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의 귀환

<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

타자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어떤 이는 운동 능력이 절정에 이르는 20대 중반을, 또 다른 이는 운동 능력과 경험이 조화를 이루는 20대 후반을 전성기로 꼽는다.

분명한 것은, 이 논쟁에서 30대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30대에는 경험이 더 쌓이지만, 운동 능력의 감퇴가 훨씬 가파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대체로 30대가 20대보다 볼넷 비율은 높고, 삼진 비율은 낮다. 이는 경험이 쌓이며 타석에서 더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단축된 2020년 시즌을 제외하면, 2000년부터 2023년까지 30대 선수들의 단일 시즌 평균 wRC+가 100을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타격 기량이 급격히 감소한 35세 이상 선수들도 포함된다. 그러나 범위를 30세부터 34세로 좁혀 보더라도, 2013년(101)을 제외하면 단일 시즌 wRC+ 100을 넘긴 사례는 없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4년 30대 이상 선수들의 wRC+는 104로 평균 이상을 기록했고, 이번 시즌 105로 오히려 더 상승했다.

다만, 단순히 wRC+를 근거로 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부 극단적인 성적(아웃라이어)이 평균을 실제보다 높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번 시즌 33세 선수들의 평균 wRC+는 113이지만, 이 집단에는 애런 저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근거로 33세가 타자의 전성기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20대 모든 타자와 30대의 모든 타자를 단순 비교하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 30대에 리그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이미 20대 시절 치열한 경쟁을 통과한 이들이다. 20대 선수는 기량이 부족해도 기회를 받을 수 있지만, 30대는 그렇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시즌 wRC+ 상위 30명만을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이 방식은 뛰어난 선수들만을 평가하므로 표본이 제한되는 단점이 있지만, 동시에 ‘리그 생존자’라는 동일 조건에서 연령대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wRC+ 상위 30 30 선수의 (규정타석 기준, 단축 시즌 제외) >

1996년 이후, 평균 12명의 30대 선수가 WRC+ 상위 3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대체로 30위권에는 10명에서 14명의 30대 선수가 포함됐다.

그래프를 자세히 살펴보면 두 가지 흥미로운 패턴이 눈에 띈다. 2000년대 초반에는 30대 타자가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지만, 반대로 2010년대 후반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이 두 시기에는 모두 야구 역사를 바꾼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스테로이드 시대 & 구속 혁명

먼저 2000년대 초반은 ‘스테로이드 시대’였다. 다수의 선수가 약물의 힘을 빌렸다. 이를 통해 30대 선수들이 약물의 힘으로 운동 능력 저하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1999년 40홈런을 기록한 배리 본즈는 당시 평범한 홈런 타자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이후 약물의 힘으로 노쇠화를 거스르고 야구의 신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약물 규제가 시작된 2000년대 후반 30대 타자들의 활약은 다시 평범한 수준으로 돌아왔다.

반대로 2010년대 후반은 30대 타자들의 암흑기였다. 구속 혁명으로 평균 구속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젊은 시절 비교적 느린 공을 상대하던 30대 타자들에게 강속구에 큰 벽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시프트의 발전으로 약한 타구는 더 이상 안타로 이어지지 않았고, 이에 따라 플라이볼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선수들의 운동 능력이 중요해졌다.

이후에도 어려움은 계속됐지만, 지난 시즌을 기점으로 반전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록 한 시즌에 불과하지만, 이번 시즌 30대 타자들의 활약은 스테로이드 시대와 견줄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동안의 통념을 거스를 정도의 큰 변화가 리그 전반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구속 혁명의 종말

30대 타자들의 숙제는 떨어지는 신체 능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스테로이드 시기에는 약물의 힘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신체 능력이 강조되던 2010년대 후반, 30대 타자들은 답을 찾지 못한 채 방황했다.

구속 혁명은 2010년대 후반 30대 타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타자들이 상대해야 할 공의 평균 구속은 매년 약 0.3마일씩 빨라졌다. 이는 30대 타자들에게 너무 큰 벽으로 다가왔다. 매년 빨라지는 구속에 적응해야 했지만, 운동 능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평균 구속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이전에 수많은 30대 선수는 구속 혁명의 한복판에서 휩쓸려 나갔지만, 현재 남은 30대 선수들은 구속 혁명에서 생존한 이들이다.

< 27~30 vs 31~34 타자 포심 상대 wOBA >

26세 이전까지는 기량이 떨어지는 유망주들이 표본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제외한다. 노쇠화로 성적 하락이 가팔라지는 시점이 만 35세이기 때문에 역시 제외한다.

27세에서 30세 타자들과 31세에서 34세 타자들의 포심 상대 wOBA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번 시즌 30대 타자들이 어느 때보다 20대 타자들보다 포심 구종을 더 효과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구속 혁명의 종말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30대 타자들이 빠른 구속에 적응한 것도 맞지만, 20대 타자들 역시 이미 어린 시절부터 빠른 구속을 상대해 왔다. 여전히 20대 타자들의 운동 능력이 더 뛰어날 것이기 때문에, 구속 혁명의 종말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더욱 늘어가는 변화구

일반적으로 타자는 경험이 쌓일수록 변화구 대처 능력이 좋아진다고 알려져 있다. 유망주 투수들은 대체로 변화구 완성도가 낮다. 그래서 타자들은 메이저리그 콜업 이후에야 비로소 높은 수준의 변화구를 경험한다. 그리고 변화구를 상대할 때는 패스트볼을 상대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운동 능력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이는 변화구의 구속이 패스트볼보다 느리기 때문이다.

< 2008~2025년 패스트볼 구사율 (단위 : %) >

시간이 지날수록 투수들의 패스트볼 구사율은 감소하고 있다. 구속 혁명 당시에는 포심 구사율이 일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구속 혁명이 끝나가는 현재는 패스트볼 구사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이르렀다. 대신 투수의 변화구 구사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많은 투수가 패스트볼의 빈자리를 슬라이더로 대신하고 있다.

< 27~30 vs 31~34 슬라이더 그룹(슬라이더, 스위퍼, 슬러브) 상대 wOBA >

이전까지는 슬라이더 상대 성적에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구속 혁명 시기에는 30대 타자들이 패스트볼 공략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슬라이더 공략마저 어려워했다. 하지만 30대 타자가 패스트볼에 적응하기 시작하면서, 슬라이더 상대 성적에서도 20대 타자를 앞서기 시작했다.

< 2024, 2025 27~30 vs 31~34 슬라이더, 스위퍼 wOBA >

특히 스위퍼의 등장은 젊은 타자에게 악몽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스위퍼가 익숙해지기 시작한 작년부터 두 연령대 그룹의 스위퍼 성적 차이가 나타났고, 올해 그 차이는 더욱 벌어졌다.

게다가 최근 투수들은 더 많은 변화구를 꺼내 들기 시작했다. 아시아에서 유행하던 스플리터를 던지는 투수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킥 체인지업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체인지업도 등장했다. 이런 변화는 최소한 젊은 타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변화구들을 위력적으로 구사하는 선수들은 대부분 유망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현상? 혹은 흐름의 시작?

위 분석에도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WRC+ 상위 30명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는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로, 이들이 겪는 노쇠화는 평범한 선수와 다를 수 있다. 또 현재 30대에 접어든 선수들의 재능이 월등히 뛰어나서 나온 결과일 가능성도 있다. 역사상 최고의 재능이라 평가받던 브라이스 하퍼, 베이브 루스를 소환한 저지, 50-50을 달성한 오타니 쇼헤이, 이들과 맞먹는 타격 재능을 가진 20대 선수는 현시점 사실상 후안 소토가 유일이다.

구속 혁명이 사실상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면, 투수들은 패스트볼만으로는 우위를 점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더 다양한 변화구를 활용해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더 다양한 변화구가 등장할 것이다. 이에 따라 타자들은 더욱 다양한 무브먼트를 지닌 변화구에 맞서야 한다.

아직 30대 타자들이 더 유리하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외면받았던 올드보이들은 다시 깨어날 채비를 마쳤다.

 

번외

 

그렇다면 KBO에서는?

KBO리그는 전통적으로 30대 타자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국내 선수 기준으로 보면, 2006년 이후 단 한 번도 20대 타자들이 30대 타자들의 성적을 넘어선 적이 없다. 전반적인 평균 구속이 메이저리그와 비교해서 느리다는 점이 30대 타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KBO리그의 구속 혁명은 메이저리그와 다르게 현재진행형이다. 스탯티즈 기준 포심의 평균 구속은 2020년 142.4km/h에서 올해 146.1km/h로 증가했다. 구속 측정 방식이 PTS에서 올해 트랙맨으로 바뀐 것을 고려해도 평균 구속이 5년간 약 2km/h 증가했다.1

그렇다면 KBO리그에도 201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2020년 외국인 투수들의 포심 평균 구속은 146.7km/h였다. 이는 올해 국내 선수들의 포심 평균 구속 145.2km/h보다 높다.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구속 혁명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구속과 상대해야 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KBO 타자들은 이미 과거 외국인 투수들을 통해 그 정도 구속을 경험한 바 있다. 따라서 국내 투수들의 구속 증가가 타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올지는 확실치 않다.

또 단순히 평균 구속의 증가로 20대 타자들이 유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메이저리그의 20대 타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새로운 구종은 아직 KBO에 본격적으로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위퍼, 킥 체인지업과 같은 구종은 여전히 일부 외국인 투수들의 전유물이다. 이미 KBO에서 보기 쉬운 포크볼(스플리터)과 포크볼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킥 체인지업을 제외하더라도, 기존 슬라이더와 크게 차별되는 무브먼트를 가진 스위퍼가 대중화된다면 리그의 판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평균 구속 증가만으로 30대 타자들이 불리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의 KBO는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다. 평균 구속이 앞으로 어디까지 상승할 것인지, 투수들의 새로운 변화구 장착이 얼마나 빨리, 또 광범위하게 이뤄질 것인지에 따라 리그의 흐름이 크게 변할 것만큼은 분명하다.

 

참조 = Baseball Savant, Fangraphs, Statiz

야구공작소 탁원준 칼럼니스트

에디터 = 야구공작소 천태인, 도상현

일러스트 = 야구공작소 한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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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상적으로 PTS가 트랙맨보다 구속을 1~2km/h 정도 낮게 측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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