지 않는다면 스윙하지 않으며 출루 자체에 목적을 두기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Shadow Zone에 들어오는 공들은 스트라이크로 판정될 여지가 있어 이런 타자들은 루킹 삼진이 비교적 많다.     

< 리그 평균 Swing% Profile / 2013 추신수 >

개중에서도 추신수는 특정 구획(좌타자 몸쪽)에 배트를 잘 내지 않아 K%가 다소 높은 축이었다. 이곳에 볼이 들어와 스트라이크 콜(called strike)을 받는다고 해도 좋은 타구를 만들기 힘들어서 배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뛰어난 볼넷 생산력과 장타력까지 겸비하여 메이저 리그에서 강한 테이블 세터로 활동할 수 있었다.

한편 존에 대한 감각은 뛰어나지만 인플레이 타구를 만드는데 집중하는 타자도 존재한다. 볼넷을 얻어내기보단 카운트를 길게 끌고 가지 않고 들어온다 싶으면 과감히 스윙하는 것이다. 이 경우 자신의 존이 있지만, 적극성이 높아 이른 카운트에 승부를 보기에 p/pa(타석 당 투구 수)와 순출루율이 낮게 나오는 편이다.

<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2025 Swing/Take >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는 2025년 0.089라는 높은 순출루율을 기록했다. 앞서 언급했던 세 명의 선수처럼 Shadow zone에 많은 스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p/pa는 3.68이었고, 0.131의 순출루율을 기록한 후안 소토의 2024년 p/pa는 4.16이었다. Heart Zone에 스윙을 내는 빈도도 비슷하고 Chase Zone을 참는 것 또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 왜 이런 것일까?

답은 적극성이다. 게레로 주니어는 존 인식이 뛰어나고, 실투 적극성 또한 낮지 않다. 그러나 전반적인 스윙을 내는 빈도가 높아 p/pa가 낮으며 이에 따라 순출루율도 손해를 보게 된다. 이와 반대로 소토는 굴지의 존 인식 능력과 인내력, 그러면서도 높은 실투 적극성과 2S 이후 접근법까지 뛰어나 비슷한 유형(보토, 추신수)과 달리 삼진 회피능력까지 뛰어난 타자다.

< 후안 소토 2024 swing% profile / 2S 이후 Swings Hitmap >

< 2S 이후 Swing% – 2013 추신수 / 2024 후안 소토 >

추신수는 2S 이후에도 존을 벗어난 공엔 손이 나가지 않는다. 커트로 승부를 이어 나가기보단 그의 존을 믿고 삼진을 감수한다. 하지만 소토는 카운트가 몰리면 존을 넓혀 카운트를 번다. 평상시엔 바깥쪽 하단은 배제하지만 2S 이후엔 타격폼을 변화시켜 해당 코스에 대비한다. 이러한 소토의 높은 볼삼비는 카운트에 따라 존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 후안 소토 – 2S 이후 Batting Stance 변화 >

 

끝내며

타율의 시대가 저물고 발사각 혁명과 wRC+가 타자의 생산성을 설명하는 표준적인 스탯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출루율의 가치가 극대화된 요즘이지만 언어의 한계로 인해 단순히 높은 출루율을 가지거나, 볼넷을 많이 골라내는 선수를 더러 ‘선구안이 좋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선구안은 존 인식, 구종 선택, 인내력, 실투 적극성 등이 모두 결합된 선수만의 고유한 ‘타석 접근법(Plate Discipline) 그 자체다. 즉 출루율이 높다고 해서 일률적으로 좋은 선구안을 가졌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이 선구안에 대한 통념을 넘어 선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참조 = STATIZ, Baseball Savant, Fangraph, MLB

야구공작소 서연우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도상현, 전언수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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